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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서정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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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말꽃

첫눈
능 - 말이산
구절초
초승달
배추꽃
망개꽃
석방렴
말꽃
남강1
남강2
장미
쉽게 쓴 시
거울
나비
바랭이
핸드폰

2부 나비목의 잠


명아주
구순의 귀
절정
분수
나비목의 잠
옹심이
귀로
구름
호접도
털목도리
일몰
선물
건널목
공사현장
마침표

3부 별을 파종해도 될까요

안개
각도
절벽
오로라
유등1
유등2
청빛의 욕망
멸치
별을 파종해도 될까요
메모리
삐에로
붉음에 입문
속도
귀목

통통마디

4부 모래탑이 건져 올린 해운대

범종
바코드
빙하
황매산 억새밭
하루살이
달의 무늬
폐사지
돌부처
모래탑이 건져 올린 해운대
폭포
진양호
의자
땡볕에도 무늬가 있다
미역국
반 톨
간곶리 언덕
시집해설_ 이창하

저자 소개 1

경남 사천 출생 2005년 계간《신문예》 등단 진주문인협회 회원 경남문인협회 회원 경남시인협회 회원 시집 『네게 닿을 때까지 나는 운다』, 『말처럼 꿈틀거리는 은빛』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88g | 125*205*20mm
ISBN13
9791192374338

출판사 리뷰

참신한 언어로 교감하는 시
― 이창하(문학평론가)


1.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사물 또는 존재자의 내면에 감춰진 무언가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을 탈 은폐(aletheia)라’고 했다. 물론 은폐물을 시에서 말하는 메타포(metaphor)라고 본다면, 알레더이아는 독자가 작가의 감춰진 내면을 밝혀내는 일, 그러니까 작가와 독자 사이의 교감이 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시를 잘 쓴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필자는 항상 작가의 내면을 어떤 식으로 독자와 교감을 이루게 하는가에 우선을 둔다. 그래서 시인이 그 시를 쓰기 전에 어떤 계기로 시를 쓰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상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내면으로 받아들인 영감을 어떤 식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인가에도 기준에 반영시킨다. 필자는 늘 좋은 시를 만나게 되면, 습관처럼 그 작가를 상상하고 그 작가가 그 시를 쓰게 된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
백숙자 시인의 시를 읽어 보면 시어 선택이 매우 참신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녀의 시를 여러 번 읽어 보게 된 것은 아마 그런 점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그녀와 독자(필자) 사이에 하이데거가 말했던 ‘알레더이아의 효과’가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다음 시의 경우에는 시어 선택이 참신하다고 생각한 경우이다.

소금의 뿌리다

뭍으로 나온 물은 뿌리를 키우기 위해 더욱 몸을 조인다
모서리를 깍는다
비늘을 벗기며 삶처럼 간간한 것을 당부한다

뿌리와 뿔과 별은 형제였을까
한집에 산다

어둠을 풀어내는 수차
걸려든 것들은 모두 느린 삶처럼 돌아간다
간간하고 단단한 살 한 덩이 떼어 후 뿌리면 움푹진 곳에 사는 번민과 슬픔도 세상의 연민으로 살이 오를까
통통하고 순하게

수차가 별 끄트머리를 돌린다
몸을 바꾸기 위해 수차 바퀴에 매달려 바람을 삼키는 밤
어둠은 더욱 몸을 조인다
삶은 별빛으로 빛나다가 뿌리로 몸을 조이다가 뿔로 서로의 살을 찌르다가

