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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큘럼 소개
수업 준비 : 보는 것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세계를 바꿔나가는 일이다 0.1 삐딱하게 보다 0.2 진실을 볼 수 있는가? 0.3 관점 0.4 객관적 시점 0.5 직관 0.6 올바르게 본다≠똑바로 본다 0.7 올바르게 보는 것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세계를 바꿔나가는 일이다 첫 번째 수업 / 정리의 시점 1.1 파스칼 : 기하학 _ 왜 수학을 배우는가? 1.2 소쉬르 : 가치 _ 왜 인기 있는 얼굴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가? 1.3 데카르트 : 기계 인간 _ 인간은 안드로이드가 될 수 있을까? 1.4 데리다 : 로고스 중심주의 _ 왜 대화력이 중시되는가? 1.5 루소 : 사회계약 _ 국가가 먼저인가, 국민이 먼저인가? 1.6 마르셀 : 실존 _ 팬데믹 이후의 모습은? 특별수업 _ 스미스가 본 미래 |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인간 두 번째 수업 / 해체의 시점 2.1 몽테뉴 : 회의 _ 판단 중지는 사고 정지인가? 2.2 르봉 : 군중 _ SNS가 국가를 움직이는가? 2.3 벤야민 : 아우라 _ 왜 굳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가? 2.4 바타유 : 유용성 _ 왜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버전업되는가? 2.5 푸코 : 패놉티콘 _ 24시간 감시 사회는 오는가? 2.6 소쉬르 : 자의성 _ 경계 문제는 왜 어려울까? 2.7 들뢰즈 : 차이 _ 모두 달라서, 좋은가 나쁜가? 2.8 레비나스 : 타자의 얼굴 _ 얼굴 없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까? 특별수업 _ 헤겔이 본 미래 | 역사와 자유 세 번째 수업 / 탐구의 시점 3.1 카뮈 : 반항 _ 왜 권위는 수상쩍은가? 3.2 푸코 : 에피스테메 _ 아이디어는 어디서 생겨나는가? 3.3 사르트르 : 상황 _ 비상사태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없을까? 3.4 하이데거 : 현존재 _ 왜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까? 3.5 베르그송 : 운동 _ 인생 성공의 방정식이 있을까? 3.6 메를로퐁티 : 신체 _ 신체인가 정신인가, 그것은 문제인가? 3.7 아렌트 : 활동 _ ‘알바’로 살면 안 될까? 특별수업 _ 마르크스가 본 미래 | 가축 인간 네 번째 수업 / 발전의 시점 4.1 소쉬르 : 문맥 _ 알아서 비위를 맞추는 행위는 왜 바람직하지 않은가? 4.2 사르트르 : 자유 _ 자유가 먼저인가, 부자유가 먼저인가? 4.3 클로소프스키 : 시뮬라크르 _ ‘나’의 가치는 얼마일까? 4.4 장켈레비치 : 도덕 _ 도덕 교사는 도덕적인 사람인가? 4.5 블랑쇼 : 우애 _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I 4.6 낭시 : 죽음 _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II 4.7 라캉 : 대타자 _ 무의식이란 어떤 세상일까? 4.8 보부아르 : 자기 _ ‘나답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별수업 _ 리쾨르가 본 미래 | 아이덴티티의 수난 다섯 번째 수업 / 재생의 시점 5.1 메를로퐁티 : 시선 - 어디를 보고 있는 거야? 5.2 사르트르 : 투기 _ 인간에게 미래는 있는가? 5.3 바르트 : 저자의 죽음 _ 이것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5.4 바타유 : 에로스 _ 왜 성인 비디오에는 예술성이 없는 걸까? 5.5 베르그송 : 이마주 _ 뭐든지 보이는 거울이 있다면 무엇을 보겠는가? 5.6 데리다 : 차연 _ 이문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무엇인가? 5.7 들뢰즈 : 난센스 _ 불가능한 일을 하는 것은 무의미할까? 특별수업 _ 리오타르가 본 미래 | 개미 인간의 비참함 여섯번째 수업 / 창조의 시점 6.1 카유아 : 놀이 _ 잘 놀고 있는가? 6.2 파스칼 : 섬세함 _ 왜 예술은 필수과목이 되지 못하는가? 6.3 푸코 : 인간 _ 인간에게 유통기한이 있을까? 6.4 사르트르 : 고매성 _ 비상사태를 극복하는 정신이란 무엇일까? 6.5 베르그송 : 사랑 _ 진실한 사랑에 어울리는 사람은? 6.6 바타유 : 지고성 _ 세계는 왜 선에 주목하는가? 6.7 마르셀 : 성실함 _ 사랑하고 존경하며 아낄 것을 맹세합니까? 특별수업 _ 보드리야르가 본 미래 | 물건에 조종되는 인간 수업을 끝내며 |
大竹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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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은 그 자체로는 존재할 수 없다. 항상 ‘본다’는 행위와 함께 존재한다. 인터넷상에 있는 것은 지식이기는 하지만 시점은 아니다. 시점은 이용되어야 비로소 시점일 수 있다. 그리고 시점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지식을 빌려 쓸 수 있을지 몰라도 눈을 빌려 볼 수는 없는 법이며, 이 점이 바로 ‘지식’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 p.14 ‘안다’는 것에는 아는지 혹은 모르는지 두 가지 선택지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본다’는 것은 무한히 가능하다. 각도와 거리, 또는 시선을 바꾸면서 선택지가 무한으로 주어진다. --- pp.15~16 실제로 우리는 정말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가? 세상 혹은 유행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는가? 세상의 시점이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시각이며, 유행의 시점은 ‘이러이러하길 바란다’는 시각이다. 이에 반해 몽테뉴가 전수하는 시점은 ‘정말로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가?’다. --- p.96 진짜 철학은 세계를 보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일이다. 철학이란 자기 자신의 단서가 항상 갱신되어가는 경험이다. 철학적 시점이란 완성된 세계의 모습에서 일단 떨어져 세계를 다시 자신의 눈으로 보려는 것이다.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추상적 개념으로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다시 보려고 하는 부단한 노력, 이것이야말로 철학을 하는 일이다. --- pp.161~162 시선이란 사진기처럼 세계를 ‘복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시선의 힘을 통해 독특한 모습으로 세계에 의미를 붙여 나간다. --- p.227 인간은 항상 자유롭다. 어떻게 자신을 만들어갈지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자유롭다는 건 미래에 열려 있다는 뜻이다. … 자신을 던져 넣는 데 공포와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미래로 향해 열려 있다는 의미다. 즉 ‘자유다’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르트르는 아무런 불안도 걱정도 없는 사람을 단죄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들은 물건화되어가는 것이다. 누구나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그런데 불안이야말로 자유의 증거라고 한다면 어떤가? --- p.231 ‘나라는 인간’을 알고 싶다면 과거를 봐서는 안 된다. 과거의 영광 같은 것은 인간을 물건으로 만드는 함정일 뿐이다. ‘하나의 미래를 도래’시킴으로써 드디어 나중에 그것을 알 수 있다. --- p.233 경제체제와 정치제도는 궁극적으로 사회를 유지할 뿐 아니라 우리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존재한다. 어떠한 사회에서든 그 토대는 ‘왜 사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요구되는 물음이며 그를 위한 시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시점은 자신의 신체와 세계 관계 방식에 기점이 될 것이다. --- pp.305~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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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들고 세상을 바꾸는
