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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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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박홍규, '에세'를 읽으며 웃다
박홍규 저
청어람미디어 2004.10.16.
베스트
서양철학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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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 왜 지금 이 땅에서 몽테뉴인가?
몽테뉴가 포스트모더니즘보다 좋다
왜 몽테뉴인가?
그러나 정직해지자
쓴웃음의 모럴리스트
여러 가지 웃음
니체의 몽테뉴
솔직하고 자유로운 회의주의자
회의주의
에세와 수필
인터넷 공간과 글쓰기
왜 나는 몽테뉴에 관한 책을 썼는가?

제1장 몽테뉴의 고성을 찾아 가는 길
그의 고독한 성으로
개인주의란 무엇인가
보르도의 몽테뉴
포도밭을 지나 몽테뉴의 성으로
몽테뉴, 고독한 산책가
고독에 대하여
몽테뉴는 본래 고독한 성격이었는가
'너 자신을 알아라'의 뜻
몽테뉴는 절간의 도사가 아니다
자기의 묘사
<에세>는 고백이자 자서전
고독한 죽음

제2장 <에세>, 개인적 글쓰기
<에세>는 무용담인가?
<에세> 집필의 계기
몽테뉴의 글쓰기 - 탐구의 자세
에세란 무엇인가?
판단의 방법
에세는 자기만의 글쓰기다
몽테뉴의 책 읽기
몽테뉴 문장의 소박함
다양한 표현 방법
에세는 어디서 왔는가?
<에세>의 문제점
<에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몽테뉴에 대한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회의주의의 영향

제3장 16세기, 그가 살았던 시대
몽테뉴의 출생
그가 살았던 시대
몽테뉴의 성장
르네상스
역사와 사물에 대한 몽테뉴의 새로운 인식
몽테뉴의 학문 멸시
실학적 전문가에 대한 멸시
교육론

제4장 판사 몽테뉴, 법과 재판에 대하여
판사 몽테뉴
마녀재판 비판
법과 재판에 대한 비판
습관에 대하여
습관에 대한 상대주의적 시각
여행의 사상
그의 친구 라 보에티
라 보에티의 아나키즘
몽테뉴의 사회관

제5장 르네상스인 몽테뉴
인생이란
공적 생활보다 사적 생활
사생활의 르네상스인 몽테뉴
생활의 탐구
우정
남녀의 사랑
몽테뉴는 심리학의 시조

제6장 전쟁의 시대
유럽의 전쟁
종교개혁에 대한 몽테뉴의 비판
가톨릭에 대한 몽테뉴의 비판
인간성에 대한 이해
잔인성 비판
1587년에서 1588년까지
종교 자체에 대한 부정
위기의 극복

제7장 인간 - <에세>의 시작과 끝
시작 - 제1권 제1장
죽음과 고독
몽테뉴 인간관과 르네상스 인간관
레이몽 스봉의 변호
감각의 발견
몽테뉴의 종교관
몽테뉴는 이단인가?
에세에 대한 교황청의 태도
끝 - 제3권 제13장

제8장 16세기의 인류학자
야만에 대한 새로운 판단
식인종에 관하여
마차에 관하여

제9장 21세기에 만나는 몽테뉴
당대의 평가
르네상스의 혼돈
17세기의 퇴보
파스칼과 가톨릭의 규탄
인문주의로부터의 후퇴
16세기의 자유, 17세기의 억압
18세기와 19세기의 몽테뉴 부활
몽테뉴와 현대

주석

저자 소개 1

朴洪圭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 로스쿨, 노팅엄 대학, 프랑크푸르트 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 『인문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 로스쿨, 노팅엄 대학, 프랑크푸르트 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 『인문학의 거짓말』, 『놈 촘스키』, 『아나키즘 이야기』 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유한계급론』,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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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10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35쪽 | 405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722540

출판사 리뷰

박홍규, ‘잊혀진 고전’ <에세>를 만나다
바야흐로 “교양의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교양’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이 줄을 이어 출간되고,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하나둘 오르기 시작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전문 지식 예찬’이 울려 퍼지고,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면 행세할 수 없다고 하던 소리는 이제 꼬리를 내리고,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전인적인 교양’과 시대를 이끌어갈 ‘제너럴리스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으로 구체화되었다. 한국 고전은 물론, 동양의 고전과 서양의 고전이 속속 번역되거나 재해석되고 있다. 이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도 높아졌을 뿐 아니라 새롭게 바뀔 대학입시제도도 전반적으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무기로서의 ‘교양’과 ‘고전’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교양과 고전이 새롭게 주목되는 시점에서 신간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박홍규, ‘에세’를 읽으며 웃다>의 출간은 ‘교양’과 ‘고전’에 접근하려는 독자들에게 몹시 반가운 일이다. 법학을 전공하고 강의하는 필자 박홍규는, 지금까지 분야를 넘나들면서 미술, 음악, 사상, 문학 등 인문학 전반에 걸친 폭넓은 주제로 글을 써 왔고, 특히 각 분야에서 각별한 역할을 했던 윌리엄 모리스, 빈센트 반 고흐, 베토벤,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에드워드 사이드 등의 인물에 대한 책을 써 오기도 했다. 이런 폭넓은 관심사 때문에 ‘우리 사회의 르네상스인’이라고도 불리는 저자 박홍규의 이번 저작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는 고전으로까지 영역을 넓인 박홍규의 지적 편력을 들여다보는 계기이자, 우리에게 잊혀진 고전이 되어버린 ?에세?에 대한 재해석이어서 눈길을 끈다.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인 몽테뉴와 인류가 남긴 ‘세계의 결정적인 책 15권’의 하나로 손꼽히는 책, <에세>

