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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프롤로그_낯선 만큼 매혹적인, 그 이야기의 숲길로 1장 쌍년이 되는 건 해법이 아니다 2장 소년이 걸어야 하는 자기 몫의 황무지 3장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세상을 바꾸는 여자 4장 용은 왜 공주만 잡아갈까? 5장 탑에서 나와 광야를 걷는 여자 6장 자식은 죽여도 아버지는 못 죽인다 7장 백설공주 계모 왕비의 거울 뒤, 그놈 목소리 8장 이제는 인간으로 변신할 시간 9장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10장 뜨개질하는 여자를 두려워하라 에필로그_숲에서 돌아 나오다 |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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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들려줄 때마다 달라진다. 기억의 한계 탓도 있지만, 이야기를 듣는 이들과 상황에 맞추느라 그렇다. 그 와중에 이야기하는 사람의 소망과 갈망이 슬그머니 끼어들곤 한다. 물론 기득권의 힘도 개입해서 입맛에 맞게 바꾸려 든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꾼에게 재갈을 물릴 수는 없다. 그래서 언제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에 이야기의 힘은 더욱 강력했다.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빚어가고, 동시에 다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드러낸다. 이야기밖에 못 한다며 무력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가장 오래가고 근본적인 변화의 힘이 아닐까 --- p.9 성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여신의 제단에라도 오르는 일인 것처럼 착각해서 낭만화의 허구에 빠지면, 백설공주 꼴이 난다. 착하고 어질게 순종하면서 자신의 욕망도 모르고 욕망의 주체가 되어보지도 못한 채 사는 여성은 백설공주의 어머니 왕비처럼 쓸모없다. ‘착하면 호구’라는 세간의 표현은 여기에도 딱 들어맞는다. 사실 의미 없는 존재가 되는 것만큼 인간에게 치명적인 대우는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키우지 못하고 남자들의 시선을 가치의 기준점을 삼는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 같은 삶은 비참하다. 여성을 오로지 살덩어리로 여기는 남성들의 가치관에 따르면, 언제나 살덩어리는 새로운 살덩어리, 더 어리고 예쁜 살덩어리로 대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37 여성은 영웅이 되는 여정을 걷지 않는다니. 소유하고 싸우고 쟁취하며 트로피를 얻는 여정만이 여성의 여정이라면, 캠벨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의미의 여정도 있다. 바로 치유와 회복의 길이다. 여성들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숲으로 여정을 떠난다. 치유는 단순히 고통이 사라지는 거라면, 회복은 지위와 자존감을 공고히 하는 행위다. 여성들은 회복의 서사를 자아내는 영웅의 여정을 걸으면 된다. 부디 천 개의 바람을 쐬며 천 개의 얼굴을 모두 풀어내는 충만한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 p.41 왜곡된 남성 집단 문화에 길든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예쁜 여자를 얻는다고들 생각한다. 여성을 성공의 트로피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충분히 성공하지 못한 대부분의 남성은 열패감에 젖는다. 이 열패감을 여성에게 돌릴 때 여성 혐오가 나타난다. 진짜 분노할 대상인 상층의 남성 대신 만만한 존재에게 열패감의 탓을 돌리는 굉장히 비겁하고 비열한 기제다. 어쩌면 이 또한 본성일지도 모르지만, 사고와 비판을 통해 이 본성이 향하는 방향을 돌려 자신을 다듬는 성숙한 남성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간은 본성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이언 존〉이라는 옛이야기는 의미가 있다. --- p.55~56 이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바실리사의 힘이다. 숲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현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바실리사가 달라졌을 뿐이다. 해골 속 불꽃을 내면에 품은 존재가 되어 현실을 적극적으로 타파할 힘을 얻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무늬를 빚어내는 창조의 능력(옷을 짓는 능력)까지 발휘한다. 실제로 계모와 의붓언니를 죽였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상상계의 죽음이므로, 현실에서는 더 이상 그들을 보지 않거나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더 이상 삶에 부정적인 힘이 간섭하지 못하도록 치워버리자, 바실리사는 (아마도 타고났으나 그전에는 몰라서 발휘하지 못했을) 창작 능력을 발휘하며 이를 통해 사회에서 값진 지분을 획득한다. 왕의 아내로 상징되는 단단하고 견고한 지위를 얻을 뿐 아니라, 결혼으로 상징되는 단단한 자기 통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 p.68 “나는 공주이기도 하고, 용이기도 해. 그런데 내 연인은 공주만 데려가. 그를 사랑해서 내 세계를 전부 주었는데, 공주만 데려가고 용은 버리지. 나는 공주일까, 용일까. 공주는 하나, 용은 둘인데.”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가 잠에서 깼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두 마리 용과 공주 중에서 공주 고르기는 결국 공주가 용이라는 뜻이라는 걸. --- p.84 신들의 결혼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신을 믿는 부족 간의 통합과 흡수를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환웅과 웅녀가 결혼한 단군 신화를 하늘의 신을 모시는 지배 부족이 곰을 섬기던 부족을 흡수, 통합한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우스가 메티스를 잡아먹어서 아테나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가부장 신을 모시는 지배 부족에 지혜의 여신을 모시는 부족이 흡수, 통합되면서 그 신의 딸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는 의미다. 그리스 사회가 가부장적인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하기도 하다. 가부장 신화로 흡수된 여신은 딸인 신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복종과 피지배의 모습을 철저히 드러내야 한다. 제우스의 아들 중 하나인 젊은 남자를 보내 메두사를 죽이고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이야기는 바가 바로 이런 뜻이다. --- p.89~90 과거에 치료사 여성은 약초에 대한 지식으로 피임과 출산과 낙태를 도와주었다. 즉,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에 대해 주체성을 갖게끔 하는 위험한 지식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마녀사냥에서 처형당했고 마녀라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위험한 지식을 가진 여성이 마녀사냥의 주요 타깃이었지만, 나중에는 나이가 들어 2세를 생산할 수 없는데 재산과 권력을 지닌 여성도 마녀로 몰려 처형되었다. --- p.104 용에게 잡혀간 공주, 곤경에 처한 아가씨 모티프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 이것은 옛이야기들을 열어주는 귀한 황금 열쇠가 된다. 