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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연디카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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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집안보다 나라 먼저
1. 대조선은
2. 김시습의 붓
3. 오구(烏口) 오감도
4. 13의 아이
5. 차창에 머문
6. 물꽃 축제
7. 남쪽이 고향
8. 고향 떠나와
9. 일 본 후 소굴
10. 통한다는 것
11. 산 장승
12. 최초 고구마 집안
13. 반남 마을 고분
14. 농월정 농
15. 동호정(東湖亭) 변
16. 면앙정(?仰亭) 참나무
17. 삼지창은
18. 논개 깊이는
19. 난 분하다
20. 오월 자벌레
21. 귀양 아닌 휴양
22. 빈집 잡아맨 끈
23. 개평 마을 정 중 동
24. 순교자의 동산
25. 돌도 숨 좀 쉬자

2부 이웃 꿈은 어디에
26. 결혼 예순 돌
27. 눈방울
28. 해가림 고리
29. 어사출또야
30. 오작동
31. 천년(天年) 지기
32. 죽곡정사(竹谷亭舍) 홍매
33. 또 시집 왔어요
34. 줄줄줄 딸랑
35. ‘무경계’
36. 파노라마 자화상
37. 동심 꽃
38. 감 별난 감
39. 곶감 될 순 없지
40. 불문코
41. 박 문풍지
42. 노하지 마라
43. 조각보 손
44. 동춘정(同春亭) 양보
45. 우암 송시열 흔적
46. 인사동 인사차
47. 새터민 터
48. 반려(反戾)의 두 길
49. 문자 가구 청죽(靑竹)
50. 우리는 어깨야

3부 빗자루질 어디까지
51. 3월 4박자
52. 기지개 날
53. 구출 작전
54. 합죽선 얼!
55. 공수래 생수거
56. 식영정(息影亭) 똬리
57. 불방울 비화(悲話)
58. 송하 맹호도(松下 猛虎圖)
59. 극초미세먼지
60. 금수(禽獸)강산
61. 용송(龍松)의 떡심
62. 철갑 두른 듯
63. 빈손의 비손
64. 먼발치 붉은 목탄
65. 지구촌 좀비
66. 주유 구렁이
67. AI 잠수함
68. 마네 모네 붓
69. 챗GPT 왈왈
70. 비엔날레 계단 눈사람
71. 4세대 A아이
72. 나이야 가라 비데
73. 노령의 지팡이
74. 화성 디딤돌
75. 홀인원 망

4부 낯선 땅 이편저편
76. 페루 쓰리쿠션
77. 티티카카 둥둥 섬
78. 마추픽추 추적
79. 집단 노숙 터
80. 대성당 광장
81. 기니피그 향수
82. 볼리비아 기차무덤
83. 우유니 소금사막
84. 이구아수(二口亞水)
85. 이구아수 궤도열차
86. 아홉 무지개
87. 아르헨티나다
88. 아르헨 튀나
89. 혹부리 영감
90. 키르기스스탄 3500 상봉(相逢)
91. 끽다거(喫茶去) 후
92. 무이산(武夷山) 불견천(不見天)
93. 돌성의 두 갈래
94. 명성 엿보기
95. 청수사(淸水寺) 가는 길
96. 위장 망태
97. 교토 동대사(東大寺)
98. 호 보 세(虎步勢)
99. 2차 일으켜
100. 리무진장하다

해설│전위 예술가의 실험정신과 메타창작의 시학 - 이상옥

저자 소개 1

- 1954. 봄 전남 보성 첫울음 - 문자조형가구 100종 100작 - 시집 『공수래 병수거』 『공수래 생수거』 - 디카시집 『줄탁동시』 『줄탁동시 폼』 - 『디카시 디자인』 5인 저 『사방팔방』 - 《한국사진문학》 시, 디카시 신인상 - 디카시 수상: 대상 4, 입상 총 20회 - 詩낭송 퍼포먼스 다수 - 조선대 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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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50*220*7mm
ISBN13
9791194987840

책 속으로

전위 예술가의 실험정신과 메타창작의 시학
-자의식에서 역사와 삶의 현장까지

이상옥(시인, 창신대 명예교수)

