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EPUB
eBook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
EPUB
가격
24,500
24,500
YES포인트?
1,22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상세 이미지

소개

목차

서문
마르틴 마르티네스 프룩투오소
올리비에 다게

엮은이의 말
그녀는 시가 될 것이다·알방 스리지에

편지
남아메리카, 프랑스, 북아프리카, 1930~1940년
뉴욕, 1940년 12월~1943년 4월
북아프리카, 사르데냐, 1943년 4월~1944년 7월

부록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앙리 드 세고뉴에게 보낸 편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뉴욕의 어느 의사에게 보낸 편지

저자 소개3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관심작가 알림신청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1900년 6월29일 프랑스 리옹의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21세 때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위에 입관 되었으나 비행사고를 내고 예편되었다. 1920년 공군으로 징병되었다. 1921년 4월에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사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 활동에 큰 시발점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이나 비행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에 입사하여 우편비행 사업도 하였다. 1923년 파리의 회사에 회계사로 입사하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다가 트럭 회사의
1900년 6월29일 프랑스 리옹의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21세 때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위에 입관 되었으나 비행사고를 내고 예편되었다. 1920년 공군으로 징병되었다. 1921년 4월에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사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 활동에 큰 시발점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이나 비행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에 입사하여 우편비행 사업도 하였다. 1923년 파리의 회사에 회계사로 입사하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다가 트럭 회사의 외판원으로 다시 입사한 후 틈틈이 비행 연습을 한다.

1929년 장편소설 『남방우편기(Ourrier sub)』로 작가로 데뷔하였다. 두 번째 소설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상을 수상, 이후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하였다. 『인간의 대지』는 같은 해 미국에서 『바람,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번역·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40년에 나치 독일에 의해 프랑스 북부가 점령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동화가 삶의 유일한 진실임을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던 생텍쥐페리는 이 시기에 『어린 왕자』를 집필했고, 1943년 미국 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불문판과 영문판(캐서린 우즈 역)이 함께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46년 프랑스 Gallimard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35년 비행 도중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바탕으로 쓰였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는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 작품이다.

생텍쥐페리는 1943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공군 조종사로 활동했으며, 1944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군용기 조종사로 지냈다. 1944년 33비행정찰대가 이동하고 이미 5회의출격을 초과하여 8회 출격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격하기로 한 7월 31일 오전 8시 반, 정찰 비행에 출격한다. 대전 말기에 정찰비행중 행방불명 되었다. 1944년 7월 31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짐작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항하여 오는 길에 코르시카 수도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해 전사하였다고 한다. 유작 "성채I(tadelle)”는 이후에 친구들이 생텍쥐페리의 녹음본과 초벌 원고를 정리하여 1948년 발표되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다른 상품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

관심작가 알림신청
 

Consuelo de Saint-Exupery

화가이자 조각가, 작가. 1901년 엘살바도르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콘수엘로 순신 산도발은 캘리포니아와 멕시코에서 오 년간 공부한 뒤 파리로 건너가 체류한다. 이곳에 머물던 시기 과테말라 작가이자 외교관, 저널리스트인 엔리케고메스 카리요와 결혼하지만 1927년 남편의 급작스러운 사망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한다. 193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강연장에서 생텍쥐페리와 만난 그녀는 그와 석 달간의 동거 끝에 1931년 결혼한다. 생텍쥐페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자 예술가인 콘수엘로에게 첫눈에 매료되었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생텍쥐페리의 비행으로 인한 불안정한 생
화가이자 조각가, 작가.

1901년 엘살바도르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콘수엘로 순신 산도발은 캘리포니아와 멕시코에서 오 년간 공부한 뒤 파리로 건너가 체류한다. 이곳에 머물던 시기 과테말라 작가이자 외교관, 저널리스트인 엔리케고메스 카리요와 결혼하지만 1927년 남편의 급작스러운 사망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한다. 193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강연장에서 생텍쥐페리와 만난 그녀는 그와 석 달간의 동거 끝에 1931년 결혼한다.

생텍쥐페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자 예술가인 콘수엘로에게 첫눈에 매료되었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생텍쥐페리의 비행으로 인한 불안정한 생활과 기질 차이 탓에 순탄치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에게 영혼의 안식처였으며 창작활동을 독려하는 동반자 관계였다.

