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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이를 진짜 사랑한다는 것은
1장. 어른 출입 금지 구역 어쨌든 창조경제 열두 살의 연애 특이한 인간 광물 표본 200개 이름에 동그라미가 세 개인 아이 부모님이 누구니?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또 죽이고 말았다 담임의 은밀한 비밀 사실 이 얘기하려고 2장. 어린이도 한 몫의 인생입니다 울퉁불퉁한 세상을 껴안고 사는 너에게 꽃멍 100점을 못 받은 어린이가 포기해야 하는 것 그저 그런 선생님 님아, 그 선을 넘지 좀 마오 숙제는 도주범이 아니야 벽돌 무너뜨리는 아이 모든 게 웃기는 일이다 3장. 1인칭 선생님 시점 선생이 된 게으름뱅이 애도 안 낳아본 주제에 모글리의 기적 어찌 됐든 남는 장사 죄송하지만 죄송하단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다음 번엔 나도 꼭 돈가스를 춤추는 고래 메이커 서른넷, 스물다섯 4장. 그렇게 왁자지껄 우리는 어른이 된다 우리 사이는 이렇게 익어가고 어쩌다 거기에 삶이 담겨서 가장 깊고 넓고 맑고 묽은 저는 당신을 때린 적이 없습니다 오늘도 학교는 정상 영업 중 모든 날이 좋았다 한발 물러설 용기 학교에 민원 전화를 하기 전에 생각해 볼 것 |
내 기준은 이렇다. 일단 당연히 재산적 가치는 없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이 선물을 받은 사실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기사로 났을 때 어떤 댓글이 달릴지 빠르게 상상해 보는 거다. 대중들은 그들이 고등학생 때 아주 싫어했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갖고 호박벌보다도 무해한 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조차 악플을 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면 그 선물은 받아도 된다. 열 살 언저리의 아이들이 그 작은 손으로 건네주는 걸 거절하는 일은 언제나 고역이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의 선물이 차라리 꼬질꼬질하길 바란다. 그게 나 같은 보통의 선생과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유일한 길이니까.
--- p.19 보민이와 찬우는 쉬는 시간이면 서로의 오른손을 부여잡고 하나도 치열하지 않은 팔씨름을 해댔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성이가 그 곁을 지나며 “어? 너네 힘 주고 있는 거 맞아?” 하고 눈치 없는 질문을 하면 그 애들은 괜스레 서로의 오른손을 더 꾹 잡으며 “으응” 하고 거짓부렁을 남발했다. 그러다 손을 잡은 시간이 3분이 넘어갈 즈음, 찬우가 스윽 손등을 내리며 보민이에게 져주는 거다. “얼씨구?” 난 교탁에서 그 로맨틱한 패배를 직관하며 외로이 혈당스파이크를 겪어내야 했다. 그네들도 커플이라고, 당시 연애를 하고 있지 않던 나는 괜히 혼자 부아가 북북 치밀었다. --- pp.25~26 내가 우리 반 유일한 생명의 마지막을 고하자마자 아이들의 성화가 빗발쳤고 교실에는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게 꿈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제발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팥 전원 사망 사건은 아이들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던지 딱 한 달 후, ‘우리 반에서 병아리를 키우면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주제로 한 아이는 이런 글을 썼다. 만약 우리 반에서 병아리를 키우면 어떻게 될까? 첫째, 병아리가 죽을 수 있다. 우리 반은 이미 다 같이 팥을 죽인 사건이 있다. --- pp.64~65 아직은 어린아이들이지만, 그들의 모든 행동에 ‘아직 어려서’라는 딱지가 유효한 건 아니다. 아이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차마 무엇이 문제일지 겁이 나서 들춰보고 싶지 않을 뿐이라는 마음을 인정하고 담대하게 문제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나는 그때 민건이 어머님께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고, 그 후 학교를 옮겼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애가 친구들을 향해 식칼을 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 p.89 그때 그 아이들에게 남은 건 결국 친구를 이기고 세력을 점령한 기억과 무리에서 쫓겨난 상처밖에 없을 거다. 부모들이 서로 눈을 흘기고, 흉을 보는 모습도 생생히 보고 배웠을 것이다. 결국 아이들이 배우는 건 부모의 삶이니, 그 애들은 그 모습을 고스란히 삶에 새겼을 거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어쩌면, 그 일을 통해 싫은 아이와 그럭저럭 지내는 법을 배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선을 넘고 규칙을 어기는 사랑만 없었다면 말이다. --- p.123 “너는 머릿니가 있으니까 따로 씻자”라는 말을 면전에 대고 할 만큼 못되진 않았던 나는, 그러나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을 만큼 똑똑하지도 못했다. 나는 어설프게 “선생님 방 화장실 구경해 볼래? 주애 오늘 활동 열심히 했으니 상으로 선생님 샴푸 쓰게 해줄게!” 하며 말도 안 되는 말을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그리고 그 애를 따로 빼내어 머릿니 샴푸로 머리를 감기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주고, 드라이기로 그 애의 머리를 말릴 때 하얀 세면대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것들을 나는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했다. 머리를 감기는 내내 애를 낳아봤냐고 소릴 질러댔다던 그 애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 pp.156~157 불편한 일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고 안 되는 일에 좌절했다가 극복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교육이 아닌가. 구구단만 배울 거면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보면 될 것이고 오직 사랑만 받을 거라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만일 텐데 굳이 학교에 책가방을 둘러메고 오는 건 명백히 그런 걸 배우기 위함이다. 건강한 밭에는 벌레가 살고 우정을 쌓다 보면 때로 눈 흘길 일이 생기며, 몸이 깨끗해지려면 싫어도 똥꼬까지 구석구석 씻어야 한다는 삶의 지저분하고 지루한 진리들 말이다. --- p.183 “선생님, 이제 다른 반 수업하러 가지 마세요.” 세상에, 살다 살다 이런 깜찍한 단속은 처음이다. 내 존재와 말과 행동에 모조리 무관심해 보이던 아이들이 맞나 싶다. 