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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을 내면서 · 4
서문 비둘기빛 인연 · 7 제1부 금아 명수필 10선 : 피천득 수필 · 12 인연 · 15 오월 · 20 봄 · 22 플루트 플레이어 · 25 나의 사랑하는 생활 · 27 종달새 · 31 구원의 여상 · 34 꿈 · 38 은전 한 닢 · 40 제2부 금아 명문장 감상 : 김정빈 1.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 가락지 · 44 ― 청초, 젊음, 봄, 희망 2. 녹음이 짙어가듯 그리운 그대여 · 62 ― 엄마, 서영이, 여인, 사랑 3. 조약돌과 조가비, 그러나 산호와 진주 · 87 ― 인연, 작은 것들의 소중함 4. 진주빛, 혹은 비둘기빛 · 112 ― 온아우미溫雅優美, 멋과 아름다움 5. 토스카니니 같은 지휘자 밑에서 플루트를 분다는 것 · 131 ― 겸허, 소욕지족少欲知足 6. 백합이 시들어갈 때 · 155 ― 세월, 고통, 아쉬움 7. 우리 아기 백일은 내일 모래예요 · 184 ― 너그러움, 유머, 위트 8. 종달새는 푸른 하늘을 꿈꾼다 · 204 ― 자유, 이상, 민주주의 후기를 대신하여 금아 선생님께 · 229 |
皮千得. 호 : 금아琴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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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난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 경험, 자연 관찰, 또는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듯이’ 수필은 씌어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芳香을 갖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처럼 무미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언제 찰스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덕수궁 박물관에는 청자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고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하여 나의 마지막 십분의 일까지도 숫제 초조와 번잡에 다 주어버리는 것이다. ---「제1부 금아 명수필 10선 : 피천득_ 수필」중에서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 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이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三浦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꾸 시로가네芝區白金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가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갖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 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하였다. 나는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데르센의 동화를 주었다. 그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동안 나는 초등학교 일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도 같이. 그때 그는 성심여학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여학원 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셸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코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이나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도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돼서 무엇보다도 잘됐다고 치하를 하였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20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다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이 있는 집은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나와 아사코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제1부 금아 명수필 10선 : 피천득_ 인연」중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우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과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제1부 금아 명수필 10선 : 피천득_ 오월」중에서 지금 생각해도 아까운 것은 20여 년 전 명월관에서 한때 제일 유명하던 기생이 따라 주던 술을 졸렬하게 안 먹은 것이요, 한번 어떤 친구가 자기 서재 장 안에 비장하여 두었던 술병을 열쇠로 열고 꺼내어 권하는 것을 못 받아 먹은 일이다. -피천득, 「술」 나 같았으면 이런 경우 핑계를 ‘졸렬’에 두지 않고 ‘몸’에 두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결코 금아 선생 같은 명수필을 쓸 수 없다. 