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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9 태백 제8 논어정의 권10 자한 제9 색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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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태왕이 죽은 뒤에 계력이 의당 상주를 대신해야 했으니, 결단코 상사(喪事)나 국사(國事)를 묻지도 않은 채 내팽개치고 오나라로 가서 태백과 우중에게 알렸을 리가 없다. 설사 태백과 우중이 모두 계력을 따라 귀국하려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장차 계력이 마침내 함께 가려 했을까? 아니면, 태백과 우중의 사양을 받고서 혼자서 되돌아왔겠는가? 『한시외전』의 말은 이런 면에서 허술하다. 태왕이 죽었을 때 태백이 만약 분상을 핑계로 본국으로 되돌아왔다면, 본래 적장자(適長子)가 되니 이치상 응당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데, 여러 신하가 어떻게 감히 계력을 세우자는 의견을 올릴 수 있었겠는가? 또 훗날 이미 본국으로 되돌아왔으니, 그렇다면 애당초 형만으로 약초 캐러 간 것은 무슨 꼴이 되겠는가?
--- p.33 살펴보니, 문왕이 은나라에 복종해서 섬긴 것은 은나라를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또한 “내가 우선은 부드럽게 대해 주면서 그의 악이 가득 차기를 기다렸다가 취했다”라는 말도 아니다. 오로지 주가 뉘우치고 깨달아 천명을 실추함이 없도록 하기를 바란 것일 뿐이다. 문왕의 시대가 끝나고 무왕의 시대에 이르자 주의 음란함이 날로 더욱 심해졌고, 결국에는 스스로 천명을 끊어 버려 멸망에 이르지 않고는 그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런 까닭에 문왕이 끝내 복종해서 섬긴 것은 지극한 덕이지만, 무왕이 끝내 복종해서 섬기지 않은 것도 주가 스스로 초래한 일이니 역시 지극한 덕에 있어서는 하자가 없다. --- p.144 살펴보니, 『장자』에서는 광 땅을 송나라의 읍으로 보고 있으니, 송나라 사람은 곧 광읍의 사람이므로, 굳이 송을 위로 고칠 필요는 없다. 『설원(說苑)』「잡언(雜言)」에 “공자가 송나라의 광읍을 지나고 있을 때, 간자(簡子)가 장차 양호를 죽이려 했는데, 공자의 모습이 양호와 닮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공자를 포위했다.”라고 했으니, 역시 광 땅을 송나라의 읍으로 본 것이다. 『사기』「공자세가」에서는 “광읍의 사람들이 공자를 포위하자 공자가 따르던 사람들로 하여금 위나라에서 영무자(甯武子)의 신하가 되게 한 다음에야 떠날 수 있었다.”라고 했으니, 광 땅을 위나라의 읍으로 본 것이다. --- p.209-210 살펴보니, 『한패상범군묘갈(漢沛相範君墓碣)』에 “무성하였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안씨(顔氏)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라고 했으니 무(茂)와 수(秀)는 뜻이 같다. 당(唐) 현종(玄宗)의 『안자찬(顔子贊)』에 “이삭이 팼으나 열매를 맺지 못했으니, 애통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는데, 한·당시대 사람들의 설명은 모두 이와 같다. 황간의 「소」에 “또 안연을 탄식하기 위해 비유한 것이다.”라고 했고, 형병의 「소」에 “이 장 역시 안연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공자가 아파하고 애석해하면서 비유한 것이다.”라고 했으니 설명이 둘 다 옳다. --- p.309-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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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이 구절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탐독해 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설혹 이 구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손 치더라도, 이 구절에서 유래한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논어』는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과 단어를 우리 사회에 남겼다. ‘견리사의’, ‘과유불급’, ‘살신성인’, ‘온고지신’, ‘절차탁마’ 등의 고사성어를 비롯해, ‘이단’, ‘숙맥’과 같은 일상적 표현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논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적을 것이다. 한때 식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던 『논어』는 어쩌다 이렇게 몰락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지학이라는 말보다 중2병이라는 말이 특정 나이대를 대표하는 시대에 수천 년 전을 살아간 공자라는 사람의 지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유교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그 유교가 당최 무엇인지는 갈피를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가 유교의 가르침을 따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당연히 우리가 공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고전은 언제나 해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이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마땅한 점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서도 배움이 있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 『논어』라고 하면, 경전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아주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아직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은 『논어』 역시 결국은 대화록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며, 그 특성상 공자와 제자,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 간의 대화로 꾸려져 있다. 때로는 제자나 주변 인물들이 공자에게 묻기도 하고, 때로는 공자가 역으로 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중에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논어』를 통해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도대체 동북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떠받든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자는 배우고자 자신을 찾아오는 이라면 누구든 가르치고자 했으며, 스스로 더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을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도 제자에 따라 다른 가르침을 주고자 했으며, 때로는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제자들 역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공자에게 물어보고 열심히 따르면서도, 스승인 공자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따져 묻기도 했다. 이처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갈수록 교권이 무너져 가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형식화해 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논어』뿐 아니라 많은 자료를 통해 『논어』를 주해한 유보남의 『논어정의』, 그리고 그 『논어정의』를 번역한 이 책은 우리에게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공자와 제자들의 관계 등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