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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아내에게 뭐라고 말하지
제2장 아내를 위한 기획이 떠오르다 제3장 아내 대신 결혼 활동을 하자 제4장 아내에게 어울릴 만한 상대는 제5장 아내의 맞선 상대를 찾았다 제6장 아내와 헤어지자 제7장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 에필로그 |
Takuji Higuchi,ひぐち たくじ,ヒグチ 卓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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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 아이디어 수첩을 펼치고, 만년필로 먼저 ‘앞으로 남은 6개월을 어떻게 살 것인가 기획’이라고 적어 보았다. 대개는 남은 시간을 가족과 지내며 간병 속에서 죽어 간다. 내가 생각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사라지고 난 후에 아내와 아들이 웃을 수 있는 기획이다. 그게 어떤 기획인지는 아직 전혀 알 수가 없다. 상당히 힘든 숙제다.
아이디어 수첩을 훑다 보니, [기획을 생각하지 말고 ‘기분’을 기획으로 해야 한다!]는 문장이 눈에 띈다. 방송작가는 예술가가 아니다. 늘 시청자의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서비스업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시청자가 보고 싶은 것을 ‘즐거운 것’으로 변환해 기획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결심한 날부터 기획이 통과되지 않아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으며, 내 프로그램을 보다가 채널을 돌려도 풀 죽지 않았다. 거실에서 웃는 얼굴을 상상하며 열심히 하자고 결심했다. --- p. 33 결혼을 꿈꾸는 남녀가 저마다 자신의 이상에 대해 말했다. 현실을 알려 줘야만 한다. 조용해진 가운데 나는 입을 열었다. “저기요, 결혼생활을 통해 안락함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다시 주위에 술렁임이 이어졌다. “남자는 밖에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기 때문에 집에서만큼은 아내의 위로를 받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가정에서 더욱 연기를 해야만 합니다. 긴장을 풀면 안 됩니다. 집 대문을 연 순간부터 연기를 해야만 해요. 슈퍼맨도 변신하지 않으면 괴수에게 이길 수 없어요. 위로 받고 싶다는 이유로 결혼하면 후회합니다.” 흥분해서 우리 집의 경우를 말하고 말았다……. 뭐, 이렇게 된 이상, 그냥 가 볼까? “난 부부가 와인을 마시면서 DVD 같은 걸 보는 게 꿈인데요.” 7대3으로 가르마를 탄 남자가 말하자,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할 때가 행복한 겁니다. 같이 술을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보노라면 아내가 ‘이게 뭐야?’ 하고 귀여운 목소리로 질문합니다. 그 말에 대답하면 안 돼요. ‘이건 말이지.’ 하고 자세히 설명하려고 하면 ‘쉿, 조용, 지금 중요한 장면이야.’ 하고 말합니다. 자기가 먼저 질문해 놓고 말이죠. 그럼 이쪽은 할 말을 잃고 아내의 옆얼굴을 보면서 굳은 표정을 짓게 되는데, 부부 사이에 흔히 있는 풍경입니다. 하지만 그런 걸로 낙담해서는 안 됩니다.” --- p. 92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왜 아내의 결혼상대를 찾으려는 거죠?” “그건.” “그건?” “좋은 가족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져도 끝내고 싶지 않아요. 좋은 프로그램은 사회자가 바뀌어도 계속되잖아요. 그래서 확실하게 이토 씨와 만나 바통터치할 거예요.” “정말, 미무라 씨는 무엇이든 다 프로그램과 결부시킨다니까요.” “만약 들통이 나면 회사 신용도는 괜찮을까요?” “괜찮아요. 기획이 재미있어서 수락한 거잖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받아들이지 않았죠.” “…….” 이런 일에 끌어들여,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사무실에서 나오자 이메일이 와 있었다. 아내에게서 온 것이었다. 제목에 감탄부호가 세 개나 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혹시 내 병이 들킨 건가? 조심스럽게 이메일을 열어 보았다. ‘요이치로가 시험에서 백 점 맞았어!’ 답안용지 사진도 첨부되어 있다. 아들도 노력하고 있다. 기쁨과 동시에 지금까지 신경 쓰이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들에게 내 병에 대해 어떻게 말하지? 아들뿐만 아니라, 부모님께도 알려야만 한다. 아내 못지않게 어려운 문제다. 아무튼 지금은 아내의 결혼상대를 찾는 데 집중하자. 눈앞에 있는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그러고 나서 아들과 부모님께 말하자. 남은 시간은 앞으로 한 달이다. --- p.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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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은 시간을 가족의 간병 속에서 죽어가긴 싫다.
