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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네덜란드 기자가 쓴 성폭력 문제와 여성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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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서문
들어가며

제1장 제도의 탄생

제2장 모집책으로서 일본 제국

제3장 포주로서의 제국

제4장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일본의 강제 동원

제5장 무기로서의 남성 성기

제6장 침묵의 시작

제7장 폭로되는 만행

제8장 역사를 위한 투쟁

제9장 정의와 명예를 위한 투쟁

제10장 성별 간의 전쟁

끝맺으며
미주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저자 소개 3

브리지트 아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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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비서구지역 사회학을 전공하였다. 미국과 말레이시아에서 거주하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아시아와 아프리카 특파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네덜란드의 브레다 응용과학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네덜란드 일간지 De Volkskrant(폭스크란트), Trouw(트라우)와 Radio 1 등의 매체와 다양한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활동하였다. Onze Wereld(우리의 세계)의 특파원이자 Internationale Samenwerking(국제 협력)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였다. 또한, Toerisme naar de Derde Wereld(제3세계 관광, 199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비서구지역 사회학을 전공하였다. 미국과 말레이시아에서 거주하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아시아와 아프리카 특파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네덜란드의 브레다 응용과학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네덜란드 일간지 De Volkskrant(폭스크란트), Trouw(트라우)와 Radio 1 등의 매체와 다양한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활동하였다. Onze Wereld(우리의 세계)의 특파원이자 Internationale Samenwerking(국제 협력)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였다. 또한, Toerisme naar de Derde Wereld(제3세계 관광, 1993)의 공동 저자이며, De Sprong van De Maleise Tijger(말레이시아 타이거의 도약, 2004), 인도에서의 자신의 생활을 다룬 Hoe wikkel je een sari om(사리를 두르는 방법, 2007), 그리고 Waar is het avontuur(모험을 찾아 떠나는 여행, 2022) 등의 책을 출간하였다.
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에서 네덜란드 문학을 전공했으며, 남아공 스텔렌보쉬 대학교에서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와 남아프리카, 인도네시아, 카리브 지역의 식민주의 역사와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본군‘위안부’제도와 바타비아 임시 군사 재판에 관한 논문과 글을 출간하였다. 현재 한국 외국어 대학교 네덜란드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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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네덜란드어를 전공하고,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에서 네덜란드학 및 언어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네덜란드 통계청에 재직 중이며 네덜란드 법원 인가 공인번역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발행 『네덜란드군 한국전쟁 참전사』를 네덜란드어 번역서 『De Deelname van de Nederlandse VN-strijdkrachten aan de Korea-oorlog』로 옮겼으며, 다른 번역서는 『우주인을 꿈꾸는 초등학생을 위한 우주 여행 안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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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142*210*20mm
ISBN13
9788964990797

책 속으로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의 이야기이며 20세기 여성 인권이 침해당한 가장 야만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약 20만에서 40만 명으로 추정되는 한국,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중국, 필리핀 및 다른 국가 여성이 제도적으로 강간을 당했던 무자비한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이 제도는 1931년 일본의 만주 침공과 함께 시작되어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할 때까지 15년간 지속된 전쟁에서 일어났으며, 철저히 인종 차별적이며 성차별적인 제도였고, 특히 가난한 소녀들이 피해를 보았다.
---「들어가며」중에서

