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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미래의창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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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빙산의 일각에서 본 풍경

1장 그에게도 가족이 있다

- 각자의 시간
- 아이들의 편지
- 당당한 거짓말이 그리워질 때
- 미처 하지 못한 말
- 아버지와 아들

2장 그날 이후 삶이 바뀌었다

- 낙숫물이 바위를 뚫은 기적
- 이러려고 대한민국에 왔나
- 생과 사
- 장발장법, 그 뜻밖의 인연
- 어떤 소나기

3장 재범은 늪과 같아

- 예견된 조우
- 죄는 미워도 미워지지 않는 선수
- 중독의 굴레
- 나도 피해자라고요

4장 변론의 처음과 끝, 소통

- 그들의 변호인
- 뫼비우스의 띠
- 주제넘은 상담
- 좋은 국선, 나쁜 국선

5장 법과 사람 사이

- 무죄가 부끄러울 때
- 일명 자뻑 변론의 종말
- 돈과 국선의 상관관계
- 이웃집 아줌마의 가르침

에필로그 사소하고 조각난 이야기를 넘어

저자 소개 1

국선전담변호사.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영남일보 기자로 15년 일했다.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하던 2009년 강원대학교에서 법 공부를 시작, 졸업 후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을 거쳐 수원지방법원에서 6년째 일하고 있다. 기획 취재를 좋아하던 기자 시절, 신문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모아 『태양도시』,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골목을 걷다』(공저)를 펴냈다. 전 직업의 영향으로 본인을 무엇이든 쓰는 자(記者)로 여기며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무렵 변호사시험 기록형 수험서를 쓰기도 했다.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며 피고인이라 불리는 약 2천 명의 이야
국선전담변호사.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영남일보 기자로 15년 일했다.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하던 2009년 강원대학교에서 법 공부를 시작, 졸업 후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을 거쳐 수원지방법원에서 6년째 일하고 있다.

기획 취재를 좋아하던 기자 시절, 신문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모아 『태양도시』,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골목을 걷다』(공저)를 펴냈다. 전 직업의 영향으로 본인을 무엇이든 쓰는 자(記者)로 여기며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무렵 변호사시험 기록형 수험서를 쓰기도 했다.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며 피고인이라 불리는 약 2천 명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법의 언어로 풀어서 말하고 쓰며 변호사의 길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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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52g | 145*210*20mm
ISBN13
9791192519159

책 속으로

“누구한테 맞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환자가 정신병이 있다 보니 시간을 구체적으로 표현 못하고 예전에 누가 때렸다고 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환자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시간을 알지 못했고, 우리는 그의 시간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쩌다가 중증조현병 환자가 돼 거리를 떠돌게 됐는지, 어쩌다가 하나뿐인 아들마저도 거주 불명이 됐는지 아무도 말해줄 수 없다. 병원에서 보낸 말년의 시간만 기록에, 그것도 자신을 죽음의 문턱으로 데려간 다른 환자의 형사 기록에 남았다.
--- p.19

국가의 형벌이 한 가족에게, 특히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 사건 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일개 국선변호인에 불과한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너무 거대한 화두였다. 절절하게 안타까웠던 당시의 마음도 밀려드는 사건에 묻혀 기억에서 서서히 잊혔다.
--- p.31

피고인 말이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변론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사건과는 달리 이 사건에서는 내가 그의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는 게, 그래서 꽤 긴 시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고 연구했다는 게 억울했다.
--- p.43

“그게 아니고요. 감옥에 오래 있었으면 해서요. 무기징역이나 최소 20년 정도 나올 수 있나요?”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말에 수사 기록에서 본 정신감정 보고서 내용이 퍼뜩 생각났다. 수화기를 고쳐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버지가 집에서 폭력을 행사했나요?” 전화기 저쪽은 한동안 답이 없었다. “되도록 중형을 받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답을 피하는 목소리는 예의 바르고 차분했다.
--- p.49

“낙숫물이 결국 바위를 뚫지 않습니까. 제게 결과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형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저도 제 몫을 하고 싶습니다.” 반듯한 신앙인으로 살아와서 아직 현실을 잘 모르는 20대 초반 청년이 하는 말이라 여기면 특별할 것도 없는 상황에 나는 뜻밖에도 말문이 막혔다. 삶의 효율에 관해 물었는데 삶의 자세에 대해 답한 우문현답이어서였을까.
--- p.75

집 근처까지 오니 요란했던 소나기가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내 몰골은 영락없이 물에 빠진 생쥐였다. 집에 들어가 젖은 옷을 베란다에 널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신발에는 신문지를 채웠다. 가방을 열어보니 휴대폰은 다행히 많이 젖지 않았는데 사건 기록은 엉망이었다. 기록을 하나하나 펴서 말리다 그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력도, 과거 병력도 없었던 그녀는 어쩌다가 잠시 피할 데도 없는 소나기에 갇혀버린 걸까.
--- p.124

“밤에 대리 기사 알바 하거든예. 새벽 6시쯤 일은 마쳤는데 그때 자면 오전 10시 재판 시간 맞춰 못 올 거 같아서예. 밤새고 일찍 왔더니 졸리네예.” 그는 멋쩍은 듯 웃으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고단한 삶의 무게가 드리워진 얼굴이었다. 사기꾼 하면 연상되는 교활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보증금 70만 원을 마련한 젊은이들에게 사기 친 그 파렴치한을 떠올리니 다시 혼란스러웠다.
--- p.145

