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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제1부 운산에서 얻은 교훈제1장 중공군과의 첫 교전제2부 쓰라린 날들제2장 인민군 남하제3장 관심 밖의 나라제4장 김일성과 스탈린의 후원제5장 한국군의 전비태세제3부 미국의 참전제6장 워싱턴의 참전 결정제7장 아서 맥아더제8장 핑키 맥아더제9장 맥아더의 정치적 행보제10장 미군과 인민군의 전비태세제11장 월튼 워커와 에드워드 알몬드제4부 두 대륙 간의 정치제12장 미국 정세와 국방 예산제13장 딘 애치슨과 조지 케넌제14장 해리 트루먼제15장 중국 문제와 미국 정치제16장 중국 국공내전제17장 차이나로비제5부 북한이 던진 마지막 주사위제18장 낙동강방어선전투제6부 전세 역전제19장 맥아더와 인천상륙작전제20장 서울 진격과 원산상륙작전제21장 예고된 충돌제7부 38선을 넘어 북으로제22장 국무부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제23장 중국의 경고제24장 마오쩌둥과 스탈린제25장 웨이크 섬 회담과 맥아더의 오만제26장 최종 진군제8부 중공군의 공격제27장 그림자 없는 유령제28장 폭풍 전야제29장 무너지는 전선제30장 덫제31장 시련의 길제32장 절망과 기적제33장 끔찍한 현실제34장 침묵하는 영웅들제35장 대혼란제36장 새로운 국면제37장 매슈 리지웨이와 전쟁의 전환점제9부 중공군과 싸우는 요령제38장 이름뿐인 서울 재탈환제39장 원주에 감도는 전운제40장 1차 쌍굴 전투제41장 2차 쌍굴 전투제42장 달라진 준비태세제43장 원주 전투제44장 지평리 전투와 지휘권 다툼제45장 크롬베즈기동부대제46장 맥기 언덕제47장 지평리와 원주 전투 이후제10부 장군과 대통령제48장 불붙는 갈등제49장 위태로운 해임 결정제50장 청문회로 옮겨간 전투제11부 전쟁의 결말제51장 쓸쓸한 퇴장제52장 승자 없는 전쟁제53장 그 후의 변화에필로그저자의 말감사의 말발문주참고문헌옮긴이의 말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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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alberst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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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우리 현대사의 블랙홀로 남아 있는 한국전쟁의 진실을 조명한 가장 탁월한 보고서- 눈을 뗄 수 없는 사건의 전개와 다큐멘터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생생한 묘사- 핵심을 파고들어 사건과 인물의 고리를 찾아내는 방대한 조사와 치밀한 추적한국전쟁은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한국전쟁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가물가물하다. 미국은 애초에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기억’해 왔다. 공감 가는 표현이었기에 ‘잊힌 전쟁’은 한국전쟁을 달리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미국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 사이에 어설프게 샌드위치처럼 낀 한국전쟁에 대해 처음부터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한국전쟁은 또한 미국 입장에서 ‘잘못 이해된 전쟁(misunderstood war)’ ‘현대사에서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최초의 전쟁’, ‘지난 세기 미국의 전쟁사에서 가장 부당한 취급을 받은 전쟁’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가장 추운 전쟁(the Coldest War)’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은 또 미국인과 미군 병사들에게 ‘안개 속 같은 전쟁’이었다. 사기는 저조했고, 그 누구도 ‘왜 한국에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속 시원하게 답을 주지 못했다. 규모 등 중공군의 정체에 대해 미국은 너무나 무지했다. 일반 국민은 한국전쟁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관련 기사는 ‘10페이지에나 나오는 뉴스(page ten news)’였다.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전쟁에 지친 미군 병사들에게 한국전쟁은 ‘무승부를 위해 죽어야 하는 전쟁(a war to die for a tie)’이었다. 미국이 이런 원치 않는 결혼 같은 전쟁에 참전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중국 내전이 모택동의 승리로 끝나자 ‘민주당 책임론’이 거셌다. 1932년부터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중국을 상실한 책임을 만회할 계기를 한국전쟁에서 발견했다. 일본도 중요한 변수였다. ‘봉쇄의 아버지’로 유명한 조지 케넌(1904~2005)이 인민군의 남침에 미국이 참전으로 대응한 것을 찬성한 이유도 일본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이 개입하지 않아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되면 일본이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맥아더는 영웅인가 악당인가? 『콜디스트 윈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맥아더에 대해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맥아더는 영웅인가 악당인가’라는 논란이 있다. 태평양 전쟁 승리의 주역, 통찰력 있는 전략, ‘일본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릴만한 일본 ‘총독’으로서 남긴 정치적 유산, 카리스마, 결단력, ‘인천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인천상륙작전의 기적 등등 그가 영웅이라는 근거는 많다. 동시에 독선, 거만한 성격, 트루먼 대통령에게 경례도 하지 않는 무례함 등이 ‘악당’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책 저자에게도 맥아더는 ‘악당’이다. 맥아더는 중국 본토 공격, 대만군 활용, 필요하면 핵무기 사용까지 주장했다. 1951년 4월 그를 해고한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 덕분에 한국전쟁이 제3차 대전으로 확전(擴戰)되지 않았고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 미래에 미중전쟁이 실제로 발발한다면, 또 그 결과가 미국의 악몽 같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맥아더가 옳았다. 그때 중국을 제압했어야 했다.” 미국 정치사에서 대략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국제정치와 전쟁만큼은 초당파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민주·공화 양당의 갈등은 극에 달했으며, 보수주의 성향의 맥아더는 미국 내 갈등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했다. 맥아더는 논쟁적 인물이다. 북한군 침략 저지와 통일에 관한 한 맥아더는 확실한 후원자였다. 개전 직후 그는 “한국 전체를 잃게 됐다”고 낙담했다. 할 일은 미국인들을 질서 있게 철수시키는 것밖에 없는 듯했다. 하지만 미군의 참전이 결정되자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임무로 인민군을 쓰러뜨리는 것, 두 번째 임무로 한반도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으로 삼았다. 맥아더에게 ‘통일된 민주국가 한국’은 하나의 토템이었다. 