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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목차


시집 ≪사슴≫ 이전 발표작
定州城 ······················3
山地 ·······················5
늙은 갈대의 獨白 ·················7
나와 지렝이 ···················10

시집 ≪사슴≫ 수록작
얼럭소 새끼의 영각
가즈랑집 ··················15
여우난곬族 ·················19
고방 ····················23
모닥불 ···················25
古夜 ····················27
오리 망아지 토끼 ···············31

돌덜구의 물
初冬日 ···················33
夏畓 ····················34
酒幕 ····················35
寂境 ····················36
未明界 ···················37
城外 ····················38
秋日山朝 ··················39
曠原 ····················40
힌 밤 ····················41

노루
靑枾 ····················42
山비 ····················43
쓸쓸한 길 ··················44
柘榴 ····················45
머루밤 ···················46
女僧 ····················47
修羅 ····················49
비 ·····················51
노루 ····················52

국수당 넘어
절간의 소 이야기 ···············53
統營 ····················54
오금덩이라는 곧 ···············55
枾崎의 바다 ·················57
定州城 ···················59
彰義門外 ··················60
旌門村 ···················61
여우난곬 ··················63
三防 ····················64

시집 ≪사슴≫ 이후 발표작
統營 ······················67
오리 ······················70
연자ㅅ간 ····················73
黃日 ······················75
湯藥 ······················77
伊豆國湊街道 ··················78
昌原道—南行詩抄 (一) ··············79
統營—南行詩抄 (二) ···············81
固城街道—南行詩抄 (三) ·············83
三千浦—南行詩抄 (四) ··············85
北關—咸州詩抄 (一) ···············87
노루—咸州詩抄 (二) ···············88
古寺—咸州詩抄 (三) ···············90
膳友辭—咸州詩抄 (四) ··············92
山谷—咸州詩抄 (五) ···············94
바다 ······················96
丹楓 ······················98
秋夜一景 ····················100
山宿—山中吟 (一) ················101
饗樂—山中吟 (二) ················102
夜半—山中吟 (三) ················103
白樺—山中吟 (四) ················104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 ·············105
夕陽 ······················107
故鄕 ······················109
絶望 ······················111
개 ·······················112
외가집 ·····················114
내가 생각하는 것은 ···············116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118
三湖—물닭의 소리 (一) ·············119
物界里—물닭의 소리 (二) ············120
大山洞—물닭의 소리 (三) ············121
南鄕—물닭의 소리 (四) ·············123
夜雨小懷—물닭의 소리 (五) ···········124
꼴두기—물닭의 소리 (六) ·············126
가무래기의 樂 ··················128
멧새소리 ····················129
박각시 오는 저녁 ················130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132
童尿賦 ·····················136
安東 ······················138
咸南道安 ····················140
球塲路—西行詩抄 (一) ·············142
北新—西行詩抄 (二) ···············144
八院—西行詩抄 (三) ···············145
月林장—西行詩抄 (四) ··············147
木具 ······················149
수박씨, 호박씨 ·················152
北方에서 ····················155
許俊 ······················158
≪호박꽃 초롱≫ 序詩 ··············161
歸農 ······················163
국수 ······················166
힌 바람벽이 있어 ················169
촌에서 온 아이 ·················172
澡塘에서 ····················175
杜甫나 李白같이 ················178
당나귀 ·····················181
머리카락 ····················183
山 ·······················185
적막강산 ····················187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189
七月 백중 ····················192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 方 ············195

해설 ······················199
지은이에 대해 ··················304
엮은이에 대해

저자 소개 1

BAEK SEOK,白石,白奭,백기행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백석의 다른 상품

편자 : 이동순
이동순(李東洵)은 1950년 경북 김천 출생이다. 경북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1973)와 문학평론(1989)으로 당선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문과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며, 평론집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의식≫,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우리 시의 얼굴 찾기≫, ≪달고 맛있는 비평≫ 등을 발간했다. 분단시대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에 뜻을 두고 ≪백석 시 전집≫, ≪권환 시 전집≫, ≪조명암 시전 집≫, ≪이찬 시 전집≫, ≪조벽암 시 전집≫, ≪박세영 시 전집≫ 등을 잇따라 발간했고,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철조망 조국≫, ≪아름다운 순간≫, ≪발견의 기쁨≫ ≪묵호≫ 등 14권을 발간했다. 2003년 민족서사시 ≪홍범도≫(전5부작 10권)를 완간했으며 산문집 ≪시가 있는 미국 기행≫, ≪실크로드에서의 600시간≫, ≪번지 없는 주막?한국 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 등 각종 저서 50여 권을 발간했다. 신동엽창작기금,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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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2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128*188*30mm
ISBN13
9788966804009