내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아내와 아들이 웃을 수 있는 기획을 만들고 싶다! 소설의 주인공 미무라 슈지는 경력 22년의 방송작가이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솔직함과 유머를 바탕으로 시청자들을 웃게 만드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보람인 그는 어느 날 의사로부터 췌장암 말기, 그리하여 앞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청천벽력의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때마침 자신이 맡고 있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시청률 저하로 폐지될 수 있다는 담당 피디의 말을 듣게 되자, 어떻게 아내에게 털어놓을지 고민한다. 결국 슈지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을 가족의 미래에 투자하기로 결심한다. 그 순간 ‘아내를 위해 시한부 인생 6개월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작전은 마치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처럼 다가오고, 모두에게 최선일 수 있는 기획을 짜기 위해 고심하던 슈지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아내를 결혼시켜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점점 살 수 있는 날들은 줄어들고 아내를 결혼시키기 위한 온갖 기획안을 검토하던 가운데 최근 유행하는 미혼여성의 결혼관을 조사하며 본격적인 아내의 ‘결혼활동’에 나선 슈지. 방송국 AP를 통해 미팅 프로그램에 참가하는가 하면 괜찮은 주변 방송인들 중에서 아내에게 가장 어울릴 만한 상대를 물색해보기도 하지만 모두 여의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슈지는 가장 잘나간다는 결혼상담소 소장을 찾아가 자신의 상황을 모두 털어놓은 뒤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내에게 가장 어울릴 만한 상대를 찾아내는데, 가장 어려운 최종 관문인 아내와 헤어지는 작업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슈지는 과연 아내를 설득할 수 있을까?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을 때야말로 즐거운 일을 떠올려야 한다.” 일과 사랑, 결혼과 인생에 대한 재기발랄하고 페이소스 넘치는 입담과 감동! 작품의 모티브가 방송 프로그램 기획에서 시작되었듯 이 소설의 내용 역시 기획에 대한 주인공의 고민에서 출발한다. 방송작가는 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기획에 대한 갈증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기획에 대한 강박으로 22년 동안 일과 사생활의 구분 없이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남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역시 감동의 기획이라는 아이러니. 그만큼 주인공은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열심히 몸부림쳐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노동의 흔적과 상처. 그리고 거기서 얻어진 깨달음과 지혜들. 열정을 가지고 오래 일해 온 베테랑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촌철살인의 메시지들이 소설 곳곳에 박혀 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위기에 처할수록 유연하고 즐겁게 대처하려는 주인공의 자세이다. 낙관과 유머야말로 일에서의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죽음이라는 최악의 순간에까지 이르러 삶을 버티게 할 수 있는 인생 최고의 선물임을 작가는 역설한다. “애초에, 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일 슬퍼할 가족에게 말해야만 하는 것일까?” 주인공에게는 슬퍼할 시간조차 아깝다. 분주하게 아내의 배필감을 찾아나선 결혼활동 현장에서 미무라 슈지는 결혼에 대한 다채로운 사회적 시차를 접하게 된다. 일에 쫓겨 혼기를 놓쳐버린 미혼 여성들이 처한 사정, 미혼 남녀들이 갖고 있는 결혼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괴리 등 이른바 결혼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은 흡사 한국의 현실을 보는 듯 생생하다. 솔직함과 유머를 무기로 살아온 주인공의 기질은 매순간 유감없이 발휘되어 작품 전반에 걸쳐 결혼과 인생에 대한 따뜻하고 유쾌한 통찰들이 번뜩인다. 죽음의 순간까지 가족의 행복을 위한 비장의 프로젝트를 실행시켜나가는 한 남자의 눈물겨운 스토리는 결국 성공을 거두는 듯하지만, 그 완성의 뒤에는 동료와 가족들의 또 다른 기획이 숨겨져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감동은 배가된다. 부부의 사랑, 가족의 사랑, 동료 간의 사랑. 각각의 사랑이 유머라는 의상을 걸치고 등장하는 한 편의 코미디 같지만, 웃으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는 일본에서의 평처럼 한국 독자들도 모처럼 웃음과 눈물의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길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