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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8
머리말 11 해석 논문 14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욥기의 자구적 주해 서문 110 1장. 사탄이 욥을 시험한다. 욥은 자녀들과 온 재산을 잃는다 114 2장. 두 번째 시련. 치유할 수 없는 질병과 신체적, 정신적 고통 147 3장.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한다 160 4장. 계약의 하느님께 대한 신뢰 180 5장. 하느님께 맞서기 위해 의지할 이는 없다 204 6장. 불행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불행만을 안다 220 7장. 욥이 삶의 고통 속에서 자신을 저주한다 233 8장. 하느님의 의로우심에는 저항할 수 없다 253 9장. 하느님의 정의는 어떤 법보다도 위에 있다 266 10장. 욥은 하느님의 위력에 휘둘리고 있다고 느낀다 295 11장. 욥이 자기 죄를 인정한다면 하느님께서 용서하실 것이다 316 12장. 하느님의 지혜는 당신 능력으로 행하신 파괴에서도 드러난다 328 13장. 욥은 친구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느님의 심판이 더 낫다 344 14장.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 361 15장. 아무도 하느님 앞에서 잘못이 없을 수 없다 377 16장. 인간의 불의에서 하느님의 정의로 393 17장. 욥은 선하게 살았으나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다 407 18장. 욥의 분노는 하느님의 정의를 비난하지 않는다 416 19장.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욥은 신앙의 승리를 확신한다 428 20장. 악인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 445 21장. 현실에서 악인들은 즉시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성공을 거둔다 460 22장. 하느님께서는 오직 정의의 이름으로 징벌하신다 476 23장. 욥은 그의 하느님께서 멀리 계시다고 느낀다 492 24장. 세상에서는 불의한 자들이 성공한다. 하느님은 그들의 편이신 것처럼 보인다 503 25장.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찬가 517 26장. 하느님은 모든 것을 지배하신다 522 27장. 욥은 무죄하며 하느님은 악인들을 벌하실 것이다 532 28장. 지혜 찬가 544 29장. 욥의 탄원. 지난날의 행복에 대한 그리움 560 30장. 지금 욥이 겪고 있는 고통 572 31장. 변론. 욥은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한다 586 32장. 엘리후의 담론. 노인들만이 지혜를 가진 것은 아니다 604 33장. 공포와 질병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천사의 전구 614 34장. 욥은 전능하신 분을 불의하시다고 고발함으로써 주제넘게 저항한다 631 35장.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개별적인 경우들을 아신다 652 36장. 욥의 고통의 참된 의미 661 37장. 기후 현상은 파악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지혜를 드러낸다 677 38장. 하느님의 말씀. 주님께서 말씀하시며 욥에게 물으신다 695 39장. 동물 세계의 놀라움. 욥은 자신의 말이 경솔했음을 인정한다 727 40장. 하느님만이 브헤못과 레비아탄을 다스리신다 745 41장. 하느님께서 욥에게 도전하신다 775 42장. 후기. 욥이 행복을 되찾는다 795 참고 문헌 806 색인 성경 인용 색인 816 저자 색인 828 |
Thomas Aqui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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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섭리에는 질서가 있어서 상위의 존재들을 통하여 하위의 존재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성과 소멸을 겪을 수 있는 사물들은 천체들의 움직임에 종속되며, 마찬가지로 사멸할 육체에 결합된 하위의 이성적 영들 곧 영혼들은 상위의 비물질적인 영들을 통하여 지배된다. 교회 전통은 비물질적 영들 가운데에는 선한 영들이 있고, 이들은 그들이 창조된 대로의 순수함을 보전하여 신적 영광을 누리며 하느님의 뜻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견지한다. 성경에서 이 영들은 때로 천사들, 곧 사자들이라 일컬어진다. 이들이 하느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는데, 그것은 이들이 그분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의인들 자신의 선익을 위해서 그들의 삶을 규정하실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삶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그 삶을 바라보는 이들이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선한 이들은 그 삶을 모범으로 삼기에 거기에서 유익을 얻지만, 악한 이들은 그 삶을 보고 그 모범에 힘입어 선하게 고쳐지지 않는다면 질투로 괴로움을 당하거나 부정적 판단으로 그 삶을 곡해하여 성인들의 삶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다. …… 하느님께서는 선택받은 이들이 성인들의 삶을 보고 구원의 길에서 진보하기를 바라실 뿐 아니라, 악한 이들이 것을 보고 그들의 단죄가 더 무겁게 되기를 바라신다. 성인들의 삶과 비교할 때 불경한 이들의 악행은 더욱 단죄를 받아 마땅한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가져가시니”라는 진술에서 욥은 사람들이 겪는 현세적 역경들 역시 하느님 섭리의 결정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고백한다. 여기서, 현세적 선들을 잃더라도 하느님께 불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나타난다. 