조규춘 시인은 문자조형과 산업디자인, 시와 퍼포먼스 등을 넘나들며 평생을 ‘형태와 언어의 새로운 관계’를 탐구해 왔다. 근자에 그는 디카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수용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더욱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의 예술적 출발점에는 언제나 ‘보이는 것’과 ‘읽히는 것’의 경계를 허물려는 실험정신이 자리해 왔다. 100종 100작의 문자조형가구를 제작한 조형예술가이자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초대디자이너이며 조선대 명예교수인 조규춘 시인은 문자를 단순한 의미 전달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형태와 공간을 지닌 시각적 대상으로 다루어 왔다. 여기에 시 창작과 시낭송 퍼포먼스까지 더하면서 그는 문자·이미지·조형·신체가 서로 넘나드는 전방위 전위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조규춘과 디카시의 만남은 그의 오랜 예술적 궤적이 도달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인 날시를 포착해서 그것이 유발하는 강력한 시적 충동으로 사진기호와 문자기호를 생성해 하나의 텍스트를 이루는 디카시도 서로 다른 기호체계를 통합하는 전위예술이다. 따라서 디카시는 문자 자체를 시각적 형상으로 다루어 온 조규춘에게 자신의 조형적 감각과 시적 언어를 동시에 작동시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새로운 서정양식이다.

이번 디카시집은 한 전위예술가가 디카시를 자신의 예술세계 속으로 끌어들인 결과이면서, 동시에 디카시를 통해 자신의 오랜 예술적 탐구를 새롭게 갱신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디자인에서 시로, 문자조형에서 디카시로 이어진 그의 예술적 여정은 서로 다른 장르를 옮겨 다닌 이력이 아니라 ‘언어는 어떻게 형상이 되고, 형상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을 평생 변주해 온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조규춘의 디카시는 예술가로서의 날카로운 안목과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자의식을 넘어 역사와 삶의 현장까지 탐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머리 깎고 수염을 남긴 것은
남아 기개를 뽐내기보다
날개 접고 엎드려
쓰고자 한

-「김시습의 붓」

머리를 깎고 수염을 기른 모습의 김시습의 초상화는 승려, 문인 등 다양한 이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단순한 풍모가 아니다. 조규춘은 이 형상을 예술가가 지녀야 할 윤리적 자세로 읽어낸다. 김시습 붓의 환유성을 보라.

세상을 향해 명성을 과시하는 대신, 스스로를 낮추고 내면으로 침잠하여 문장을 완성하려는 창작 태도의 표상으로 읽고 있다. “남아 기개를 뽐내기보다/ 날개 접고 엎드려”라는 구절은 기개를 뽐내며 비상하기를 원하는 인간의 명예욕을 지양하고 날개를 접고 엎드리는 창작자의 겸허함으로 치환하면서 김시습의 선비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린다. 특히 수염을 붓으로 전이시키는 조규춘의 기발한 발상은 선비의 품격이면서도 시인 자신의 그것이다. 김시습의 초상은 과거의 기록을 넘어 오늘의 창작 윤리로 살아 숨 쉰다.

이 작품은 오늘의 문단 현실을 향한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비판으로도 읽힌다. 문인이 작품보다 명성과 직함을 앞세우고, 창작보다 권력과 영향력을 둘러싼 경쟁에 휩쓸릴 때, 예술은 본래의 순수성을 잃는다. 상과 직책, 조직과 권위를 향한 과도한 욕망은 창작을 수단으로 만들고, 문학을 자기 과시의 무대로 변질시키기도 한다. 조규춘은 김시습의 초상을 통해 이러한 세속적 풍경을 우회적으로 제기한다. 높이 날아 이름을 떨치는 일이 아니라, 날개를 접고 자신을 낮추어 한 편의 작품 앞에 온전히 엎드리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길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창작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 있지 않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있다. 명예를 좇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워가는 과정 속에서 예술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이 작품은 김시습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시대 예술가들이 어떤 자세로 작품 앞에 서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이상(李霜) 할 것이
이상(李箱) 할 것도

오감 만족할 일 아니다

백로가 먹물 머금고 눈물로
까마귀 입이 널따란 골목길
- 「 오구(烏口*) 오감도」

(*일본 제도펜/ 전후기 이름)