그는 아직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방심하고 있는 여자들 앞에서 ‘보여줌’의 권력을 즐기면서도(아마 볼품없고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는 그가 권력자가 되는 유일한 순간일 것이다) 막상 심판대에 서면 피해자들에게, 변호인에게, 판사에게, 자신이 당한 과거의 피해를 들이밀었다. 한때 피해자였던 그는 이제 가해자이면서도 ‘나는 피해자’라는 굳건한 틀 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선고 결과는 징역 2년이었다.
--- pp.171~172

“아빠~ 잘.못.한. 거. 맞.지? 밤.에. 골.목.에.서. 잘.못.한. 거?” 그 말에 대한 답변은 평소 연습이 됐는지 그가 금방 답했다. “응, 내가 잘못한 거여. 다시는 안 그럴 거여.” 그렇게 간신히 재판을 마쳤다. 변호인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피고인의 변명을 듣고 이를 법률적 용어로 바꿔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하려면 전제가 있다. 바로 피고인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격증만 있는 허수아비였다.
--- pp.187~188

‘그래도 내가 변론해서 벌금이 절반이나 깎였잖아, 그 사람도 만족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선고 결과 확인이나 항소 여부는 보통 피고인이 직접 챙기고 결정한다. 상담할 때 이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한다. 항소장을 대신 제출해달라고 부탁하면 당연히 해주지만, 피고인에게 선고 결과를 알려줄 의무나 항소기간 중에 다시 항소 여부를 결정하라고 알려줄 의무는 없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은 걸 뒤늦게 후회했다. 내가 잘난 척하며 결과를 예단해서 말한 게 화근이었다.
--- p.247

그녀에게 과연 국가란 무엇이었을까. 정책을 잘못 입안해 시위하게 만들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무차별적으로 시위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무수한 SNS와 대조하며 단순 시위 참가자를 찾아내 기소하고, 한편으로는 국선변호인을 붙여주면서 방어하게 하고, 대법원에서 새 법리가 나왔으니 무죄라고 하고, 채증이 위헌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반대 의견으로 당신 말도 일리가 있다며 위로하는, 이 모든 모순이 가능한 존재. 그게 바로 국가였다.

--- p.272

출판사 리뷰

국선전담변호인, 빙산의 일각에서 풍경을 보다

“마음에 큰 병이 있는데도 수십 년 방치되고 치료받지 못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들, 폭력이 일상인 환경을 견뎌내고 살아남아 폭력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미워했으면서도 어느새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발견하는 한때 피해자였던 가해자들, 돈이 너무 궁한 나머지 앞뒤 가리지 못하고 대출이나 취업의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부지불식간에 엄청난 범죄 조직의 하수인이 되고 만 이들, 절대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이를 지지해줄 사회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 순간의 유혹 앞에서 번번이 무너져버리는 무력한 이들, 어리숙하고 모자란 탓에 ‘진짜 나쁜 놈들’에게 이름을 빌려줬다가 범죄자가 되고 자신도 모르는 빚까지 떠안는 이들···.”

국선전담변호사인 저자는 사건이 벌어진 지 3~4개월, 대개 6개월이나 1년 후, 어떤 경우는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이들의 사연을 듣는다. 성범죄 및 마약범죄 전담 재판부에 배정돼 매달 살피는 25건 내외의 형사 사건에는 범죄 자체만이 아니라 국선변호인을 만날 자격을 갖춘 취약 계층이 맞닥뜨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현실이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사건을 적나라하게 분석할수록 이들의 사연은 개인의 잘못과 우리 사회의 문제가 만들어낸 잔혹한 현실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빙산에서 본 이 사소한 이야기도 분명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 몇몇 이들이 내어준 눈물을 마신 덕에 나는 변호사로,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 조금씩 성장했다.”


피고인이면 무조건 극악무도할 거라는 편견과 다르게 그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그들이 인간이기에 하고야 마는 나약한 선택과 잘못된 굴레 안에 갇히는 이면들도 있었다. 저자가 피고인을 변론하는 국선변호사로서 마음을 다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고 주제넘은 연민이 화를 불러올 때도 있었으며, 그의 잘못된 자만심으로 피고인을 범죄자로 만들 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변론을 해오는 사이 저자도 연차가 쌓인 국선전담변호사가 돼 더 깊어진 눈으로 사건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변론을 시작하고 끝마치면서 스쳐 지나가는 피고인들의 사연을 통해 저자는 한 명의 변호사로,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법과 사람 사이에서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현실이 흔하게 널려있었다. 저자는 이들의 눈물을 보려고 하지도 않거나 애써 외면하며 지나친 적이 훨씬 더 많았다고 실토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의 마음을 계속 두드리는 사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변호사로서 저자는 그러한 삶의 안팎을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불완전하고 조각난, 미완’ 경계를 넘어

범죄 안팎의 풍경은 너무나 작고 사소하고, 또 조각 나 있다. 아마 앞으로도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처럼 이야기의 힘을 믿어본다. 하나의 이야기가 모여 사회를 변화시킬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이들의 분절된 이야기들이 쌓여서 우리 사회의 ‘불완전하고 조각난, 미완’ 경계를 넓히는 시도하고자 한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 이 작고 분절된 이야기들이 가 닿길 바란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끝에 쓰인 말처럼 국선변호제도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방법이든, 더 크고 구조적인 ‘악’에 대한 대책이든, 범죄에 취약한 계층의 자립을 돕는 방안이든, 그 무엇이든 실질적인 대책으로 우리 사회의 경계가 넓어질 수 있었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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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고 분절된 사연들이 불완전한 경계를 넓히는 순간
    작고 분절된 사연들이 불완전한 경계를 넓히는 순간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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