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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머리말 2 격동의 중국 대륙(19세기 말~1949) 열강의 각축장이 된 중국, 시국도 의화단운동과 사저참양도 신해혁명의 거대한 물결 5·4운동의 뜨거운 열기 북벌과 민중의 힘 광고와 선전의 컬래버레이션 9·18사변과 항전의식 위대한 항일전쟁 승리와 분열, 그리고 내전 3 중국 인민의 위대한 승리(1949~1957) 신중국, 중화인민공화국 건설 붉은 별 마오쩌둥 토지개혁과 농업생산 국민경제 회복과 제1차 5개년계획 혼인법과 여성의 노동참여 냉전과 항미원조 청결한 위생과 건강한 신체 백화제방과 반우파 투쟁 4 거대한 도약, 대약진운동(1958~1961) 6억 인구의 대약진 농업생산과 인민공사 들끓는 용광로의 열기 동풍이 서풍을 압도하다 문화와 기술혁명 대약진의 어두운 그림자 5 국민경제의 회복기(1962~1966)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사회주의 정신의 모범사례 6 10년의 혼돈, 문화대혁명(1966~1976) 붉은 태양 마오쩌둥 홍위병과 대비판의 시대 청년지식인 하방운동 중소 분쟁과 제3세계와의 연대 비린비공 운동 7 황금시대의 부활, 개혁개방(1976~현재) 새 지도자의 유지 계승 개혁개방과 황금시대의 서막 인구 억제와 장려의 이중주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 공익광고 형식의 선전화 8 맺음말 참고문헌 |
鄭守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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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과 양행, 백화점 등에서는 신문·잡지·쇼윈도·네온사인·차량·벽보 등 다양한 방식을 사용해서 경쟁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선전했고, 그로 인해 대도시에는 상품을 선전하는 상업 광고들로 넘쳐났다. 그 중에서도 달력인 월빈패를 통한 상품 선전은 당시 보편적인 광고 수단이었다. 1870년대 월빈패가 처음 등장하던 무렵, 그림엽서나 담배 등 외국에서 수입된 상품에는 주로 서구의 미인이나 기사의 전투 장면, 성경 속 이야기 등이 그려져 있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여성의 나체가 고스란히 드러난 파격적인 그림도 있었다. 수천 년 동안 봉건적인 예교에 매몰되어 있던, 중국이란 폐쇄적인 공간에서 서구 여성들의 신체적 노출 이미지는 오히려 중국인들에게 역효과만 초래했다.
--- p.60 당시 토지개혁에 대한 중국 농민들의 반응은 저우리보의 『폭풍취우』, 딩링의 『태양은 상건하에 비친다』 등 문학 작품에도 잘 반영되어 있는데, 모두 토지개혁 과정 중의 희열을 묘사하고 있다. 토지개혁에 대한 정치적 홍보는 곧바로 선전화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레이룽허우의 〈토지개혁을 완성해 봉건 세력을 없애자〉는 한 농민이 손에 토지를 측량하는 활 모양의 나무자를 쥐고 있는 도상이다. 중국은 전통적인 길이 단위로 ‘보’를 사용했다. 1보는 사람의 두 발이 한 차례 도달하는 길이로 5척에 해당한다. 따라서 농촌에서 토지를 측량할 때면 이 나무자를 사용했다. 도상의 하단에는 토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이 자신이 소유하게 된 땅을 측량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 p.118 딩하오의 〈사해를 제거하자〉는 모기와 파리, 참새와 쥐가 칼에 찔린 채 매달려 있는 모습을 그린 도상이다. 사겅쓰의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것이 적 한 놈을 없애는 일이다〉는 한 소년이 파리채를 들고 있고, 그 아래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놓은 도상이다. 파리는 인간에게 이질과 콜레라 등을 옮기는 해충으로 주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거리와 골목, 집집마다 청결을 유지하고 파리가 번식하기 쉬운 물웅덩이와 오물통 등을 덮는 일들이 시행되었다. 그런데 이 선전화의 하단에 쓰인 구호를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파리 한 마리를 죽이는 것이 적 한 놈을 없애는 일이다.”라는 구호는 파리를 잡는 일상적인 행위를 적을 무찌르는 전투적인 행위와 연관시켜 애국심이라는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청의 〈모두가 참새를 잡자〉는 한 소년이 무엇인가를 향해 새총을 겨누고 있는 도상이다. 그런데 하단의 표어가 “모두가 참새를 잡자.”라는 구호임을 보면 그 대상이 참새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 p.142 그래서 중국 정부는 과거 수천 년 전부터 사용하던 한자를, 읽고 쓰기 쉬운 새로운 글자로 개혁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나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1955년 중국 문자개혁위원회에서 한자간화방안 초안을 발표하고, 1956년 1월 한자간화방안이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그 뒤, 간화자는 1959년까지 네 번 발표되어, 1964년 간화자 총표로 정리되었다. 기존 한자를 간단하면서도 쓰기 쉬운 간화자로 개혁하는 동시에 인민들에게 글자를 가르쳐 문맹을 퇴치하는 일도 병행되었다. 