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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기와 박어사
갑오비화 강릉기 홍장과 풍류순찰사 고려 태조 고려의 기품 공당문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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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御史)로서 많은 일화(逸話)를 남겨 놓은 사람 중에서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같은 이가 없고, 일화 가운데에도 통쾌하고 의분에 불타는 일을 한 사람이 박문수 아니고는 또 없었다.
그는 인정(人情)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의분(義憤)에 넘쳐 흐르는 사람인 까닭에 그가 우연한 일로 진주(晋州)에서 겪은 전후 사실(前後事實)이 공교롭게도 우리가 자랑하는 춘향전(春香傳)의 내용과도 똑 같으므로 여기에 춘향의 사실과 비슷한 원홍장(元洪裝) 이야기를 소개하는 김에 그 내용을 기록하여 여러분과 더불어 실컷 웃어나 볼가한다. 그가 열일곱살 되었을때 그의 외삼촌이 진주부사(晋州府使)로 있었다. 그는 외삼촌이 있는 진주로 찾아 내려가서 얼마동안 지낸 일이 있었다. 부사의 생질(甥姪)이요 나이 열일곱의 소년으로 글 잘하고 얼굴이 잘났으니 그의 뒤에 어찌 아기자기한 로맨스가 없었으랴. --- “급수기와 박어사” 중에서 우리 나라의 역대 무인사(戊寅史)를 돌이켜 볼 때에 가장 흥미있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일천 사십년전 신라 경명왕 이년(新羅景明王二年=서기구일팔[西紀九一八]) 무인 유월에 왕건 태조(王建太祖)가 고려의 나라를 새로 창건한 것이다. 이제 그 전말을 말하자면 먼저 왕건 태조의 인물이 어떠한 인물인가 하는 것을 잠간 말하는 것이 좋을가 한다. 태조의 성은 왕씨(王氏) 요 명은 건(建)이요 자는 약천(若天)이니 금성태수 왕융(金城太守王隆)의 아들이었다. 왕융이 일찌기 한씨부인(韓氏夫人)과 결혼하여 한주 송악군(漢州松嶽郡=지금의 개성[開城]) 송악산 남쪽에서 살았더니 하루는 신승도선(神僧道詵)이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그 집 문 앞에서 쉬다가 하는 말이 『이 땅에서 반드시 성인이 나겠다.』 --- “고려 태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