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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7 옹야 제6 논어정의 권8 술이 제7 색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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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살펴보니, 진(秦)나라와 한나라시대 사람들이 말하는 안자가 죽은 나이는 판본마다 서로 어긋나는 점이 많다. 『열자(列子)』 「역명(力命)」에 “안자의 재주는 보통 사람[衆人]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으나 18세까지 살았다.”라고 했고, 『회남자(淮南子)』 「정신훈(精神訓)」에는 “안연이 요절했다.”라고 했는데, 고유(高誘)의 「주」에 “안연은 18세에 죽었다.”라고 했으며, 『후한서(後漢書)』 「낭의전(郞?傳)」에도 “안자의 나이 18세에 천하 사람들이 모두 인(仁)하다고 칭송했다.”라고 했는데, 모두 안자가 죽은 나이를 18세라고 여긴 것으로, 이는 참으로 이설(異說)이니 근거할 만한 것이 못 된다.
--- p.46 살펴보니, 『시경』 「채숙(采菽)」의 「전」에 “전(殿)은 진정(鎭靜)한다는 뜻이다.”라 했고, 공영달의 「소」에, “군대가 행진할 때 후미에 있는 군대를 전(殿)이라 하니, 진중(鎭重)하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볼기[臀]도 사람의 뒤쪽에 처져 있으니, 역시 진중 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듯싶다.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23년의 「전」에, “제후(齊侯)가 위(衛)나라를 토벌할 때, 대전[大殿: 후군(後軍)]은 상자유(商子游)가 하지어구(夏之御寇)의 전차를 몰았다.”라고 했으니, 이 후군[殿]은 본래 군대의 편제이다. 형병의 「소」에는 『사마법(司馬法)』 「모수(謀帥)」를 인용해서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를 탄 후군[大震]’이라고 했는데, ‘대진(大震)’은 바로 ‘대전’이니, 발음이 서로 비슷하다.”라고 했다. --- p.132 살펴보니, “인(仁)”의 새김은 사랑[愛]이고, “성(聖)”의 새김은 통함[通]인데, 모두 『설문해자』에 보이니, 최초의 정의(情誼)가 된다. 통함[通]이란 말은 의심하여 막힘이 없고, 험난한 장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천지와 음양(陰陽)과 강유(剛柔)의 도에 통한 뒤에 하늘을 섬기고 땅을 살필 수 있고, 사람과 인의(仁義)의 도리에 통한 뒤에 자기를 완성시킴으로써 남을 완성시킬 수 있다. 만약 내가 이(理)와 의(義)에 아직 분명하게 깨닫지 못함이 있고, 내가 남에 대해 아직 다가가 감싸 주지 못함이 있으면 이는 곧 내가 의심해서 막히고 험난한 장애가 되어 통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이 그런 상태로 스스로를 다스리면 실행하는 일마다 어그러지고, 그런 상태로 남을 다스리면 내가 어깃장을 부리고 거스르게 된다. --- p.212 살펴보니, 『중용』에 “군자의 도는 어렴풋하지만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도는 반짝하지만 날로 없어진다.”라고 했는데, 군자는 항상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어렴풋하지만 날로 드러나고, 소인은 항상된 마음이 없기 때문에 비록 반짝하지만 날로 없어진다. “반짝[的然]”하는 것이 바로 없으면서 있는 체하는 모습이다. 『송석경(宋石經)』에는 “항(恒)”을 피휘(避諱)해서 “상(常)”으로 되어 있다. 『경전석문』에 “망(亡)은 글자의 본음대로 읽어야 한다. 이 단락은 옛날에는 별도의 장이었으나 지금은 앞 장과 합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했다. 살펴보니, 황간본은 참으로 앞장과 합해 있어서 별도의 장으로 되어 있지 않으니, 더러는 노문초의 『경전석문고증』처럼, 『경전석문』에서 말한 것을 일러 후세 사람들이 교감(校勘)한 말이라고 한다. --- p.337~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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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구절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탐독해 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설혹 이 구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이 구절에서 유래한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논어는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과 단어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견리사의’, ‘과유불급’, ‘살신성인’, ‘온고지신’, ‘절차탁마’ 등의 고사성어를 비롯해, ‘이단’, ‘숙맥’과 같은 일상적 표현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논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적을 것이다. 한때 식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던 『논어』는 어쩌다 이렇게 몰락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지학이라는 말보다 중2병이라는 말이 특정 나이대를 대표하는 시대에 수천 년 전을 살아간 공자라는 사람의 지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유교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그 유교가 당최 무엇인지는 갈피를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가 유교의 가르침을 따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당연히 우리가 공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고전은 언제나 해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이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마땅한 점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서도 배움이 있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 『논어』라고 하면, 경전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아주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아직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논어』 역시 결국은 대화록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며, 그 특성상 공자와 제자,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 간의 대화로 꾸려져 있다. 때로는 제자나 주변 인물들이 공자에게 묻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역으로 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중에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논어』를 통해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대체 동북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떠받든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는 배우고자 자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든 가르치고자 했으며, 스스로 더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도 제자에 따라 다른 가르침을 주고자 했으며, 때로는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공자에게 물어보고 열심히 따르면서도, 스승인 공자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따져 묻기도 했다. 이처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갈수록 교권이 무너져 가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형식화해 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논어』뿐 아니라 많은 자료를 통해 『논어』를 주해한 유보남의 『논어정의』, 그리고 그 『논어정의』를 번역한 이 책은 우리에게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 등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