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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파트 숲을 거닐며 구겨진 종이를 펴다
1부 나의 우연한 대치동 입성기 2600원과 편의점 알바, 우연한 대치동 입성기 다시, 우연히 컨설턴트 하위권을 위한 학원은 없다 책 150권 읽으면 서울대 갈 수 있을까? 혹시 집 지을 생각 있으신가요? 별을 보고 싶은 아이 2부 ‘의대’라는 이름의 병과 이기적 유전자 ‘의대’라는 이름의 병 대치동 오라클 돼지 엄마가 사는 세상 보이지 않는 손 이기적 유전자 입학사정관들이 세상을 사고하는 방식 3부 대치동에서 받은 사과 한 상자 입시도 정치다 사과 한 상자의 가치 선생님 스카우트 대작전 대학원과 학원의 적대적 의존 관계 오늘은 김밥집에서 컨설팅을 에필로그 대치동도 사람 사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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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성당에서 성모 마리아상을 만난 뒤로 그동안 나를 꼭 죄고 있던 조바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대신 구겨진 종이를 펴 대치동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각박하게 공부하는 학생들, 더 나은 강의를 하려 노력하는 강사들, 고민하는 원장들, 우유부단한 학부모들……. 그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들하고 함께 내가 살아온 삶을 들여다봤다. 들여다보니, 대치동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 pp.11~12 그 학생은 평범한 청소년이 가질 만한 자유를 향한 욕구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 욕구를 잠깐 품더라도 대치동에서 취미, 여가, 사교는 사치였다. 그만큼 대치동의 일상은 빡빡했다. 그 학생은 결국 의대에 진학했다. 공부 말고는 다른 꿈을 품지 않는 아이야말로 대치동 부모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의대 진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이 학생과 학부모야말로 사회적 인식으로 굳어진 대치동의 전형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대치 키즈의 모습이 이랬다. --- p.54 “저는 늘 은마아파트 사거리를 뱅뱅 돌아다닌 기억밖에 없어요. 나중에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서 있는 제 모습이 제일 떠오를 것 같아요.” 대치동 학원가는 은마아파트 사거리를 중심으로 뻗어 나간다. 주요 대형 학원들은 사거리 길가 바로 앞에 늘어서 있다. 좀더 규모가 작은 학원들이 사이사이 골목길을 빼곡히 채운다. 학원과 식당을 빼면 그렇다 할 간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많은 학원을 건너다니는 그 많은 학생이 대치동 사거리와 횡단보도 위를 까맣게 채운다. --- p.60 대치동에서 예언자가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스스로 그어둔 선 하나만 넘으면 된다. 사실 이 요소를 충족한 학생은 붙고 그렇지 않으면 떨어진다는 비교 사례를 찾으려면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의 홍수를 거슬러 밤을 새야 한다. 찾고 또 찾다가 못 찾아 다른 내용으로 설명회를 한 적도 많았다. --- p.106 대치동에는 아쉽게도 이런 예언자가 너무 많다. 예언자는 설명회를 할 때면 자극적 요소를 건드리면서 봉사 활동은 몇 시간을 넘겨야 하고 반장이나 동아리 회장은 몇 번 정도는 해야 한다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수치만 강조한다. 그렇게 강조하는 궁극적 이유는 불안이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예언자가 등장해 멸망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듯, 입시 판이 혼란하고 예측하기 힘들 때마다 대치동 컨설턴트들은 학부모의 불안을 마케팅한다. --- p.107 학부모들이 지닌 이기적 유전자는 종종 아이들에게 전해진다. 한편으로는 입시 결과에 목매는 학교들이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학생은 공부만 잘하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비호를 받는다. 교사와 부모가 그런 학생을 가르치지 않고 혼내지 않으면 누가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런 사례가 특수한 예외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대치동과 대치동에서 파생되는 기형적 입시 판에는 이런 문화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 p.133 대치동에 들어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이제는 항의 전화를 건 교장 선생님에게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그 학교 학생들은 지방 학생들보다 큰 혜택을 누리고 산 만큼 훨씬 더 우수해야 서울대 지역 균형 전형에 합격할 수 있다고 말이다. 환경 자체가 어마하게 다른 곳에서 공부한 학생이라면, 적어도 지역 균형 전형으로 서울대에 들어가려면 그 학교 안에서 독보적으로 뛰어나야 한다. 공부만이 전부가 아니라 뭔가가 더해져야 합격할 수 있다면, 그 요소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사회적 자본에 관한 책임감일지도 모르겠다. --- p.157 나는 그때까지 내가 학원 강사로 살고 있다고 착각했다. ‘나는 학원 강사인가?’ 