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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이 돌아왔다
2 밥 굶는 전학생 3 꼬마 삼총사 4 동굴 속에 피어난 첫사랑 5 사랑을 느낄 때 6 들불 야학 사람들 7 군인이 되다 8 늦가을의 귀향 9 위태로운 섬 10 다 빨갱이들이야! 11 준규가 사라졌다 12 숨죽여 우는 밤 13 비극은 비극을 낳고 14 복수의 다짐 15 슬픈 모험 놀이 16 돌아온 준규와 낯선 청년 17 그날의 진실 18 흩날리는 꽃잎들 19 목각 인형 세 친구 에필로그 동백꽃 필 무렵 작가의 말 제주 4?3 주요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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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밤보다 더 까만 공포가 밀려왔다. 옥희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 나 무섭단 말야.” “야,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밖으로 나가면 되지.” 그렇게 말하는 수혁의 목소리도 떨렸다. 준규가 엉겁결에 옥희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옥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참 이상한 일이었다. 준규의 말에 옥희의 가슴이 콩닥거리며 마음에 꽃물이 번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가슴이 뛰기는 준규도 마찬가지였다. --- p..40 그날 마을에선 밤새 숨죽인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넋 나간 얼굴로 밤을 지새운 우혁은 날이 희부옇게 밝아오자마자 국민학교 앞으로 달려갔다. 이미 많은 사람이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널브러져 있는 수백 구의 시신 앞에 넋을 잃고 주저앉았다. 여기저기 통곡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숙이의 시신 앞 에서 우혁은 울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로 말없이 말숙이네 가족 시신을 하나하나 정성껏 수습했다. 뒷산 햇살 잘 드는 중턱에 말숙이 가족의 가매장을 끝낸 것은 어스름이 내릴 무렵이었다. 그 제야 우혁이 허물어지듯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 p.127 선두에 권총을 찬 인민복 차림의 청년이 보였다. 얼음장 같은 눈길에 표정이 없는 춘삼이었다. 그 옆을 준규가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있었다. 몇몇 젊은 무장대원이 주위를 날카롭게 살피며 경호하듯 춘삼을 에워쌌다. 달빛만이 감싸안은 적막한 마을로 들어선 무장대는 몇 개 조로 나누어 흩어졌다. 개들이 요란하게 짖기 시작했고 이집 저집의 창에 호롱불이 들어왔다. 한 무리의 무 장대가 나무짝으로 만든 대문을 부서져라 걷어찼다. 마을 이장의 집이었다. --- p.128 준규가 태연한 척 위로할수록 옥희의 흐느낌은 점점 거세어졌다. “옥희야, 울지 마라.” 준규가 옥희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주었다. “울지 마라, 옥희야.” 비쩍 마른 준규의 손길은 더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다. “옥희야, 나는 네가 살아 있어서 기쁘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우리가 살아서 만날 줄이야.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빚을 진 거다.” 옥희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놓아 울었다.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온 설움이 너울너울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옥희와 준규 사이를 대부분 알고 있었다. 옥희의 서러운 울음을 따라 동네 사람들 한둘이 눈물을 찍는가 싶더니 너 나 할 것 없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죽은 자건 산 자건 서럽지 않은 자가 없었다. 옥희의 머리카락이 힘없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마당가의 동백꽃 하나가 소리 없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 pp.2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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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주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청소년이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 역사, 제주 4?3 시대가 옭아맨 개인의 삶, 그 이야기 속으로 여기, 총을 들고 서 있는 청년이 있다.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친구를 눈앞에 둔 청년이. 추억의 동굴 앞에서 친구를 향해 총을 들이민 청년은, 끝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제주 4?3은 청소년이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그럼에도 다른 역사적 사실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제주 4?3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음에도 복잡한 시대적 상황에 얽혀 오랜 세월 함구되어 왔다. 피해자가 가해자이고 가해자가 피해자인 이 끔찍한 비극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김도식 작가는 세 명의 인물을 내세워 당시 제주에 불어닥친 시대의 비극을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아주 쉽게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세 친구들은 자라면서 독립을 맞이하게 되고 정부 수립을 둘러싼 이념 갈등, 미군정의 만행 등을 직접 겪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며 4?3사건이 촉발되기까지의 시대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친일파, 서북청년단, 군인, 경찰 등 제주 4.3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달랐던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주변 인물로 배치해 당시의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때로는 어떤 교양 도서보다 소설책 한 권이 역사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시각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를 거시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기보다, 그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낸 개인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피부로, 심장으로, 그 시대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될 때 비로소 자신만의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 『바람의 소리가 들려』는 제주 4?3에 대한 청소년들의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관문 역할을 하리라 자부한다.