곧이어 다른 아이가 또 다가온다. “선생님, 재현이가 선생님 다른 반 가신 줄 알고 엄청 찾았어요.” 재현이라 하면,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모든 생명력을 써버린 뒤 수업 시간에는 넋이 반쯤 나가 있는 녀석 아니던가. 그래도 나름 자기 담임이라고 내가 없는 동안 날 찾았다니 기특하다. ‘이눔 시끼, 들으라는 영어 수업은 안 듣고’ 하는데 입꼬리가 씰룩댄다. 아, 이렇게 또 20여 명의 내 새끼가 생기나 보다. --- p.216 최근에 기똥찬 말을 들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 자녀는 사회에서 상처받으며 독학한다’는 거였다. 맞는 말이다.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귀하게 키우려 안간힘을 써도, 아이는 종국에 이 거친 세상을 사는 법을 배우고야 만다. 그걸 가정과 학교에서 배우느냐, 혹은 사회에서 상처받으며 독학하느냐의 차이일 뿐. 아이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게 하지 않겠다는 부모의 욕심은 한동안 아이의 고양감을 드높일 테지만, 그 애는 ‘사는 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 부모가 꾸며준 세상과 진짜 세상 사이의 낙차를 겪어내야 한다. --- p.260 교사에게 모든 걸 ‘해달라’고 요구하지 말고, 아이가 할 수 있도록 교육하길 바란다. 직접 교육하기 힘들면 교사에게 가르칠 권한이라도 허락하길 빈다. 목이 마른데 물이 없으면 선생님께 얘기하라고 가르치고, 체육 수업 때 하는 활동이 너무너무 힘들면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힘든 일을 대신해 주는 게 사랑이 아니다. 언제까지 대신해 줄 건가. 스무 살? 쉰 살? 부모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평생 대신해 주거나 적당한 시기에 가르치거나. 만약 후자를 선택할 거라면 지금이 적기다. 심지어 어린이들은 말도, 자전거도, 삶의 태도도 훨씬 빨리, 잘 배운다. 아이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당신의 자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유능하다. --- pp.264~265 |
“참견쟁이 어른들은 들어오지 마세요”
맘카페, 커뮤니티에서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한 화제의 도서 출간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글이 있다. ‘학교에 민원 전화를 하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라는 제목의 글로 여기에 등장하는 학부모들의 민원은 가히 충격적이다. “우리 애는 매일 세 번씩 칭찬해 주세요”, “우리 아이는 예민하니 말씀하실 때 각별히 조심해 주세요”, “장염에 걸렸으니 죽으로 먹여주세요”, “선생님, 프로필 사진이 부적절하네요. 내려주세요”,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시나봐요”,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담임 휴대폰 번호 알려주세요”, “교사 생활 못 하게 만들겠습니다” 등등. 이런 민원이 현재 대한민국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는가라는 공방과 함께 ‘학부모 민원이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어른들의 과도한 사랑이 이렇게 아이들을 망치는 것’, ‘부모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글’이라는 공감과 함께 유명 맘카페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이 책 『어린이라는 사회』의 저자인 이세이 선생님이다. 그녀는 10여 년간 아이들과 생활하며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를 꾸준히 고민해 왔고, 마침내 “어린이를 사랑하겠다는 굴침스러운 노력을 내려놓았다”고 고백한다. 덧붙여 아이가 가정의 품에서 벗어나 어쩌면 냉정할지도 모를 사회로 나아가는 그 길목에 서 있는 존재가 교사이며, 학교는 가정과 사회의 완충 지대이자 세상을 대하는 법을 연습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참견쟁이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사회에 들어오지 말라”는 따끔한 일침을 전한다. 아이들은 타인과 섞여 살 수밖에 없다. 모든 아이는 자기 삶의 주인공이지만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다. 예민한 아이는 부딪치며 둥글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하고, 칭찬은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공평하게 분배하는 게 아니다. 칭찬을 받고 싶다면 노력을 통해 성취해야 한다. 교사의 휴대폰 번호는 개인 정보다. 세상을 아이에게 맞추라고 소리치기 전에 아이가 세상에 맞춰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일 것이다. “오늘도 학교는 정상 영업 중입니다” 덜 자란 어른과 다 자란 어린이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며 만들어낸 가장 완벽하고 조화로운 교실 이야기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믿고, 존중하고 사랑한다. 부모의 사랑은 뜨거운 태양과 같아서 아이의 밝은 면만 온종일 비추고 있다. 그래서 부모가 기대한 것과 다른, 즉 아이의 뒷면을 좀처럼 보기 힘들어한다. 아이의 잘못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 애가 그럴 리 없는데”, “집에서는 안 그러는데…” 같은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이유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장된 콩깍지는 종종 어린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방해한다. 이 책 『어린이라는 사회』에는 10년 차 교사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모습이 시시각각 펼쳐진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순수와 낭만으로만 가득한 이야기를 상상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의 사회는 현실적이고, 치열하고, 때론 냉혹하기까지 하다. 어른들의 눈에 불완전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아이들이 겪어내야 하는 온전한 삶이다. 어린이는 미숙하다. 미숙한 것이 당연한 존재다. 매일 고군분투하며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아이를 위해 어른들이 줄 수 있는 사랑은 넘어지지 않게 업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넘어질 자유를 보장하고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다. 적당한 거리와 적절한 온기. 이것이야말로 아이의 성장을 위한 진정한 배려이자 의무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