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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16 자로 제13 논어정의 권17 헌문 제14 색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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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범녕의『경』과 「전」 두 「주」는 모두 강희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옳다. 정나라의 홀은 그 반정을 인정하면서도 장공(莊公)이 죽은 뒤에도 “세자”라고 칭하였으니, 그렇다면 “군주가 죽었는데도 세자라 칭했으니, 본국으로 되돌아올 도리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은 틀린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왕부의 명 때문에 아버지의 명을 사양한 것은 바로 위나라 첩이 근거로 삼았던 의리인데, 그는 자기 마음대로 아버지가 왕부에게 죄를 얻었으니 비록 그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왕부의 명을 확대해석해서 아버지의 명을 사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르겠으나, 왕부의 명을 굳이 아버지에게 행하고 아버지의 명을 사양한다는 것이, 어찌 자식 된 자가 차마 말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 p.45 송상봉의『과정록』에 “두 책에서 기록한 것은 한 번은 죽였다 하고, 한 번은 죽이지 않았다고 한 것이 다르다. 아마도 처음에는 초왕(楚王)이 죽이지 않은 것은 몸소 정직함으로써 초왕에게 알렸기 때문이지만, 섭공(葉公)은 공자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가 영윤(令尹)이 되자 죽인 것이다.”라고 했다. 살펴보니, 송상봉의 말이 옳다. 정현은 이 구절에 대한 「주」에서 “양(攘)은 훔친다[盜]는 뜻이다. 우리 고을에 이름을 궁(弓)이라고 하는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그 죄를 증언했다는 말이다.”라고 했는데, 「주」에 의거해 보면 정현본에 ‘직궁(直弓)’이라고 되어 있으니, 반드시『고논어』 · 『노논어』 · 『제논어』에서 나온 것으로 표현을 달리한다. --- p.124 살펴보니, 오인걸(吳仁傑)의 설과 같은 경우는『논어』의 예(?)는 바로 요임금 때의 예이다. 왕응린(王應麟)의『곤학기문』에 “『설문해자』에 ‘오(?)는 오만하다[?]는 뜻이다.’라고 하면서『서경』「우서 · 익직」의 ‘단주처럼 오만하다[若丹朱?]’라는 내용과,『논어』의 ‘오(?)는 배를 끌고 다녔다[?湯舟]’라는 내용을 인용했다.『서경』에 ‘물이 없는 곳에서 배를 끌고 다녔다[罔水行舟]’라는 말이 있는 것을 살펴보면, ‘오(?)가 배를 끌고 다녔다[?蕩舟]’라는 것은 아마도 바로 단주(丹朱)를 이르는 것인 듯싶다.”라고 했으니, 오인걸(吳仁傑)과 왕응린(王應麟) 두 사람의 설이 모두 위공(僞孔)과는 다르다. 손지조(孫志祖)의『독서좌록』과 이돈(李惇)『군경식소』와 조익(趙翼)『해여총고』는 모두 오인걸(吳仁傑)의 설을 따랐다. --- p.214 살펴보니,『춘추공양전』「희공」 3년에 “가을에 제후(齊侯) · 송공(宋公) · 강인(江人) · 황인(黃人)이 양곡(陽穀)에서 회합했다.”라고 했는데, 「전」에서 “이것은 대규모의 회맹이었는데, 어째서 피상적으로 말하였는가? 환공이 말했다. ‘계곡을 막지 말 것이며, 곡식을 비축하지 말 것이며, 세자를 바꾸지 말 것이며, 첩(妾)을 아내로 삼지 말라.’”라고 했고,『춘추곡량전』에도 “제 환공이 위엄을 갖추고 엄숙한 태도로 홀(笏)을 꼽고서 제후들에게 조회를 받으니 제후들은 모두 환공의 뜻을 깨달았다.”라고 했는데, “뜻[志]”이란 주나라 왕실을 높이는 데 뜻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환공의 큰 회합이었기 때문에 정현이 지목했던 것이다. --- p.312~313 살펴보니, 원양(原壤)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곽을 만들던 나무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는데도 공자는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여기서 웅크리고 앉아서 공자를 기다림에 미쳐서는 엄히 꾸짖은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나무에 올라가 노래를 부른 것은 곧 죄악 중에서도 큰 것으로 목을 베어 죽여야 하는 법에 해당되는 것이지, 단순하게 말로 꾸짖을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못 들은 척하고 지나쳐서 친척이 된 정(情)과 친구가 된 교분(交分)을 온전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웅크리고 앉아서 공자를 기다림에 미쳐서는 엄중히 꾸짖음을 혐의하지 않은 것이다. --- p.42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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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구절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탐독해 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설혹 이 구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이 구절에서 유래한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논어』는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과 단어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견리사의’, ‘과유불급’, ‘살신성인’, ‘온고지신’, ‘절차탁마’ 등의 고사성어를 비롯해, ‘이단’, ‘숙맥’과 같은 일상적 표현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논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적을 것이다. 한때 식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던 『논어』는 어쩌다 이렇게 몰락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지학이라는 말보다 중2병이라는 말이 특정 나이대를 대표하는 시대에 수천 년 전을 살아간 공자라는 사람의 지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유교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그 유교가 당최 무엇인지는 갈피를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가 유교의 가르침을 따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당연히 우리가 공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고전은 언제나 해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이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마땅한 점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서도 배움이 있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 『논어』라고 하면, 경전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아주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아직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논어』 역시 결국은 대화록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며, 그 특성상 공자와 제자,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 간의 대화로 꾸려져 있다. 때로는 제자나 주변 인물들이 공자에게 묻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역으로 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중에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논어』를 통해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대체 동북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떠받든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는 배우고자 자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든 가르치고자 했으며, 스스로 더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도 제자에 따라 다른 가르침을 주고자 했으며, 때로는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공자에게 물어보고 열심히 따르면서도, 스승인 공자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따져 묻기도 했다. 이처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갈수록 교권이 무너져 가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형식화해 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논어』뿐 아니라 많은 자료를 통해 『논어』를 주해한 유보남의 『논어정의』, 그리고 그 『논어정의』를 번역한 이 책은 우리에게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 등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