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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창출판사 20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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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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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책소개

목차

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3
팔일 제1

논어정의 권4
팔일 제2

색 인

저자 소개2

1791년 강소성 보응현에서 아버지 이순(履恂)과 어머니 교씨(喬氏)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 성장하였다. 종부 태공(台拱)의 학문이 깊고 정밀하였으므로 그에게 전수받기를 청하여 학행으로 향리에서 명성이 자자하였다. 제생(諸生)이 되었을 때 의징(儀徵)의 유문기(劉文淇)와 명성을 나란히 하여 사람들이 “양주이유(揚州二劉)”라고 칭송하였다. 도광 20년(1840) 진사가 되어 직례성 문안현의 지현(知縣)을 제수받았다. 문안현은 지형이 웅덩이에 비해 낮았는데도 둑이나 제방이 닦이지 않아 장마가 내리거나 가을 홍수가 나면 번번이 백성들의
1791년 강소성 보응현에서 아버지 이순(履恂)과 어머니 교씨(喬氏)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 성장하였다. 종부 태공(台拱)의 학문이 깊고 정밀하였으므로 그에게 전수받기를 청하여 학행으로 향리에서 명성이 자자하였다. 제생(諸生)이 되었을 때 의징(儀徵)의 유문기(劉文淇)와 명성을 나란히 하여 사람들이 “양주이유(揚州二劉)”라고 칭송하였다. 도광 20년(1840) 진사가 되어 직례성 문안현의 지현(知縣)을 제수받았다. 문안현은 지형이 웅덩이에 비해 낮았는데도 둑이나 제방이 닦이지 않아 장마가 내리거나 가을 홍수가 나면 번번이 백성들의 해가 되곤 하였다. 이에 유보남은 제방을 두루 걸어 다니면서 병폐와 고통을 묻고 옛 서적들을 검토하여 일군의 주둔병과 백성이 함께 정비하도록 독촉하였다. 16년 동안 관직에 있었는데, 항상 의관이 소박하여 마치 제생 때와 같았다. 송사를 처리함에 삼갔고, 문안에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쌓인 현안 1,400여 건을 자세하게 살펴 결론을 내렸으며, 새벽닭이 처음 울 때면 당청에 앉아, 원고와 피고가 모두 법정에 나오고 증거가 구비되면 때에 맞춰 상세히 국문하였다. 큰 사건이건 작은 사건이건 할 것 없이 균등하게 자기의 뜻대로 안건을 판결했고, 패도한 자는 법의 판례에 비추어 죄를 다스렸다. 무릇 소송에 연루된 친척이나 오랜 친족은 내외척 간의 친목(睦?)으로 깨우쳐, 대체로 화해하고 풀도록 하였다. 송사와 옥사가 한가해지고 나면 아전들은 자리를 떠나 돌아가 농사를 짓게 하였으니, 멀고 가까이에 있는 자들이 화합하여 순량(循良)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논어정의??는 그가 38세에 뜻을 두고 착수하여 평생을 바친 저작으로, 청대 ??논어?? 연구의 결정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4권까지 지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아들 공면에게 이를 이을 것을 맡긴 후 함풍 5년(1855)에 죽으니, 향년 65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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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1987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2000년 중국 송대 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에서 한문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과 및 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아울러 성균관 한림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장재: 송대 기철학의 완성자』, 『주돈이: 성리학의 비조』, 『(교수용 지도서) 사자소학』, 『(교수용 지도서) 추구·계몽편』, 『(교수용 지도서) 격몽요결』 등이 있고, 함께 번역한 책으로는 『논어징』
1963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1987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2000년 중국 송대 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에서 한문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과 및 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아울러 성균관 한림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장재: 송대 기철학의 완성자』, 『주돈이: 성리학의 비조』, 『(교수용 지도서) 사자소학』, 『(교수용 지도서) 추구·계몽편』, 『(교수용 지도서) 격몽요결』 등이 있고, 함께 번역한 책으로는 『논어징』 전 3권, 『성리논변』, 『증보 동유학안』 전 6권, 『주자대전』 전 13권, 『주자대전차의집보』 전 4권, 『역주 예기집설대전 2』, 『왕부지 중용을 논하다』 등이 있다. 이 외에 연구논문으로는 「《논어징》에 나타난 오규 소라이의 성인관」, 「《논어징》에 나타난 오규 소라이의 도 인식」, 「성리학의 태동과 정체성에 대한 일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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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152*225*23mm
ISBN13
9791166842283

책 속으로

살펴보니, “말하면서 실천함”과 “행하면서 즐김”, 이것이 인자(仁者)가 행하는 바이다. 맹자(孟子)는 예와 악을 논하면서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데서 근본을 추론해서 인의(仁義)의 실제로 삼았으니, 인은 사덕(四德: 仁義禮智)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하지 않은 사람은 예와 악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전한서』 「적방진전(翟方進傳)」에는 이 문장을 인용하여 설명하면서 “인하지 않은 사람은 베풀어 쓸 곳이 없으니, 인하지 않은데도 재주가 많은 것이 나라의 근심이라는 말이다.”라고 했다. 베풀어 쓸 곳이 없으면 예와 악을 행할 수 없으니, 비록 재주가 많더라도 다만 불선(不善)이 될 따름이다. 공자 당시에는 예와 악이 대부로부터 나와 참절(僭竊)함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고[相仍], 그릇됨이 옳음을 이기는 데 익숙해져 예와 악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 p.53