맥아더는 북한군 저지와 남북통일을 대권 도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역사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저자는 이렇게 썼다. “루스벨트는 맥아더보다도 맥아더를 (대통령직에 대한 그의 이글거리는 야망을) 더 잘 이해했던 인물이다.” 저자는 맥아더에게 박했지만, 트루먼에 대해서는 후하다. 미국의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은 당시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괜찮은 대통령으로 평가됐다. 『콜디스트 윈터』에 나오는 트루먼의 모습은 이렇다. 임전무퇴의 싸움닭 기질에 결단력이 뛰어났다. 얼핏 보기에는 보잘것없었지만, 겪어보고 알면 알수록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하는 애서가였다. 현실을 외면하는 일부 트루먼의 반대 세력들은 그가 정말로 실력 있는 정치가라는 사실을 그가 백악관을 떠날 때까지도 몰랐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유는 미국의 입맛이 딱 맞았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기독교 신자였고, 영어를 잘했고, 워싱턴에 알려진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제자인 이승만을 “미래 한국의 독립을 위한 구세주”로 표현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보기에 남한에 들어선 이승만 정부는 부패하고 무능력했다. 저자는 이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한국에서 뭘 해야 하지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한국전쟁은 ‘제1차 미중전쟁’인가? 임진왜란(1592~1597), 청일전쟁(1894~1895), 중일전쟁(1937~1945)은 모두 ‘중일전쟁’이라는 통칭으로 한데 묶을 수 있다. 제1차, 2차, 3차 중일전쟁이라는 시각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세 전쟁 모두 동북아 국제질서의 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전쟁을 ‘제1차 미중전쟁’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사활적 군사적·국제정치적 문제에 필요한 답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단연 『콜디스트 윈터』가 필독서다. 한국전쟁은 내전이나 대리전으로 분류되지만, 미국과 중국이 직접 맞붙은 전쟁이기도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의 부상, 대만 문제와 세계 패권 문제가 걸려 있다. 『콜디스트 윈터』도 미국이 마지못해 패권국이 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미국은 결코 패권국이라는 ‘감투’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미국은 자신이 제국을 운영해야 한다는데 확신이 없었던 미국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서서히 자신의 새로운 책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수행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열매만 취하겠다는 것이다. 국제관계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경제 패권과 ‘세계 경찰 노릇’은 함께 가야 하는 전형적인 비트레이드 오프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고립주의를 표방했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경제 패권과 고립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한국전쟁에 대해 믿을 만한 책은 없는가? 『콜디스트 윈터』가 믿을 만하다. 저자는 하버드대 학생신문인 ‘하버드 크림슨’의 편집인 출신이다. 준비와 집필에 10년 걸린 대작이다. 이 책은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와 함께 한국학(Korean Studies) 분야 필독서 톱3 혹은 톱5로 손꼽힌다. 『콜디스트 윈터』를 위해 저자는 100건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참전용사 중 상당수는 한국전쟁을 전공하는 아마추어 사학자였다. 『콜디스트 윈터』를 그들의 목소리를 집대성한 책으로 볼 수도 있다. 저자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20여 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는데 그 중 『최고의 인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 1972)』은 아이비리그 출신의 헛똑똑이들이 미국의 국익을 해쳤는지 그 과정을 보여줬다. 거짓에 맞서는 핼버스탬의 입바른 보도 때문에 고생한 케네디 대통령은 그를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라고 뉴욕 타임스에 압력을 넣었다. 1955년 하버드를 졸업한 핼버스탬은 유명 매체에 입사하지 않고 민권운동의 태동을 취재하기 위해 미시시피로 갔다. 당대 최고의 기자, 작가, 역사가로 평가받은 그는 현장과 분석이 융합된 저널리즘의 스탠더드를 정립했다. 핼버스탬은 미국인들이 베트남전과 미국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핼버스탬 때문에 졌다’는 과장에는 진실이 담겼다. 저명 저널리스트인 조지 패커는 핼버스탬을 ‘리버럴 반공주의자’로 분류했다. 사회주의나 반미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전쟁은 해피엔딩으로 끝난 전쟁일까?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역사의 의미는 계속 바뀐다. 오늘이 어제와 내일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 저자는 수많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인터뷰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가기 싫었던 나라였다. 한국전쟁의 기억도 끔찍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발전으로 참전 용사들은 젊은 그 시절 자신들이 한국의 자유를 지킨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 특히 인용할 만한 뭉클한 대목 두 개가 있었다.- “한국에서 싸운 미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자국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또 그들은 한국에 있을 때 특별히 한국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국가적 성공은 그들과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희생에 늦게나마 가치를 인정했다. 한국이 성공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정당성과 명예를 그들에게 부여했다.”- “참전 당시에는 끔찍하게도 한국을 싫어했던 이들 대다수는 다시 한국을 찾은 후로는 새삼 이 나라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우선 그들은 남한이 몰라보게 큰 발전을 거듭하면서 현대적인 면모를 갖춘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또한 사람들이 보여준 감사의 태도 역시 그들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었다. 그들이 보여준 태도는 고국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따스한 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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