이 작품은 제목부터 이상의 「오감도」를 패러디한다. 그러나 이상에 대한 단순한 오마주는 아니다. 조규춘은 시인 이상의 언어 실험을 자신의 시적 언어로 다시 번역한다. 사진기호 속 백로는 물가에 서 있고, 물속에는 건물의 그림자가 뒤집혀 있다. 현실과 반영이 뒤섞인 공간이다. 여기에 조규춘은 “이상(李箱) 할 것이/ 이상(李箱) 할 것도”라고 쓴다. '이상'은 형용사이면서 동시에 시인 이상의 이름이다. 하나의 단어가 두 의미를 동시에 작동시키는 언어유희가 발생한다. 이 작품은 이상을 인유하며 이상의 실험정신을 작품 속에서 다시 실현한다. “오감 만족할 일 아니다”라는 구절은 대중문화의 소비 언어를 끌어와 이상의 시 「오감도」를 또 투영한다. 전위적인 모더니즘과 현대의 소비문화가 하나의 문장 안에서 교차한다. “백로가 먹물 머금고 눈물로/ 까마귀 입이 널따란 골목길” 에서는 더욱 놀라운 시각적 전환이 일어난다. 백로는 화선지 위의 붓이 되고, 제도펜 '오구(烏口)'와 이상의 「오감도」와 혼융하며 물에 비친 골목은 하나의 수묵화이자 문자 공간으로 변한다. 사진기호는 풍경이 아니라 한 폭의 동양화가 되고, 동시에 이상의 시 세계를 다시 그려내는 캔버스가 된다. 여기서 자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문학사를 재해석하는 상징 장치가 된다.

조규춘의 이번 디카시집은 그의 예술적 전위성이 디카시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회화와 문학, 자연과 언어가 하나의 디카시 안에서 자유롭게 넘나든다.

두루 찾다가 어쩔 수 없어
마지막 너마저 보내야 할

추사의 난처럼
화선지 밖으로
-「난 분하다」

이 작품은 조규춘의 디카시 세계에서 특징적인 한 축을 이루는 언어유희의 실험정신이 잘 드러난다. 그의 디카시는 사진기호와 문자기호를 결합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 자체를 하나의 조형 재료로 다루고자 하는 실험성을 보여준다. '난 분하다'라는 제목의 이중 구조도 그렇다. '나는 분하다'라는 감정의 문장이기도 하고, 한편 '분하다'는 분(盆)을 하다, 즉 화분을 나누고 옮겨 심는 행위를 의미한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언어 자체의 다층성을 시적 사건으로 만드는 장치이다. “추사의 난처럼/ 화선지 밖으로”에서도 난을 바라보면서 추사의 난을 생각하고 추사의 난이 화선지에 머무는 것을 넘어 현실 공간 속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한다. 조규춘의 작품은 매우 역동적이고 그의 예술은 항상 예술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관습을 깨뜨리는 퍼포먼스로 작동한다.

느닷없는 돌발 몸짓의 29초
필름은 잘리지 않았다

뜬 금 없이 금값 치솟는데
독립 영화 11개국에서 메달
-「‘무경계’」

(저자 퍼폼, 영화관에서)

이 작품은 자신의 예술행위를 다시 디카시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이 디카시는 조규춘이 행위예술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면이 자신도 모르게 독립영화에 나온 것을 영화관에서 자신이 찍고 쓴 것이다. 다시 말해 퍼포먼스가 영화가 되고, 영화의 한 순간이 다시 디카시가 되는 예술적 순환 구조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창작 방식은 디카시의 정체성과 충돌하지 않는다. 디카시는 본질적으로 세계 속에서 돌연 시적 형상이 드러나는 순간, 즉 '날시'를 포착하는 예술이다. 인간이 창작한 예술 역시 어느 순간 새로운 감동과 의미를 발생시키며 하나의 '날시'로 현현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조규춘은 자신의 퍼포먼스를 단순히 기록하거나 기념하지 않는다. 독립영화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다시 살아난 자신의 몸짓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며 또 하나의 메타 시적 순간으로 포착한다. 예술을 다시 예술로 읽어내는 메타적 창작 미학을 보인 셈이다.

작품 제목이 ‘무경계’라는 것 역시 상징적이다. 그의 예술과 삶, 퍼포먼스와 영화, 영화와 디카시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창작 혼의 발로이다. 조규춘에게 예술은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과 상상력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변주되는 유기적 세계인 것이다.

