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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부 새벽마다 떠 놓는 한 사발의 정화수 국수와 부시개 옥님이 어릴 적 조앙신 삼시랑신 천변 풍경 1 - 오리와 망원경 - 가난한 사람들 2부 꿀을 따서 쌀도 바꾸고 뭣도 바꾸고 무서운 외갓집 소와 벌 이야기 천변 풍경 2 - 병사와 새와 꽃과 - 여름밤의 손님 - 야생 오리를 잡다 천변 풍경 3 - 뱀 쫓은 이야기 - 나무다리 건너면 3부 새까만 베르베또 치마와 양단 저고리 스물네 살, 어머니가 부른 노래 쥐 이야기 1 쥐 이야기 2 쥐 이야기 3 쥐 이야기 4 쥐 이야기 5 천변 풍경 4 - 냉동 탑차와 뚱딴지 - 새를 찍는 사람 - 반가운 오도개 4부 나의 시도 어질고 눈 밝은 산나물 같기를 팔복동 배불뚝이 담벼락 집 취너물 뜯어 골짝 물에 설렁설렁 천변 풍경 5 천변 그 집 |
유강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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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머니가 국수를 삶을 때면 나는 그 옆을 기웃대다가 뜨거운 줄도 모르고 아직 설익은 국수를 건져 먹곤 했다. 간이 덜 빠진 짭조름한 국수 특유의 맛. 내 눈엔 지금 올이 다 빠진 오래된 소쿠리가 떠오르고, 그 안에 무슨 설운 동물처럼 타래타래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하얀 국수가 떠오른다. 삿됨이라곤 하나 없을 것 같은 순한 눈망울의 국수 타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이 특별히 고안해낸 것만 같은 귀한 선물.
--- p.14 「국수와 부시개」중에서 구이(완주 구이면) 더 가서 시라우로 피난을 갔는디, 어디 쌀이 있어야제. 이모가 쌀을 이만큼 갖다줘서 아버지 두루마기에 받아 놓고 그걸로 밥을 해 먹었제. 반찬은 하나도 없고 오매가 간장 단지에 간장을 얻어다 그걸 찍어 먹고 그맀어. 어느 날은 이모가 오매보고 화장실로 오라고 허더니, 몸땡이에 삼베 한 필을 감아 가지고 와서 주더래. --- p.27 「옥님이 어릴 적」중에서 나는 저 물 위에 떠오르는 악몽 같은 영상들을 손으로 휘휘 저어 버린다. 그 손은 옛 기억을 끄집어내는 갈퀴손. 나도 모르게 마음의 저편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손. 그 손을 거두고 나니 다시 잔잔한 물 위로 오리가 보인다. 죽음의 물을 헤집고 다니는 천연덕스러운 오리. 그러나 오리는 울지 않는다. 오리들은 부지런히 주둥이로 햇빛을 물어다 골고루 물 위에 풀어놓는다. --- p.54 「천변 풍경 1?가난한 사람들」중에서 기억의 풀은 어린 나를 둑길가에 세워 둔다. 실연당한 처녀가 약을 먹고 비탈에 누워 있었다. 과수원 집 큰아들이 발견하고 처녀를 리어카에 싣고 달린다. 택시가 다니는 큰길까지 가야 한다. 아직 병원까지는 멀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멀뚱히 쳐다본다. 그 처녀는 그때 죽지 않고 살았을까.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을까. 보도블록 사이에 개미 떼가 까맣게 몰려 있다. 