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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_09해설 | 어느 투쟁의 기록 _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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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 Heming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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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적은 단어로 그려낸 완전한 세계무한한 확장의 가능성을 지닌 불멸의 고전『노인과 바다』는 “우리 시대 작가가 쓴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윌리엄 포크너의 찬사를 넘어서 출간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시대를 넘어선 생명력을 지닌 소설은 많지만, 짧고 단순한 줄거리로 이토록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작품은 『노인과 바다』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설은 때로는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는 불굴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로, 때로는 나이와 생물종을 초월한 우정에 관한 헌시로, 때로는 생태주의나 실존주의를 키워드로 읽힌다. 노인은 팔십사 일간 물고기를 잡지 못한 불운한 어부 ‘산티아고’ 그 자체였다가, 10년 만에 발표한 신작에 쏟아진 혹평으로 상심했던 헤밍웨이의 분신이 되기도 하며, 가끔은 예수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어떤 것을 구심점으로 삼아 읽어나가든 『노인과 바다』의 구조적 정합성은 쉽게 깨어지지 않는데,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이 작품이 얼마나 치밀하게 쓰였는지를 말해준다”라는 황유원 번역가의 해설처럼, 『노인과 바다』는 무한한 확장의 가능성을 지닌, 가장 적은 단어로 그려낸 가장 완전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번역본이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단순히 기존 번역본들의 오역을 답습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데, 역자는 어찌 보면 가장 당연하면서도 본질적인 부분인 헤밍웨이의 ‘문장’에 주목하며 그 도전에 임하기로 했다.(‘해설’ 중에서)불필요한 수식을 배제한 사실적인 묘사를 의미하는 ‘하드보일드 문체’ 역시 헤밍웨이와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그러나 원래 『노인과 바다』는 쉼표로 이어진 복문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황유원 번역가는 소설 속 긴 서술문과 극도로 짧은 대화문의 차이에서 비롯한 긴장감과 리듬에 주목했다. 물고기를 토막 내듯 긴 문장을 임의로 끊지 않았고, 반대로 짧은 대화문을 늘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관광객이 뼈만 남은 청새치를 보고 “저게 뭐죠?” 하고 웨이터에게 묻자 웨이터는 짧게 답한다. “‘Tiburon,’ (……) ‘Eshark’.” 뼈만 남게 된 정황을 알려주고자 했으나 영어를 하지 못하기에 같은 의미의 두 단어만 나열한 것이다. 그러니 이를 “티부론입니다”라고 서술격 조사를 붙여 번역하면 오역이 된다는 것이다. ‘상어의 공격을 받아 뼈만 남게 됐다’는 설명을 ‘저것은 상어다’로 오해하는 것은 관광객이어야지 독자여서는 안 된다. 때문에 역자는 이를 “‘티부론.’ (……) ‘상어요’”라고 옮겼다. 이러한 원칙하에 건져 올린 문장들은 멕시코만의 모습을 보다 본래의 모습에 가깝게 그려내며, 날치가 튀어 오르고 청새치와 상어가 헤엄치는 지구 반대편으로 독자를 거뜬히 데려간다.그가 이미 그걸 수천 번이나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제 그는 그걸 다시 증명해 보이려 하고 있었다. 매 순간이 새로웠고, 그걸 증명해 보일 때 과거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72쪽)산티아고가 팔십사 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하자 소년 ‘마놀린’의 부모는 산티아고를 ‘살라오’, 즉 운 나쁜 사람이라고 일컬으며 아들을 다른 배에 타게 한다. 그런 산티아고를 보며 어떤 어부는 비웃고, 몇몇 어부는 슬퍼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노인에게 왜 바다로 나가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가 어부이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한, 빈손으로 돌아올지언정 그는 어부다. 노인은 힘겨운 사투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은 어부고, 그것이 자기가 타고난 운명이라고 굳게 믿는다. 고기가 고기로 태어났듯이 자신은 어부로 태어났다고. 다만 더는 운이 없다 해도 자신은 낚싯줄을 정확히 드리우며 요령이 많은 어부라고. 노인에게 고기잡이란 밥벌이인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인 셈이다. 그러니 노인에게는 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모든 순간이, 그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고 바다로 나가는 하루하루가 삶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한순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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