살펴보니, 김방의 설명이 매우 자세하다. 『시경』 「국풍(國風)·제풍(齊風)·의차(?嗟)」에 “종일토록 과녁[侯]에 활을 쏘아도 정곡[正]을 벗어나지 않네.”라고 했으니, 정(正)과 후(侯)가 똑같이 하나의 과녁임이 분명하다. 『시경』 「소아(小雅)·보전지십(甫田之什)·빈지초연(貧之初筵)」의 「소」 에 『주례』의 정중(鄭衆)과 마융의 「주」를 인용했는데, 모두 정(正)이 곡(鵠) 안에 있다고 했다. 정이 곡 안에 있기 때문에 『시경』 「국풍·제풍·의차」에서 활을 쏘아도 정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과녁을 맞히는 기술을 자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방이 인용한 가경백의 정이 곡 밖에 있다는 말은 잘못이다. 천자와 제후는 향사례가 없으니, 「향사례·기」에서 말한 웅후(熊侯)니 미후(?侯)니 운운한 것은 모두 연례(燕禮)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김방이 인용해서 연사임을 증명한 것이다.
--- p.178-179

살펴보니, 주나라시대 사람들의 병(屛)의 제도에는, 마땅히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또한 소장(蕭牆)이라고도 한다. 그 당시 종묘의 병풍은 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에 『예기』 「명당위」에서는 그것을 소병(疏屛)이라고 했다. 소(疏)는 새긴다[刻]는 뜻이다. 지금 인가의 조벽(照壁)이, 바로 그 모양을 본뜬 것이다. 『순자(荀子)』 「대략편(大略篇)」에 “천자는 외병(外屛)을 세우고, 제후는 내병(內屛)을 세우는 것이 예이다. 노문(路門) 밖에 외병을 세우는 것은 밖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고, 노문 안에 내병을 세우는 것은 안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회남자』 「주술훈(主術訓)」에는 “천자가 노문 밖에 외병을 세우는 것은 스스로를 가리기 위함이다.”라고 했으니, 병은 안과 밖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주」에서 “임금[人君]”이라고 한 것은 천자와 제후를 겸해서 한 말이다.
--- p.285-286

살펴보니, 『춘추번로』 「초장왕(楚莊王)」에 “문왕의 시대는 백성들이 그가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는 것을 즐거워했기 때문에 「무」음악이라고 한 것이다. 무(武)란 정벌한다[伐]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순임금이 「소」를 만들고 우왕이 「하(夏)」를 만들었으며, 탕(湯)왕이 「호(頀)」를 만들고 문왕이 「무」를 만든 것이다. 네 가지 음악이 이름을 달리하는 것은 각각 그 백성들이 비로소 자기에게서 즐거워하는 것을 따랐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 “주(紂)왕이 무도하고 제후들이 크게 어지러워지자 백성들은 문왕이 노여워함을 즐거워하면서 그를 읊조리며 노래한 것이다. 주나라 사람의 덕이 이미 천하를 윤택하게 해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그것을 「대무」라 하니, 백성들이 처음으로 좋아한 것이 무라고 그렇게들 얘기한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 p.323-324

출판사 리뷰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구절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탐독해 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설혹 이 구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이 구절에서 유래한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논어는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과 단어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견리사의’, ‘과유불급’, ‘살신성인’, ‘온고지신’, ‘절차탁마’ 등의 고사성어를 비롯해, ‘이단’, ‘숙맥’과 같은 일상적 표현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논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적을 것이다. 한때 식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던 『논어』는 어쩌다 이렇게 몰락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지학이라는 말보다 중2병이라는 말이 특정 나이대를 대표하는 시대에 수천 년 전을 살아간 공자라는 사람의 지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유교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그 유교가 당최 무엇인지는 갈피를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가 유교의 가르침을 따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당연히 우리가 공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고전은 언제나 해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이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마땅한 점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서도 배움이 있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

『논어』라고 하면, 경전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아주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아직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논어』 역시 결국은 대화록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며, 그 특성상 공자와 제자,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 간의 대화로 꾸려져 있다. 때로는 제자나 주변 인물들이 공자에게 묻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역으로 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중에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논어』를 통해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대체 동북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떠받든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는 배우고자 자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든 가르치고자 했으며, 스스로 더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도 제자에 따라 다른 가르침을 주고자 했으며, 때로는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공자에게 물어보고 열심히 따르면서도, 스승인 공자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따져 묻기도 했다. 이처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갈수록 교권이 무너져 가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형식화해 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논어』뿐 아니라 많은 자료를 통해 『논어』를 주해한 유보남의 『논어정의』, 그리고 그 『논어정의』를 번역한 이 책은 우리에게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 등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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