별이 제 비늘로 바닥에 문양을 새기는 시간
푸른 허물을 벗는다
허무와 외로움과 세상의 염증까지 발효시킨

물의 뿔이다
소금이다.
- 「물」 전문

소금은 바닷물에서 채취한다고 볼 때, 소금의 뿌리는 당연히 바닷물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뿌리란 근원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면 뿔은 무엇인가, 뿔은 그 하얀 소금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볼 수 있다. 물론,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상투적인 의미가 될 수 있으므로 별 모양을 한 소금의 빛으로 보는 것이 훨씬 시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뿌리(바닷물)와 뿔(소금 빛)과 별(소금)의 관계가 분명하게 정립되면서 이들이 한집에 산다는 명제는 합당한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기 위해 물(水)을 조이는데, 그렇게 되다 보니 수차는 끝없이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소금이 그의 뿔(빛)로 어둠의 속살을 풀어낸다고 했다. 그 과정은 염전의 고된 삶이라는 논리고, 그 고단함의 결과로 소금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수차가 별 끄트머리를 돌린다는 표현에도 눈길이 간다. 수분 증발과 동시에 소금이 탄생해야 하므로 항상 수차가 돌아가는 동안 그렇게 뿌리(바닷물)는 몸을 조이게 된다. 그리고 그 뿔로 서로의 살을 찌르기도 하고 마침내 별빛으로 빛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푸른 허물(바닷물)을 증발시키는 오랜 시간 동안 무수한 허무와 외로움 끝에 탄생하는 것이니 ‘소금의 머언 근원은 물’ 그것도 바닷물이라는 논리가 좋다는 것이다.

시에 등장하는 ‘물의 뿌리’나 뿔, 그리고 별이라는 시어는 시인이 처음으로 활용한 시어로 필자는 다른 시인들이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시어를 생각하자면 분명 오랫동안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찰하고 시어를 많이 연구해 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 실제 사물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그 관찰의 부산물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어로 등장하였으니 백숙자 시인이 시를 쓰는 과정이 얼마나 신중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탄생한 것인지 이해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 이번 시는 필자와의 사이에서 ‘알레더이아(aletheia) 효과’를 만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러한 참신한 용어는 다음 시에서도 발견된다.

시어가 말처럼 꿈틀거리는
저 은빛은
하현달 껍질일까
나는 시린 눈을 비빈다
어제의 내 말과 발자국을
숨겨버린 은빛
온돌방에서
별의 기척을 듣는 것은 은유,
달이 죽순 문양으로 보인다
댓잎이 새 껍질을 짜듯
옅은 달빛이
감정만 끌고 온 고향 집
손등을 호호 불어주시던
할머니 입김과
내 발가락 지문이 보이는 듯한
장판과 꿈틀거리는 영감에
나는 시린 눈을 씻는다
지금
은빛은 빈집 마당을
혼자 거닐고 있다
한 편의 시로
- 「첫눈」 전문

내용도 내용이겠지만, 한 개의 시어가 시 전체에서 보여주는 품위와 효과는 형언하기가 쉽지 않다. 백시인의 ‘첫눈’을 감상하면서 시에 등장한 ‘하현달의 껍질’이나 ‘별의 기척’이라는 두 개의 시어를 발견하면서 “아, 이렇게 멋진 말도 있었구나.”하면서 순간 무릎을 쳤다. 정말 이렇게 예쁜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첫’이 주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첫인상 첫걸음 첫사랑 첫눈…, 처럼 ‘첫’이 가지고 있는 메타포는 문자 그대로 창조의 의미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의 두 시어를 ‘첫 언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 시가 훌륭한 작품이고 아니고를 따지기 전에 두 시어에서 풍기는 창의적인 언어의 선택이 매우 신선하여 시적 품격을 상당하게 올려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이 시를 몇 번이나 읽어 본 것은 이 두 시어의 품격을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도입 부분에서 “시어가 말처럼 꿈틀거리는 / 저 은빛은”은 마무리 부분의 “한 편의 시로”라는 언어적 호응 역시 좋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하현달의 껍질’이라는 시어에 또 눈길이 가고 있는 것은 왜일까, 이 시 역시 개인적인 서정을 노래하고 있지만, 서정을 표현하는 방법 면에서 기존의 그것과 사뭇 다른 것은 이러한 언어의 선택에서 오는 신선함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은빛은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첫눈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모든 예술 장르는 창조된다. 창조되는 말은 예전에 존재했던 찌꺼기를 재탕 삼 탕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시어를 새롭게 해야 하는 이유는 시 역시 예술의 한 장르이기 때문에 여러 번 등장했던 시어들이 다시 등장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지는 않겠지만 참신하고 새로운 언어의 등장을 위해서는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시어의 선택에 신중해야 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시에 등장한 두 시어를 다시 음미해 보았다.