졸렬에는 겸허가 있지만 몸에는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이 기생과 친구의 술을 못 마셨던 것은 졸렬 때문은 아니고 실제로는 몸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 선생을 뵈었을 때 선생은 한분순 시인과 나를 롯데 호텔 커피숍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때 우리는 커피 석 잔을 시켰지만, 선생은 당신의 커피를 우리에게 반씩 따라 주셨다. 커피를 조금만 마셔도 잠을 못 주무신다는 거였다. 그런 체질로 술 앞에 어찌 ‘작아지지’ 않을 수 있으랴. 다만 그 작아짐을 유머의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나는 선생을 부러워한다. 나 또한 선생 못지 않게 술 앞에 ‘자꾸만 작아지는’ 체질을 갖고 있다. 문제는 내가 그걸 선생처럼 유머로 승화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p.207 「김정빈- 우리 아기 백일은 내일 모래예요」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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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
―청초淸楚, 젊음, 봄, 희망 김정빈(소설가, 시인) 1 수필은 청자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난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피천득, 「수필」 별과 사막, 사막 속의 우물, 장미와 왕자.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이것들에 영원한 신비를 부여하여 후대의 동화 작가들을 절망시켰거니와 선생은 이 문장으로써 수필을 비유할 만한 격조있는 이미지들을 다 사용함으로써 후대의 수필가들을 절망에 빠뜨려버렸다. 붓, 벼루, 먹, 종이는 문방사우이거니와 이는 문학에서 시와 소설과 희곡일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영웅도 거룩한 성자도 아닌 우리 범속한 이들의 삶은 문방사우 옆에 놓인 조촐한 연적 같은 것. 그래서 슬퍼해야 할까. 아니다, 삶은 큰길을 잠깐 벗어난 뒤안길에서 때로 순은처럼 빛나는 법, 수필가는 그 길을 걸으면서 청초한 여인을 만난다.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는 글은 일 년에만도 수천 편이 넘는다. 그러나 청자연적 같고, 난 같고, 학 같고, 몸맵시 난렵한 여인 같은 글은 얼마나 귀한가. 선비 정신과 서양 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쓰여진 이런 문장을 다시 만나기까지, 우리는 여러 백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2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피천득, 「수필」 금아 선생의 〈수필〉이라는 수필이 국어 교과서에 실린 다음부터 우리의 수필은 ‘진주빛, 혹은 비둘기빛’이 되어버렸다. 선생의 글이 너무나 훌륭한 나머지 다른 유類의 수필이 묻혀 버리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수필의 특성은 ‘청자 연적’의 작고 아담함이나, ‘난’과 ‘학’의 품격만으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주택가에’ ‘깨끗’하게 단장된 ‘포도鋪道’만이 수필인 것도 아니고, ‘산책’처럼 ‘한가’한 것만이 수필도 아니다. 지사풍志士風의 강개慷慨한 글을 득의得意로 삼을 수 있음은 설의식의 〈헐려 짓는 광화문〉을 읽어보면 알 일이요, 감흥에 있어서는 똑같이 고조되어간다 하더라도 조지훈 선생의 〈무국어撫菊語〉는 비감悲感의 맛이 설의식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런 가운데 금아 선생의 수필은 단아하고 간결하며, ‘온아’하고 ‘우미’함으로써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그 맛, 그 멋을 다른 이가 어찌 흉내낼 수 있으랴. “글은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내가 아직도 금아 선생의 글을 멀리서 흠모만 할 뿐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아직 그분의 마음을 얻지 못한 까닭일 터이다. 문학적 기법의 숙달 이전에, 그분의 깨끗한 삶을 다 본받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3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피천득, 「오월」 가장 금아 선생다운 글맛은 청淸과 신新 사이에 있다. ‘청’은 맑고, ‘신’은 새롭다. 맑기에 새롭고, 새롭기에 맑은 오월. 그 오월이 가장 금아다운 간결하고 산뜻한 표현 속에 지금 여기에 와 있다. 