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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새로운 풍속도 겨울이 오면 병아리 빵 위로 굿모닝 새터민·4 캥거루족 엄마의 숨겨진 진실 유통기간 지난 사랑 방황 자서전 어느 지점장의 은퇴 노년 진짜 명품 제발 탐욕 절대자 부모 엄한데 화풀이 받을 복 하동의 노동요 선교사의 꿈 2부 김병주 문학관 휴관 사모곡 깨달음 제발·2 시련 역할분담 가끔은 새벽 기도 감정 노동자 지혜로운 사이 꿈을 꾸는 아이 뭐시 중헌디 짝사랑·4 풋사과 연꽃 디카시인의 삶 주어진 시간 고수의 비결 다운 시인이 되려다 아무도 못 막지 봉사자 백댄서 3부 놓아 드릴게요 울림이 있는 말 혼돈의 세계 결단 재활의 결과 우매함 인생은 말이지 꽃상여 친구따라 묵은 사랑 디카시와 홍성 배움 헛힘 거룩한 눈물 흑진주 M.Z 교육방법 찬란한 유월 이십오일 지쳤다 병들어도 천국의 시작 페튜니아 보냉팩의 소원 4부 비비추 수로의 근원 애정 표현 문득 방황·2 창작 후배에게 응징 시장 가방 뒤돌아보니 대림절 우선순위 진짜 궁금해 꽃비 봄날 갱년기 은혜 동장군 삼베 뜨거운 사랑 비밀이어요 길 비밀인데 해설 디카시의 비밀을 말하다 -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 명순녀 시인 감사의 말 - 명순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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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단풍잎이 곱게 물들 듯, 뼛속까지 디카시로 물든 제가 부끄럽게 또 한 권의 디카시집 『디카시의 비밀』을 엮었습니다. 단풍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노라면 곱기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거뭇거뭇 숭숭 뚫린 아픔의 흔적들, 봄 여름 힘차게 달리다 단 훈장 같아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제 디카시가 그렇게 성숙되는 과정이라 생각해 봅니다. 애정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바라며 『디카시의 비밀』을 여러분 앞으로 띄우려 합니다. 깊은 겨울이지만 지난여름의 예열된 열로 여유를 갖고 지내며 다가올 봄을 기다립니다. 이러한 기대감은 어떤 시련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고난 앞에서 자유 하는 까닭입니다. 2024년 1월 명순녀 시인 시인인 임창연 문학평론가는 “명순녀 시인은 2018년 첫 디카시집 『춤추는 시인』을 상재한 이후, 2020년 『춤추는 시인의 병상 일기』, 2021년 『꽃은 다시 피고』 그리고 2024년 네 번째로 디카시집 『디카시의 비밀』을 출간한다. 디카시는 그동안 시라는 장르가 독자와의 다소 멀어진 시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데 많은 공로를 했다고 말할 수가 있다. 네 권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의 부지런함과 디카시에 대한 사랑은 남다른 것이다. 이런 시인의 디카시의 사랑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문학이 생활화된 것이다. 또한 명순녀 시인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신념이다. 이번 디카시집에서도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받은 은혜에 대한 디카시를 만날 수가 있다. 현대시가 독자와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였다면 디카시는 독자와의 거리를 좁힌 것은 물론 생활문학으로 자리 잡게 한 공이 지대하다. 여기에 명순녀 시인의 네 번째 디카시집이 그 자리를 더 단단하게 하는데 기여함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시집을 말했다. 디카시의 비밀을 말하다 ―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 들어가며 시는 아주 오래된 문장의 역사를 가진 동시에 가장 첨단의 위치를 달려간다. 쳇 GPT4는 시를 짓는 동시에 작곡까지 해서 노래까지 만들어 준다. 그러나 시는 시인들에 의해 여전한 비밀을 문장 속에 숨겨둔다. 암호는 숫자와 기호를 조합해서 만든다. 그래서 시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시를 쉬운 문장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한 비밀이 들어있는 시를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004년에 이상옥 시인에 의해 디카시라는 또 하나의 비밀조합인 새 장르가 탄생했다. 시도 어려운데 또 하나의 비밀 문자를 만드는 장르가 탄생했으니 시인들마저 반발이 심했다. 컴퓨터 시대의 이미지는 숫자의 조합으로 표현된다. 그림 속에 숨은 숫자의 이미지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더 비밀스러운 조합의 시 장르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의외로 독자들은 반겼다. 일단 이미지가 보여주는 명확한 표현이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것이다. 거기에 5행 이내의 문장의 단출함이 쉽게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20년이 흐른 지금 디카시는 자연스럽게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고 문학의 블루오션으로 계속해서 세계를 향해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명순녀 시인은 2018년 첫 디카시집 『춤추는 시인』을 상재한 이후, 2020년 『춤추는 시인의 병상 일기』, 2021년 『꽃은 다시 피고』 그리고 2024년 네 번째로 디카시집 『디카시의 비밀』을 출간한다. 