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부 눈·입·귀
여름 빛 쏙독새의 아침 백 개의 불꽃 제2부 이·귀·코 이 Out of This World 바람, 레몬, 겨울의 끝 |
Luke Inui ,いぬい るか,乾 ルカ
이누이 루카 의 다른 상품
|
다카시는 벌렁 누운 채 양팔을 머리 뒤로 받치고, 맑디맑은 깊은 못을 들여다보듯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데쓰히코는 깜짝 놀랐다. 데쓰히코는 다카시도 자신과 똑같이 분해서 울고 있으리라 예상했다. 아니면 크게 화가 났든 넋이 나갔든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떨고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다카시의 표정은 후련해 보였다. 데쓰히코가 예상한 어떤 감정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어렴풋이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너는 뭐가 그렇게 즐겁냐?” 무심코 말을 걸자 다카시는 입술을 한번 꼭 다물고 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아무리 추해도 내가 보는 것까지 추하다고 할 수는 없잖아.” 31-32쪽 “쏙독새예요.” 그 새 소리가 임신한 사모님께는 견디기 어려웠던 거예요, 라며 미요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임신한 데다 병까지 들어 아주 괴로워하셨죠. 이대로는 뱃속 아이에게도 나쁘다며, 주인어르신께서 사람을 고용해 잡아 죽였어요. 예, 저도 그게 좋겠다고 했죠. 아무튼 그 새는 흉조니까요.” (중략) “그 새는 밤에 날아다니는 새예요. 이매망량의 기운을 몸에 한가득 담아뒀다가 동트기 전에 울음소리와 함께 온갖 곳에 뱉어요. 그래서 잡으면 울지 못하게 부리와 발을 이렇게 묶어 거꾸로 해서 아침 햇살이 드는 나무에 매달죠. 사모님 때도 동쪽 자작나무 가지에 매달았어요. 그런데…….” 미요는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몹쓸 일이 일어날 줄이야.” “사모님께서 아이를 사산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산…….” 미요는 공허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요 사산이었어요, 네. 여자아이였죠.” 미요의 포동포동한 볼에서 눈에 띄게 핏기가 가셨다. 그녀의 머릿속에 어떤 광경이 떠오른 건가 ─ 미요는 기억에서 되살아난 그것을 쫓아버리듯 머리를 좌우로 젓고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꾹 다 물었다. “그 새한테 저주받은 거예요.” 96-97쪽 “초가 백 개 필요해.” 담배 연기가 기미의 볼을 스쳤다. “초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한 개씩 태워. 액을 떠넘기고 싶은 사람을 가만히 떠올리면서 불을 붙이는 거야. 중간에 불이 꺼지거나 초가 쓰러져 버리면 안 돼. 그렇다고 줄곧 곁에서 바람막이를 해도 안 돼.” 손을 크게 흔들어 불을 끄고서 성냥을 재떨이에 떨어뜨렸다. “백 개가 전부 다 타면 소원 성취. 실패하면 거기서 끝. 이건 일생에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강한 기도……. 아니, 저주야.” 쓰루노 씨는 긴 목을 오른쪽으로 살짝 갸웃하며 기미를 보았다. “백 개의 불꽃의 액갚음이라고 해.” 129-130쪽 죽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동났다. 맛있었다. 하지만 역시 아직 좀 부족하다. 그렇게 먹었는데 점점 배가 고프다. 밥상 위를 둘러본다. 이제 남은 식재료는 하나도 없다. 밥도 채소도 흰 살 생선도. 고기도. 하세가와는 구마노미도를 보았다. 구마노미도는 씩 웃었다. 친구의 입에 빼곡하고 무수하게 난 예리한 하얀 치아가 빛났다. 물론 하세가와의 혀끝에도 아까부터 뭔가 뾰족한 것이 닿았다. 204쪽 뛸 때마다 다쿠의 귀에서는 종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다쿠의 부은 얼굴 한가득 웃음이 피어올랐다. 귀에서 물이 다 나오고도 다쿠는 점프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힘껏 뛰는 것 같지도 않은데 다쿠의 점프는 체공시간이 보통이 아니었다. 서둘러 줄넘기 줄을 돌리지 않아도 오 단 뛰기쯤은 간단히 할 것 같았다. 다쿠는 뭐가 그리 좋은지 소리 높여 웃었다. 마코토와 아키히코도 그에 따라 함께 뛰어올랐다. 하지만 다쿠처럼 우아하고 무게가 느껴지지 않게 점프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마코토와 아키히코가 두 번 뛰는 동안에도 다쿠의 발은 아직 땅에 닿지 않았다. “굉장하다.” 마코토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어떻게 하는 거야? 이것도 마술이야?” “응, 맞아.” 다쿠는 이글거리는 여름의 태양에 얼굴을 똑바로 든 채 귀에서 또롱또롱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연신 뛰어올랐다. 222-223쪽 그때 맡았다. 츠마에게서 폭발적으로 넘쳐난 그 향. 살을 에는 바람. 이어서 아직 푸르른 빛을 머금은 상큼한 레몬. 그리고 겨울의 끝을 알리는 풀과 흙의 기척. 그런 다른 향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서로 쫓으며 줄짓다가 뒤섞였다. 꼭 음악 같았다. 초등학생 시절 음악실에서 들은 파헬벨의 캐논을 떠올렸다. 한 가지 선율이 또 다른 하나로 이어지고, 겹치고, 깊이를 더해 더욱 퍼진다―츠마가 내뿜는 건 환상적으로 피어오르는 향의 캐논이었다. 나는 그 향이 뭘 가리키는지 모른 채 저도 모르게 츠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츠마는 바닷바람에 눈을 깜빡이면서 웃었다. 정말로, 정말로 기뻐 보였다. 317-318쪽 ---본문 |
|