흔히, 글 쓰는 사람을 두고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한다. 하지만 그 연금술사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정성 들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뜻밖의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새로운 언어가 동원되어 그 언어가 마침 그 부분에 딱 맞게 자리를 잡았을 때의 기쁨을 생각하면 전율이 오를 때가 있다. 마치 몽타주(montage)를 작성할 적에 다양하게 촬영된 사진을 효과적으로 붙여서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지듯이, 시 또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3
백숙자 시인은 성장 과정에서 할머니나 어머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듯하다. 시 곳곳을 살펴보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더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시 곳곳에서 그때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주 추억에 젖어 든다고 하듯 그녀 역시 그러한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시상을 통해 알 수 있다.

기억의 순간이 무늬가 되었다
느티나무 농 안에서

목도리 올마다 배어 있는 숨결

어릴 적 열사흘 달이 사발 안에 볼록렌즈로 담기면 할매는 장독제단에 새하얀 손바닥이 닿도록 빌었다

마침 달빛이 내 기침을 가져갔는지
목구멍이 이내 조용해진다

나는 할매 그 온기로 버텨 왔을까
내 삶의 언저리에서 늘 자전하던 따스함

계절의 경계에선 목을 감싼다
나무를 감싸듯

달이 궤도를 도는
의식처럼

그리고
따뜻했다
이제 그 순간이 내 생의 무늬다
-「털목도리」 전문

기억에 무늬가 있다는 논리가 눈에 띈다. 무늬를 동원한 것은 오래전 추억을 좀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회상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거의 예전 할머니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어릴 적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털목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그녀의 추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털목도리를 보는 순간 어제 일처럼 선명한 무늬(물론, 추억까지 포함)가 드러났다는 논리다. 지금처럼 환절기가 찾아올 때면, 시인은 습관처럼 쉽게 목감기에 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그때마다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밤새워 지성을 드렸고 그런 할머니의 사랑으로 완치되었다는 기억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추억이 담긴 목도리라면 지금도 장롱 속에서 그 목도리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단순한 목도리가 아니라 할머니의 사랑에 대한 징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목도리를 통해 할머니의 따스한 체온을 느낌으로써 때때로 오래된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 시(詩)로써 환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추억은 다른 시에서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번 시에서도 친근하고 색다른 그녀만의 어휘를 동원하고 있다. 가령, “나는 할매 그 온기로 버텨 왔을까 / 내 삶의 언저리에서 늘 자전하던 따스함”이나 “달이 궤도를 도는 / 의식처럼” “그리고 / 따뜻했다 / 이제 그 순간이 내 생의 무늬다”에서 자전하는 따스함이나 내 생의 무늬다“라는 표현에서 상당한 신선함이 묻어나면서도 ”할매“라는 구수한 사투리의 동원은 시적 감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한 할매를 시인은 꿈꾸듯 그리워한다는 고백은 그녀의 또 다른 시에서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종종 등장하고 있는데, 할머니의 무르팍을 구름처럼 하얗다는 것과 ”매듭을 풀어내는 시간 / 계절이 눈을 뜹니다“ 면서 어린 할머니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시인은 할머니의 따스한 기억 외에 또 한 사람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바로 어머니다.