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빛바랜 흑백 사진에 숨겨진 청춘들의 이야기 시대의 수레바퀴에 짓밟힌 그들의 눈부신 젊음에 대하여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첫사랑의 진통을 겪으며 성장한다. 코흘리개 어린애가 세파에 시달린 어른이 되기까지, 주름의 깊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빛나는 청춘은 있게 마련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미덕은 역사적 비극 속에 묻혀있던 눈부신 청춘들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옥희를 마음에 품게 된 수혁. 그러나 준규를 바라보며 웃는 옥희. 준규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었을까? 준규는 왜 옥희를 두고 산으로 올라야만 했을까? 지켜준다고 약속했으면서… 오히려 무고한 마을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는 비극의 현장에서 옥희를 지켜준 건 멀리 군인이 되기 위해 서울에 가 있는 수혁의 어머니였다. 물론 작가는 제주 4?3 그 비극의 서사를 예의 주시함과 동시에 로맨스도 놓치지 않는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를 지키고자 했던 청춘들의 가슴 뜨거운 성장기는 소설에 재미와 활기를 불어넣으며 동시에 몰입감을 높여준다. 그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정신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당시 행해졌던 민간인 학살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개개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평화로웠던 섬 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었던 이념이란 무엇인지, 그 이념을 넘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비극은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불편하더라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더 많이 이야기해야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오늘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은 말한다. 결국 사랑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보호막이 되어 준다는 걸. 우리는 사랑하기에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서 다시 만날 줄이야” 역사의 아픔을 가슴 깊이 기억하며 이제는 바람이 부르는 희망의 소리를 따라 한 걸음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다. 과거에서 더 과거로 들어가 아이들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여주고 다시 과거로 돌아왔다가 에필로그를 통해 현재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는 제주 4?3의 상처가 아직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음과 무관하지 않다. 김도식 작가는 “희생자들에 대한 최고의 추모는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이 이 땅에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누군가 이 소설을 읽고 잠시라도 평화를 소망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라고 밝혔다. 이것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다시 희망의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수혁과 준규, 옥희가 살아낸 비극의 세월을 가슴 깊이 기억하며, 우리는 그들의 후손인 동이처럼, 동이의 손녀 나연이처럼, 희망과 화해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찬란한 4월이 돌아오고 있다. 동백꽃도 숨죽여 떨어지던 그해, 그날들. 4월에 되면 동백꽃 배지를 가슴에 단 제주 도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동백꽃의 의미를 지금의 청소년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핏빛으로 물들던 제주 앞바다가 간직한 사연은 앞으로 어떻게 기억될까? 이제는 진정한 애도를, 진정한 화해와 연민을 배워야 할 시간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시금 뼈아픈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바람의 소리가 들려』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제주 4?3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길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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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소리가 들려』는 이념과 사상에 상관없이 제주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희생당한 제주의 아픔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그려낸 작품이다. 제주 4?3의 휘몰아치는 역사 앞에서 개인의 삶은 휘청일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려 했던 세 친구의 삶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제주 4?3은 아직도 미완의 역사로 남아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른 데다, 무장대와 토벌대에 희생당한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어 화해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피해자도 가해자이고 가해자도 피해자인 끔찍한 모습은 이 소설에도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다만 이 작품은 그 비극을 전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지옥 같았던 시절에도 꿈과 사랑을 버리지 않았던 청춘들의 꺼지지 않는 불꽃을 반성과 화합의 장으로 승화시키면서 오늘날 제주 4?3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하는 과제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 송재찬 (방정환문학상?소천아동문학상 수상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