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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Ⅰ. 그 길 위에서 한 사람 건너/ 선물/ 화엄/ 다시 천년을 넘어-백제금동대향로/ 노래/ 봄의 사람/ 먼 길/ 눈물 찬讚/ 기도/ 눈 위에 쓴다/ 풀꽃 1/ 오직 너는/ 첫눈/ 풀꽃 2/ 사는 법/ 작별/ 안부/ 꿈/ 떠나와서 Ⅱ. 우리는 서툴게 손을 잡았고 안개/ 어리석음/ 목걸이/ 대숲 아래서/ 돌아가는 길/ 세상을 사랑하는 법/ 생명/ 거울/ 귀소/ 집/ 외딴집/ 고향/ 동백/ 어쩌다 이렇게/ 꽃/ 가인을 생각함/ 멀리서 빈다 Ⅲ. 그냥 천천히 가고 있었다 어린 벗에게/ 기쁨/ 나무/ 행복/ 구름/ 오늘의 꽃/ 아름다움/ 시/ 부탁/ 섬/ 사랑에게 1/ 감사/ 돌/ 사랑에게 4/ 내가 없다/ 지지 않는 꽃/ 시 2/ 사랑에게/ 뒷모습/ 문득 Ⅳ. 나 여기 잘 있어요 잊지 말아라/ 마음의 거울/ 별/ 묘비명/ 비원/ 촉/ 잠들기 전 기도/ 삼거리/ 붓꽃/ 눈사람/ 여행/ 마스크/ 시를 위한 기도/ 이 가을엔/ 능소화 지다/ 하늘 이별/ 달개비꽃/ 카톡 문자 |
羅泰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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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씨로 표현된 시는 단박에 전달이 되지요.
그러니까 시가 옷을 입는 격이고 날개를 다는 격입니다.” 색칠된 시어들이 지닌 저마다의 온기 그림이 된 시, 촉각으로 감각하는 시 사소하고 일상적인 풍경인데도 새삼 생경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침에 세수하다가 거울을 볼 때” 내 얼굴이 문득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질 때가 그렇다. 꼭 “늙은 아버지”(「거울」) 같다고 생각하는 화자의 발화로 우리는 세숫대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느닷없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때도 그렇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타인의 뒤통수인데도 그것이 어쩐지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뒷모습」)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눈사람이 밤새 혼자 서 있는 것이 괜스레 신경이 쓰였던 것도 그런 순간이다. 눈사람에게 저도 모르게 “밤을 새워 누군가 기다리셨군요”((「눈사람」) 하고 말을 걸어 보는 시인처럼 말이다. 이처럼 『함께 가자 먼 길』에는 그동안 시인이 일상에서 발견해 온 낯설고 생소한 순간들, 마음을 뒤흔들었던 시의 인기척들이 기록되어 있다. 다 같은 삶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풍경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고 조금씩 특별하다. 우리가 사람을 이해하거나 시를 독해할 때 ‘추측’과 ‘오해’를 거듭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 서로가 조금씩 다르고 조금씩 특별하니까. 타인에 대해 내놓는 어떤 대답도 오답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와 타인의 간격을 메꾸는 것이 저 수많은 오답들이라면, 오답들을 징검다리 삼아 ‘너’에게로 건너갈 수 있다면 어떨까. 계속해서 질문하고 상상하는 일. 눈 위로 사랑의 고백을 적는 시인이 그렇다. 눈 위에 쓴 글씨를 볼 수 있는 건 ‘나’뿐이지만 ‘네‘가 딛고 있는 땅에 내 마음이 닿을 거란 기대. 그래서 시인은 “쉽게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 떠나지 못”(「눈 위에 쓴 글씨」)하겠다고 말한다. 정답과 오답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증명하는 곳이 바로 이 지구일 테니까. 아무리 찾아도 나는 없다. 찾다가 찾다가 지쳐서 돌아오는 길. 강변으로 뻗은 좁은 길로 자전거 타고 가는 자그만 몸집의 한 남자 노인을 보았다. 낡은 초록색 자전거였다. 어딘지 가고 있었다. 목적지가 있거나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닌 성싶었다. 그냥 천천히 가고 있었다. 노형, 지금 어디를 가시는 거요? 얼굴을 들어 이 쪽을 보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아, 저기 내가 있었구나. 나는 세상 어디에도 없고 그렇게 거기 있었다. ―「내가 없다」 중에서 색칠된 시어들은 저마다 온기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림에 손을 갖다 대면 색깔이 묻어날 것 같다. 만지면 세숫대야에 비친 내 얼굴에 파동이 생길 것 같고, 누군가의 등을 손으로 건드려 볼 수 있을 것 같다. 눈사람의 몸통에 손바닥을 대고 있으면 어쩐지 눈사람과 눈을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는 것이 아닌, 피부로 시를 감각하는 순간이다. 대체로 누구나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기억으로 얼음을 만지면 차갑다는 걸 알지만, 막상 얼음을 손에 쥐면 깜짝 놀라기 마련이다. 온 신경이 몸의 한구석으로 집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흔하고 일상적인 것이더라도 촉각은 그것을 무색하게 만든다. 금세 감각이 무뎌져도 오래지 않아 다시금 살아나 우리의 일상을 생경하게 만든다. 시인은 “문득 종이를 만져 본”다. 종이의 꺼끌꺼끌한 느낌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진다. “아이가 문득 보고 싶었다”(「문득」)고 시인은 고백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문득’ 떠오르는 누군가의 얼굴, 손, 그림자. 감각이 잠든 기억을 깨우고 둔한 마음을 흔든다. 오른쪽 페이지에 그려진 누군가의 얼굴과 기도하는 손등을 만져 본다. 종이를 더듬고 있지만 꼭 무언가가 손가락에 닿는 듯한 기분이다. “어째서 결국 ‘함께’인 걸까?” 물음에 관하여 끊임없이 고민해 온 흔적들이 시화집 『함께 가자 먼 길』 곳곳에 남겨져 있다. 함께, 라고 발음하면 윗입술과 아랫입술은 맞물린다. 두 팔을 그러모아 상대를 포근히 감싸 안는 느낌처럼. 함께 걸어갈 이번 여정에서 우리는 어떤 풍경을 발견하게 될까 사뭇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