디카시는 그동안 시라는 장르가 독자와의 다소 멀어진 시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데 많은 공로를 했다고 말할 수가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문학이 된 것이다. 누구나 사진을 찍어서 SNS를 통해서 바로 작품을 발표하고 그 반응도 실시간으로 보게 된 일이다. 일반적인 시는 발표의 장으로 책이나 문예지에 발표한 이후에 독자들과 만났다. 그만큼 소수의 작가들만이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환경을 디카시는 SNS의 발달과 휴대폰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실시간 독자들과 소통하는 장르로 자리를 하게 되었다. 명순녀 시인은 디카시를 생활 속의 예술을 누구보다도 먼저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앞에 발간된 디카시집을 잠시 살펴보면 명순녀 시인은 첫 디카시집에서 81편의 디카시를 통해 보여준 세상은 모순과 불의가 공존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또한 자신이 그 세상을 조금 더 움직여 온기를 더 전하려고 했다. 주말이면 외롭고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가 자신의 달란트를 통해 마음껏 에너지를 나눠주고 온다.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에서도 할 수만 있다면 위에서 지시하는 상사이기 전에 그들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하려고 애쓸 것이다. 바로 첫 디카시집 『춤추는 시인』이 그것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두 번째 디카시집 『춤추는 시인의 병상일기』는 특별하다. 삶에서 갑자기 닥쳐온 어려운 순간을 절망에 지지 않고 인생의 2막으로 일어선 이야기들을 디카시라는 장르로 기록하였다. 눈물이 변하여 그야말로 웃음이 되고 춤을 추는 기록인 것이다. 그래서 그 기쁨도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의 선물로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삶을 시로 이야기하는 시인과 삶이 시가 되는 시인이 있다. 명순녀 시인은 삶 자체를 시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세 번째 디카시집 『꽃은 다시 피고』는 제목처럼 희망을 노래하는 시집이다. 육체로는 재활이지만 정신과 영으로는 부활을 이야기한다. 꽃이 다시 핀다는 것은 우주의 비밀이다. 사람이 돌보지 않아도 꽃이 핀다는 건 자연의 이치인 동시에 신의 영역이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 또한 꽃을 생각한다면 백 년의 세월도 꽃이 피고 지듯 잠시일 것이다. 명순녀 시인에게 꽃이 다시 피었다는 건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새 시간을 얻은 것이다. 꽃은 늙는 법이 없다. 잠시 피었다 질뿐이다. 사람도 꽃처럼 늘 필 수는 없지만, 꽃이 가지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명순녀 시인에게 꽃의 시간은 주어진 만큼 아름답기를 원할 것이다. 디카시의 기록처럼 남은 시간들이 소중하게 발자취가 남기를 바란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그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다. 위 세 번째까지의 디카시집을 살펴 봄으로 6년 동안 디카시를 생활 속의 문학으로 실천한 시인의 발자취를 이해하게 된다. 이제 네 번째 시집 『디카시의 비밀』을 통하여 명순녀 시인이 말하는 삶의 비밀을 함께 살펴 보기로 한다. - 시대의 비밀을 읽는 자 명절에 어딜 가세요? 자식은 여러 명이 움직이잖아 내가 움직여야 자식들 편할 걸 바퀴 소리가 서걱거린다 - 「새로운 풍속도」 시인은 세상을 누구보다도 빨리 읽고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전하는 자이다. 지금의 시대가 말하는 새로운 풍속도는 코로나19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은 삶의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서 QR코드 메뉴판을 사용하거나, 해변에서 파라솔 간격을 두거나, 발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과도한 행동을 한다. 코로나 엔데믹을 선언했지만 습관처럼 마스크를 벗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이런 변화들은 ‘뉴 노멀’이라고도 불리며, 앞으로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 「새로운 풍속도」는 이미 낯익은 풍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가던 명절의 모습이 이제는 자식을 위해 아직도 희생해야만 하는 광경은 씁쓸하기도 하다. 부모의 희생이란 자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내주는 행위이다. 부모의 희생은 자녀에게 사랑과 보호를 주는 한편, 부모의 욕구와 삶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부모의 열등감이나 후회를 자녀에게 전가하는 부작용도 낳을 수가 있는 것이다. 부모의 희생은 자녀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희생의 이유와 방식, 그리고 결과에 대해 잘 생각하고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일이다. 작품 「제발」, 「제발\2」는 대한민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갈라 치기 된 상황을 이야기한다. 