1944년 7월 앙투안이 실종된 이후, 홀로 남은 콘수엘로는 그와의 첫 만남부터 다사다난한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 원고는 1979년 콘수엘로 사망 이후 발견되어 2000년 『장미의 회고록』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아주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필립 르죈의 『자서전의 규약』,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베르나노스의 『사탄의 태양 아래』, 모파상의 『벨아미』, 졸라의 『목로주점』, 유르스나르의 『알렉시?은총의 일격』, 알베르 코엔의 『주군의 여인』,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제방』 『물질적 삶』 『평온한 삶』, 피에르 미숑의 『사소한 삶』, 프루스트의 『질투의 끝』 『알 수 없는 발신자: 프루스트 미출간 단편선』,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스의 눈물』, 알로이지우스
아주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필립 르죈의 『자서전의 규약』,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베르나노스의 『사탄의 태양 아래』, 모파상의 『벨아미』, 졸라의 『목로주점』, 유르스나르의 『알렉시?은총의 일격』, 알베르 코엔의 『주군의 여인』,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제방』 『물질적 삶』 『평온한 삶』, 피에르 미숑의 『사소한 삶』, 프루스트의 『질투의 끝』 『알 수 없는 발신자: 프루스트 미출간 단편선』,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스의 눈물』, 알로이지우스 베르트랑의 『밤의 가스파르』 등을 옮겼다.

윤진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26일
이용안내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81.78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8.2만자, 약 6만 단어, A4 약 114쪽 ?
ISBN13
9788954697187

출판사 리뷰

“편지를 써줘…… 편지가 오면 내 마음에도 봄이 와”
생텍쥐페리와 그의 아내 콘수엘로,
그들의 열정적이고도 파란만장했던 운명 속으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운명의 여인 콘수엘로를 만난 것은 1930년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프랑스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장에서였다. 생텍쥐페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콘수엘로에게서 시적이고 창조적인 분신을 발견하고 첫눈에 매료되었고, 석 달간의 동거 끝에 1931년 결혼식을 올린다. 앙투안은 콘수엘로를 ‘황금 깃털’ ‘병아리’ ‘오이풀’ 등의 애칭으로, 콘수엘로는 앙투안을 ‘파푸’ ‘토니오’ 등의 애칭으로 부르며 그들만의 “몽상적 영토”(갈리마르 편집자, 알방 스리지에)를 공유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첫 만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앙투안이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보물을 품지 못하는 우울한 아이’에 빗댄 것처럼, 둘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북아프리카부터 남아메리카까지 세계의 상공을 누비던 그의 불안정한 생활 탓도 있지만, 두 사람의 기질 차이도 한몫을 했다. 엘살바도르 출신으로 자주 고립감을 느꼈던 콘수엘로는 친구들과 자유로운 교류를 원한 반면, 긴 비행에 지친 앙투안은 그녀가 안정적인 보금자리 역할을 해주길 바란 것이다. 때로 이런 갈등은 격화되어 앙투안은 『어린 왕자』를 인용해가며 “‘꽃은 언제나 어린 왕자 탓을 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떠났다!’ 이게 바로 내가 불평하는 이유야”(204쪽)라고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유일한 안식처였으며―“앙투안은 용암처럼 들끓는 알제에서 외롭고, 콘수엘로는 밀림 같은 뉴욕에서 외롭다. 세상천지에 오로지 둘뿐이다”(생텍쥐페리의 증손자 올리비에 다게, 22쪽)― 서로의 창작 활동을 독려하는 동반자 관계였다. 비행으로 평탄치 못한 일상을 보내는 남편에게 콘수엘로는 끊임없이 글쓰기를 독려하고, 전작들의 반응을 전하며 심정적 지지를 놓지 않는다.

“토니오. 소설 열심히 써서, 아주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봐. 우리의 이별, 절망, 우리 사랑이 흘린 눈물이 당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물들의 신비를 꿰뚫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_「콘수엘로가 앙투안에게」, 49쪽

“계속해야 해. 허튼 생각 하면 안 돼, 남편. 난 당신이 그 책을 끝내야 한다고 굳게 믿어. 책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전투야. 글을 써, 절대 피하지 말고. 가능하면 지금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있다면(나는 신경쓰지 마) 꼭 쓰도록 해.”
_「콘수엘로가 앙투안에게」, 316쪽

“『어린 왕자』는 당신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 태어났지”
길들여진 한 송이 꽃과의 사랑을 담기까지,
서간집으로 만나는 『어린 왕자』의 기원


관계에 대한 시적인 통찰을 담은 책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 꼽히는 『어린 왕자』. 놀랍게도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에서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면이 펼쳐진다. 앙투안은 ‘어린 왕자와 길들여진 한 송이 꽃의 사랑’이라는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랑을 우수에 찬 마음으로 떠올리면서 콘수엘로와 함께 시를 누렸고, 그 시는 부부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앙투안이 아직 『어린 왕자』(1943)를 한 줄도 쓰지 않았고 그림 한 점도 그리지 않은 1940년, 콘수엘로가 쓴 편지에는 이미 여인이 장미로 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콘수엘로와 함께한 초기부터 그녀를 ‘오이풀’이라고 불렀던 앙투안은 이야기 초반에 꽃을 오이풀 모양으로 그린 바 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서 어린 왕자가 한 그루 나무가 쓰러지듯 서서히 쓰러진 것 역시 콘수엘로가 앙투안을 나무에 비유하곤 했기 때문이다.