이 작품은 디카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적용 대상을 자연에서 예술행위로까지 확장한 실험적 작품이다. 디카시에 있어서 자연이나 사물의 시적 현현의 범주를 인간 자의식의 예술적 행위로까지 확장한 것이다. 조규춘은 자신의 퍼포먼스를 스스로 시적 대상으로 하는 메타창작적 포즈를 보임으로써 디카시가 현실과 예술을 모두 포괄하는 살아 있는 극순간 예술임을 실천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바로 보라는데
옆이 앞이라네

하나 말하는데
둘이 하나라네

다름 아닌 하나도 아니라 하네
- 「불문코」

이 작품도 메타창작의 시학이 드러난다. 밤 거리 창에 비친 자기 자신을 시적 대상으로 삼는다. 사진기호 속에는 조규춘 자신의 모습이 창에 반영되어 조각상들과 함께 하나의 화면을 구성한다. “바로 보라는데/ 옆이 앞이라네// 하나 말하는데/ 둘이 하나라네// 다름 아닌 하나도 아니라 하네“라는 이 짧은 시적 언술은 단순한 거울놀이가 아니다. 유리창은 나를 비추며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낸다. 이런 역설은 시선의 위치가 바뀌면 세계의 질서도 달라짐을 보여준다. 육체의 나와 의식의 나, 현실의 나와 유리 속의 나는 둘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이며, 하나인 것 같지만 결코 완전히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
마지막 행인 "다름 아닌 하나도 아니라 하네"는 이러한 사유를 더욱 심화한다. 인간은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변화하는 존재이다. 자아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자아가 중첩되고 교차하는 복합적 존재임이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조규춘은 유리창을 단순한 반사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유리는 내면을 비추는 철학적 장치이며, 자아를 성찰하는 시적 공간이다.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행위 역시 단순한 셀프 촬영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대상으로 삼아 날시를 포착하는 창작 행위인 것이다.

조규춘은 쇼윈도를 통해 현실의 자아와 반영된 자아를 동시에 포착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분열성과 다기성, 그리고 존재의 복합성을 철학적 사유로까지 끌어 올리고 있다.

오월이 부른 땀방울인가

생명의 불꽃
일일이 구하고
땅을 지킨 십자성
피눈물 백신만 대지에
-「차창에 머문」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5·18 광주를 현재적 시선으로 불러내는 역사 디카시이다. 조규춘은 미학적 실험에만 머물지 않고, 역사의 상처를 현재의 감각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 메타 창작의 자의식에서 역사의식으로의 확장이다. 이 작품은 비 오는 날 차창에 맺힌 빗방울을 바라보다가 창밖에 보이는 '123약국' 간판이 초점화된다. 그것은 단순한 거리 풍경으로 소비하지 않고 '123약국'은 곧바로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공간으로 전이된다. “오월이 부른 땀방울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차창의 빗방울은 단순한 빗물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피와 눈물로 치환한다. “생명의 불꽃/ 일일이 구하고/ 땅을 지킨 십자성”에서 123약국은 광주 시민들의 생명을 살리고 부상자를 돌보았던 환유적 공간이라는 역사적 의미로 드러난다. '십자성'은 밤하늘의 별처럼 희생자들을 비추는 기억의 별자리가 아닌가. 공간이 상징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마지막 행에서는 “피눈물 백신만 대지에”라고 표현함으로써 광주의 희생을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의 백신'으로 읽는다. 피눈물을 흘린 가장 처절한 희생이지만, 그 희생 덕분에 한국 사회는 다시는 독재와 폭력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면역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차창'이라는 매개적 장치 또한 미적 코드로 작동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차창은 안과 밖을 동시에 보여주는 경계이다. 창 안의 현재와 차 밖의 과거, 혹은 개인의 시선과 공동체의 기억, 현실의 거리와 역사의 공간이 모두 차창이라는 투명한 경계 위에서 서로 겹친다. 그 경계 지점에 무수한 빗방울은 시인의 정서적 등가물로 드러나는 간접화법이 된다. 이렇듯 이 작품은 역사적 기억을 현재화하며 촘촘한 미학적 장치들을 구사한다. 이는 조규춘이 평생 전방위 예술가로서 활동해온 역량의 표식이라 해도 좋다.


코 고는 소리는 소나타
코카인에 취했나
가로 선이 주는 그늘을 베지
천국, 몇 시까지인가
-「대성당 광장」

조규춘은 국내외 다양한 공간 이동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사유한다. 그의 해외여행은 명소를 감상하거나 이국적 정취를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낯선 공간이지만 삶의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한 장면을 통해 현대 문명의 그늘과 존재의 의미를 성찰한다.

