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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유진 ㅊㅅㄹ 썸머의 마술과학 인간의 쓸모 디너코스 차고 뜨거운 홈 스위트 홈 해설_미래의 책(소유정) 인터뷰_ 그래서 계속 쓸 수 있어요 작가의 말 |
崔眞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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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게 낫다.’ 무의미한 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매일 밤 삶을 선택한다. 할머니에게도 총이 있었을까? 전쟁을 세 번이나 겪는 동안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전쟁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나의 신이었다. 그리고 나의 신에게 폭탄을 떨어뜨리던 사람들. 자주 상상한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을. 내가 죽어야만 누군가가 살 수 있는 상황을. 새벽마다 거울 앞에서 연습한다. 거울 속의 나는 나를 겨눈다.
--- p.39 어른스럽다는 건 아이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어린 시절 어른스러운 척했던 건 그 반대라고 볼 수도 있을까. 20년 전 나는 이유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진은 나를 이해했을까? 그때 우리를 야단치지 않고 지켜만 보던 이유진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은데…. 마흔 살의 이유진과 마흔 살의 내가 대화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공미가 이유진과 연락하며 지냈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다. 공미는 하고 나는 하지 않는 차이를 생각하면 까마득해진다. --- p.76 권태에 빠진 남편에게 독서 모임에 같이 가자고 권해볼까 잠시 고민하던 서진은 곧 마음을 다잡았다. 남편을 사랑하 고 아끼지만, 남편이 포함되지 않은 채로도 충만한 세계 또 한 필요했다. 서진은 일부러 다른 얘기를 꺼냈다. --- p.97 썸머는 마술사도 과학자도 될 수 있다. 꿈이 바뀐다면 바뀌는 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리고 썸머는 120살이 넘도록 살 것이다. 썸머의 세대는 그럴 수 있다. 고민하는 썸머를 숨죽인 채 지켜보며 생각했다. 난 지금 엄마 아빠를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엄마 아빠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리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고. --- p.154 안나는 내면의 주머니에 노아를 넣었다. 자기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노아의 흔들리던 눈빛과 화면 가까이 다가와 쏟아내던 걱정의 말도.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리던 침묵까지. 안나는 오늘 겪은 노아의 모든 것을 내면의 주머니에 넣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188~189 운동은 육체적 건강과 함께 자신감을 불러왔다. 다 낡아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운동을 할수록 몸이 살아나는 것 같았고 다시 젊어질 여지가 보였다. 자기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바로 자신감이었음을 김영선은 뒤늦게 깨달았다. 퇴직하던 당시 김영선은 자조적으로 자기를 ‘다 쓴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에 비하면 요즘 김영선은 ‘되살아난 사람’에 가까웠다. --- p.209 몇 번의 연애를 처참하게 끝내며 깨달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나도 아빠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빠를 닮고 싶지 않았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불러오는 불길한 평온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면 이모 가족을 떠올렸다. 내 안에도 다정함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그것을 꺼내고 싶었다. --- p.240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 인사를 남길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일 거야. 듣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야. 같은 말을 어진에게도 했다.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 거야. --- p.287 |
불안을 딛고 반드시 만나게 될 미래를 위해
―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거야.” 최진영의 소설 속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상황에 놓인 각기 다른 모습의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유진〉과 〈ㅊㅅㄹ〉에서는 사십대가 된 인물이 십대와 이십대의 자신을 되살려 대화하는 듯하고, 〈디너코스〉와 〈차고 뜨거운〉에서는 놓여날 수 없는 유전적, 환경적 조건에서도 다른 삶, 조금은 더 나아진 삶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물이 또렷이 그려진다. 〈썸머의 마술과학〉과 〈인간의 쓸모〉에서는 기성세대가 망가뜨린 세상을 바로잡고 버려진 가치를 살리려는 새로운 세대를 통해 작가만의 희망을 길어 올린다. 작가는 실제로 그렇게 자신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는데, 스스로가 겪은 일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하나의 픽션을 과감하게 상상하고 그 속에 자신이 겪은 감정을 포개어 대타자가 된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고 의미를 획득해가는 것이다. 태어났다는, 그리하여 살아내야 한다는 한 인간의 불안을 오롯이 담아내며 자신이 경험한 감정들을 품은 인물을 통해 자신의 사유가 달라지는 것을 깨닫는 일, 이것이 작가 최진영이 소설을 통해 배움과 수행을 거듭해나가는 방식이다. 어떤 사건을 겪기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다르듯 순간순간 변하는 존재가, 비록 미완성형의 어른일지라도, 상처받은 존재여도, 스스로를 돌보고 타인을 부둥켜안는다. 이런 일들이 사라지지 않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분명하게 살아 있을 미래의 나를 구원하는 일로 최진영 소설을 채워나간다. 〈홈 스위트 홈〉 속 “미래를 기억한다”는 문장은 현재의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지금이라는 시간성을 구현해낸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에 공감하면서 응원하고, 위로받고 위로하는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훨씬 단단한 확신으로 다행한 순간들을 맞이하기 ― “너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일 기억해. 그러면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어.” 커피와 위스키 한 잔이 건네는 분명한 감각적 충족처럼 사람을 충만하게 하는 방식은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최진영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도 늘 우리 곁에 있어 의식하기 힘든 집과 가족과 사물과 흔한 자연 풍경을 소중하게 담아내며 나로 존재하는 시간을 풍성하게 채워나간다. 누구나 겪는 탄생과 죽음이지만 ‘죽어가는 삶’이 아닌, ‘살아 있다는 감각에 충실’하고자 애쓰는 삶, 병마에서 헤어나오지는 못하더라도, 더 행복한 순간을 살 수 있는 삶이 흔적 없이 사라질 빗방울, 눈송이, 모래알 같은 우리가 한 번의 생에서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문학평론가 소유정은 이 한 권의 책으로 최진영이 이야기하고 싶어 한 “쓰게 될 것”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여덞 편의 소설이 모두 미래를 향하고 있어서,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조차 뒷걸음질이 아닌 한발 나아가는 모습이라 나는 내내 안심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최진영의 소설을 통해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새기고, 막막한 길에서 만난 한 줄기 빛처럼 이 소설의 든든함을 경험하고, 순간순간 맞이하는 ‘다행함’에 감사할 수 있음은 비단 나만의 감상이 아니기에, 이것은 최진영의 독자로, 우리가 이어나갈 수 있는 최고의 상호작용이자 협업을 만들어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