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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11 향당 제10 논어정의 권12 향당 제10 논어정의 권13 향당 제10 색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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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삼조(三朝)의 조정 위치는 모두 평지이다. 정현은 『주례』 「하관사마하·태복(太僕)」을 주석하면서 “연조에서는 노침(路寢)의 뜰에서 조회를 본다.”라고 했고, 「문왕세자」를 주석하면서, “내조는 노침의 뜰이다.”라고 했는데, 노침은 바로 연침(燕寢)으로 “침(寢)”을 구별해서 “정(庭)”이라고 했으니, 조정의 위치가 뜰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6년에 “한 헌자(韓獻子)가 진 경공(晉景公)을 뒤따라 들어가자 경공이 정침의 뜰[寢庭]에 섰다.”라고 했는데, 바로 내조에서 경공을 뒤따라 들어갔다는 것으로, 이는 연조의 조정 위치도 역시 평지이니, 유독 치조와 외조의 조정만 평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p.36 살펴보니, 발의 앞쪽을 들고 뒤꿈치를 끌면 뒷발은 들지 않기 때문에 “걸을 때는 발을 들지 않는다[行不擧足]”라고 한 것이다. 발꿈치가 서로 엇갈리면서 굴리듯 돌기 때문에 권돈(圈豚)이라고 한 것이니 발을 굴리듯 발의 앞쪽과 뒤꿈치가 따라서 걷는다는 말이다. 『의례』 「빙례」에 “장차 홀을 바치려 할 때에는 행보를 살핀다.[將授志趨.]”라고 했는데, 「주」 에 “지(志)는 염(念)과 같으니, 염추(念趨)란 행보(行步)를 살핀다는 말이다. 공자가 홀을 잡을 때”라고 운운했다. 정현은 “행보를 살핌[志趨]”을 바로 “느린 종종걸음[徐趨]”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집규(執圭)”의 전 구절을 인용하면서 “발걸음의 폭을 좁고 낮게 해서 마치 발이 땅을 끄는 듯이 함”을 “느린 종종걸음”의 증거로 삼았으니, 『예기』 「옥조」의 「주」에서 말한 “느린 종종걸음[徐趨]”의 뜻과 일치한다. --- p.122-123 살펴보니, 『석명』 「석의복」에 “패(佩)는 보좌한다[陪]는 뜻이니, 그것이 한 가지 물건이 아니라 부속물[陪貳]이 있다는 말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발음을 가지고 뜻을 구한 것으로 역시 옳다. 『예기』 「옥조」에 “모든 띠에는 반드시 옥을 차는데, 오직 초상 중에만 옥을 차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주」에 “초상은 ‘애통함[哀]’을 주로 하기 때문에 장식을 제거하는 것이다. ‘모든[凡]’이란 천자로부터 사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라고 했다. 또 “군자는 특별한 연고가 없으면 패옥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으니 군자는 옥에 덕을 견준다”라고 했는데, 「주」에 “특별한 연고[故]란 초상[喪]과 재앙[災眚]을 이른다.”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흉년이 들거나 기근이 들어도 역시 장식을 제거하는 것인데, 지극히 중한 것을 거론하다 보니 단지 “초상”이라고만 말한 것이다. --- p.195 살펴보니, 방관욱의 설명이 바로 이 「주」의 뜻이다. 『의례』 「향음주례」에 “다음 날 위로를 한다.”라고 했고, 「사정기(司正記)」에 “부르고자 하는 대로 부르고, 선생과 군자에게 청해도 괜찮다.”라고 했는데, 「주」 에 “선생은 근력 때문에 예에 참석하지 못했으나, 다음 날 여기에서는올 수 있다. 군자는 나라 안에서 성대한 덕을 갖춘 사람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현명한 사람과 재능 있는 사람을 손님으로 대우하는 예로서 노인 봉양을 위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오직 납향제[蜡飮]만이 이에 가깝다. 또 『주례』 「지관사도상·족사」에 “봄과 가을에 포제사를 지낸다[祭酺]”라고 했고, 『시경』 「부예(鳧鷖)」의 「전」에 “종묘[社宗]에서 제사를 다 마치고 연음(燕飮)한다”라고 했는데, 이는 모두 민간에서 나름대로 술 마시는 일을 거행한 것으로 그 예도 역시 노인 봉양이 주가 아닌데, 해석하는 자들이 많이들 이것을 끌어다 『논어』를 해석했으니, 아무래도 옳지 않은 듯싶다. --- p.291 또 살펴보니, 『전한서』 「성제기」의 「찬」에 “수레에 올라 바르게 서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안사고의 「주」에 “지금 『논어』에서 ‘수레 안에서 뒤를 돌아본다[車中內顧]’라고 했는데, ‘뒤를 돌아본다[內顧]’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들은 ‘앞을 볼 때는 시선이 수레 끌채 끝의 가로댄 나무[衡]나 멍에[軛]를 넘어가지 않고, 옆을 볼 때는 시선이 수레 양쪽의 기대는 나무[輢]나 수레바퀴[轂]를 넘어가지 않는다.’라고 한 것과 이것은 같지 않다고 여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안사고가 본 『논어』에도 역시 “불(不)” 자가 없는 것이다. 설명하는 사람들이 운운한 것이란 바로 포함의 「주」를 말하는 것이니, 이는 포함 역시 『노논어』에 의거해서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 p.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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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구절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탐독해 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설혹 이 구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이 구절에서 유래한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논어』는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과 단어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견리사의’, ‘과유불급’, ‘살신성인’, ‘온고지신’, ‘절차탁마’ 등의 고사성어를 비롯해, ‘이단’, ‘숙맥’과 같은 일상적 표현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논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적을 것이다. 한때 식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던 『논어』는 어쩌다 이렇게 몰락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지학이라는 말보다 중2병이라는 말이 특정 나이대를 대표하는 시대에 수천 년 전을 살아간 공자라는 사람의 지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유교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그 유교가 당최 무엇인지는 갈피를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가 유교의 가르침을 따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당연히 우리가 공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고전은 언제나 해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이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마땅한 점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서도 배움이 있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 『논어』라고 하면, 경전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아주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아직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논어』 역시 결국은 대화록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며, 그 특성상 공자와 제자,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 간의 대화로 꾸려져 있다. 때로는 제자나 주변 인물들이 공자에게 묻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역으로 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중에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논어』를 통해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대체 동북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떠받든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는 배우고자 자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든 가르치고자 했으며, 스스로 더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도 제자에 따라 다른 가르침을 주고자 했으며, 때로는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공자에게 물어보고 열심히 따르면서도, 스승인 공자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따져 묻기도 했다. 이처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갈수록 교권이 무너져 가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형식화해 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논어』뿐 아니라 많은 자료를 통해 『논어』를 주해한 유보남의 『논어정의』, 그리고 그 『논어정의』를 번역한 이 책은 우리에게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 등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