비록 작은 땅덩이지만 2023년을 기준으로 국가 GDP로는 세계 12위의 경제국가이다. 또한 K-콘텐츠라는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 등 문화이미지를 통하여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위상은 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에 비해 2022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24위에 머물렀다. 물론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겠지만 그 정치인들을 뽑은 사람들이 국민이기에 공동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의 악습으로 인한 편 가르기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진보, 보수 서로 찌르려고 날을 세워 가며 허점을 찾지 입 닫고 들어주렴 - 「제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온전히 들어주고, 그 말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입을 닫고 귀만 열어서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인들은 상대를 비방하여 자신을 높이는 아주 원시적이고 억지스러운 행동만을 하니 그 피해는 국민과 나라 전체를 파괴하는 전쟁 같은 위기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제는 패거리 정치에서 벗어나 고차원의 발상과 신사적인 품격을 정치인들의 행동에서 보고 싶은 것이 희망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 꽃인 선거에서 냉정한 한 표로 던져질때 그 결과를 보게될 것이다. 큰 것만 보고 달리다 주저앉고서 나는 알았습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숨 고르는 소리 있음을 - 「깨달음」 뉴 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불리는 현실 앞에서 경제와 사회에 변화와 혁신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가졌던 신념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개념 체계들이 달려오고 있다. 자칫하면 절망하고 넘어진 채로 방황할 수도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시인은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숨 고르는 소리’를 듣는 자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예언자적인 생각과 눈을 통해서 희망을 노래하며 아픔에 대해서는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여야 한다. 지금 우리 앞에 직면한 상황은 AI라는 거대한 도전이다. AI 시대란 인공지능 (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사람의 지능을 초월하고, 사람의 모든 지식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AI 시대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제조, 의료, 금융, 교통, 문화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AI 시대에는 새로운 직업과 산업이 생기고, 기존의 직업과 산업이 사라지거나 변화할 것이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하거나 보조하면서,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협력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AI의 편향성, 설명 가능성, 투명성 등의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그 근거와 과정의 타당성을 제공하고, 공정하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AI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AI의 기술과 원리를 이해하고, AI와 협력하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감성과 도덕성, 상호작용 등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AI 시대는 인간에게 큰 도전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AI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대응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AI 시대에도 시인의 역할은 그것을 뛰어넘어 창조자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 - 자연의 비밀을 읽는 자 시인이란 세상의 비밀을 읽어낼 수 있는 자이다. 그래서 시인을 신의 대언자(代言子)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시에 인간의 대변자이기도 하다. 시인은 신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시를 통해 자신의 물음과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표현한다. 시인은 신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시인은 신의 본질을 한정적으로 정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의 본질을 무한적으로 상상하려고 한다. 또한 시인은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미를 탐구한다. 