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여사록
2. 칸나·X·타나토스 3. 중랑교 부록 풍류 서린 산하 지리산학 작품 해설_고인환 작가 연보 |
李炳注, 호: 나림
이병주의 다른 상품
Jonghoi Kim,金鍾會
김종회의 다른 상품
|
009p_ 이처럼 내겐 묘한 버릇이 있다. 집안에 쌀이 떨어지고 연탄이 없어졌는데도 그런 걱정은 안 하고 먼 나라에 대한 엉뚱한 걱정에만 열중한다. 비아프라의 경우에도 그랬다. 방글라데시 의 경우에도 그랬다. 이를테면 부질없는 센티멘털리즘이다. 먼 나라의 그러한 비극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으면 삶에 지친 어머니의 모습도, 실직한 아우의 초라한 모습도 환상의 한 토막처럼 실감을 잃는다. 보다도 그러한 지구적인 고민에 스스로의 고민을 얹어놓으면 어쩐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무슨 대견한 기적처럼 느껴지곤 한다.---여사록
064p_ 어떤 날 또는 어떤 일을 기록하기 위해선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을 찾아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냉장고에서 언 그런 얼음이 아니라 북빙양北氷洋깊숙이 천만년 침묵과 한기로써 동결된 얼음처럼 차가운 말이라야 한다. 기억의 부패를 막기 위해선 그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칸나·X·타나토스 090p_ 팽창하는 도시가 번지라고 하는 정연한 구획을 넘쳐 무번지의 시가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에 생명이란 것이 스스로를 영위하기 위해서 미美와 추醜, 형식과 반형식은 아랑곳없이 몸부림치는 샘터를 역력하게 볼 수가 있다. 이런 감상을 바탕으로 나와 박 군은 그 목로술집에서 주에 한 번꼴로 황탁한 술을 마시게 되었던 것이다. ---중랑교 |
|
이병주의 단편을 읽다 보면 수필인지 소설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분명히 이병주 자신이 겪은 일화를 사실로서 기록한 듯한데 형식은 소설이니 말이다. 그것은 그가 문학가이되 기록가로서의 강한 의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이념이 좌와 우로 나뉘어 극렬히 분열되었던 시대에 《국제신문》 주필이었던 그의 이력이 소설이라는 장르에서도 큰 영항을 미쳤으리라. 여기, 그의 작품 전체에 걸친 공통분모, 기록이면서 소설, 소설이면서 기록인 글 세 편이 또 한 번 묶였다. 〈여사록〉, 〈칸나·X·타나토스〉, 〈중랑교〉가 바로 그 단편들이다.
타국의 비극에 마음을 빼앗긴 자 〈여사록〉에는 얼핏 보기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등장한다. 집안에 쌀이 떨어져도, 아우가 실직해도, 어머니가 지친 모습을 보여도 아랑곳없이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타국의 정치적 혼란을 걱정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 남자가 계속 한심하기만 하다면 소설은 시작될 수 없었을 테다. 그는 30년 전 진주농고 교사로 근무했던 동료들과 삼일절에 회합을 하게 된다. 그들이 근무했던 시대는 분단되고 얼마 안 돼 나라 전체가 좌우로 극렬히 분열하던 시기였다. 이념 갈등은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학생이 교사와 동료 학생을, 교사가 학생과 동료 교사들을 불신하고 더욱 극으로 몰아붙이는 사태가 비일비재했다. 주인공만 해도 좌익 학생들의 스트라이크를 저지하려던 우익 학생 두 명의 정학을 막으려다 동료 교사들과 반목하는 사건을 겪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배경으로 다시 회합하게 된 옛 동료들은 이제는 각기 다른 직업 현장과 처지에 있다. 이념 갈등이 비교적 약해지고, 나이도 지긋해졌고,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으니 이들의 회합이 즐겁고, 반갑고, 아름답게만 이루어질까? 옛일을 떠올리며 동료들의 모습을 관조하던 주인공이 조마조마해지는 순간이 있었으니, 과거는, 더욱이 이념 갈등으로 저마다 상처 입었던 과거는 순전히 과거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또한 집안 걱정은 안 하고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의 정국 혼란을 걱정하는 화자의 한량스러움은 꼭 한량스러움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북빙양 얼음 같은 언어를 필요로 하는 자 〈칸나?X?타나토스〉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꼭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날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그 기록의 언어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이라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얼음이 아니라 북빙양의 얼음같이 차가운 언어라야 한다는 것이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말이란 대체 무슨 언어일까? 주인공의 직업이 부산 《국제신보》의 주필이라는 사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고인환 문학 평론가에 의하면 “인생의 비극을 한 방울의 감상도 섞이지 않은 상품(뉴스감)으로 만드는 글쓰기,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회복하기 이전의 글쓰기, 이병주로선 이 시기를 이러한 방식으로 되살릴 필요가 있었다”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기일은 주인공을 곤경에 처하게 했던 정치범 조봉암의 사형 집행일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록가로서의 이병주의 개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은 ‘칸나’라는 꽃과 어우러지면서 문학으로 거듭난다. 이날 신문사 주필의 책상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꽃을 선물 받는다. 평생 힘들게 모은 돈을 고아원에 기부하고 죽은 양공주 글로리아란 여성에 대한 기사에 감명받은 한 낯모를 여인이 선물한 것이다.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했던 정치범 조봉암의 죽음, 평범했지만 고단했던 한 생을 살았던 아버지의 죽음, 고단했을 삶을 기부함으로써 정리한 어느 창녀의 죽음……. 이들의 죽음이 칸나 꽃이라는 음탕한 색과 자태와 어우러지고, 꽃 항아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면서 이날에 대한 ‘기록’이 ‘문학적’으로 절정에 이른다. 무번지의 거리를 그리워하는 자 주인공에게 ‘중랑교’는 도시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다리이되 의미만은 남다르다. 절친한 벗 박희영과 단골로 다니던 목로술집이 있는 곳이자 그의 무덤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량교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곧잘 그곳에서 어울려 다녔던 이유는 “주변 일대가 전부 무번지 소시가인 그 기분, 사람들의 활기와 생활하는 사람들의 권태로써 가득 찬 곳”이었기 때문이다. 박희영이 들려주었던 중랑천에서 삶의 수단을 만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주인공은 아련한 여운을 느끼고 만다. 여기에서 고인환의 말처럼 “경직된 이념을 타자화하고 신념을 인간화하는 방법”이며, “이병주 문학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정서이자 정치적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진주와 지리산을 그리워하는 자 정신적 요람이랄 수 있는 진주와 그곳의 영고성쇄를 그대로 견뎌낸 정자나무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한 〈풍류 서린 산수〉, 지리산을 파헤쳐 완전히 데이터화한 〈지리산학〉은 그야말로 “기록으로서의 문학”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다. 면적, 위치, 고원, 폭포, 재, 산채, 산정, 관련 인물과 전설 등 지리산과 관련한 모든 데이터를 한데 모아놓고는 매천의 절명시 중 유독 인간적 향취가 묻어나는 구절(인간으로서 글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새삼스러운 느낌이다)에 공감한다. 인간화된 신념에 마음을 빼앗긴 이병주 소설의 정서를 알게 되는 지점이다. 부록 두 편은 얼핏 보면 ‘그저 기록’이되 그 이면에 쉼 없이 흐르는 시심(詩心)은 두 작품을 더없는 문학을 만들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