전쟁 중 가족과 떨어져 큰어머니 집에 온 데쓰히코는 피난 온 바닷가 마을에 적응하지 못하고 매일 어머니를 그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몸이 약해서 걸핏하면 토하는 데쓰히코의 유일한 친구인 다카시는 데쓰히코 어머니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에 예전에 가본 적이 있다며 기차에 무임승차해서 어머니에게로 가자는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다카시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상괭이라는 그 지역에서 불길하다고 믿고 있는 바다 생물을 어머니가 임신 중에 먹은 탓에 저주받았다는 말이 돌았고, 다카시의 얼굴 반쪽은 거무스름한 반점으로 뒤덮여 있다. 그리고 데쓰히코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있다. 이따금 다카시의 푸른빛으로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을.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끔찍한 구타를 당한 날, 다카시는 데쓰히코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썩은 고기를 파먹고 사는 갯반디라는 물고기가 자기 눈 속에 들어온 적이 있고, 그 후로 곧 죽을 사람을 목격하면 바다반딧불이가 눈 속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눈이 파랗게 빛난다고. 노인들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은 약하게 빛나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을 사람을 보면 환하게 빛나는 것이다. 그 순간 데쓰히코는 똑똑히 목격했다. 자신을 바라보며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카시의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
|
“부끄럽게도 2006년에 제86회 올요미모노 신인상을 수상해 데뷔했다는 건 모르고 지나쳤지만, 기대해도 괜찮은 작품일지 모르겠다 싶었다. 하지만 읽고 나서 경탄. 기대 운운할 수준이 아니라 엄청난 걸작이었다. 뛰어난 신인을 찾아내는 것은 북리뷰어의 즐거움 중 하나지만, 이 책은 한시라도 빨리 퍼뜨려야겠다고 초조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것이 본 작품인 『여름 빛』이다.”
|
|
“이 처연하고 아름다운 압도적인 비극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물 흘리는 일밖에 없다.” 제86회 올요미모노 신인상 수상작! 총 여섯 편이 실린 『여름 빛』은 2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눈·입·귀’는 과거 시절을 배경으로 고전적인 분위기를 띤 세 작품이, 제2부 ‘이·귀·코’는 현대로 옮겨 기발한 모던 호러라 일컬을 수 있는 세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 2부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느 작품이고 몸과 관련된 소재가 주요 모티프로 다뤄지고 있으며, 인간의 신체에 발생한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특수한 능력과 기상천외한 설정을 통해 호러 본연의 공포를 만끽하게 하는 공포 소설인 동시에 독자의 눈물을 쏙 빼놓는 최루성 이야기가 아로새겨져 있다. 표제작 「여름 빛」에서 이어지는 두 번째 단편 「쏙독새의 아침」은 다이쇼 시대 후반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소녀를 사랑하는 청년의 순애보가 그려지는 동시에 고딕로맨스와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유령 이야기다. 「백 개의 불꽃」은 자신보다 모든 면이 월등하게 아름답게 태어난 동생을 시기하는 언니가 동생에게 저주를 내리기 위해 백 개의 양초를 매일매일 켜는 이야기로 일견 신데렐라를 연상시키며 잔혹 동화의 상투적인 결말로 치달으려고 하나 마지막에 준비된 반전을 통해 전체 분위기를 전혀 다르게 일신한다. 여기까지 1부에 속한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저자를 다소 고풍스럽고 정통적인 호러를 쓰는 작가로 여길 수 있으나 2부에 들어서면 인상이 확 바뀐다. 2부 첫 번째 작품 「이」는 오른팔을 잃은 친구의 초청으로 함께 식사를 하며, 오른팔을 잃은 끔찍한 사연과 차려진 음식들에 대한 맛깔나는 묘사가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독자들의 식욕을 쥐락펴락하는, 그야말로 금붕어 버전 죠스다. 「Out of This World」에서는 다시 소년 소설의 세계로 돌아온다. 「여름 빛」과 마찬가지로 소년들의 싱그러운 우정을 그리면서, 중력을 무시하고 하늘을 나는 ‘영 슈퍼맨’과 같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소년이 등장하지만 소년의 초능력은 아버지의 가학적인 학대 앞에서 무능력하다. 풍부한 자연 속에서 소년들의 유대가 깊어질수록 파국의 위험도 커져가는 슬픈 소설. 무자비한 현실에서 도망치듯 소년이 모험을 떠나는 대목에서는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를 떠올릴 것이다. 마지막 단편은 「바람, 레몬, 겨울의 끝」은 이 단편집 가운데 가장 잔혹하면서도 가장 처연하여 독자의 눈시울을 불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냄새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나’는 장기 밀매를 위해 인신매매된 아이들을 감금하던 중 한 소녀와 마주친다. 각각의 장기로 해부되어 곧 죽을 운명임에도 끝까지 희망의 냄새를 잃지 않는 소녀. 곧 찾아들 너무나도 처참한 비극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소녀에게 ‘나’는 마음을 열어버리고, 독자의 마음도 이내 열리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물 흘리는 것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