우리에게 흔히 <수상록>으로 더 잘 알려진 <에세>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들의 고전 목록에서 항상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몇 해 전 ‘세계의 결정적인 책 15권’의 하나로도 선정될 정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에서 <에세>는 ‘잊혀진 고전’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고전이 그렇듯 모두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읽어보려 해도 제대로 된 번역본조차 찾을 길 없다. 몽테뉴도 비슷한 신세다. 서양 사상사 전반에 걸친 몽테뉴의 영향에 비해 우리 나라에서 몽테뉴는 지극히 홀대받은 거장이다. 그에 관한 제대로 된 평전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그의 사상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글도 찾아보기 어렵다. 박홍규의 신간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는 이러한 고전 <에세>와 그 저자 몽테뉴를 본격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오랜 동안 저자 스스로 <에세>의 번역본과 원본을 거듭 들춰 가며 읽고 급기야 프랑스 보르도의 몽테뉴 성으로까지 찾아가서 기록한 사유의 기록이다.

“이 책은 어쩌면 지난 40년간의 독서 경험을 풀어 쓴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나처럼 어린 시절에 <에세>를 비롯하여 소위 고전을 읽으려는 학생들이 편견을 갖지 않도록 나름대로 책 읽기 안내를 하는 것을 집필 목적의 하나로 삼고 있다.”
―제2장 개인적 글쓰기 98~99쪽

이런 식으로 박홍규는 16세기 프랑스의 고전 <에세>를 꼼꼼히 읽고, 그 꼼꼼한 독서를 통해 인류의 진보적 지성의 흐름에 큰 자양분이 되었던 르네상스인 몽테뉴의 세계로 성큼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저자 박홍규는 몽테뉴와 <에세>를 칭송하거나 예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몽테뉴와 <에세>에 쏟아졌던 칭찬을 호들갑스럽다고 하면서, 단 한 가지에 눈길을 주고 있다. 바로 크세주(Que-sais-je?) 즉 ‘나는 무엇을 아는가?’ 하는 회의정신과 그에 바탕한 자기 성찰적인 글쓰기가 그것이다.
그래서 신간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는 바로 <에세>를 통한 몽테뉴 다시 읽기이자, 몽테뉴식 글쓰기의 구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까지 빈센트 반 고흐, 윌리엄 모리스, 오노레 도미에, 알베르 카뮈, 루쉰, 카프카 등 쟁쟁한 인물들에 대해 책을 썼던 저자는,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에서는 오히려 “어떤 글을 쓸 때라도, 나만의 독특한 관점이 있는 듯이 과장하지만, 사실은 자신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인간의 약함, 어리석음, 천박함을 비웃으면서도 그런 스스로를 비웃는” 그리고 '인간의 약함, 어리석음, 천박함을 비웃으면서도 그런 스스로를 비웃는' 몽테뉴를 보며 스스로 웃고 있다. 신간에서 박홍규는 몽테뉴처럼, 그 역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서 회의적인 글쓰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에세>와 ‘몽테뉴’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박홍규가 이야기하는 <에세>는 어떤 책인가?


에세, 성찰적이고 개인적인 글쓰기
흔히 ‘수필적 글쓰기’로 알려진 '에세Essais'는 단적으로 말해 “주체적인 판단의 시도”이다. 그리고『에세』는 한 인간, 즉 몽테뉴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탐구이다. 그래서 그는 습관에 대하여, 법과 재판에 대하여, 도덕에 대하여, 전쟁과 정치에 대하여, 심지어 자신의 사적 생활에 대해서도 쓴다. 그러나 그 개인적인 글쓰기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는 가벼운 산문’이 아니다. 타인의 체험과 주장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사고, 타인의 그것과는 다른 사유의 세계를 보여주는 새로운 글쓰기였다. ?에세?에서 우리는 개인적인 동시에 세계와 소통하며, 자유로운 동시에 비판적인 거대한 사유의 우주를 목격할 수 있다. 몽테뉴는 자신의 책에서 수많은 고전을 자유자재로 인용하기도 하고, 주석달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은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에서 박홍규는 자기만의 글쓰기가 아닌, 모방과 짜깁기로 점철된 현재 우리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강력히 비판한다.