남다르게, 나답게 세계를 ‘보는’ 방법 모르는 것이 있다면 클릭 한 번으로, 터치 한 번으로 답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방대한 양의 지식이 아주 가깝게 존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게 정보,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된 것과 거의 동시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게을러지고 있는 듯하다. 기억하는 것도 서툴러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요사이 ‘문해력’이라는 단어가 유행이 된 것도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남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지 않으려면》의 두 저자 오타케 게이와 스티브 코르베유는 그런 지금이야말로 ‘철학이 나설 차례’라고 말한다. 철학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고, 이를 통해 ‘나만의 생각’을 확고하게 세우는 것 자체가 철학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건 그럼에도 철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을 위한 이 책의 ‘사용설명서’다. 책은 제대로 보는 것이 무엇인지 앞부분에 설명하고, 이어 현대인이 한 번쯤 생각했을 법한 혹은 생각해야 할 질문들을 제시한다.철학에서는 ‘옳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답’이 아니라 ‘프로세스’, 즉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느냐다. 과거 철학자들이 답을 찾는 과정에 집중하고 함께 생각하는 동안 독자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세상의 의문에 나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철학하는 일상의 시작 오늘날, 사람들이 MBTI에 과몰입하는 것은 '정말로 나다운 건 무엇일까?'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것은 16개 중 하나의 유형에 자신을 집어넣는 것일 뿐, 진짜 나 자신을 찾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나다운 건 무엇일까? 나답게 행동하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도 시원하게 대답을 해줄 것 같지 않은, 그러나 살면서 누구나 해봤을 이 물음은 철학자 보부아르의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보부아르는 여성을 물건 취급하고 남성의 소유물로서 치부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성다움’이라는 말로 여성 자체를 일정한 틀에 가두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다움’이라는 것을 규정할수록 자유를 잃고 ‘남성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제2의 성》 등에서 볼 수 있는 보부아르의 시선을 바탕으로 우리가 고민하는 ‘자신다움’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답게, 있는 그대로? 그런 것은 초월해서 나아가라”는 그의 말은 나다운 것을 고민하는 이들이 찾던 답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책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한번쯤 떠올렸을 법한 43개의 질문이 담겨 있다. ‘AI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을까?‘ ‘팬데믹 이전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인생 성공의 방정식이 있을까?‘ 저자들은 각 철학자가 평생에 거쳐 탐구했던 주제를 바탕으로, 그들이라면 어떻게 이 질문에 대답했을 것인지를 보여준다. 철학이야말로 우리와, 일상과 이토록 가까울 수 있다. 이제는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가 힘이다 저자들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건 ‘철학하는 일은 인간에게 주어진 신체적 행위’라는 것이다. ‘아는 것‘이 아닌 ‘보는 것‘. 자신이 직접 눈으로 대상을 보고, 조금씩 방향을 바꿔 나가면서 나만의 시점, 즉 나만의 생각을 온전히 쌓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식이 아니라 ‘시점‘이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지식’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다. 또한 당연히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며, 특수한 사정에 의해 바뀌지 않는 것이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이 지식을 무한히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는 예상외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지식의 독점과 계급화, ‘모르면 패배자‘라는 심리적 압박감, 가짜 지식의 범람 등이 그것이다. 반면 시점은 그 자체로는 존재할 수 없다. 항상 ‘본다’는 행위와 함께 존재한다. 인터넷상에 있는 것은 지식이긴 하지만 시점은 아니다. 시점은 이용되어야 비로소 시점일 수 있다. 그리고 시점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지식을 빌려 쓸 수 있을지 몰라도 눈을 빌려 볼 수는 없는 법이며, 이 점이 바로 ‘지식’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시점‘을 공유할 만한 33인을 선별해 넣었다. 우리가 잘 아는 파스칼, 하이데거, 사르트르에서 생소한 소쉬르, 바타유까지, 이 철학자들이 세상과 인간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점을 통해, 우리는 문제의 전후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렇게 얻은 나만의 시점은 최첨단 인공지능이 주는 지식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시대가 바뀌어도 휩쓸리지 않는 힘을 만들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