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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아가일여(我家一如): 나의 건축, 나의 삶 맥과 칸 건축에 대한 다섯 가지 물음 1. 묘지 봉분에 대한 물음 1) 영조문화(營造文化) 2) 풍류미학(風流美學) 2. 인간 행위에 대한 물음 1) 아가오장(我家五場) 2) 인생오장(人生五場) 3. 집의 어원에 대한 물음 1) 아가일여(我家一如) 2) 집은 사람이다 4. 형상 문자에 대한 물음 1) 형상팔경(形象八境) 2) 오간의경(五間意境) 5. 인체 중심에 대한 물음 1) 심장중심(心臟中心) 2) 오간도량(五間道量) 2부. 아가오장(我家五場): 설계 작업에 적용된 개념과 실제 삶/ 안식의 장 근본으로 돌아가는, 귀소헌 역사와 자연을 아우르는, 백학재 때와 곳이 늘 어진 집, 시선재 ‘유랑을 끝낸 집시들의 마지막 거처, 카치올리’ 마음속에 지은 집, 솔의 집 공허공간의 구축, 응백헌 앎/ 수행의 장 하늘로 향한 석양의 신전, 은평구립도서관 지상의 빛 천상의 빛, 흑빛청소년문화센터 나무의 꿈, 자혜학교 직업교육관 몸맘의 양식, 책마을해리 별마중달마중·부엉이화덕 바다로 가는 책담길 놂/ 창조의 장 세 가지 생각, 비전힐스골프클럽하우스 나비의 꿈, 눈의 집 풂/ 상생의 장 작업의 장, 에바스 화장품 공장 공간의 공유성, 대건(DG.) 빌딩 소통의 통로, 삼성동 주민자치회관 리모델링 빎/ 기원의 장 88서울올림픽 상징조형물, 평화의 문 몸과 마음과 얼의 집, 제일영광교회 생명이 솟는, 등불교회 에이블아트센터 부록/ 곽재환 건축론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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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집 짓고 거주할 권리는, 생태계 뭇 생물들처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그래서 지구촌의 모든 국가는 제 나라 국민 모두에게 최소한의 주거 공간을 제공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에 태어나 불공평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땅 문제다. 무엇보다 하나뿐인 지구를 대대로 물려받아 점유하며 자기 살림집 이외 땅으로 불로 소득을 취하는 자에게 정부는 적어도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토지 공개념을 적용해 무주택자를 위한 무상 주거공급용 특별 세금을 징수하고, 무주택자가 없는 세상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력이지만, 우선 집 문제만이라도 국가와 사회가 나서 해결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지구의 토지를 공유하며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평등 사회로 나아가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p.123 곽재환은 ‘집’을 짓지 않는다. ‘조가’는 그의 방식이 아니다. 그에게 집은 ‘사람의 삶을 인도하는 사상’이다. 집을 짓는다는 행위는 구조적 형상물을 만들기에 앞서, 사상을 구축하는 행위이다. 곽재환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이 함께 어우러진 ‘소우주’로서의 집은 다시 ‘수(數)의 영역’과 ‘시(詩)의 영역’으로 나뉜다. ‘수’가 셀 수 있는 영역으로 질서를 수립하는 합리의 세계라면, ‘시’는 셀 수 없는 영역으로 감동을 수반하는 신화의 세계이다.‘수’는 측량 가능한 법칙의 세계이며,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과학의 영역이다. ‘시’는 측량 불가능한 신화의 세계이며, 감정적이고 심미적인 예술의 영역이다. 건축이라는 행위가 수의 정신과 시의 정신이라는 이분법에 따라 기계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의 건축에서 두 정신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다른 면이 만나 하나로 되면서 풀 수 없게 얽혀 있다. 곽재환의 건축은 수의 영역과 시의 영역이 상호침투하여 만드는 변증법의 세계이다. --- p.328 건축가는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자신을 유지해가며, 환경을 만듦으로써 자신을 만들어가는 실체적인 것인 동시에 존재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러한 실체와 관계의 연관적 통일을 이루려는 그의 노력들은 건축이라는 행위를 통해 형성된다. 아울러 객관과 주관의 이원화된 개념을 거부하여 상호관계를 통한 균형의 유지를 표현해 절대적 자유를 누리고 무차원의 공간을 통한 공허공간 구축으로 삶의 깊이를 더욱 확장하고자 한다. 나는 고차원적 목적인 정신적 고찰력의 힘을 발전시키고 역동적인 균형의 맥락 안에서 절대적 자유와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의 건축을 계속 기대해본다. --- p.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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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한, 하늘을 담은 나의 삶 나의 건축
