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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기행
납량이제 제목 없는 이야기 춘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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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낭만
집을 떠나기는 작년 구월 이십삼일(昨年 九月 二十三日)이었다. 가벼운 트렁크 한 개에 가득 위병약(胃病藥)과 몇 가지 의복(衣服)을 채워들고 기차(汽車)에 올라 우리 집 뒤를 지날 때, 언니는 과수원(果樹園)에 무르익은 새빨간 임금(林檎)나무 사이에서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 높이 높이 흔들어 주었다. 대구(大邱)에서 잠깐 내려 투어리스트 뷰로에 문의(問議)하니 기선(汽船)이 인천(仁川)을 떠나기는 이십오 일 오전 팔시(二十五日午前八時)라고 하므로 나는 서울서 하루 쉴 셈 치고 즉시 승차(乘車)하여 상경(上京)하여 다시 기선회사(汽船會社)에 물어보니 이십오 일 오후 일 시(二十五日午後一時)라 하였다. 우선 선표(船票)를 예약(豫約)하고 일야(一夜)을 쉰 후 인천(仁川)으로 향(向)하였다. 인천(仁川)가서 다시 알아보니 오후 삼시(午後三時)라야 출범(出帆)하겠다고 하므로 시내(市內)로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기선회사(汽船會社)로 가니 오후 육 시(午後六時)라야 출범(出帆)하겠다고 하므로 우선 저녁참으로 간단히 식사(食事)를 치른 후 승선(乘船)하였으나 육시(六時)가 지난 지 오래이므로 다시 또 선원(船員)에게 물어보니 팔 시(八時)라야 라는 대답(對答)이었고, 팔 시(八時)가 지나니 또 십일 시(十一時)라야 라는 대답(對答)이었으므로 기가 막혀 캐비넷으로 들어와 누웠다. --- “청도기행” 중에서 언젠가 동경서 발행하는 어떤 신문지상에 장곡천여시한(長谷川如是閑)씨를 평한 말 가운데 "씨는 다방면으로서 무엇을 한 가지 끝까지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씨의 단점이라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그는 너무 두뇌가 명철한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무엇이든지 한 가지에만 열중한다는 것은 그만치 그의 머리가 맹신적(盲信的)으로 단순한 까닭이니 즉 예를 들어 말하면 한 종교(宗敎)에 열중하는 사람 그 사람이 조금 ‘바보’가 아니면 한 가지 종교에만 열중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무슨 방면이든지 한 방면만 꼭 연구한다는 것은 좀 ‘바보’가 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라고 써 있었던 것이 나는 이따금 생각날 때가 있다. --- “제목 없는 이야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