이 책은 그런 글쓰기를 그만두기 위해, 글쓰기의 진정한 모범으로 몽테뉴의 에세를 살펴보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 우리와는 500년 세월이라는 시간과 프랑스라는 공간을 간격으로 두나, 그가 자신의 글쓰기의 기본으로 삼은 크세주라는 회의정신에서 출발해, 프랑스 문학과 사상의 시조가 된 르네상스인이기에 참조할 만하다. 프랑스식 논술이 강조되면서도 그 시조격인 몽테뉴에 대한 소개는 물론, 그의 『에세』조차 제대로 번역되지 못한 우리 현실에 분노하며, 나는 이 책을 쓴다. 프랑스의 온갖 쓰레기 글들이 번역되면서도 『에세』가 제대로 번역되지 못한 점을 고발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책을 쓸 필요가 있었다.
―프롤로그, 왜 지금 이 땅에서 몽테뉴인가?(34쪽)


21세기, 우리는 왜 에세에 주목하는가?

몇백 년 전에 생존했던 판사 귀족, 고성의 은둔자, 몽테뉴. 자유로운 정신과 대담한 비판정신의 소유자,
자신의 성에서 20년 동안 『에세』라는 한 권의 책만 수없이 고쳐 쓴 사나이. 진정한 의미의 르네상스인으로 후세에게 평가받는 500년 전의 남자. 이 몽테뉴를 만나기 위해 2003년 여름, 박홍규 교수는 몽테뉴의 고성으로 떠났다. 보르도 인근의 생 미셸 몽테뉴 마을. 저자는 포도밭을 지나 오솔길을 거닐어 몽테뉴의 성에 다다른다. 몽테뉴의 서재가 있었던 탑. 좁은 나선형 돌계단을 오르면 소박한 침실과 3층의 서재로 이어진다. 1,000권의 책과 고전에서 베낀 경구가 57개나 새겨진 천장. 마치 검소한 수도사의 방처럼 금욕적인 그곳에서, 몽테뉴는 사색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나는 창 밖으로 보이는 과수원을 내려다보며 고독한 몽테뉴라는 산책가의 몽상을 떠올렸다. 루소의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이 겹치면서 이들과 한순간을 함께했다. 산책가는 고독하다. 왜냐하면 언제나 자신을 응시하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며 떠오른 생각을 쓰고자 몽테뉴는 다시 그의 서재로 돌아간다. 그는 좁은 돌계단을 올라 서재에 이른다.
―몽테뉴, 고독한 산책가, 62쪽

저자 박홍규 교수는 서슴없이 말한다. “몽테뉴를 읽는 것은 못 견디게 재미있다.” 자신조차 제물로 삼는 조롱과 야유, 솔직담백함. 그 속에 철학이 있고, 자신조차 사유와 반성의 대상으로 삼는 강렬한 회의주의의 정신이 몽테뉴에게는 살아 있었다.

“그를 읽는 것은 곧 나를 읽는 것이다. 따라서 즐겁다. ‘참으로 인간은 놀랄 만큼 덧없고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존재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진리 탐구를 계속한다. ‘우리들 철학자보다는 오히려 농부들의 행동이나 말이 진정 철학의 가르침에 들어맞는다.’… 몽테뉴의 답은 명쾌하다. ‘책을 통한 공부는 활기 없고 무기력하다. 따라서 우리의 정신에 단번에 자극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대화는 단번에 우리의 정신을 일깨워 주고 단련시켜 준다.’ 이렇게 책을 부정하기에 그를 읽는 것이 더욱 즐겁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회의주의자, 27쪽

후세에 ‘르네상스 정신’이라고 불리는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새로운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다.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부정적으로 여겨지던 신앙의 시대에 자아를 논했다는 것은 근대적 합리주의와 회의주의에 길을 열어 놓은 것이리라. 그러나 여기서 몽테뉴는 더욱 앞서가는 사상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넘어, 자연과 생명의 중요성에도 주목했다.

또한 그는 놀랍게도 16세기에 이미 서양우월주의를 비판하고, 문화상대주의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습관에 대하여>를 비롯해, 에세의 여러 장에 걸쳐 그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은 없다’ 고 말하며, 심지어 법의 상대성에 대해서도 강변하고 있다.
그리고 20세기의 끌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몽테뉴가 쓴 식인종에 대한 글을 언급하며 ‘인류학자 몽테뉴’에 경의를 표한 바 있다. 몽테뉴는 브라질 사회를 연구하며, 원주민들의 용기와 명예를 지키는 전쟁 방식에 대해서도 찬양했다. 또한 30년 이상 서로 종교와 신이라는 이름으로 죽고 죽인 프랑스내란이 오히려 더욱 야만적이고 잔인하다고까지 비판했다. 그리고 플라톤의 이상국가보다, 자연스런 욕구에 따라 사는 원주민들의 삶과 사회가 더 고귀하다고 극찬한다.