이런 질문을 내 마음의 호수로 던졌다. 학원계에 정체성을 두려 하지 않고 둥둥 떠다니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지탄하고 있었지만, 나도 학원 강사인 나를 나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p.196 오늘도 나는 대치동이라는 동네에서 사람들하고 부대끼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내게는 ‘대치동’이라는 타이틀보다는 그곳에서 살아 숨 쉬고 걷고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치동에 흘러온 이들은 열심히 사는 사람, 못된 사람, 성공을 바라는 사람, 하루하루를 애살맞게 사는 사람들이다. 대치동도 사람 사는 곳이다. --- p.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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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대치동에 그렇게 가고 싶어하죠?” ― 공급을 낳는 수요를 만드는 대치동
대치동 입시 생태계에서는 누가 우점종일까? 유치원 때부터 삶의 목표를 잡아 고등 수학과 토플을 선행 학습하며 쉼 없이 달려가는 ‘대치 키즈’도 있지만, 공부에 도통 흥미나 열정이 없으면서 학원 숙제 베끼는 실력만 쌓은 ‘눈치 100단’도 꽤 많다. 은마아파트 사거리를 뱅뱅 돌아다닌 기억뿐이라는 사연은 연민마저 불러일으킨다. 학벌을 향한 집착 때문에 궁금증이 도지면 새벽 3시에도 전화를 걸어대는 학부모, ‘의대 병’에 사로잡혀 그릇된 결정만 거듭하는 학생, 불안을 마케팅하면서 입시 현실을 왜곡하는 몇몇 입시 컨설턴트, 막강한 정보력과 인맥으로 폐쇄된 세계를 구축하는 ‘돼지 엄마’, 강사와 학생과 학부모를 모두 착취하는 몇몇 원장, 학생과 학부모를 움직이는 실세 ‘실장님’, 교육 혁신에 관심 없는 교사, 대학 입시를 경제학 모델처럼 생각하는 대학과 교수 등이 대치동 입시 생태계를 구성하는 주인공이다. 대치동에 가면 누구나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까? 정성민 입시 컨설턴트는 대치동에 온다고 해서 입시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답한다. ‘전국구 사교육 1번지’라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대치동 학생 중 80퍼센트 정도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다는 통계,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원들은 이미지에 타격받지 않으려고 물밑에서 은밀히 운영한다는 사실이 근거다. 공부 잘하고 학원 커리큘럼도 잘 따르는 아이의 미래를 ‘의대 병’ 걸린 학부모가 망치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도 흔하다. 이런 현실에 눈감은 채 공급은 수요를 낳고 수요가 공급을 만드는 단계에 접어든 대치동으로 오늘도 여전히 욕망인지 동경인지 모를 열정에 휩싸인 사람들이 몰려든다. 욕망과 현실의 교차로 ― 대치동 길 위에서 쓴 어쩌다 교육인류학 정성민 컨설턴트가 만나고 들여다보고 관찰한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대치동을 움직이는 주인공들이다. 욕망과 현실이 마주치고 뒤섞이는 대치동 길 위에서 쓴 교육인류학이라 부를 만하다. 많을 때는 하루에 10명까지 입시 컨설팅을 하면서 수치와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많은 삶들을 마주했다. 전공 적합성이 떨어지는 책만 150권 기록한 생활기록부 때문에 다들 불가능하다던 학생이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할 수 있게 돕기도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세계를 깊이 있게 가꾸는 모습은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꼭 별 보는 일을 하고 싶어한 학생도 만났다. 전 교과 1등급으로 서울대 천문학과에 갈 수 있던 그 학생은 갑자기 큰 병에 걸려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성적이 떨어진 탓에 다 포기하려다가 자기 삶의 목표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다른 대학 천문학과에 들어갔다. 욕망이 현실을 지배하는 대치동에서도 대학이 목표인 삶이 아니라 삶의 목표에 맞는 대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였다. 앞으로 정성민 컨설턴트는 대치동에서 좁은 기준과 짧은 과정, 꽉 짜인 틀 안에 담을 수 없는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 자기에게 맞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도록 돕는 일을 계속 해나갈 작정이다. 왜 대학을 가야만 하고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물을 생각이다. 저출생 시대에 접어들고 입시 제도가 달라지면 노량진 재수 학원이나 신림동 고시 학원처럼 대치동도 언젠가 사라질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제대로 기록된 적 없는 진짜 대치동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하루하루 애살맞게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이 만드는 특별한 곳, 대치동은 대치동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