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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또 다른 머리말 제1장 자살을 기록하다 자살의 징조 제2장 소설로 읽는 자살 1 무엇이 자살의 결정타가 되었을까 제3장 소설로 읽는 자살 2 미스터리한 자살자들 제4장 유서들 유서의 현실성에 대하여 제5장 자살의 유형 1 미학·철학에 따른 자살 제6장 자살의 유형 2 허무함 끝에 발생하는 자살 제7장 자살의 유형 3 동요나 충동에 이끌린 자살 제8장 자살의 유형 4 고뇌의 궁극으로서의 자살 제9장 자살의 유형 5 목숨과 맞바꾼 메시지로서의 자살 제10장 자살의 유형 6 완벽한 도망으로서의 자살 제11장 자살의 유형 7 정신질환이나 정신 상태 이상으로 인한 자살 제12장 모든 자살을 설명할 수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 맺음말 |
春日武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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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에서 우리가 자살에 대해 (속으로 남몰래) 느끼거나 생각하는 ‘변변치 못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룰 생각이다. 자살에 대한 진지하고 견실한 의견을 굳이 꺼내어 알리바이로 삼고 싶지 않다. 그러니 자살을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비난하려는 사람은 더 읽지 말고 여기서 책을 덮어주면 감사하겠다.
--- p.13 ‘나’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묘하게 뻔뻔한 방식으로, 모든 것이 자신을 홀로 남겨둔 채 멀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죽음 외에는 달리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라는 듯 상체부터 천천히 몸을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 pp.59-60 그에게는 긍지도 있었지만, 자아도취적인 성향 또한 있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는 자기애에 따라 자살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어째서 ‘암두지감’ 같은 요란한 글을 써서 남겼을까. 좀 더 조용히 죽을 수는 없었냐고 반쯤은 빈정대고 싶어진다. 번민이 그렇게나 대단한 것이냐고 묻고 싶어진다. 벼루와 칼, 양산까지 들고 자살할 장소로 향하는 모습이라니, 조금 ‘계산된’ 느낌이 들지 않는가. --- p.128 어느 고리대금업자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긴자의 금융회사 사장실에 향을 피우고, 책상에는 양복 차림을 한 자신의 사진과 여덟 명의 애인 사진을 나란히 세워 놓은 뒤, 사진과 마주 보는 자리에서 (조금 극적인 무대를 스스로 연출한 후) 독을 먹기 전부터 쓰기 시작한 유서를 끝까지 적으려고 했다. --- pp.148-149 S 씨는 날이 흐렸던 어느 평일에 역 앞으로 외출해 그대로 상가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병원에서 옥상까지 가는 도중에 어딘가에 들린 흔적은 없었다. 그녀는 신발을 신은 채로 뛰어내렸다. 가방은 옥상에 대충 놓여 있었다. 유서도 없었고, 병원에서 그녀는 자살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침대 주변이 죽음을 각오했다는 듯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지도 않았다. --- pp.163-164 그것이 신의 계시인지 악마의 속삭임인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갑자기 죽으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자살해 버리는 사례가 존재할까.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그러한 증상을 보이는 사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주변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당사자가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가 ‘마지막으로 얹은 지푸라기 한 올이 지칠 대로 지친 낙타의 등을 부러뜨려 버리듯이’ 사소한 사건이 자살에 결정타를 날릴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 pp.175-176 영국의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의 《자서전》(다나카 세이지로 옮김, 하야카와쇼보, 1974)을 보면 그가 열여덟 살부터 열아홉 살 까지 집 찬장에서 발견한 낡은 리볼버 권총으로 러시안룰렛을 총 다섯 차례 시도한 내용이 나온다.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그런 행동을 한 동기는 ‘권태감’이었다. --- p.177 집요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 실연이나 실패를 겪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부모나 연인 혹은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하고도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훨씬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절망이나 상실, 괴로움이 자살로 향하는 문이라 믿고 있다. --- p.197 스토커 행위를 저지른 것도, 자랑스럽게 여긴 얼굴이 노란색으로 변한 것도, 지갑을 잃어버린(잃어버렸다고 굳게 믿어 버린) 것 모두 그 자체만으로는 자살의 절대적인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한 사건에 얽매여 ‘정신적 시야 협착’이 일어난 끝에 자살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수 없게 될 만큼 유연성이 결핍된 점이 문제일 뿐이다. 바꿔 말하면 정신적 시야 협착이 일어난 사람에게는 사소하고 시시한 일도 얼마든지 자살의 이유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 pp.202-203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포함해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자살 템플릿을 쉽게 따르는 사람은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젠가는 자살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자살 템플릿을 냉정하고 객관적이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정신을 차릴’ 확률이 높다. 이 책의 존재 의의도 어쩌면 그런 점과 관련된 부분이 크지 않을까. --- p.216 정신과 의사에게 자살을 주제로 강연을 시키면, 대부분 우울증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울증은 (제대로 된 의료 기관을 통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자살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살의 원인이 우울증이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다. 예측조차 불가능하다.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자살과 무관하다는 말도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들 우울증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 p.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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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죽기로 결심했을까?