어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전해진 옛이야기에 감추어진 비밀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을 황금 열쇠로 여는 것도 중요하다. 옛이야기에 담긴 삶의 원형은 내 안에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 황금 열쇠를 찾아 그 문을 열자. 그 여정은 고되지만 돌아올 때는 빛나는 이마로 돌아올 것이다. --- p.112~113 그러나 여자 혼자 변한다고 해서 성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자도 자기 몫의 광야를 거쳐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왕자가 눈이 멀었다고 해도 왕이 있는 성으로 돌아가지 않는 건 이상하다. 흥미롭게도, 이야기에서 눈이 머는 건 주로 남자들이다(여자는 주로 목소리를 잃는다). 사람을 볼 줄 모르는 무지몽매함, 그러니까 여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눈먼 상태가 흔히 일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리고 미숙한 남자는 눈이 먼 상태로 광야를 헤매다가, 영적인 통찰과 인도를 상징하는 노랫소리를 듣고 자신의 여자와 만나 화합해야 한다. 그러니까 라푼젤 이야기는 여자와 남자가 온전한 파트너십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한편, 한 사람 내면에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어떻게 온전하게 통합을 이루어야 하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 p.126~127 소년이 어른으로 자라는 옛이야기들을 보면, 항상 여성적인 것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 여자가 아니라 여성적인 것이 구원이고, 남성성 속의 여성성이 바로 구원의 힘이다. --- p.143 슈퍼 히어로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슈퍼 히어로가 되려면 아버지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평범한 아들은 아버지를 기준점으로 삼는다. 그래서 아버지를 넘어서더라도 플러스알파만큼만 올라간다. 그러나 기준점이 없으면, 즉 아버지가 없으면 끝도 없이 올라갈 수 있다. 슈퍼 히어로는 아버지가 없으므로 일반적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설 수 있다. 기준점이 사라졌으니 끝도 없이 하늘이 트이는 것이다. --- p.144~145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거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뒤에 오는 세대가 부조리한 기성세대를 무너뜨리고 넘어가게끔, 가능성의 씨앗을 이야기에 담아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한다. 나이 든 자들은 아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식이 부모를 넘어가게 하듯이, 다음 세대에게 우리를 넘어가라고 하는 것이 사랑이고,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 p.150 한편 동양의 이야기에서는 청동 거울이 자주 등장한 다. 고대에 청동 거울은 방울과 함께 샤먼의 주술 도구였다. 그 시절에는 거울이 가지고 있는 주술적인 힘, 현실을 비추어 환상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힘, 그렇게 현실을 바꾸는 힘을 실제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청동 거울에 깃든 힘은 다른 힘을 바탕으로 한다. 청동 거울은 유리 거울과 달리 매일 정성스레 닦아야 이미지를 비출 수 있다. 이렇게 매일같이 닦으며 쌓아가는 기원의 힘이 주술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꿈을 현실로 불러와 현실을 바꾸고 싶은 자, 자신의 참모습을 비추어 보고 싶은 자는 청동 거울을 닦듯 매일매일 마음을 닦아야 한다. --- p.172 이야기에서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과 수성(獸性)이 서로 넘나든다. 결국 거죽을 입거나 벗으며 넘나드는 상징을 통해, 인간 안에 신성과 동물적인 본성이 어우러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결국 모든 변신 이야기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 p.176 이 이야기에는 또 다른 매력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 소년이 소녀를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는, 남녀가 서로 바라는 모습을 비추어 보며 각성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녀들은 곰 아가씨인 동시에 곰을(곰이 왕자가 되어야 함을) 비추는 존재다. 소년은 내면 깊은 곳의 소녀를 만나기 전에는 난쟁이도, 금은보화도 찾을 수 없다. --- p.185 자신의 한계 혹은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살펴보면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내 모습이 아니라고 경계선 밖으로 던져둔 것이 나의 경계를 다져주는 셈이다. 이는 두려움만이 아니라 증오 혹은 미움도 해당된다. 싫어하는 것만큼 그 사람에 대해 잘 알려주는 지표도 없기 때문이다. --- p.199 고된 육체적인 노동도 자신의 참된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어야 그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노동만 하다 사그라드는 것이 인간의 참된 삶이 아니며,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삶에 있음을,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가치를 창조해내는 데 삶의 의미가 있음을 의미한다. --- p.212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읽힐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야기에 드러난 성 역할이나 세계관들이 너무 고루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들이 놓친 것이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야기는 이야기꾼의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 당시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다시 쓰이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옛날이야기는 여러 가지 변형이 있다. 다시 말해 옛날이야기는 반드시 다시 쓰여야 한다. --- p.221 사실 걸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은 인간이 수천 년간 쌓아온 상징과 이미저리가 층층이 쌓여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앞으로 만들어낼 새로운 이야기와 콘텐츠에 깔아둘 켜를 쌓기 위해서. 수천 년 넘게 공유해 온 집단 무의식의 흐름을 저어 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므로. --- p.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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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가 정말 옛이야기일까?