“나는 플라톤에게 말하고 싶다. 이 나라에는 어떤 종류의 매매도 없다. 문자의 지식도, 수의 지식도 없다. 관리나 그 위의 정치가라는 명칭도 없다. 사람을 부리는 습관도, 빈부의 제도도 없다. 계약, 상속, 분배도 없고, 일도 힘들지 않으며, 모두가 평등하다. 거짓말, 배신, 은닉, 탐욕, 시기, 비방, 용서 등을 의미하는 언어 자체가 없다. 그는 자기가 상상한 ‘공화국’이 그 완벽함에 있어 얼마나 ‘신의 손에서 금방 나온 인간들’(세네카)의 사회인 이곳만 못한지를 알아보았으리라!”
―식인종에 관하여, 296쪽

또한 ‘자연에 따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죽음의 수용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사생활을 중요시하고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산책하는 것’이라고 말한 자유주의자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자유로운 르네상스인, 바로 그 전형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지금까지,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정신은 몽테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몽테뉴와 현대, 323쪽

“…그는 프랑스혁명의 선구자였고, 민중문화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었다. 또한 과학적인 사회학과 심리학의 창립자였고, 서양 중심주의에 반대한 최초의 문화상대주의자 회의론자로, 인류학과 민속학 그리고 비교법학의 선구자였다. 동시에 자유교육을 주장하고 자연의 보호와 회귀를 주장한 생태주의의 아버지였다. 또한 당대의 전쟁과 부정부패에 대한 신랄한 고발자였다.
한 마디로 그는 자유로운 르네상스인, 바로 그 전형이었다. 그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심지어 ‘자기’라는 권위조차 회의하고 해부하며 고백하는 용기까지 보여주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아는 르네상스야말로 바로 그러한 자유정신의 구현이었다. 이제 우리는 꿈꾼다. 그런 르네상스인, 자유인에 의해 우리의 르네상스가 이루어지기를. ”
―몽테뉴와 현대, 323~324쪽

몽테뉴는 전쟁과 내란으로 점철된 시대를 살았다. 당시는 신교도와 구교도간의 종교전쟁과 국경을 둘러싼 유럽국가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다. 그러기에 몽테뉴는 극단주의를 경계하고, 깨어있는 감성과 이성으로 그 극단의 시대를 헤쳐나갔다. 가톨릭이었으나 그의 가족은 신교도였기에, 그리고 회의주의적 비판정신을 가진 몽테뉴는 서슴지 않고 종파의 편견에 대해 비판했다.

한 인문자의 책과 그의 삶을 통해서 꿈꾸는 인문주의의 부활
인생 후반을 시골의 성에 묻혀 『에세』를 썼지만, 그의 삶 속에서 우리는 아나키스트였던 그의 평생 친구 라 보에티의 영향,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 본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영주이면서도 농민이나 직인들과 대화하기를 즐겨했던 그의 풍요로운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감히 저자는 몽테뉴를 ‘모든 선각자들의 선각자’라고 부른다. 물론 몽테뉴가 우리 시대 모든 문제의 해답은 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 삶이 무엇이고, 인간의 사고와 표현은 무엇인가, 사회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문화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성찰하는 데에 몽테뉴는 많은 지혜를, 그것도 웃음으로 성찰하게 하는 여유를 준다. 그래서 그의 삶과 ?에세?는 언제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지혜의 보고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16세기 인문주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몽테뉴의 회의와 관용의 실천철학은, 17세기에 이르러 수학적 논리적 엄밀성에만 헌신한 이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8세기에는 기술공학의 발전을 초래했으나, 19세기와 20세기에는 오히려 이런 기술발전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비판은 1960년대 이후에 제기되었지만, 우리 나라는 오히려 서양의 기술공학을 따라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따라서 서양의 비판철학 역시 이식되고 수입된, 뿌리 없는 텍스트에 불과했다. 그런 만큼 그 비판의 뿌리, 16세기 인문주의의 사상적 계보를 추적해 보고, 몽테뉴부터 보자는 것이 이 책 ?몽테뉴의 숲을 거닐다?가 던지는 문제의식이다. 즉, 저자는 우리 사회 역시 몽테뉴식의 성찰적인 글쓰기와 회의정신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의 비판과 자유를 누리자고 권유한다.
리뷰 총점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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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기사1

  • 기죽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읽는 책
    기죽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읽는 책
    200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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