사진을 담은 액자들은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설명해 준다. 일본은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하였다. 일본군은 처음에 일본인 매춘부를 이용했지만, 그 수가 군인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 중국 그리고 필리핀과 같은 다른 나라 출신의 소녀들을 ‘강간 캠프’로 데려왔다. 이 용어는 유엔이 꾸밈없이 사용한 표현 그대로다.
---「제1장 제도의 탄생」중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의 대부분(80-90%)은 한국 여성이었다. 일부 일본 연구자들은 그 수치에 의구심을 가진다.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숫자는 50% 미만이었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 여성보다 중국 여성이 분명 더 많았습니다.”라고 하야시 히로후미 교수는 주장하였다. 중국에 가장 많은 위안소가 위치해 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의 주장은 이 중국 지역의 위안부 모집에 관련된 문서에 근거한 것이다. 부대장 한 명이 1942년 일본 전쟁성 회의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위안소는 중국 북부에 100개, 중국 중부에 140개, 중국 남부에 40개, 동남아시아에 100개, 태평양 지역에 10개 그리고 사할린에 10개 등으로 총 400개가 설립되었다.”
---「제2장 모집책으로서 일본 제국」중에서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버마, 말레이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러시아 그리고 태평양 제도에서 군인들을 위한 여성 인신매매가 번창했다. 여성들은 3주에서 길게는 8년까지 외부 세계와 철저히 격리된 채 군인들의 성 노리개로 지내야 했다. 이 불행은 종종 매우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겨우 1.5m x 0.9m밖 에 되지 않는 작고 비참한 칸막이 속에서 일어났다. 밤낮으로 숨을 헐떡이는 병사들이 조급한 모습으로 ‘위안’을 기다리며 긴 줄을 서 있었고, 이후 여성들의 몸은 반복적으로 억압당했다.
---「제3장 포주로서의 제국」중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는 대규모의 서양 여성들이 강제 동원되어 위안부로 투입된 유일한 나라였다. 네덜란드 여성 약 400명이 일본 제국의 군 위안소에 성 노예로 갇혀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2 이에 대한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많은 증거물이 폐기되었고, 또 어떤 사건은 문서로 기록되지 않았다. 기록으로 남아 있던 문서는 파기되었다. 더욱이 강제 동원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네덜란드 피해자들은 거의 다 자신의 이야기를 혼자 간직하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기에 이미 많은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무덤 속으로 가져갔을 것이다.
---「제4장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일본의 강제 동원」중에서

증인 진술서에 인도네시아인의 증언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바타비아 임시 군사 재판 문서에서 단지 엑스트라 등장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눈에는 그 전쟁이 인도네시아인들과는 거의 관계없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사회 내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아닷’과 연관 있다. 아닷은 이런 종류의 아프고 민감한 사건은 오히려 자기 혼자만 간직하고 참으려는 인도네시아의 도덕적 행동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강제 매춘은 실제로 발생하였다고 암본에 주둔한 일본 해병대의 전직 급여 관리인이 회고하며 증언했다. 그는 마을의 여성들이 위안소로 끌려가던 일본군 ‘위안부’ 사냥을 기억했다. “제가 군인 클럽을 방문했을 때 젊은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비명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매번 끔찍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4장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일본의 강제 동원」중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제도의 설계자였던 오카무라 장군도 결국 이를 충분히 인정했다. 특히 ‘위안부’ 제도를 만든 중요한 이유가 집단 강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일본 군인들은 여전히 대규모 강간을 저질렀다. 일본군 중위이자 교수인 다케오 하야오에 따르면, 강간은 심지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1939년 작성된 전장의 문제점에 관한 비밀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위안소 시스템이 막 공식적으로 도입되었을 때, 이 고위 자문관은 즉시 이를 비난하였다. 일본에서는 절대로 여자를 강간하지 않았을 일본 군인들이 전쟁으로 인해 매우 과격해졌고 중국 여성은 마음대로 제압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겼다. 더욱이 지휘관들은 이러한 행동을 눈감아 주었는데, 하야오 타케오 교수에 따르면, 이는 지휘관들이 병사의 전투 의지를 북돋우는 데 강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5장 무기로서의 남성 성기」중에서

“저는 여자로 태어났으나 한 번도 여자로 살지 못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저는 남자 옆에만 가면 구역질이 납니다. 일본 남자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남자, 심지어 저를 위안소에서 구해준 제 남편에게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일본 국기를 보면 몸이 떨립니다. 제가 일본에 타고 온 그 비행기가 증오스러웠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진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제가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저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제7장 폭로되는 만행」중에서