다른 데서 날아든 씨앗, 멋 부리는 꽃, 그 꽃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어놓을 어린 왕자, 어린 왕자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지만 바람을 무서워하는 꽃, 기침을 하고―콘수엘로에게는 천식이 있었다― 가시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면서 다정함을 감추는 꽃…… 『어린 왕자』 속 왕자와 꽃의 모습은 서간집 속 앙투안과 콘수엘로의 모습과 겹치며, 혼란스러웠던 부부의 삶이 앙투안을 이 이야기로 이끌었으리라 짐작게 한다.

“난 곧 오이풀이 될 거야. (...) 나는 예쁜 오이풀이 될 거야. 오이풀은 길을 잃었어. 죽었어. 그 예쁜 오이풀을 초록 풀밭으로 데려가서 꽃과 노래로 옷을 입혀줘. 더는 누구도 그 오이풀에 상처 주지 못하게. 오이풀은 파푸의 시가 될 거야, 파푸가 흘린 그 많은 피로 쓴 시!
_「콘수엘로가 앙투안에게」, 153쪽

“난 어린 왕자의 세계를 사랑하고, 그 세계 속을 거닐어…… 거기선 아무도 날 건들지 못하지…… 비록 가시는 네 개뿐이지만, 당신이 그 가시를 보아주고, 세어봐주고, 기억해주니까……”
_「콘수엘로가 앙투안에게」, 298쪽

문학 독자들의 허기를 채울 충실한 아카이빙
갈리마르 출판사·생텍쥐페리 재단의 협업으로 작가의 삶과 시대를 복원하다


스타 부부의 가려진 삶과 『어린 왕자』의 탄생 배경을 전하는 것 외에 이 서간집이 가진 미덕은 또 있다. ‘생텍쥐페리 재단’과 갈리마르 출판사의 협업을 통해 육필원고, 작가가 직접 그린 어린 왕자 삽화(434쪽) 등 풍성한 자료를 수록한 것은 물론, 편지가 쓰인 당대의 맥락을 상세한 각주로 복원했기에 생텍쥐페리의 삶과 시대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앙투안이 당대 문화계를 지배한 초현실주의자들(앙드레 브르통, 막스 에른스트 등)과 교류한 점이나 이를 통해 초현실주의 시의 언어유희를 시도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또한 오랜 비행 경력을 자랑하는 그가 상공이나 이국에서의 풍광을 묘사한 부분은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날씨가 나빴어. 쉼없이 바람에 얻어맞았지. 때로 푸른 하늘이 나타나면 3천 피트 고도에 피해 있었어. 먼지 하나 섞이지 않은 바람이 세차게 일면 그 차가운 기운에 땀이 마르지. 그런 바람은 위험하진 않아. 하지만 얼음같이 차가운 공기의 흐름이 너무 세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지. 그러면 부동의 황금빛 휴식을 멈추고 다시 지상의 무질서와 흔들림과 참을 수 없는 열기 속으로 들어가야 해. 탕헤르, 죽어 있는 작은 도시.”
_「앙투안이 콘수엘로에게」, 79쪽

무엇보다 제2차세계대전시 정찰병으로 참전한 바 있는 그가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가감 없이 드러나는데, 당대 전쟁을 둘러싼 지식인들의 입장 가운데 하나로서 참고할 만하다. 실상 앙투안은 비시 정부의 수반 페탱도, 런던에서 ‘자유 프랑스’를 이끌며 독일에 맞선 드골도 지지하지 않았고 이런 태도로 인해 뉴욕에 머물던 시기, 비시 정부 협력자로 비난받았다. 하지만 그는 어느 쪽도 아니었고, 다만 그가 택한 것은 ‘양심’에 충실하기 위해 전쟁터에 출격해 비행을 마다하지 않는 실천이었다. 정치적 외로움과 전쟁의 불안 속에서 앙투안을 위로하는 것은 끝내 그의 다정한 별, 콘수엘로였을 것이다.

“그래도 난 떠나. 서류 작업도 아니고 전투비행을 하러 간다고. 그쪽으로 지원했어. 난 전쟁을 하러 떠나. 나는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없어. 내가 아는 한, 양심에 거리낌 없이 평화로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최대한 고통받는 것. 가능한 한 많은 고통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어.”
_「앙투안이 콘수엘로에게」, 228쪽

리뷰/한줄평2

리뷰

10.0 리뷰 총점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