때로는 삶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바다

돌팍 틈 뿌리 내리고 뭍을 당기던 미역 줄기
물의 나이테 몇 올 쥐고 햇볕에 누워 있다

시간의 마디를 다듬는 새벽

바싹 마른미역 줄기를 물에 담그자
고집이 센 등뼈가 종부인 어머니의 단단한 성품처럼 쉬 누그러들지 않는다

저 줄기는 한때 파도를 썰던 칼날이었지

은빛 칼날도 끊을 수 없었던 질긴 생의 바닥엔
늘 소금기가 배어 있었다

본래 우주였던 둥근 냄비는
줄기에 맺혀있는 미끄러운 생의 증언자

바다가 감긴 물의 기억을 풀어낸다
바닥을 뒤집으며 끓어오른다,
매끄러운 잎들이 순하게 그릇에 담긴다

삶도 익으면 너그럽고 순해지는 것처럼
-「미역국」 전문

미역국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대변하는 음식인데 시인은 이 미역국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색다른 메타포(metaphor)를 보여주고 있다. 미역이 자라는 곳은 넓은 바다다. 바다는 우리가 답답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그 바다를 향해 소리치면서 그 울분을 해소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인은 바다를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른미역 줄기가 딱딱하게 굳어있을 때, 아무리 끓여도 순해지지 않던 그 줄기를 바닷물에 넣어두면 금방 너그럽고 순하게 해준다는 의식이 우리의 감정 속으로 쑥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시인의 어머니는 종부였단다. 예로부터 한 집안에 종부의 자리를 지키자면 여간한 뚝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종부의 성품을 누그러뜨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종부에게도 아킬레스 (Achilles)가 있었으니, 자식이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끊을 수는 있어도 늘 소금기가 배어 있는 것 같아서 자를 수 없었던 것은 자식이다. 그러므로 자식을 위해서라면, “삶도 익으면 너그럽고 순해지는 것처럼” 종부의 위치보다 어머니의 자리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그러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것 같다. “바다가 감긴 물의 기억을 풀어내”듯 어머니는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시인을 품어 주었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시인은 그 어머니의 감성을 종종 시로 표현 표현했으니 ‘미역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모아 두었던 기억들은 지금에 와서는 모두 그녀의 새로운 분신인 시로 재탄생하기에 충분했으며 그렇게 묵은 기억들 때문에 그녀의 시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이렇듯 할머니나 어머니와의 오래된 기억의 소산이 시로 재탄생하게 된 것인데, 이러한 것들은 독자들과의 탈 은폐(aletheia)를 형성에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다.

4
백숙자 시인의 시를 읽어 보면 모르는 사이에 이미지가 저절로 형상화된다. 그녀는 마치 글로써 그림을 그린다는 착각에 빠지는 듯하다. 말인즉 시적 이미지화를 잘 형성한다는 뜻이다. 그녀의 시에는 나비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귀목’이나 ‘호접도’ 그리고 ‘나비’ 등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있다.