지난 오월도 아니고 다가올 오월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오월. 어언 이 글이 쓰여진 지도 50여 년이 되었고, 스물한 살 젊음을 말하던 선생 또한 구순九旬의 노옹老翁이 되었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이렇듯 끝내 머물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삶이런가. 다만 작가가 남긴 글만이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로 그가, 그리고 우리가 한때 젊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4 봄은 새롭다. 아침같이 새롭다. 새해에는 거울을 들여다 볼 때나 사람을 바라다 볼 때 늘 웃는 낯을 하겠다. -피천득, 「신춘」 “봄은 새롭다. 아침같이 새롭다.” 다섯 음절 두 낱말만으로 한 문장을 짓는다. 그 다음은 일곱 음절. 다섯과 일곱 음절에는 리듬이 있다. 예전 선비들이 읊던 오언五言, 칠언시七言詩의 음절 수가 다섯과 일곱인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간결만이 금아 수필의 글맛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간결 뒤의 만연漫然, 비약飛躍에 뒤따르는 따뜻한 어루만짐. 부연敷衍없이 생략된 문장 사이로 봄 기운이 신선하게 스며들 때, 독자의 얼굴에는 삶에의 고운 긍정이 떠오른다. 남을 향한 긍정, 세상을 향한 이해. 그러나 나 자신도 빼놓지 말자. 우리는 엄숙한 도덕 군자이고만 싶은 게 아니니까. ‘거울을 바라다보며’ 자신을 향해 ‘웃는 낯을’ 하는 한 그에게 삶은 그래도 살 만한 것. 위선을 벗고 정직 앞에서 설 때 행복은 마음 가운데 봄을 잉태하는 법. 5 지금 생각해도 아까운 것은 20여 년 전 명월관에서 한때 제일 유명하던 기생이 따라 주던 술을 졸렬하게 안 먹은 것이요, 한번 어떤 친구가 자기 서재 장 안에 비장하여 두었던 술병을 열쇠로 열고 꺼내어 권하는 것을 못 받아먹은 일이다. -피천득, 「술」 나 같았으면 이런 경우 핑계를 ‘졸렬’에 두지 않고 ‘몸’에 두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결코 금아 선생 같은 명수필을 쓸 수 없다. 졸렬에는 겸허가 있지만, 몸에는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이 기생과 친구의 술을 못 마셨던 것은 졸렬 때문은 아니고 실제로는 몸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 선생을 뵈었을 때 선생은 한분순 시인과 나를 롯데 호텔 커피숍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때 우리는 커피 석 잔을 시켰지만, 선생은 당신의 커피를 우리에게 반씩 따라 주셨다. 커피를 조금만 마셔도 잠을 못 주무신다는 거였다. 그런 체질로 술 앞에 어찌 ‘작아지지’ 않을 수 있으랴. 다만 그 작아짐을 유머의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나는 선생을 부러워한다. 나 또한 선생 못지 않게 술 앞에 ‘자꾸만 작아지는’ 체질을 갖고 있다. 문제는 내가 그걸 선생처럼 유머로 승화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에필로그 인연, 작음, 아름다움. 피천득 선생의 인생을 구성하는 세 마디 말이다. 선생은 작지만 반짝이는 사건을 씨줄로 삼고, 곱고 연한 마음을 날줄로 삼아 인생이라는 천을 짠다. 그 베짜기가 인연이다. 그렇게 짜인 인연으로서의 인생은 ‘번쩍거리지 않은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비단’이다. 진리를 전하는 오래된 책은 말한다, 인연은 그물 같은 것이라고. 그물의 한 매듭을 당기면 모든 매듭이 출렁이듯이 한 매듭으로서의 나는 남들과 서로 연분지어진 관계라고 그 책은 거듭 설명한다. 선생이 짓는 인연의 그물은 거미줄로 만들어진 그물이다. 선생과 맺어지는 인연들은 물고기 대신 아름다움을 건지는, 연하고 부드러운 거미줄 그물에 맺힌 맑은 이슬방울인 것이다. 금아 문학은 ‘작고’ ‘아름다운’ ‘인연’이다. 작가의 말 2024년 신판을 내면서 오래전에 냈던 책을 다듬어 다시 낸다. 2003년 판에서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였던 제목을 『피천득 수필읽기』로 바꾼 것은 그사이에 금아 선생에 관해 각계의 저명인사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이 이 제목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술은 묵힐수록 향기로워지고, 인연은 그리움으로 갈무리되어 깊어진다. 금아 선생이 가신 지 어언 17년, 지금 나에게 그분과 그분의 문학은 그리움으로 숙성되어가는 진한 포도주이다. 오늘 느끼는 그리움은 예전 이 책을 쓰던 때 느끼던 그리움과 유類는 같고 결은 다르다. 그리하여 약간 손질을 더한 이 책은 예전의 그 책이기도 하고 지금의 새 책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찬란한 시절’로서의 ‘이 순간’을 더욱더 사랑하게 된다면, 금아 선생의 문학에서 전에는 보지 못하던 새로운 것을 약간이나마 새롭게 느끼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2024년 9월 10일 김정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