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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14 선진 제11 논어정의 권15 안연 제12 색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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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살펴보니, 강영의 설이 매우 자세하기는 하지만, 『사기』도 본래 따를 만하다. 돌아가신 종숙 단도군(丹徒君)의 『경전소기』에 “『이아』에 ‘『회남자』에 주여구(州黎丘)가 있다.’라고 했는데, 「주」에 ‘지금의 수춘현(壽春縣)에 있다.’라고 했다. 『염철론』을 살펴보니 ‘공자는 방정하기만 했지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구(黎丘)에서 굶주렸던 것이다.’라고 했는데, 애공 2년에 채나라는 주래로 천도했고, 4년에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로 갔으며, 채나라로 옮긴 지 3년 뒤(애공 6년)에 오나라가 진나라를 토벌하자 초나라가 진나라를 구원하러 나서 성보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사람을 시켜 공자를 초빙했는데, 이때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양식이 떨어졌던 것이다.
--- p.41 살펴보니, 『춘추좌씨전』?「애공」 11년 「전」에 “계씨가 전묘(田畝)의 다소에 따라 부세(賦稅)를 징수하고자 해서 염유를 시켜 중니를 방문하게 하고 의견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나는 모르겠다.’ 계씨가 연달아 염유를 세 차례 보내어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자, 염유를 마지막으로 보내어 말하기를 ‘그대는 국가의 원로라서 그대의 대답을 기다려 일을 처리하려 하는데, 어찌하여 그대는 말을 하지 않는가?’라고 했다. 중니는 대답하지 않고 염유에게 사적으로 말하기를 ‘군자가 일을 처리함에는 예를 헤아려 은택을 베푸는 경우에는 후한 쪽을 취하고, 일은 중도를 거행하고, 세금을 거두는 것은 박한 쪽을 따라야 한다. --- p.108 살펴보니, 『의례』「사관례」에 “주인은 현단복을 입고 검붉은색 슬갑을 하며, 안내자[?者]는 현단복을 입고, 손님은 주인과 똑같은 옷을 입고 손님을 돕는 자는 현단복을 입고 따른다.”라고 했는데, 가공언의 「소」에 “안내자[?者]에 대해서 ‘주인과 똑같은 옷을 입는다’라고 말하지 않고, 별도로 ‘현단’이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주인과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주인의 현단복은 사의 정복(正服)이 되고, 안내자의 현단복은 조복이 된다. 『논어』의 이 글과 합해서 보면, 조빙과 회동이 있을 경우 무릇 사로서 안내자가 된 자는 제사를 도울 때부터 그 외에는 모두 조복을 착용하고 피변을 착용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복이라면 당연히 “위모관[委貌]”이라고 해야 하는데, 지금 “장보관[章甫]”이라고 한 것은 장보관이나 위모관이나 똑같이 현관이 되기 때문이다. --- p.182 『문선』「동경부」에 “말학(末學)을 피부로 받는다[膚受].”라고 했는데, 「주」에 “피부로 받는다[膚受]는 것은 살갗에만 닿고 마음속을 거치지 않는다는 말이다.”라고 했으니, 바로 마융이 말한 뜻이다. 진전(陳?)의 『논어고훈』에 “『후한서』「대빙전」의 「주」에 ‘『논어』에서 공자가 ″피부로 받는 하소연″이라고 했는데, 「주」에 ″남이 하소연하는 말을 받아들일 때 피부로 받아들여 그 뜻의 핵심을 깊이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라고 했다.’라고 했다. 상고해 보건대, 이것과 마융의 설이 조금 다른데, 정현의 「주」인 듯싶다.”라고 했다. 지금 살펴보니, 황간의 「소」에도 “마융의이 「주」와 정현의 「주」는 유사하지 않다”라고 하면서 정현 「주」의 문장을 인용하지 않았다. --- p.263 정현의 「주」에 “고요가 사사(士師)가 되었는데, 정견(庭堅)이라 불렀다.”라고 했다. 살펴보니, 『서경』「순전」에 “고요에게 명하였다. ‘너를 사로 삼는다.’”라고 했고, 『맹자』「진심상」에도 “고요가 사가 되었다면.” 이라고 했는데, 사사라고 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사(師)” 자는 잘못 불어난 글자인 듯하다. 『주례』「추관사구상」에 “사사(土師)”가 있는데, 대사구(大司寇)에 소속되고, 이하는 대부가 맡는다. 『춘추좌씨전』「문공」 5년의 「전」에 “고요정견(皐陶庭堅)”이라고 했고, 또 18년의 「전」에 고양씨(高陽氏)에게 재덕(才德)이 있는 아들 여덟이 있었는데, 그중에 정견이 있고, 두예의 「주」에 “정견은 고요의 자(字)이다.”라고 했으니, 고요는 정견을 부르는 말이다. --- p.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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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구절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탐독해 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설혹 이 구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이 구절에서 유래한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논어』는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과 단어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견리사의’, ‘과유불급’, ‘살신성인’, ‘온고지신’, ‘절차탁마’ 등의 고사성어를 비롯해, ‘이단’, ‘숙맥’과 같은 일상적 표현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논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적을 것이다. 한때 식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던 『논어』는 어쩌다 이렇게 몰락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지학이라는 말보다 중2병이라는 말이 특정 나이대를 대표하는 시대에 수천 년 전을 살아간 공자라는 사람의 지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유교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그 유교가 당최 무엇인지는 갈피를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가 유교의 가르침을 따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당연히 우리가 공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고전은 언제나 해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이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마땅한 점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서도 배움이 있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 『논어』라고 하면, 경전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아주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아직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논어』 역시 결국은 대화록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며, 그 특성상 공자와 제자,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 간의 대화로 꾸려져 있다. 때로는 제자나 주변 인물들이 공자에게 묻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역으로 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중에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논어』를 통해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대체 동북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떠받든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는 배우고자 자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든 가르치고자 했으며, 스스로 더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도 제자에 따라 다른 가르침을 주고자 했으며, 때로는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공자에게 물어보고 열심히 따르면서도, 스승인 공자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따져 묻기도 했다. 이처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갈수록 교권이 무너져 가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형식화해 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논어』뿐 아니라 많은 자료를 통해 『논어』를 주해한 유보남의 『논어정의』, 그리고 그 『논어정의』를 번역한 이 책은 우리에게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 등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