그 검은 은하수가 흉터처럼 한낮을 뜨겁게 흘러가고 있다. --- p.78 「천변 풍경 2?여름밤의 손님」중에서 옛날엔 그렇게 뱀이 흔했다. 집 안에도 집 밖에도 뱀은 징그럽게 많았다. 뱀을 잡아서 구워 먹는 사람, 술을 담가 먹는 사람, 갖다 파는 사람 등. 집 안엔 집을 지켜 주는 업구렁이가 산다고도 했다. 그 뱀은 잡으면 안 된다고도 했고, 또 이사를 하면 이사한 집으로 그 업구렁이가 따라온다고도 했다. 어릴 적 나는 시골에서 전주로 이사 올 때, 그 업구렁이가 어떻게 전주까지 따라오나,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 p.90 「천변 풍경 3?뱀 쫓은 이야기」중에서 그렇게 쥐를 잡아도 쥐는 쉬이 줄지 않았다. 어느 날은 전기밥통 김 나는 구멍을 다 갉아 놓아 밥 위에 붉은 가루가 소복이 쌓여 있기도 했다. 나는 그걸 보고 경악했다. 쥐의 무쇠보다 강한 이빨에 대해. 그리고 쥐의 무서운 생존본능에 대해. 또 어느 저녁 무렵엔 옆집 이장님 댁 외양간 지붕 위에서 마당의 감나무 가지 위로 까맣게 뛰어내리는 쥐 떼를 보기도 했다. 그것들은 마치 날개를 달고 있는 듯했다. 나는 한동안 내 눈을 의심했다. --- p.132 「쥐 이야기 4」중에서 긍게, 인자 옛날 일이 돼 놔서 모다 까막까막헌게 가만있자, 그러고 봉게 평풍바위 있는 디로 너물 캐러 병수 오매랑 꺼리꺼리 갔는데…… 너물을 정신없이 캐다 봉게 고만 뿔뿔이 다 흩어져 버맀어. 그리서 막 날맹이로 올라가는디 웬 남정네가 날맹이서 떠억 나타나지 안컸냐. 을매나 놀랬는지 옴짝달싹 않고 그대로 나뭇등걸 속에 숨어 있슨게로 그 남정네가 껄껄껄 웃으며 하는 말이…… 처나무떡(처남댁), 처나무떡, 나요, 나! 그리서 봉게 영란네 아부지 아니겄냐. --- pp.181-182 「취너물 뜯어 골짝 물에 설렁설렁」중에서 나는 좀 더 봄이 깊어 어머니가 산나물을 캐러 가면, 그 뒤를 갓 걸음마를 뗀 강아지마냥 조랑조랑 따르고 싶다. 어머니가 가만가만 들려주는 산나물의 이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고 싶다. 그러면 어머니가 보았다는 노루도 붉은 여우도 토끼도 고슴도치도 다시 눈앞에 푸르게 살아올 것만 같다. --- p.184 「취너물 뜯어 골짝 물에 설렁설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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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 2009년 무렵부터 틈틈이 어머니의 말을 받아쓰기 시작하여 십여 년 동안 쓴 글들이 이 산문집에 담겼다. 아들과 어머니가 나눈 생생한 대화의 순간들, 어머니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무지개색 같은 언어를 보자기에 싸서 담는 심정으로 시인은 글을 써 내려갔다. 더불어, 어려서 떠나온 고향의 아련한 기억, 전주공단이 있는 가난한 팔복동 사람들, 쓸쓸함도 포근히 품었던 천변 풍경, 사춘기의 끝없는 울분과 눈물도 이 책엔 한데 뒤섞여 있다. 뱀을 쫓고 쥐를 잡으며 안달복달하던 시절 얘기며, 추운 겨울 국수를 삶고 싱건지를 담그던 풍경이며, 삼신과 조앙신을 모시며 끊임없이 기도하던 옛사람들의 모습들. 유강희 시인은 “끝끝내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한식구처럼 따숩게 가슴을 맞대고 있”기를 바랐다고 쓴다.