책 속으로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날인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시 문밖으로 쓸어 벌인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곧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벌이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설어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서진 곧으로 와서 아물걸인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올으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벌이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곻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벌이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맞나기나 했으면 좋으렸만 하고 슳버한다
--- 본문 중에서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단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피ㅅ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 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벌인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단닐 것과
내 손에는 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世上事’라도 들을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 본문 중에서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날여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여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 귀 혹은 능달 쪽 외따른 산녑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힌 김 속에 접시 귀 소기름 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볓 속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집웅에 마당에 우물 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싸히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에 그득히 살이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 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 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샅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枯淡하고 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 본문 중에서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힌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힌 바람벽에
히미한 十五 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 글은 다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힌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씿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서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힌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쨈’과 陶淵明과 ‘라이넬·마리아·릴케’가 그러하듯이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여기 한 시인이 있다.
그는 일제 식민 통치기 중후반기의 조선 문단을 배경으로 활동을 하다가 분단을 겪으며 문학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심한 교란을 겪게 된다. 당시 모든 문학인이 그러했듯이 그 또한 정치적 판단과 선택이라는 가파른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청년 시절 수년간 서울 문단에서 활동했던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만주 일대를 유랑민처럼 떠돌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부유적(浮游的) 삶을 살았다. 그러한 와중에서 해방이 되었고, 조국은 정치적 이념과 지향을 달리하는 두 체제로 분단되었다. 그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 한반도의 관서 지역이었다. 시인의 부모 형제와 일가친척 모두가 고향 부근에서 살았다. 시인 또한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면서 고향 가까이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굳이 서울로 월남해 내려올 만한 어떤 정치적 신념이나 노선이 별도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해방 이후 북쪽에 수립되었던 공산주의 정권 치하에서 그는 한 사람의 주민으로서 당시 사회의 중심권으로 진입하지 않고 비교적 온건하고 소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가 한때 거주했던 한반도의 남쪽 지역에서는 완전히 잊힌 시인이 되었다. 우리는 이를 일러 문학사에서의 매몰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다가 1987년 서울에서 분단 시기까지의 그의 작품을 모은 시 전집이 발간되었다. 이후로 그는 남한의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인으로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그의 이름은 백석(白石, 1912∼1995)이다.
이제는 백석 시인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백석은 인기 시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 오죽하면 젊은 시인들조차도 문학 수업기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받았던 시인의 한 사람으로 단연 백석을 일컬을 정도로 백석 문학의 감화력과 영향력은 이미 객관적 검증을 받은 상태다.

백석의 시는 시간이 지나도 그 특유의 신선함과 발랄함, 그윽함과 도란거림의 예술적 음영과 세력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특이한 효과로 점차 확장되어 간다. 이러한 확장과 보편화가 주는 놀라움의 근원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오로지 백석 문학이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민족적 전통성이라는 가치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서양 문학(영문학)을 전공했거나 혹은 강의를 들었던 시인들이 대개 서양 문학의 방법론이나 그 분위기에 심취해서 단순 추종자나 그 에피고넨이 되기가 십상인데 한국 문학사에서는 특이한 세 시인이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김소월, 정지용, 백석이다. 서양 문학을 공부한 경험을 가졌으면서도 오히려 그들은 민족의 전통이라는 후미진 뒷골목으로 돌아들었던 것이다.
일본 아오야마학원 영문과에 재학하며 영미 문학에 관한 지식과 교양을 충분히 습득했던 백석이 어떻게 민족적 전통이라는 가치관 쪽으로 확연히 돌아앉아 시 창작의 중요 테마로 떠올리며 애착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인가? 백석의 시는 모더니즘을 통해 창작 방법론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모더니즘이 지닌 한계와 제한성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방법으로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작업은 식민지 자본주의가 드러내고 있던 여러 부정적 파괴적 징후를 시인이 매우 침통한 표정으로 응시하며 고뇌하는 활동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백석의 문학 세계가 나타내는 전통성의 다양한 갈래와 그 의미에 대해 낱낱이 점검하고 확인해 보면 시인 백석이 식민지라는 정치적 문화적 폐쇄 공간 속에서 문명과 반문명에 관한 시적 담론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작업에 몰두했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일관된 노력에 힘을 쏟은 것이 당시 시인이 품고 있었던 일정한 비평적 의도의 반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명과 반문명이라는 대립항에서 일제가 그토록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졌던 문명이야말로 가장 극단적이고 전형적인 반문명이었다는 사실을 백석 시인은 강조하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인의 문화적 전통이야말로 상대적 제국주의문화를 압도하고 진정한 문명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길이었음을 시인은 작품을 통해 역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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