야요리 마쓰이 기자와 같은 일본 여권 운동가들은 전쟁 기념 사당인 신사를 지지하는 사람은 ‘위안부’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1999년 연례 추모식에서 그녀와 다른 활동가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50대 이상의 일본인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 응한 54명 중 3분의 2는 일본군 ‘위안부’가 필수적이었다고 대답했다. 또한, 그들은 용서를 빌거나 피해를 배상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마쓰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위안부’ 제도는 일본군의 제도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허용해선 안 될 이유가 없는 거지요.”
---「제8장 역사를 위한 투쟁」중에서

일부 네덜란드인들은 그들의 어머니만큼이나 강한 낙인을 경험한다. 그들은 일본군과 네덜란드인 혹은 인도네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로서 전쟁 후 네덜란드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머니가 적군과 내통했다고 여겨지는 아들딸이다. 이들은 네덜란드 나치 협력자(NSB)의 자녀와도 비교된다. 이들은 이제 55세 정도 되었고, 일본인과 같은 눈 모양으로 분명히 구별된다. 그들은 일본인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중국인이라고 대답한다. 누가 ‘적군의 자식이자 위안부의 자식’으로 불리길 원할까? 그들은 잘못된 부모의 아이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뭐가 그리도 잘못되었다는 것일까? 소위 ‘일본인 아이들’은 강압에 의한 관계, 즉 강제 매춘이나 강간에 의해 태어났다. 일부 여성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일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굶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적군 남성과 관계를 맺었다. 사랑의 감정도 생겨났다.
---「제9장 정의와 명예를 위한 투쟁」중에서

“우리 아버지 세대가 군복을 입고 총을 휘두르며 여성에게 한 짓을 지금 세대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양복을 입고 돈의 힘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진보적인 남성 단체인 ‘매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설립자 다니구치 가즈노리가 말했다. 이 단체 회원들은 아시아 국가로 떠나는 단체 매춘 관광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매춘 관광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강제 성매매에 대한 책임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제10장 성별 간의 전쟁」중에서

출판사 리뷰

저자 브리지트 아르스는 이 책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고발하고 있다. 저자는 피해자들의 개인적 증언뿐만 아니라 가해자들과 기타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이 비극적 사건의 충격적인 진실을 폭로한다. 이들의 증언은 읽는 이의 숨통을 죄어올 정도로 참혹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히 유린된 순간들을 생생히 전해준다.

일본군은 점령한 모든 지역에 위안소를 설치했으며, 위안부로 이용된 여성들의 출신과 상황은 다양했다. 일본군은 일부 빈곤층 일본 여성들을 비롯해 점령지역의 소녀들을 표적으로 삼아, 이들을 모집하거나, 매매하거나, 납치하거나 속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위안부를 조달했다. 모집 방법은 지역에 따라 달랐으며, 자원과 강제 동원의 경계는 모호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정하는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피해자의 수는 8만 명에서 40만 명에 이른다고 하나, 약 20만 명이 피해자로 인정되고 있다. 이 중 거의 절반이 한국 여성으로, 약 400명의 네덜란드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 챕터를 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할애하고 있다. 과거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도 위안부 제도가 대규모로 시행되었으며,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중국 여성들이 일본군의 조직적인 성 노예로 이용되었다. 저자는 문화인류학자로서, 인간성을 철저히 파괴한 위안소 설립의 원인을 일본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이를 고안한 집단에서 찾는다. 저자는 일본 남성들이 전통적으로 성적 쾌락을 위해 여성을 착취하는 것을 권리로 여겨왔으며, 현대 일본의 성도덕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위안부 제도는 사실상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막기 위한 구실로 활용되었을 뿐이다. 또한,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및 전쟁 중 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실을 비추어, 나치 독일, 베트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방글라데시 등지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단순히 흥미로운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저자가 1999년 대한민국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을 방문한 후 받은 충격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책 전반에 드러나며, 이는 학문적 객관성을 넘어선 저널리스트적인 어휘 사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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