시인이 들여다본 어머니는 “나물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나물 캐러 이 세상에 온 사람처럼 신이 나”는 분이었다. 스물한 살에 소금바우로 시집을 온 어머니는 봄이면 없는 살림에 산과 들로 나물을 캐러 다녔다. 물 만난 골에서 어둥굴로, 한개바우, 평풍바우로 혹은 박주지에서 캐 온 산나물들은 그 이름을 읊는 것만으로도 풍요롭고 따사롭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숭개(냉이), 돈너물(돌나물), 머심둘레(민들레), 망초대, 구실둥이, 깐밥둥이, 강대쟁이, 도리깨너물, 멜라초(면래초), 쑥부쟁이, 달롱개(달래), 싸낭부리(씀바귀), 꼬치뱅이, 보리뱅이(박주가리) 같은 쌉싸래한 나물들이 입안에 향기롭게 퍼지는 것만 같고, 나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곁에서 소곤소곤 옛얘기를 들려주는 기분마저 든다. 어머니는 나물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나물 캐러 이 세상에 온 사람처럼 신이 난다. 스물한 살에 소금바우로 시집을 온 어머니. 봄이면 없는 살림에 산과 들로 나물을 캐러 다녔다. 물 만난 골에서 어둥굴로, 한개바우, 평풍바우로 혹은 박주지에서 캐 온 산나물들의 이름을 줄줄 꿴다. - 「취너물 뜯어 골짝 물에 설렁설렁」 중에서 문득 아득하다. 벌써 저만큼 흘러가 버린 것들, 흘러간 만큼 기억의 풀은 돋아나고, 시시때때로 바람에 흔들려 통째로 그 뿌리가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최대한 몸을 낮추고 그 풀의 속 깊은 흐느낌을 들어야 한다. 그 흐느낌에 귀를 기울이고 제 자신을 그 자연스러운 흐름에 내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지독한 풀의 수렁에 의해 누구든 순식간에 삼켜질 것이다. - 「천변 풍경 2- 여름밤의 손님」 중에서 “어머니가 건강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다시 그런 날이 오지는 않겠지만 요양원 이 층 담벼락 아래서, 나는 어머니- 어머니- 하고 대답 없는 어머니를 이 봄날 애타게 불러 본다.”라고 시인이 마지막에 쓴 것처럼 구수한 전라도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어머니는 어느덧 여든일곱에 접어들었고 지금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 먹을 게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그리운 맛’은 항시 가슴속에 존재하기에 “취너물 뜯어다 골짝 물에 설렁설렁 씻어서 갖고간 된장허고 보리밥을 쌈 싸 먹으면 그러케 달 수가 업서.”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더없이 살갑다. 허기진 일상을 그 목소리로 보상받는 기분이다. 조금 지친 마음이 들 때 이 책을 펼치면 달고 시고 따뜻하고 뭉클한 ‘어머니’가 온다. 작가의 말 2009년 무렵부터 틈틈이 쓰기 시작하여 올해까지 십여 년 동안 쓴 글들을 모았다. 틈틈이 썼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어느 한 시기에 집중해 쓴 글이 많다. 먹고사는 일에 쫓기고 쓸데없는 생각에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예까지 왔다. 거기에다 게으르고 우둔함을 더해 모냥없이 성글기만 한 글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굽히지 않고 오게 된 건 어머니 힘이 크다. 나는 이 책에 되도록 어머니 말을 많이 담으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어머니 이야기만 쓴 건 아니다. 어려서 떠나온 고향의 아련한 기억, 전주공단이 있는 가난한 팔복동 사람들, 쓸쓸함도 포근히 품었던 천변 풍경, 사춘기의 끝없는 울분과 눈물 이런 것들이 이 책엔 되나캐나 함께 뒤섞여 있다. 끝끝내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한식구처럼 따숩게 가슴을 맞대고 있다. 이제는 그만 흐르는 물가에 가만히 놓아주고 싶은 정든 풍경들이다. 올해 어머니는 우리 나이로 여든일곱이다. 좀 더 어머니가 건강했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서도 한편, 내가 쓴 글보다 어머니의 함몰된 오른쪽 유두와 기묘한 암석 같은 굽은 발톱을 보여 주는 게 백배 천배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마음을 못내 떨쳐내면서 한밤중 잠이 깬 나는 어머니, 하고 가만히 불러 본다. 2023년 가을 유강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