아직도 뛰고 있네. 심장이

기억을 껴안고 모서리를 지키는 나비
한때는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였지

때 묻은 앙금이 심장을 파먹는
헐렁한 문짝에 박제된 나비

제 뼛속에 뼈를 물리면 살아나던 핏줄
근육의 균열이여

나비가 날아 앉던 반닫이
나의 한때도 설레는 날개였지
못질 없이도 균형을 잇는 뜨거운 피
녹슨 음각을 만지는 목다보

소박맞은 무성한 소문이
절룩거리는 바람의 손으로 광맥을 더듬고

나비는 박제가 되어서도 제 몸을 닦는지
시간을 닦는지 반들반들하다

이제 날아가거라
동구 밖 솟대로
- 「귀목」 전문

귀목은 오래된 느티나무 따위로 만든 전통 궤짝이다. 지금도 시골 마을에 가보면 가끔, 고가의 안방이나 마루에 이러한 공예품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궤짝의 문이나 귀퉁이 부분에는 각종 장신구가 예쁘게 붙어 있는데, 시인은 어느 곳에서 나비 모양의 장신구를 발견한듯하다. 그 화려하고 예쁜 나비 문양에 감동한 시인은 장신구가 아닌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 “제 뼛속에 뼈를 물리면 살아나던 핏줄 / 근육의 균열이여”라고 하거나, “여기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듯하다.”라고 한다. 이만하면 독자들도 시인의 시각을 통해 보는 듯 상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급기야 시인은 ‘동구 밖 솟대로 한번 날아보라’고 까지 한다. ‘나비 문양에서 피가 흐르고 날갯짓까지 한다’고 하니 이 정도면 독자들도 뼈나 핏줄의 묘사를 통해 보면 충분히 살아있는 듯 생동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은 듯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부분에는 독자들이 오랫동안 눈길을 보낼 것으로 생각한다.

나비가 오랫동안 박제된 이유에 대해서 아주 재미있게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을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나비란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시인은 “나의 한때도 설레는 날개였지 / 못질 없이도 균형을 잇는 뜨거운 피”라고 하면서 나비를 통해 오래전의 사랑을 회상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은 시적 품격을 높이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비는 박제가 되어서도 제 몸을 닦는지 / 시간을 닦는지 반들반들하다”는 시어를 등장시켜 오래전의 추억(박제)을 잊지 않겠다(반들반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이렇듯 나비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 같다. 다음의 시에서도 같은 맥락을 찾을 수 있다.

기억은 거꾸로 자전하는 추상화
낡은 시간은 모란꽃 꽃술에도 걸리지 않아요

생 그 페이지마다 고여있는 눈물은 빛바랜 명화
모란꽃 매화틀은 생을 담근 물감통

손가락 붓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가친 숨결
벽과 요 위에 토해놓은 뭉크의 절규

당신의 당신은
꽃 가시에 찔리고 비탄의 바람 속에서 쩔쩔맵니다

새순 같은 당신의 눈빛은 왜 저리 고운지요
기억을 담은 모란꽃 매화틀
돌계단 아래로 찬란히 뿌려진 그날
오묘한 생의 빛이 허공 속으로 스며듭니다

모란꽃 매화틀에 해밀로 새겨놓고 울음 꽃 그 너머로 비상하는 당신

끝은 또 다른 생의 시작점일까요
꽃상여 만장이 걸려있네요
-「호접도」 전문

호접(胡蝶)은 문자 그대로 나비를 말하는데, 시인은 왜 이렇게 나비에 집착하는 것일까. 보통 우리 고전에서 나비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은 영혼에 자주 비유되곤 했다. 물론 옛사랑이란 이성 간의 사랑일 수도 있겠지만, 시인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했던 할머니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은 거꾸로 자전하는 추상화”나 “고여있는 눈물은 빛바랜 명화”와 같은 표현들은 분명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예전의 사랑이 그립다는 이야기가 된다. 때때로 그 사랑의 흔적은 “당신의 당신은 / 꽃 가시에 찔리고 비탄의 바람 속에서 쩔쩔맵니다”라는 어휘를 통해 변함없는 사랑과 그리워함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오묘한 생의 빛이 허공 속으로 스며듭니다”라는 말로 짐작해 보면, 어쩌면 당신 역시 나비가 되어 내 주변에 있는듯하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말했다고 보면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가늠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든다.

연이어 나오는 ‘울음 꽃’이니 ‘꽃상여’니 하는 시어들은 이와 관련된 사연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끝은 또 다른 생의 시작점일까요”라는 말은 윤회(輪廻)의 과정을 통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시인의 기대를 반영한 셈이다. 이렇듯 그녀가 시상에 나비를 이렇게 빈번하게 등장시킨 이유는 당연히 그녀의 속풀이를 위해서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상에서 존재하는 나비는 평범한 나비가 아니라 나비 자체가 시인의 아바타(avatar)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기원이 먼 옛날 영웅들의 일대기나 샤먼(shaman)의 기도에서 출발했다고 본다면, 그리고 그 기도는 신과 인간 사이의 메신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백숙자 시인의 이러한 시들은 이렇듯 메신저 형태의 서정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시에서도 나비의 날개를 의미하는 “쌍돛대”라는 시어를 창조해 낸 부분은 좋은 징조라 생각된다.