시인은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믿음과 신념, 가치관과 철학을 시를 통해 표현한다. 시인은 삶과 자연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와 소통을 추구하고, 그것을 시적 언어로 말해야 한다. 시인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 자신과 다른 존재들, 자신과 다른 문화들 등과의 관계와 소통을 통해 자신의 삶을 확장하고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비생태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태의식을 전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디카시는 시인의 렌즈를 통해 포획된 자연을 사진과 함께 시어를 통해 메신저(messenger)를 자처하는 것이다. 고상하게 구석구석 뒤지며 꿈을 키웠지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난 있지 배설물까지 뒤지고 있어 - 「디카시인의 삶」 시인은 배설물에 달라붙은 금파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멈추어 사진을 찍어 디카시의 소재로 삼았다. 대개는 냄새가 나고 더러워서 피하는 장면이다. 사진작가들도 처음에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꽃들을 주로 찍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현실의 어두운 부분이나 삶의 현장으로 렌즈가 옮겨간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경험, 관찰,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거나 비판하거나 변화시키려고 시도한다. 예술은 현실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예술가들은 현실의 어두운 면을 예술의 형식과 재료, 기법과 스타일, 표현과 메시지 등에 반영하면서 예술의 소재로 만든다. 문학이 추구하는 삶의 어둠과 더러움을 바라보는 시각은 작가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문학은 삶의 어둠과 더러움을 단순히 비판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극복하거나 변화시키기 위한 가능성을 탐구하고 제시하려는 예술적인 노력이다. 문학은 삶의 어둠과 더러움을 인식하고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 사회의 정의와 평화, 자연과의 조화와 존중 등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인간적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다. 명순녀 시인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신념이다. 이번 디카시집에도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받은 은혜에 대한 디카시를 만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축복하시고 돌보시는 것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책임을 맡기시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라고 말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역 가운데 하나님이 통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거 모두 줄게 조건은 빈손이라야 해 - 「받을 복」 일반적으로 채운다는 것은 넘치도록 갖기 위함이다. 그런데 시인은 선문답처럼 빈손이어야 한다고 조건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모두라는 것은 제대로 된 하나일지도 모른다. 양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인생에서 만나는 고통은 또 하나를 뛰어넘기 위한 준비과정인 것이다. 디카시는 현란한 영상문화 시대에 최적화된 문학 형식으로서, 사진과 시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축약된 예술적 성취를 견인하고 있다. 디카시는 현대시의 위기 국면을 넘어서서 암흑기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 돌파구가 바로 디카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디카시는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시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장르인 것이다. K-콘텐츠가 세계를 선도하고 세계인들에게 강한 인상과 문화를 향유하게 하고 있는 요즘은 디카시도 문학의 한류로서 그 몫을 다하는 중이다. 한 권의 디카시집을 발간한다는 것은 바로 디카시를 널리 전파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다. 디카시는 생활문학의 현장에서 앉아서 쓰는 관념의 문학이 아니라 행동하는 자가 쓸 수 있는 날시(raw poem)이다. 그래서 관념이 사라진 감각적인 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남 고성이 디카시의 성지(聖地)가 된 것처럼 디카시를 지금 쓰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훗날 선구자로 이름에 남을 것이다. 디카시의 미래 같은 명순녀 시인의 디카시를 한 편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한다. 각자 인생이 있지 주어진 대로 걷다 보면 여러 색으로 물들어 아름다운 것 -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