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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삶의 끝에, 여전히 우리는 함께
『긴긴밤』 루리 작가가 쓰고 그린, 신작 그림책. 떠돌이 개가 된 악마 메피스토와 외톨이 소녀가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되어 전하는,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긴장감 있는 구성과 가슴을 울리는 문장으로, 아이는 물론 어른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진짜 이야기 책.
2023.05.04.
어린이 PD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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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돼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모티브를 얻어 구상된 이 책의 화자는 악마 ‘메피스토’이다. 천상도 지하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구원도 받지 못한 악마는 마지막으로 지상으로 향한다. 그것도 떠돌이 개의 모습으로. 이런 악마가 처음 마주한 상대는 하필 귀머거리 외톨이 소녀이다. 소원 한 번 이뤄진 적 없는 지지리 운도 없는 그런 소녀. 이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연다. 둘의 이야기, 개의 이야기, 소녀의 이야기, 다시 개의 이야기. 이렇게 총 네 부분으로 짧게 나뉘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은 총 120페이지 분량의 장편 스토리이다. 그림책과 그래픽노블 중간 형태의 자유로운 형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긴장감 있게 진행된다. 그림으로 주요 사건을 죽 이끌어 가고, 글은 꼭 필요한 순간 또박또박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지옥은 어떤 곳이냐고 네가 물었어. 그곳에 가면, 가장 미워했던 존재의 모습으로 평생을 지내게 돼. 그래, 지옥에 가면 너는 네 모습 그대로,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지내게 되겠지. 천국은 어떤 곳이냐고 네가 다시 물었어. 나도 몰라. 가장 좋아했던 존재의 모습으로 살게 되려나. 그래, 그럼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될 거야… 인간이 되고 싶냐고 네가 물었어. 나는 어째서인지 고개를 끄덕였어. 서로를 향한 위로와 공감 가난과 장애로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소녀는 어릴 때부터 친구 하나 없고, 의지할 데 하나 없다. 모질고 척박한 삶에 빛줄기처럼 나타난 건 아이러니하게도 악마인 떠돌이 개 ‘메피스토’이다. 소녀와 악마는 그 둘만의 세상에서 사랑과 기쁨을 나누며 삶을 견뎌 나간다. 못된 짓, 세상을 향한 소심한 장난들도 둘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이를 꼭 기억하려는 듯, 소녀는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벽에 붙인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늙지도 죽지도 못하는 악마는 그대로인 채, 늙어 기억을 잃어가는 소녀 곁에 있다. 함께했던 척박한 삶 그 이상의 고통으로 악마는 몸부림친다. 결국 자신마저 잊어가는 소녀를 향해 악마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기억을 되돌리는 금지된 마법을 쓰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악마인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랑했던 소녀의 마음을 읽게 된다. 오히려 소녀가 신과 내기를 한 소원으로 인해 악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둘은 손을 다시 마주잡게 된다. 힘들고 지난한 삶에 지지 않았음에. 서로를 향한 위로와 공감, 사랑이 이 모든 것을 이겨냈음에 웃으면서 끝이 난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녹인 진솔한 이야기여서 더욱 감동의 울림이 크다. 진정한 가족, 친구, 내 주변의 관계적 의미를 생각하며 아이와 어른 모든 세대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