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인의 말 3
1부 터닝포인트 11 애완 돌 12 소 엉덩이에 눈동자가 산다 14 세이렌 16 페르소나 18 리허설 20 율려律呂 22 맑은 날의 역설 24 간절기 26 봄날의 폐차 28 코이 30 바닥, 접질리다 32 호스피스 34 나무 자세 36 연두 그리고 자폐 38 반려 40 테이블의 감정 42 새터민 44 2부 박씨상방 접이식 모란 부채 49 물빛 간이역 50 낙타는 구름을 이고 사막을 건넌다 52 식물성 자궁 54 별빛 처소 55 물방울 수박 56 가교 58 월면月面 60 푸른 추사 62 어느 일요일 64 해토의 시간 66 카타르시스 68 세 살의 비상구 70 모반母班 72 퍼포먼스 74 숨을 잇대다 76 눈 속에 핀 집 78 3부 염천 81 낚다 82 노을 꽃 염화拈華 84 프로아나족 86 늘픔 88 병간 90 섬에 띄운 추상화 한 점-안좌도에서 김환기 화백을 기리며 91 담장 너머 92 가뭄 94 오래된 불 96 캄캄한 추락 98 찔레꽃 100 기억은 은빛 102 오지랖 104 그리움을 압화하다 106 소반 위의 맥박 한 그릇 108 끝은 끝을 물고 1 109 끝은 끝을 물고 2 110 해설 _ 오민석 _ 오랜 결핍의 오랜 봄날―김문순 시집 『돌에게 자꾸 들켰다』 읽기 111 |
|
외로움이 해소될 때까지 돌을 사랑했다
걸림돌 같던 당신이 떠나고 신조어의 파생 같은 애완 돌을 만났다 돌의 생각은 어둠 속에서도 빛났고 나의 애증은 숙연해졌다 밤하늘의 별빛과 달빛처럼 쓰다듬어지는 일에 익숙해지는 맨살 살짝 어루만지다 보면 돌 속에서도 싹이 나올 것만 같다 넌 아직도 기다림을 믿니 흑요석이 밤마다 뚜벅뚜벅 걸어와 속삭였다 그렇게 나는 돌에게 자꾸 들켰다 들켜도 들켜도 부끄럽지 않았다 가끔 손안에 꼬옥 쥐고 있으면 반려의 기척을 내밀었다 쉬이 발설하지 않은 태도와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과묵 굳어버린 심장과 흘러내릴 수 없는 눈물이 필요 없어서 이젠 돌이 떠나면 내가 먼저 돌이 될 것만 같았다 ---「애완 돌」중에서 바다에서 탄생한 그녀의 노래가 지상을 떠돈다 가는 곳마다 치명을 부르는 목소리 피를 보고야 마는 잔인성이 질주한다 나도 이미 세이렌을 품고 있었을까 눅눅한 시간이 소리 없이 찾아와 배회할 때면 그믐처럼 어둠이 짙어 오는 심연 자발적이든 우발적이든 그녀를 만나려고 난폭해진다 결핍을 자꾸 물어뜯고 우울을 내내 뒤집어 쓴다 그때마다 안간힘으로도 어쩔 수 없이 쏘아 올려 펼치고 싶었던 날개 거미줄처럼 직조된 도시의 욕망 속에서 부질없는 몸짓으로 휘청일 때 꽃잎처럼 낙화를 바라는 세이렌의 목소리가 집요하게 미혹한다 나는 도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난파된 지 오래다 숨의 절정이 결말인 듯 비상을 띄워 깜박일 때쯤에야 감미로운 유혹의 목소리를 듣는다 괜찮아요 나에게 와요 절망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있으면 편안한걸요 끊임없이 부유하는 내밀한 세이렌의 부추김 먹빛이던 마음의 심지에 서서히 번져오는 죽음 도시가 나를 삼키기 전에 차라리 도시를 먼저 배반할까 손목에 통증이 번진다 세이렌이 울린다 다가온다 소실점 하나 점점 커진다 ---「세이렌」중에서 2월의 마늘밭 새 부리 같은 촉수의 리허설이 한창이다 흙의 옆구리를 비집고 영역을 넓혀가는 뿔의 액션 무대를 자처하는 흙이 온몸을 다 내주면 동시다발적으로 솟아오른다 꽃샘추위가 배경으로 깔리지만 아랑곳없다 물이 오르기 시작한 연기가 잔설마저 녹인다 봄바람과 봄비가 선뜻 조연을 자처한다 번갈아 가며 찾아와 해토를 부추긴다 마늘의 시간이 발단을 지나 전개로 넘어 간다 배경음악처럼 종달새가 날아와 운다 그때 나는 밭으로 간다 관객이 되어 기웃거린다 추임새를 보내는 그윽한 나의 눈빛 나의 호응과 마중을 알았을까 줄기를 쭉쭉 밀어 올린다 2월의 매운 시간 속 갈채를 보낸다 한파가 몰아치던 일주일 전만 해도 비극인 줄 알았는데 완연한 희극이다 ---「리허설」중에서 상상에도 성수기가 있는 걸까 겨울과 봄 사이 간절기가 되면 상상이 부풀어 오른다 눈 한번 감았다 뜨면 상상 위에 싹이 돋는다 쑥쑥 자란다 무성해진다 건조한 내 생각 속을 떠돌아다니던 모티브를 풀어놓는다 뜯어먹는다 시를 쓴다 유목의 기분으로 탄생한 단어들 문장 위를 뛰어 다닌다 상징이나 비유가 필요 없으니 가식이 없다 알몸의 이미지들 행과 연을 부여한다 울타리라고 여겼을까 답답해서 몸부림친다 흩어지려한다 순간, 상상을 토해낸다 무표정을 하고 나를 올려다보는 시어들 다시 눈을 감았다 뜬다 황무지가 펼쳐지고 나의 시, 또 다시 겨울이다 ---「간절기」중에서 |
|
시인의 말
뚜벅뚜벅 걸었다. 그러다 가파른 고갯길을 만나 한동안 멈춰 서있었다. 돌 하나를 발견했다. 돌은 시였다가 기억이었다가 악몽이었다가 나였다가 끝없는 중얼거림이었다가 비단잉어 코이처럼 내가 나를 뛰어넘기를 바라고 있었다. 언덕 너머 또 더 큰 언덕이 있었지만 난 계속 뚜벅뚜벅… 2024년 가을 김문순 |
|
김문순 시인은 죽음의 밭에서 생명의 씨앗을 찾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얼어붙은 고체의 시간에서 살아 흐르는 액체의 시간을 찾는다. 이 시집의 한 편에 눈물과 은둔, 결핍과 실패, 불안과 우울의 동굴을 불러오는 화자들이 있다면, 다른 편엔 그 대척점의 환희와 자유, 풍요와 희망, 그리고 변화를 부르는 화자들이 있다. 시인은 이렇게 다양한 화자들을 동원하여 움직이며 다른 무엇으로 계속 변화하는 세계를 형상화한다. - 오민석 (문학평론가)
|
|
『돌에게 자꾸 들켰다』는 고여 있는 시가 아니라 번져가는 시로 가득 차 있다. 시인에게 찾아온 최초의 모티브나 소재를 미학적 안목으로 잡아낸 다음 그것이 화자 자신이나 타자들에게 스며들도록 형상화한다. 그래서 시적 자아와 타자, 대상물 모두가 자연스럽게 시라는 테두리 안에서 융합되는 조화를 이루고 그것이 하나가 되어 정서적 파장과 떨림, 울림 등을 진중하게 가져온다. - 하린 (시인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초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