사진기호 속에는 웅장한 대성당 광장 한복판에 한 남자가 깊이 잠들어 있다. 사람들은 무심히 그 곁을 지나가지만 시인의 시선은 그에게 멈춘다. 화려한 관광지의 풍경보다 한 인간의 삶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첫 행의 "코 고는 소리는 소나타"는 현실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전환하는 조규춘 특유의 시선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불쾌한 소음으로 들릴 코 고는 소리를 시인은 음악으로 바꾸어 듣는다. 곧이어 "코카인에 취했나"라는 물음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현대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암시한다. 시인은 단정하지 않고, 질문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한 인간의 삶을 함부로 규정하는 대신 독자에게 생각할 여백을 남긴다. 여기서 가장 독특한 시선은 “가로선이 주는 그늘을 베지”이다. 광장의 가로등이 만든 가느다란 그림자는 잠든 인물의 유일한 쉼터로 보이지만 그것도 어긋나 있다. 이 한 장면은 도시 문명의 풍요와 그 이면의 빈곤을 동시에 보여준다. 마지막의 “천국, 몇 시까지인가”는 이 작품의 본질적 국면을 드러낸다. 대성당은 천국과 구원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성스러운 공간 앞에서 잠든 한 사람은 현실의 삶과 천국의 경계에 놓여 있다. '몇 시까지인가'라는 표현은 영원해야 할 천국을 시간 속으로 끌어내린다. 안식은 잠시뿐이며,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이 질문은 한 사람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이 작품은 삶의 한 복판에서 삶의 본질을 묻는 사유가 돋보인다.

조규춘의 이번 디카시집은 한 전위 예술가가 평생 탐구해 온 예술적 사유가 디카시라는 새로운 서정양식 속에서 새롭게 형상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의 디카시는 자연과 역사, 퍼포먼스와 일상, 현실과 사유를 하나의 극순간 속에 응축시키며, 서로 다른 예술 영역들이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조규춘의 이번 작품집은 디카시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더욱 깊고 넓게 증명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디지털 환경은 예술의 생산과 향유 방식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예술은 언제나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시선에서 시작된다. 조규춘 시인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조형적 감각과 시적 상상력, 그리고 예술가적 성찰로써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서정과 만나 그의 실험정신과 메타시학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

---「해설」중에서

출판사 리뷰

조규춘의 디카시는 가구디자인 전공에서 축적한 조형 감각과 시적 상상력이 만나 독창적인 미학을 구축한다. 사물의 형태와 구조를 읽어내는 디자이너의 시선은 사진을 단순한 기록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언어와 결합된 새로운 조형 언어로 확장시킨다. 사진과 문자는 풍경과 사물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이 시집은 역사와 문화유산, 가족과 고향의 정서를 비롯해 지구 환경과 기후위기, 인공지능과 챗GPT 등 급변하는 시대의 시사성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자연과 문명, 인간과 기술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현실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포착하면서도, 재치 있는 언어유희와 역설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사유와 미소를 동시에 선사한다.

시인은 디카시를 하나의 문학 장르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디자인적 사고와 예술적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사진과 시, 조형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이 시집은 현실을 향한 비판 의식과 미래를 향한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추천평

조규춘 시인의 이번 디카시집의 특징은 나무를 사진기호로 활용한 디카시가 수십 편에 이른다는 점이다. 무성히 자란 나무이거나 올곧게 자란 나무라기보다 수백 년 넘었을 법한 나무, 깎이고 뒤틀리거나 기이하게 자란 나무들이 소재로 등장한다. 시인은 나무들을 통해 다층적인 시적 의미와 날카로운 풍자 의식을 선사한다.

작품 속 나무는 순수한 자연물의 차원을 넘어 삶의 궤적과 존재론적 성찰을 담아내는 유기적 기호로 작동한다. 특히 왕실의 으뜸 재목이자 절개의 상징인 황장목은 불의에 굴하지 않는 강직한 기개를, 추위를 뚫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시인의 고결한 예술적 자의식을 대변한다.

엄숙하고 직절한 나무 사진기호에 시인 특유의 찰진 언어유희가 얹어질 때, 이 시집은 조규춘만의 시너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사진기호의 묵직함과 문자기호의 유쾌한 재치가 대비를 이루며 부조리한 현실과 인간 군상의 모순을 위트 있게 비틀어 낸다. 조규춘 디카시 특유의 경쾌한 감각으로 빚어낸 풍자와 울림, 직관적이고 새로워진 시적 탐구의 정수를 『디카시 자서전』에서 만날 수 있다. - 최광임 (시인 · 한국디카시연구소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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