실제 일어난 사건, 남겨진 유서, 임상 경험 그리고 문학 작품에 비추어 자살자들의 심리를 추리하다 “자살을 암시하는 전조 증상이 있을까.” ‘1장 자살을 기록하다’에서는 저자의 환자 중 자살 징후를 보였던 것 같은 한 청년의 사례가 단편소설처럼 그려진다. 보통 자살의 전조 증상이라고 하면 자살자의 죽기 전 근래 기분 상태나 처했던 상황에서 무언가 특이한 점이 있었는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청년의 사례에서는 독특한 성질의 자살 징후가 나온다. “단 한 사람, (어쩌면) 자살 징후일지도 모를 증상을 보인 청년이 있었다.”(18쪽) 청년의 이름은 류타이고 서른을 앞둔 은둔형 외톨이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저자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저자는 그가 어머니와의 애착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10년 넘게 주로 집에 틀어박혀 지냈기 때문인지 그는 다른 환자들과 번번이 부딪히며 입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크게 우울하거나 불안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류타는 갑자기 자살해 버렸다. 그것도 병원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서. 그는 죽기 전에 당직 중이었던 저자를 찾아갔는데 그때 그의 모습은… 이다음에 나오는 류타의 자살 징후는 저자가 묘사한 문장을 읽어야 한다. 기묘한 그 징후를 읽고 나면 책 표지에 그려진 구불구불한 이미지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실화이지만 픽션 같은 이 사례는 진한 잔상을 남긴다. 수십 가지 자살 사례가 드러내는 인간의 어둠 이 책에서는 마치 이어달리기하듯 연이어 자살 사례가 나오는데 자살자 저마다 품고 있는 어두운 내면을 저자는 꽤 세세하게 들여다보려고 한다. 일본에서 한 고등학생이 외조모를 죽이고 본인도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400자 원고지 94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는데 한 문예평론가는 이를 보고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와 견줄 만하다는 평을 했다. 저자는 자살을 관념적으로 다루는 평론가를 향해 짜증을 내고 자살자의 가정환경을 짚어보고 긴 유서를 살펴보며 왜 그러한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는지 가늠해 본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가족에게는 불성실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분신자살을 한 인물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왜 그의 삶이 그런 식으로 흘러갔고 하필 자살 방법 중 왜 분신을 선택했는지도 알아본다. 그리고 ‘언뜻 허무해 보이는 엘리트 고리대금업자’와 ‘허무감 그 자체를 보여준 S 씨’의 자살 사례를 비교하며 인간의 ‘허무함’에 대해 고찰해 본다. 이 외에 좋아하는 여성을 따라다니다가 자살한 대학생,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잘못된 믿음을 품고 세상을 놓아버린 교수, 사형당하는 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형수, 본인이 우울증이라고 주장하며 과거의 상사와 그의 아내까지 살해하고 자살해 버린 남자, 지갑을 잃어버린 줄 알고 남편에게 미안해서 자살한 여자, 무의식중에 자해하는 해리성 장애 환자의 자살 등 상당히 무겁고 다양한 자살 사례가 소개된다. 하지만 많은 자살 사례를 들여다보며 자살자들의 심리를 추리해 본다고 해도 그들이 죽음을 결심한 이유를 완전히 알 수는 없다. “대체로 자살의 이유를 이것저것 조사해 봤자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인과관계는 ‘나중에 덧붙여지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자살한 본인조차 그 알기 쉬운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행동한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가 덧붙여지든 간에 자살은 갑작스럽고 부자연스러운 행위임이 분명하다. 자살에 필연성을 부여하려는 듯한 그런 이야기는 오히려 그렇기에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261쪽) 344페이지에 달하는 이 에세이에서 자살에 대한 고찰이 내내 이어지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 봐도 결국 자살은 불가해한 채로 우리를 비웃는다”(10쪽)라는 문장에 수렴하게 되는 기분이 들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또 언제 어디서고 ‘자살’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왜 죽기로 결심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자살에 우리의 마음이 술렁이는 건 ‘인간이 품은 어둠’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어둠을 알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