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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18 위령공 제15 논어정의 권19 계씨 제16 논어정의 권20 양화 제17 색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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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맹자』「진심하」에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의 사이에서 곤액을 당한 것은 두 나라의 임금이랑 신하와 교분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논어』「선진」에서도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나를 따르던 자들은 다 문에 미치지 못했다.”라고 했으니, 분명 그 당시 제자들이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벼슬하지 않음으로 인해 두 나라의 임금이랑 신하와의 교분이 없었기 때문에 곤액을 당하고 식량이 떨어지게 된 것일 뿐이다. 여기의 「주」에서는 오나라가 진나라를 정벌하매 진나라가 어지러웠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역시 억측에 가깝고, 「세가」에서는 다시 견강부회하여 진나라와 채나라의 대부가 한통속이 되어 공자를 포위할 것을 도모했다고 한 것은 더욱 옳지 않다.
--- p.42~43 살펴보니, 『논형』「솔성편」에 “전(傳)에 ‘요임금과 순임금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다 봉해 줄 만했고, 걸왕과 주왕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다 죽일 만했다.’라고 했고, 『논어』에 ‘이 백성들이야말로 삼대 때 정직한 도를 가지고 실행한 사람들이다.’라고 했는데, 성스러운 군주의 백성들은 이와 같고, 포악한 군주의 백성들은 저와 같으니, 결국 교화에 달려 있는 것이지 본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이 역시 요와 순이 덕으로써 백성을 교화함은 바로 정직한 도를 가지고 실행한 것이며, 걸과 주의 포악한 학정과는 다른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는 포군(包君)이 인용해서 증명한 것과 부절을 합해 놓은 듯이 일치한다. 황간본에는 “인(人)” 아래 “야(也)” 자가 없고, “소(所)”는 “가(可)”로 되어 있다. --- p.131 살펴보니, 동씨(董氏)는 계문자(季文子)가 벼슬을 시작한 것이 문공 때에 있었고, 문공은 나라 밖에서 모욕을 당하고 나라 안에서 침탈을 당하여 진실로 이미 스스로 그 틈을 벌려 놓았기 때문에 선공에 이르러 관작과 봉록이 공실을 떠났다고 여긴 것이다. 『춘추번로』의 이말은 정현의 뜻과는 다른 듯하지만 실제로는 같다. 『춘추좌씨전』「문공」 18년의 「전」에, “문공에겐 두 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경영(敬?)이 선공을 낳았다. 경영은 문공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사사로이 양중(襄仲)을 섬겼다. 선공이 장성하자 경영은 선공을 양중에게 부탁했다. 문공이 죽은 뒤에 양중이 선공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자 숙중(叔仲)이 안 된다고 하였다. 양중이 제후(齊侯)를 만나 선공을 임금으로 세워 주기를 청하니, 제후가 양중의 요청을 허락했다. 겨울 10월에 양중이 악(惡)과 시(視)를 죽이고서 선공을 세웠다.”라고 했고, 『춘추공양전』에는 “자적(子赤)”이라고 되어 있는데, “악(惡)”이 바로 “적(赤)”이니 이것이 그 일이었던 것이다. --- p.228~229 살펴보니, 『설문해자』에 “환(?)은 환(丸)과 같은 발음으로 읽는다.”라고 했으니, 초(?)로 구성되고 현(見)으로 구성된 “현(?)” 자와 모양이 가장 비슷하다. “환(?)”의 새김은 가는 뿔을 가지고 있는 산양(山羊)인데, 양(羊)은 선(善)하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확대되어 화목하다는 뜻이 되었다. 『논어』의 정자(正字)는 “환(?)”으로 되어 있는데, 가차해서 “완(莞)”으로 썼다. 『논어집해』에 “빙그레 웃는 모습”이라고 했으니, 우씨(虞氏)의 “현(?)은 화목함[睦]이다”라는 뜻풀이와 역시 일치한다. 『경전석문』에서 본 판본에는 “현(?)”으로 되어 있고, 마침내 “화(華)와 판(版)의 반절음”으로 발음했는데 틀렸다. 이 설은 대략 유육숭(劉毓崧)을 근거한 것으로 그가 지은 『통의당집』에 보인다. --- p.328 살펴보니, 『주례』「하관사마상·사관」에 “사계절마다 나라의 불 피우는 나무를 바꾸어 때에 따라 유행하는 질병을 구제한다.”라고 했고, 『관자』「금장」에 “나무에 구멍을 뚫고 비벼서 불씨를 바꾸는 것은 창궐하는 독기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대체로 네 계절의 불은 각각 마땅한 바가 있으니, 예를 들면 봄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썼지만 여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쓰면 곧바로 독성이 있게 되어 사람이 쉽게 질병이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불씨를 바꿔서 창궐하는 독기를 제거해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바로 이렇게 함으로써 질병을 구제하는 것이다. --- p.423~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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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구절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탐독해 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설혹 이 구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이 구절에서 유래한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논어』는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과 단어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견리사의’, ‘과유불급’, ‘살신성인’, ‘온고지신’, ‘절차탁마’ 등의 고사성어를 비롯해, ‘이단’, ‘숙맥’과 같은 일상적 표현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논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적을 것이다. 한때 식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던 『논어』는 어쩌다 이렇게 몰락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지학이라는 말보다 중2병이라는 말이 특정 나이대를 대표하는 시대에 수천 년 전을 살아간 공자라는 사람의 지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유교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그 유교가 당최 무엇인지는 갈피를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가 유교의 가르침을 따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당연히 우리가 공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고전은 언제나 해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이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마땅한 점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서도 배움이 있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 『논어』라고 하면, 경전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아주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아직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논어』 역시 결국은 대화록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며, 그 특성상 공자와 제자,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 간의 대화로 꾸려져 있다. 때로는 제자나 주변 인물들이 공자에게 묻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역으로 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중에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논어』를 통해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대체 동북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떠받든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는 배우고자 자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든 가르치고자 했으며, 스스로 더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도 제자에 따라 다른 가르침을 주고자 했으며, 때로는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공자에게 물어보고 열심히 따르면서도, 스승인 공자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따져 묻기도 했다. 이처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갈수록 교권이 무너져 가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형식화해 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논어』뿐 아니라 많은 자료를 통해 『논어』를 주해한 유보남의 『논어정의』, 그리고 그 『논어정의』를 번역한 이 책은 우리에게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 등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