무상으로 그것들을 주셨던 분은 그것을 일시적으로 주셨을 수도 있고 끝까지 주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끝이 되기 전에 그분께서 현세 재산을 거두어 가신다면 인간은 불평할 수 없다. --- 「1장. 사탄이 욥을 시험한다. 욥은 자녀들과 온 재산을 잃는다」 중에서 스토아학파는 지혜로운 사람은 슬픔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고, 소요학파는 지혜로운 사람은 슬픔을 느끼지만 슬픈 상황에서 이성에 따라 온건하게 처신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후자의 견해가 진리에 부합된다. 이성은 본성의 조건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각적 본성은 자신에게 유익한 것에 대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해로운 것에 대하여 괴로워하고 슬퍼한다. 이성은 이러한 본성적 반응을 제거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조절하여 이성이 슬픔 때문에 그 올바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견해는 충만한 덕과 지혜를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슬퍼하셨다고 말하는 성경에도 부합한다. 그러므로, 욥은 앞서 이야기한 역경들의 결과로 분명 슬픔을 느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내의 덕을 행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성은 슬픔 때문에 올바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이성은 오히려 슬픔을 극복했다. --- 「2장.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한다」 중에서 이성은 영혼의 모든 능력 가운데 가장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증거는, 이성이 다른 능력들을 지배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능력들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성은 때로 사욕이나 분노나 하위의 다른 격정들로 부분적으로 흐려지는 일이 있고 그래서 인간이 죄를 짓는다. 그렇지만 하위의 능력들은 이성이 자신의 본성을 되찾아 그 본성으로써 자신의 본래적 목적인 영적 선들을 향하지 않도록 붙잡아둘 수 없다. 그러므로, 이성이 사욕이나 분노로 흐려져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성이 인간 자신을 거슬러 싸우려고 할 때에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종의 투쟁이 벌어진다. 또한 과거의 죄로 말미암아 하위의 능력들이 습성적으로 그와 유사한 행위들로 기울게 될 때에, 이성은 상위의 선들을 향하도록 하위의 능력들을 자유롭게 사용하거나 그 능력들을 하위의 선들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이 죄로써 하느님께 맞서게 될 때에는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짐이 된다. 이 때문에 그는 “어찌하여 제가 저에게 짐이 되었습니까?”라고 덧붙인다. 이 말에서, 죄에는 즉시 그 벌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처벌 후에는 인간이 더 쉽게 용서가 주어지는 듯하다. --- 「7장. 욥이 삶의 고통 속에서 자신을 저주한다」 중에서 “주님을 경외함이 곧 지혜며 악을 피함이 슬기다.” 따라서,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의인은 지혜를 갖게 되고, 그 지혜는 악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온갖 지상적 선들보다 더 낫다. 이와 같이,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영적 선들이 더 나은 선들이고 악인들에게 주어지는 현세적 선들은 덧없는 선들이라는 점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지지하는 근거가 명백하게 견지된다. --- 「28장. 지혜 찬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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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욥의 시련을 통해 믿음과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다 성경 속 욥은 선한 사람이었으나, 사탄의 시험으로 여러 고난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준다.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욥의 이런 믿음에 주목하여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계시므로, 인간이 하느님에 맞서 토론한다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진리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진리를 말할 때는 누구와 토론하더라도 꺾일 수 없는 것이다. 욥은 자신이 하느님께서 믿음과 지혜의 선물을 통하여 그에게 감도해 주신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토마스 아퀴나스의 해석으로 욥기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동시에, 고통 중에 있던 욥이 걸어간 믿음의 길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다. 그로써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욥기의 자구적 주해』는 단순히 중세 시대를 살았던 한 인물이 해석한 구약 성경의 욥기 주해서라는 가치를 뛰어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욥기 안에 담겨 있는 무한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내 삶에 자리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묵상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영적인 눈을 밝혀 주고자 하였던 성인의 의도도 깨달을 수 있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