오랜 세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며 전해 내려온 이야기에는 인간이 수천 년간 쌓아온 상징과 이미저리가 층층이 쌓여 있다.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이야기이자 소재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래 동화를 읽어내야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랑 받아온 전래 동화에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메시지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이야기와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전래 동화 속에 우리가 우리 내면에 새겨진 길을 찾아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전래 동화를 새롭게 해석하여 여성의 성장과 역할, 가부장 권력에 대한 고찰, 현대 사회에서의 성별에 대한 역할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은 우리가 진짜 자신을 찾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게 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외계인에게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읽어주는 책은? 바로 전래 동화! 24년 봄, 넷플릭스의 화제작 〈삼체〉에서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오기를 바라는 무리의 지도자는 외계인에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알려주기 위해 책을 읽어준다. 바로 전래 동화 ‘빨간 모자’!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다른가 근본을 알려주는 방법이 바로 전래동화인 것이다. 〈삼체〉 속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고, 인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물리학교수 역시 늘 ‘전래동화집(Fairy Tales)’을 읽는다. 전래 동화는 문화를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인 동시에, 이제 우리가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위한 재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야기이다. 이야기에 설득된 사람은 이야기가 속삭여 준 생각을 갖게 되고, 그 생각은 행동을 끌어낸다. 함께 들은 이야기는 같은 행동을 끌어내기도 했다. 지금 전래 동화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니 전래 동화를 다시 새롭게 해석하며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야기를 따라 어떤 삶을 만들어왔는지 알고, 새로운 삶을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단순히 재미있고, 조금 낯선 이야기로서 전래 동화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내용을 낱낱이 밝혀서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내용과 이제 버리고 새로 써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한다. 옛 여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할 책도, 학교도 없었다. 불가에서, 물가에서, 혹은 뜨개질을 하며 전래동화 속에 지혜와 예언과 과거를 이야기에 담아 전달할 뿐이었다.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특히 여성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옛 여인들이 이야기 속에 숨겨둔 보물을 캐내자. 또한 저자는 전래 동화의 문학적 즐거움을 새롭게 조명하고, 동시에 전래 동화에서 배우는 인간 성장의 비결을 이야기한다. 이 시대, 우리가 여전히 옛이야기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성장의 비결을 아는 것.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전래 동화를 새롭게 쓰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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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동화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승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이 시대는 글자 그대로 읽기보다 재해석하는 힘이 중요해졌다.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는 여성의 고난을 피해라고 보기보다는 치유로, 회복으로 재해석한다.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분석한다는 면에서 창의적 글쓰기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전래동화, 젠더, 젠더화된 동화라는 세 분야를 아우른 빼어난 텍스트이자, 젠더의 관점에서 전래동화 입문서, 교과서, 전문서의 경계를 허문다.
한국 사회는 젠더=‘여성 문제’로 간주한다. 젠더에 관한 한 최악의 관점이다. 이 책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형성 과정이 어떻게 인류 문명의 토대가 되었는지 보여주고,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인식론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젠더의 지적인 지위를 높인다. 다양한 사례와 다방면에 걸친 저자의 박식함과 통찰 덕분에, 이 책은 여성주의와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참고문헌이 될 것이다. 여성주의는 세상을 설득하려는 세계관이 아니다. 이 책은 여성주의 시각의 우월성을 드러내므로, 온-오프 세계에서 여성의 ‘무기’로도 더할 나위 없다. 한편 도전과 전복의 연속인 이야기의 힘과 풍부한 콘텐츠는,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어른이 읽고 후대에 ‘전래(傳來)’할 의무가 있음을 증명한다. 성차별이 젠더 갈등으로 둔갑한 이 시대가 혼란스럽기만 한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권한다. - 정희진 (문학박사,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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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백설공주 이야기가 여자들끼리 “누가 누가 더 이쁘니?” 경쟁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 새로운 이야기 속에 살고 싶다면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의 표현을 빌면 오래된 이야기의 씨실과 날실을 가져와 우리의 이야기를 짤 시간이다. 내가 새롭게 짠 이야기는 내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 정혜윤 (PD, 『삶의 발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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