20여 년 전, 책을 내자며 출간 기획안을 가져온 이가 있었다. 고민 끝에 내가 해왔던 건축과 건축 철학에 대해 한번은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동의했다. 출간 준비를 하며 그동안 해온 많은 자료를 정리할 수 있었다. 지인들에게 글도 받고 머릿글까지 써 두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정으로 책 출간은 여의치 않게 됐다. 열심히 준비한 일이 무산되니 책을 펴낼 마음이 사라져버렸고, 그 자료들은 방치됐다.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도 일지 않아 한동안 글 쓰는 일도 회피했다. 그 후로는 간혹 피할 수 없는 원고 청탁에만 간신히 졸고를 발표했을 뿐, ‘시(詩)’와 ‘수(數)’를 조율하며 집 그리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런데 몇 해 전 이번엔 고창 책마을해리에서 책 농사를 짓고 있는 이대건 촌장이 출판 제의를 해 왔다. 이 촌장하고는 책마을해리 설립 전부터 서로 소통하며 지내 온 막역한 사이다. 어쩔 수 없이 접었던 마음을 돌려 모아 두었던 자료를 건넸지만 간단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 촌장은 책박사지만, 내가 펼쳐 놓은 건축 철학을 편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관망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갔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어느 날 불쑥 이 촌장이 출간 기획안을 가지고 나를 찾아 왔다. 그걸 살펴보다가 다시 시동이 걸렸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간간이 써두었던 글들을 선별해 엮기 시작했다. 정리하고 보니 많이 부족했지만 어쩌겠나? 아쉬워도 이것이 내가 지구별에 와서 깜냥껏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비록 넋두리 같은 글이라 할지라도 오롯이 내가 건축에 대해 꿈꾸었던 상념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년 전에 써 두었던 비건축인 지인들이나 나와 내 작업에 대해 인쇄매체에서 다룬 글을 함께 편집해 글 내용의 시차가 상당하다. 그러나 내 건축이 아직 그곳에 있듯 그 글들도 그렇게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해온 작업이 크게 내세울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늘 내 건축에 하늘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를 고심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을 담고자 하는 나의 생각을 어느 누구에게 드러내거나 건축주에게조차 내 의도를 설득하려고 시도한 적은 없다. 하지만 건축물의 규모가 크든 작든 또 어떤 용도이든 간에, 하늘은 언제나 내 건축의 마음속 깊은 핵심 주제였다. 그것은 마치 그 건축물에 하늘을 통해 고유한 혼을 심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지속적으로 건축 공간에 하늘을 담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하늘을 향해 기립하거나 새의 날개처럼 솟구치고자 했고, 또 연처럼 날아올랐다. 때론 별이 가득한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물 위에 담기도 했다. 나의 건축에는 하늘을 향한 지향성으로 가득하다. 이를 표현하는 데는 나의 두 가지 시각, 즉 “소요(逍遙)”와 “응시(凝視)”의 의지가 내재한다. 이는 인간 행위의 동(動)과 정(靜)에 대한 나의 생각과 행동 양태이며, 내 건축을 형성하는 텍토닉(tectonic)의 심리적 요소이다. 결국 내 모든 건축 작업은 나의 자화상이다. 올해는 대학을 졸업한 지 50년 되는 해이다. 또 개인사무실 ‘맥(MAC, MESSAGE IN ARCHITECTURE TO COSMOS)’을 설립한 지 37년, ‘칸(CAHN)’을 결성한 지도 18년이 지났다. 이 책은 잠 못 이루는 밤, 사무실에서 혹은 서재에서 끄적거렸던 운문과 산문 그리고 그림들과 나의 삶 속에 투영된 건축, 또 건축 속에 투영된 나의 삶 이야기가 나의 작품과 함께 2부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건축이라는 장르가 친근하게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 또 건축과 삶이 하나가 될 때 ‘아가일여(我家一如)’가 완성된다는 내 건축에 대한 생각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에필로그 나는 나의 모든 건축에서 한가지 구축 재료나 일관된 구법 또는 개성적인 조형 언어를 구사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재료나 통일된 조형언어를 의식적으로 경계한다. 내가 설계하는 집은 내가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 집을 사용할 대상을 위한 것이며, ‘나’가 아닌 ‘너’와 ‘그’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 집과 삶이 하나가 되는 ‘아가일여(我家一如)’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념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에도 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 건축에 중심을 짓고 하늘을 짓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일생 자화상을 그리다가 간다고 하는데, 나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건축은 늘 한가지 목소리로 부르는 꾀꼬리 노래는 아닐 것이다. 혹자는 나의 건축에 중후함이 있다거나 낭만이 있다, 혹은 한국적 느낌이 난다거나 무엇인지 모를 아우라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다만 새로운 자연을 짓거나 집을 사람처럼 짓고자 할 따름이며, 그저 자연을 닮고자 할 뿐이다. 자연이 어디 한가지 모습뿐이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