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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좋은 바람, 베네벤툼 앞선 자가 누가 되건… 내 적은 로마뿐이다 황제의 대리인과 전직 집정관의 차이 명예로운 경력 역사를 창조한 전투 넓고 얕게 기능의 집중 아랍인이지만 로마의 사나이 사회의 본질 구별과 동일한 혜택 로마 번성의 요인 Ⅱ ‘양’과 ‘질’의 대결 정보를 얻을 권리 적재적소, 능력위주 그대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도와줄 것이라 믿는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 수단의 목적화 어떻게 보내느냐의 결과 처음 보는 다리 나름의 복지 강대함의 첫 번째 요인 필요한 것과 해야 하는 것 기본의 영향력 |
Nanami Shiono,しおの ななみ,鹽野 七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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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원로원 의원 여러분, 우리가 오랜 전통으로 믿고 있는 일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국가 요직도 오랫동안 귀족이 독점했었지만, 로마에 사는 평민에게 개방되었고 더 멀리 속주에 사는 사람들에게 개방되는 식으로 차츰 확대되었습니다. 의원 여러분, 지금 우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갈리아인에 대한 문호개방도 언젠가는 로마의 전통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토의하면서 제시한 수많은 선례와 같이 언젠가는 다음 세대의 의원들에게 선례의 하나로 인용될 것입니다. -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연설문 중에서 카이사르가 군사적으로 성공한 최대요인은 아마추어로 시작한 이후에 프로가 되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관되게 아마추어다운 자세로 임했기에 일류 프로의 벽을 뛰어 넘은 것이다. … 한편 카이사르의 전법은 현대 군사학교의 교재에 실리지도 못했고 전쟁 역사의 전문가들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몰라 곤혹스러워한다. 카이사르가 치른 여러 전투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전투방식에 일관성이 없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전법을 적용했기 때문에 현대에는 적용하기 어려우나 그 시대에는 통했다. 또한 연전연승을 거둔 알렉산더나 한니발과 달리 카이사르는 종종 패배했다. 물론 패한 경우에는 재빨리 그 빚을 되갚았다. 그리고 마지막 공격에 실패한 한니발과는 달리 갈리아 전쟁이나 내전에서는 승리를 거두었다. -본문 중에서 한 나라의 총리니 속내와는 다른 외교적 발언을 입에 담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정이야 안다. 그렇다 보니 우리도 반만 진실로 알아듣는다. 나머지 반으로 현실을 꿰뚫어보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가는 세상의 허울 좋은 말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력은 확산되면 약해지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탓에 권력을 가진 쪽에서는 권력의 확산이나 확대만큼 불리한 일도 없다. 그러하니 오늘날의 현실을 더욱 잘 반역하려는 생각이 안중에 있을 리가 없다. -본문 중에서 어떤 일이든 성취하려면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그 의지는 지속되지 않는 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끊임없이 의지를 불태우는 데에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는 사리사욕이다. 누구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더욱더 진지해지기 마련이니까. 이것이 인간성의 한계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본문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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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로마의 역사에서 붙들어 현대의 리더들에게 전하는 날카로운 일침!
“omnes viae Romam ducunt”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위기의 시대에는 리더가 빈번하게 바뀐다. 리더가 바뀌면 위기를 잘 극복해내리라 기대하는 심리가 사람들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꿈에 불과할 뿐 현실은 다르다. -자기반성은 반드시 혼자 해야 한다. 결단을 내리는 것도 고독하지만 반성하는 것 또한 고독한 행위다. -역사를 가까이하는 일상 속에서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어떤 민족이든 자신들의 자질과 맞지 않는 일을 무리하게 감행해서 성공한 예가 없다는 사실이다. 승자의 제국을 건설한 로마인들이 역사 속에 살아남아 전하는 울림! ‘시오노 나나미’가 시퍼렇게 날을 세워 리더에게 전하는 금언에 지금 귀 기울이라.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이다. 문명을 이루고 제국을 만들었지만 다루지 않던 로마사를 손쉽게 읽히게 하였다는 호평부터 스스로 인정한 것과 같이 마키아벨리즘적이고, 권력에 대해 그다지 비판적이지 않은 문체를 유지하고 있으며 역사의식에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까지. 스스로 만든 평가이건 해석하는 차이에 따른 비판이건 취하지 않을 것을 차치하고 나면 전체를 통틀어 흐름을 관통하는 무엇인가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를 붙잡아 필요한 것을 취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복잡한 세계 정세는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등 한정된 역사를 바탕으로 논의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수천, 수백 년 전의 역사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 수레바퀴란 말을 쓰지 않아도 있었던 일이 그대로 대상과 시기만 바꾸어서 벌어지는 것은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그때 ‘역사에서 배워서’ 악순환의 고리를 되돌려 타지 않는 것과 결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일컬어 ‘작가의 입장에서 본 역사책을 쓰는 중인데, 그렇다고 역사소설은 아니다. 역사 에세이 혹은 역사 평전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학자가 쓴 역사서가 아니다. 내 책의 성격이 기존의 역사서와는 조금 다르다’라고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사실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역사 연구자’ 혹은 ‘사학자’라고 하면 시오노 나나미는 ‘인생에서 축적한 모든’ 것을 깊이 관여시켜 ‘어떻게 독해’하는지를 다루는 세계에서 경쟁하는 ‘에세이스트’, ‘평전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리더를 위한 로마인 이야기’는 『문예춘추』권두에 실었던 것을 정리하여 펴낸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로마가 저지른 일들의 결과와 발단을 잘 살펴서 현대의 리더들이 잘 되새김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꼭 이래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기보다 그 옛날에 벌어진 일과 같은 유형의 사건이 또 벌어질 때 국가의 근본이 바라보는 시각과 그 소구점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행동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역사 통찰이라는 되새김을 통해 이 시대의 ‘리더에게’ 던지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되새김해 볼 시간이다. 