5
백숙자 시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눈길이 간 작품은 범종이다. 이 작품을 통해 보면 백 시인의 한 편 한 편의 시는 부단한 관찰과 깊은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울음의 집
생이 무거워 늘 맞으며 사는가
쇠 비늘에 떨고 있는 소리의 경전
몇 자 법문으로 나이테를 그리네
다져진 시간을 다듬이질로 펴면
그 사리로 검은 벽면에 씨앗 하나 살게 할 수 있을까
울림으로 씻어 낼까
껍데기를 벗기며
울고 또 운다
틈새에서 자라는 고통의 씨앗
윤회하는 염화미소
맞을 때마다 떨어진 쇠 비늘
너에게 닿기 위해 억겁의 시간
생하고 멸하였다
번뇌의 도량을 밝혀
빛으로 깨어나는 어둠
혼자서는 열 수 없는 길이네
그 깊은 내륙까지 차오르는 너
용의 발톱에 매달려 천년을 울었구나
-「범종」 전문

범종은 목탁과 법고와 운판과 더불어 사찰에서 4대 신물이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시인이 윤회를 언급했던 것처럼 그녀는 독실한 불교 신자임이 틀림없을 것이고 매번 사찰로 왕래하면서 이 범종을 유심히 살펴보았던 것 같다. 종을 친다는 것을 종의 입장에서는 ‘맞는다’라는 말로 설명하는데 오히려 맞는 소리가 경전의 소리라고 하니 분명 아이러니(irony)다. 그리고 종을 치는 당목(撞木)의 흔적이 곧 나이테라는 발상이나 종을 치면서 흘린 미세한 쇳가루를 울림의 씨앗이라는 발상이 신선하다. 그러니까 시인이 말하는 법문이란 결국 울림의 씨앗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위 두 종류의 아이러니는 생(生)과 멸(滅)이 억겁의 시간 속에서 영속하는 윤회(輪廻)의 과정이 된다는 말이 되기도 하다. 따라서 범종 소리가 경전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통한 윤회의 과정을 설(說)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용뉴에 매달려 있는 범종이 오랫동안 경전을 설하듯 매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시인은 오랜 시간 동안 종을 관찰하면서 얻어낸 이론이 윤회와 연결하게 된 것이니 그 관찰과 생각의 깊이가 결코, 짧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시인은 시를 쓰는 과정에서 분명히 시적 대상물을 포착하고 시를 쓰기까지 수없는 대상물의 확인과 함께 글 쓰는 작업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론에서 투자한 노력이 마치 종을 치는 과정에서 눈에도 보이지 쇳가루의 쌓임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6
일반적으로 시를 쓸 적에는 새로운 시어를 창조할수록 참신성이 더 돋보이기 때문에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백숙자 시인은 그런 면에 부합하여 시어에 대한 신조어를 많이 생산해 내려는 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시를 쓰기 위한 좋은 분위기를 점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첫 번째 자산으로 생각된다. 또한 그녀는 시상에서 항상 그리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그리움을 통해 자신의 감성을 풍부하게 하려는 의지가 있다. 이러한 점은 시를 쓰는 시인에게는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자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성 역시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이것은 그녀가 시를 쓸 수 있는 두 번째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는 사물을 직시하는 예리한 시각과 논리성을 가지고 있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 집요하게 대상을 관찰하고 그 관찰의 결과를 가지고 시를 쓰겠다는 의지는 그녀의 세 번째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백숙자 시인에게는 시를 잘 쓰기 위한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앞으로 시를 쓰기 위한 잠재 가능성은 무한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던 그녀의 시를 쓰는 입장에서 시적 탈 은폐(aletheia)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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