쑨원차오의 〈문맹을 없애는 일은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한 여성이 한손에 책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간이 칠판을 들고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도상이다. 이 여성의 역할은 화면 왼쪽의 그림을 통해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는 일을 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화면 하단에는 “사람들이 글자를 알도록 가르치는 일은 영광스러운 의무이다.”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 p.190 화면 한 가운데 위치한 노동자는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린 오른손으로 『마오쩌둥선집』을 쥐고 위를 향해 높이 치켜들고 있고, 왼손에는 해머를 어깨에 걸치고 있다. 그의 팔뚝은 인체의 비례에 맞지 않는, 지나치게 굵은 형태로 묘사되었고, 책에서는 붉은 빛이 사방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무수한 군중이 『마오쩌둥선집』을 들고 경모하는 표정으로 서서 앞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데, 그 대상이 마오쩌둥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리양의 〈위대한 영수 마오 주석에게 영원히 충성하자, 위대한 마오쩌둥 사상에 영원히 충성하자, 마오 주석의 혁명 노선에 영원히 충성하자〉는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마오쩌둥이 밝은 태양을 배경으로 오른손을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도상이다. 그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충’ 자를 비롯해 『마오쩌둥선집』과 『마오쩌둥어록』 속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앞 다투어 달려가고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을 주제로 한 선전화에는 충성을 의미하는 충 자가 자주 등장한다. 당연히 그 충성의 대상은 마오쩌둥이다. 화면 하단의 ‘위대한 영수 마오 주석에게 영원히 충성하자, 위대한 마오쩌둥 사상에 영원히 충성하자, 마오 주석의 혁명 노선에 영원히 충성하자’는 표어가 그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 p.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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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인 의미에서 역사란 인류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의미 있는 과거?사실들에 대한 인식이나 그?기록을 가리킨다. 그런 측면에서 크게는 인류나 세계, 국가의 역사가 있을 수 있고, 범위를 좁히게 되면 한 집단 또는 개인의 역사가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는 다양한 기록물과 기억을 통해 후대로 전승이 된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포스터에 주목한 까닭은 그 이미지 안에 담겨 있는 함축성 때문이었다. 포스터에는 그것이 제작된 시기의 정치사회적 현상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그것도 한 장의 그림 또는 한두 구절의 언어를 통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포스터는 어느 특정 시기 역사의 축소판이자, 동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의식이 응축된 결정체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나는 중국에서 제작된 포스터를 중심으로 그들이 경험했던 삶의 궤적을 살펴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근현대 시기 중국에서 발생했던 외세의 침략, 5·4운동, 항일전쟁, 내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반우파 투쟁,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등 격변의 중국 역사를 포스터를 통해 살펴보았다. 3년이란 지난한 세월을 보내며 이제 겨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처음에 내가 품었던 의욕적인 태도와는 달리 나의 글 솜씨가 의욕만큼 뒷받침을 해주지 못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이 우리나라에서 포스터라는 이미지를 통해 중국의 역사를 돌아본 첫 시도라는 점에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기까지는 여러 분들의 수고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한국문화사 조정흠 부장님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되었고, 한병순 편집장님께서 거친 원고를 멋지게 포장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이 책의 출판을 흔쾌히 허락해 주신 김진수 사장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