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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에 스러진 별
양봉래 모친 열녀의 혼 왕자의 원혼 용녀의 비밀 원한의 농성 유방천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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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의 일천년 왕업도 어느덧 운이 다하여 청옥저(靑玉笛) 백옥저(白玉笛)도 그 청아하던 소리가 끊어지고 계림의 황엽(鷄林 黃葉)이 서늘한 가을 바람에 떨어지기 시작하니 신라 말년의 일대 문호(文豪)요, 도학가인 최고운 선생(崔孤雲先生)도 이 세상을 아주 비관하게 되어 하던 벼슬을 헌신짝같이 던져 버리고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동쪽으로 금강산(金剛山) 오대산(五臺山)이며 서쪽으로 묘향산(妙香山) 구월산(九月山)과 남으로 지리산(智異山) 가야산(伽倻山)등의 명산이란 명산은 모두 밟아 구경하고 최후에 가야산 홍류동(紅流洞)으로 들어가서 『광분첩석후중만(狂奔疊石吼重巒)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고교류수주농산(故敎流水晝籠山) 혹공시비성도이(或恐是非聲到耳)』 --- “장대에 스러진 별”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여년 전 일이었다. 강원도의 관동팔경 중의 하나인 유명한 총석정(叢石亭)이 있는 통천군(通川郡)에는 이 시택(李時澤)이라고 하는 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직업이 명색 농부이지마는 자기 집에 토지가 없고 남의 토지로 약간의 소작농을 하는 까닭에 피땀을 흘리고 손톱이 빠지도록 힘써 농사를 지어도 추수때가 되어 지주의 소작료를 주고 비싼 구실(租稅)을 치르고 나면 겨울 먹을 양식이 없으므로 농한기(農閑期)가 되면 부업(副業)으로 소금장사를 하여 산촌(山村)으로 돌아다니며 소금과 곡식을 바꾸어다가 근근히 생활을 하였다. 한번은 역시 소금 한섬(一石)을 등에 지고 그의 인근읍(隣近邑)인 회양군 장양면(淮陽郡長楊面)의 어느 깊은 산골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 중로에는 강원도에서도 크고 험악하기로 유명한 장대령(長大嶺)이란 고개가 있는데 이씨(李氏)는 초행으로 그 고개를 넘게되므로 노정(路程)도 잘 알지못하고 그대로 가다가 겨우 영(嶺) 밑에 까지 갔을때 이미 해가 저물어 버렸다 --- “열녀의 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