공과 사를 구분하라! 마음의 벽을 허물어라! 멈출 때를 알라! 성공을 의심하라! 내일을 바라보라! - 왜 리더, 정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가 … 문득 내가 쓰고 있는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에게까지 절대 감각을 적용해보고 싶어졌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을 비롯해 그를 최후의 일전으로 무찌른 로마의 무장 스키피오. 이들도 분명히 전략전술상의 절대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병력만 놓고 보아도 압도적으로 많은데다 우수하기까지 한 적군에 대항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게다가 부하 병사들의 희생도 최소한으로 줄이지 않았던가. 이쯤에서 나는 상상력을 한층 더 발휘한다. 알렉산더나 한니발, 스키피아도 20대 젊은 시절에 수만 명의 군대를 이끌었으니 타고난 군사 프로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카이사르만이 40대가 되어서야 대군을 이끄는 위치에 올랐다. 이전에는 중대 부대의 지휘관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아마추어 카이사르가 어떻게 그냥 프로도 아니고 1급 프로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40년 전에 다나카 미치타로(田中美知太?)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다. “카이사르가 총독으로 있을 때 군사 활동을 적은 『갈리아 전기』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가 인간을 깊이 통찰하고 글을 썼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관점에서 전쟁을 파악하다 보니 당연히 정치도 같은 관점에서 보게 된다. 누가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전쟁은 피를 흐르는 정치이며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고 했다. _ 본문 중에서 - 왜 위험을 감수하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것인가 … 일본인은 쉽게 사과하는 경향이 있다. 사건이 터지면 머리를 숙이는 총리, 큰 회사의 사장이나 대형 은행장.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모습들을 볼 수가 없다. 그들이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수도 없기 때문에 사과할 것도 없다. … 로마제국은 3세기에 들어서면서 정책은 방향성과 일관성을 잃기 시작했다. 황제가 빈번하게 바뀐 탓이다. 2세기까지는 5현제 시대라고 일컬어질 만큼 훌륭한 황제가 연이어 나타나 안정적으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황제들의 재위기간은 평균 20년이었는데, 3세기에 들어서면서 평균 4년으로 줄어들었다. 능력도 없는 황제가 그나마 황제라는 지위를 태평하게 누리려면 야만족의 습격을 받지 않도록 신들이 행운이 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야만족의 습격이 잦았던 3세기 로마황제들의 실질적인 재위기간은 2년 정도에 불과했다. 이 위기를 타개할 묘책은 없었다. 요컨대 황제가 바뀌고 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바뀐다고 해서 금방 눈부신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정해져 있을 테니 앞선 자가 누가 되건 간에 지속되어야 한다. 실제로 새로이 시작할 일보다는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일의 중요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정책이란 꾸준히 이어가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느니만 못해 위기만 더욱 심화될 뿐이다. _본문 중에서 - 로마 제국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만회했다. 지금 이 나라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 ‘분리해서 지배하기’는 고대 로마인이 사용하던 정치책략이다. 이 책략을 배우고자 일부러 로마 역사를 읽을 필요도 없고 대학에서 국제 관계론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동물 다큐멘터리만 봐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사자나 이리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먹이를 잡아먹으니까. … 나는 유럽에서 프랑스 사람들을 접하며 그들이야말로 원리원칙주의자라고 느꼈다. 예를 들어 총파업을 시작하면 그야말로 모든 게 멈춘다. 파업을 하는 데에는 조직의 존재 이유를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주장한다. 말로만 총파업한다며 할 일은 다하는 이탈리아인과는 전혀 다르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의 총파업 형태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장거리 트럭 운전사들이 파업할 당시의 일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지역인 피레네 산맥과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인 알프스 산맥에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 파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마찰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은 총체적으로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데다가 애국심도 높다. 그들은 프랑스혁명이나 나폴레옹의 제국 건설 모두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여긴다. 일관성에 관한 문제로 의문을 품는 사람에게는 정치성향의 좌우와 상관없이 냉랭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원리원칙주의자이면서 정치외교에까지 능숙하기란 쉽지 않다. 정치란 타협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애국심까지 투철하다면 결말은 더욱 나빠진다. 강한 애국심은 체면에 집착하게 하므로 외교 정치의 유연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_ 본문 중에서 - 위기의 시대야말로 역사와 마주할 때다 … 로마 제국 같은 초강대국의 역사는 일본에게는 참고가 되지 않는다. 로마의 역사를 참고해야 하는 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이다. 패권국가인 적이 없었을뿐더러 앞으로 될 가능성도 없는 일본이 본보기로 삼아야 하는 역사는 한 번도 초강대국이었던 적이 없는 나라의 역사이다. 나는 이전에 『바다의 도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강대국 중 하나였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통사를 집필했다. 대국이 일으키는 파도를 피하면서도 교묘하게 살아남은 이 나라의 역사만큼 훌륭한 본보기도 없다. 베네치아는 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라를 지켰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영향력과 경제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베네치아를 곤돌라의 도시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국가의 영웅이자 피렌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긴 수명을 유지한 이유를 서술하자면 길어지므로 한 가지만 이야기해 두고 싶다. 그 이유는 바로 철저한 정보취득과 그를 훌륭하게 구사한 냉철한 외교 덕분이었다. 베네치아는 경제 대국이긴 했지만 군사 강국은 아니었다. 그러나 영국인이 놀랄 정도의 외교 전략을 펼친 대국이었다. 베네치아는 놀라운 외교 정책으로 군사대국 사이에 낀 자국을 살려냈다. 내가 끈질기게 일본에 이런저런 외교정책을 요구하는 이유는 현 상황에서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_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