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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1 학이 제1 논어정의 권2 위정 제2 색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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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주」의 포함과 마융의 설이 다르고, 황간과 형병의 「소」는 글자 그대로 해석했는데, 절충한 것이 없어서, 후대 사람들이 이것을 해석함에 결국은 많이들 어지럽게 뒤엉켜 버렸다. 마씨의 설을 따르면 천승은 1백 리의 땅에는 용납되지 않고, 포씨의 설을 따르면 『주례』는 믿을 것이 못 된다. 힐문과 비난이 분분하다 보니, 아직 어느 하나가 옳다고 정하지도 못했다. 근대의 사람인 김악(金?)의 『구고록(求古錄)』에서 이 부분을 설명한 것이 가장 분명하고 가장 상세하므로 이것을 갖추어 기록한다.
--- p.103 살펴보니, 초순의 설이 공안국의 「주」와 서로 보완이 된다. 들으면 즉시 행하라고 공자는 염유를 가르쳤는데, 여기서는 또한 빠름을 귀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설문해자』에 “정(正)은 옳다[是]는 뜻이다.”라고 했고, 「주관」에 “가사마(家司馬)는 각각 신하를 부리는데, 공사마(公司馬)에게 관계된 일을 청취한다.”라고 했는데, 「주」에 “정(正)은 듣는다[聽]는 뜻과 같다.”라고 했다. 형병의 「소」에는 “학업에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도덕(道德)이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 그 옳고 그름을 바로잡아 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역』「문언(文言)」의 ‘물어서 변별한다.’라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했다. --- p.199 살펴보니, 『효경(孝經)』「기효행장(紀孝行章)」에 “공자가 말했다. ‘효자는 어버이를 섬길 때 어버이께서 병이 드시면 그 근심을 다한다.’”라고 했고, 『예기』「곡례」에 “부모가 병이 들면 관례를 한 자는 머리를 빗지 않고, 다닐 때에는 활갯짓을 하고 걷지 않으며, 말할 때는 태만하게 하지 않으며, 거문고와 같은 악기를 다루지 않으며, 고기를 먹되 입맛이 변할 만큼 많이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되 용모가 흐트러질 정도에까지 이르지 않으며, 웃더라도 잇몸을 드러내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 노하더라도 욕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는다. 병환이 나으면 다시 그전대로 돌아간다.” 했으니, 모두 자식이 부모를 근심하는 것을 효로 여긴 것이다. --- pp.275~276 또 살펴보니, 한대와 위대의 사람들은 이 문장을 풀이하면서 칭(稱) 자를 써서 또 “칭거(稱擧)”라고도 한다. 포신언의 『논어온고록』은 『후한서』「탁무전(卓茂傳)」과 『위지(魏志)』「서막전(徐邈傳)」을 근거로 해서 모두 이 뜻이 있는데, 역시 통한다. 『상서대전』에 “옛날의 제왕은 반드시 백성들에게 명함이 있었으니, 백성 중에 능히 어른을 공경하고, 고아를 불쌍히 여기며, 취사(取舍)하고 겸양을 좋아하며 일할 능력이 있는 자를 등용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임금에게 명한 뒤에 장식한 쌍마차를 타고 장식한 비단을 입을 수 있게 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들어서 쓴다[稱擧]는 것으로, 표창하고 특별히 우대한 것이다. --- pp.363~364 살펴보니, 『춘추공양전』「성공(成公)」 6년에 “무궁(武宮)을 세웠다”라고 한 곳의 「전」에 “세웠다[立]는 것은 무엇인가? 마땅히 세우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했는데, 하휴의 「주」에 “시대가 쇠락해서 인사(人事)가 폐하여지매 귀신에게 복을 구하였다. 그러므로 거듭 말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자기가 제사 지낼 귀신이 아닌 데다가 제사 지낸 것이니, 모두 복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예가 아니니 또한 반드시 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춘추좌씨전』에서는 “신은 동족[類]이 아닌 자가 지내는 제사는 흠향하지 않는다.”라고 했고, 「곡례」에서는 “제사 지낼 대상이 아닌 데에 제사하는 것을 ‘음사(淫祀)’라 하는데, 음사는 복이 없다.”라고 했다. --- p.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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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구절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탐독해 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설혹 이 구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이 구절에서 유래한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논어는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과 단어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견리사의’, ‘과유불급’, ‘살신성인’, ‘온고지신’, ‘절차탁마’ 등의 고사성어를 비롯해, ‘이단’, ‘숙맥’과 같은 일상적 표현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논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적을 것이다. 한때 식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던 『논어』는 어쩌다 이렇게 몰락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지학이라는 말보다 중2병이라는 말이 특정 나이대를 대표하는 시대에 수천 년 전을 살아간 공자라는 사람의 지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유교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그 유교가 당최 무엇인지는 갈피를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가 유교의 가르침을 따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당연히 우리가 공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고전은 언제나 해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이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마땅한 점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서도 배움이 있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 『논어』라고 하면, 경전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아주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아직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논어』 역시 결국은 대화록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며, 그 특성상 공자와 제자,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 간의 대화로 꾸려져 있다. 때로는 제자나 주변 인물들이 공자에게 묻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역으로 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중에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논어』를 통해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대체 동북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떠받든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는 배우고자 자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든 가르치고자 했으며, 스스로 더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도 제자에 따라 다른 가르침을 주고자 했으며, 때로는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공자에게 물어보고 열심히 따르면서도, 스승인 공자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따져 묻기도 했다. 이처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갈수록 교권이 무너져 가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형식화해 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논어』뿐 아니라 많은 자료를 통해 『논어』를 주해한 유보남의 『논어정의』, 그리고 그 『논어정의』를 번역한 이 책은 우리에게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 등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