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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3 팔일 제1 논어정의 권4 팔일 제2 색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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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말하면서 실천함”과 “행하면서 즐김”, 이것이 인자(仁者)가 행하는 바이다. 맹자(孟子)는 예와 악을 논하면서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데서 근본을 추론해서 인의(仁義)의 실제로 삼았으니, 인은 사덕(四德: 仁義禮智)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하지 않은 사람은 예와 악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전한서』 「적방진전(翟方進傳)」에는 이 문장을 인용하여 설명하면서 “인하지 않은 사람은 베풀어 쓸 곳이 없으니, 인하지 않은데도 재주가 많은 것이 나라의 근심이라는 말이다.”라고 했다. 베풀어 쓸 곳이 없으면 예와 악을 행할 수 없으니, 비록 재주가 많더라도 다만 불선(不善)이 될 따름이다. 공자 당시에는 예와 악이 대부로부터 나와 참절(僭竊)함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고[相仍], 그릇됨이 옳음을 이기는 데 익숙해져 예와 악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 p.53 살펴보니, 김방의 설명이 매우 자세하다. 『시경』 「국풍(國風)·제풍(齊風)·의차(?嗟)」에 “종일토록 과녁[侯]에 활을 쏘아도 정곡[正]을 벗어나지 않네.”라고 했으니, 정(正)과 후(侯)가 똑같이 하나의 과녁임이 분명하다. 『시경』 「소아(小雅)·보전지십(甫田之什)·빈지초연(貧之初筵)」의 「소」 에 『주례』의 정중(鄭衆)과 마융의 「주」를 인용했는데, 모두 정(正)이 곡(鵠) 안에 있다고 했다. 정이 곡 안에 있기 때문에 『시경』 「국풍·제풍·의차」에서 활을 쏘아도 정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과녁을 맞히는 기술을 자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방이 인용한 가경백의 정이 곡 밖에 있다는 말은 잘못이다. 천자와 제후는 향사례가 없으니, 「향사례·기」에서 말한 웅후(熊侯)니 미후(?侯)니 운운한 것은 모두 연례(燕禮)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김방이 인용해서 연사임을 증명한 것이다. --- p.178-179 살펴보니, 주나라시대 사람들의 병(屛)의 제도에는, 마땅히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또한 소장(蕭牆)이라고도 한다. 그 당시 종묘의 병풍은 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에 『예기』 「명당위」에서는 그것을 소병(疏屛)이라고 했다. 소(疏)는 새긴다[刻]는 뜻이다. 지금 인가의 조벽(照壁)이, 바로 그 모양을 본뜬 것이다. 『순자(荀子)』 「대략편(大略篇)」에 “천자는 외병(外屛)을 세우고, 제후는 내병(內屛)을 세우는 것이 예이다. 노문(路門) 밖에 외병을 세우는 것은 밖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고, 노문 안에 내병을 세우는 것은 안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회남자』 「주술훈(主術訓)」에는 “천자가 노문 밖에 외병을 세우는 것은 스스로를 가리기 위함이다.”라고 했으니, 병은 안과 밖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주」에서 “임금[人君]”이라고 한 것은 천자와 제후를 겸해서 한 말이다. --- p.285-286 살펴보니, 『춘추번로』 「초장왕(楚莊王)」에 “문왕의 시대는 백성들이 그가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는 것을 즐거워했기 때문에 「무」음악이라고 한 것이다. 무(武)란 정벌한다[伐]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순임금이 「소」를 만들고 우왕이 「하(夏)」를 만들었으며, 탕(湯)왕이 「호(頀)」를 만들고 문왕이 「무」를 만든 것이다. 네 가지 음악이 이름을 달리하는 것은 각각 그 백성들이 비로소 자기에게서 즐거워하는 것을 따랐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 “주(紂)왕이 무도하고 제후들이 크게 어지러워지자 백성들은 문왕이 노여워함을 즐거워하면서 그를 읊조리며 노래한 것이다. 주나라 사람의 덕이 이미 천하를 윤택하게 해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그것을 「대무」라 하니, 백성들이 처음으로 좋아한 것이 무라고 그렇게들 얘기한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 p.323-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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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구절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탐독해 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설혹 이 구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이 구절에서 유래한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논어는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과 단어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견리사의’, ‘과유불급’, ‘살신성인’, ‘온고지신’, ‘절차탁마’ 등의 고사성어를 비롯해, ‘이단’, ‘숙맥’과 같은 일상적 표현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논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적을 것이다. 한때 식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던 『논어』는 어쩌다 이렇게 몰락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지학이라는 말보다 중2병이라는 말이 특정 나이대를 대표하는 시대에 수천 년 전을 살아간 공자라는 사람의 지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유교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그 유교가 당최 무엇인지는 갈피를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가 유교의 가르침을 따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당연히 우리가 공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고전은 언제나 해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이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마땅한 점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서도 배움이 있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 『논어』라고 하면, 경전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아주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아직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논어』 역시 결국은 대화록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며, 그 특성상 공자와 제자,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 간의 대화로 꾸려져 있다. 때로는 제자나 주변 인물들이 공자에게 묻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역으로 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중에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논어』를 통해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대체 동북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떠받든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는 배우고자 자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든 가르치고자 했으며, 스스로 더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도 제자에 따라 다른 가르침을 주고자 했으며, 때로는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공자에게 물어보고 열심히 따르면서도, 스승인 공자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따져 묻기도 했다. 이처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갈수록 교권이 무너져 가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형식화해 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논어』뿐 아니라 많은 자료를 통해 『논어』를 주해한 유보남의 『논어정의』, 그리고 그 『논어정의』를 번역한 이 책은 우리에게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 등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