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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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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막바지에 달한 어느 날 저녁, 멀건 밀크 커피로는 배를 채울 수가 없어 카를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또다시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그는 소리 없이 계단을 내려가 현관을 수색했다. 그곳에서 잠시 수색전을 펴던 중, 사기 접시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큼지막하고 빛깔 좋은 겨울 배 두 개가 네덜란드산 슬라이스 치즈와 함께 붉은 테두리를 한 접시에 놓여 있었다.
집주인의 식탁에 놓일 음식인데 하녀가 잠시 이곳에 보관해 두었을 거라는 것쯤은 배고픈 그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광경에 눈이 뒤집힌 그는 자비로운 운명이 그에게 내려 준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었다. 그는 감사의 뜻을 표하고 그 선물을 자기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p.20 “어머, 그래? 알았어. 그럼 됐어. 주머니에 넣은 거 가져가. 그리고 치즈도 그냥 갖고 가고. 그런 거 이 집에 아직 많아. 난 이제 올라가 봐야 할 것 같다. 아니면 누가 내려올지도 몰라.” 카를은 야릇한 기분에 젖어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생각에 잠긴 채 네덜란드산 치즈를 먼저 먹고 다음에 배를 먹었다. 다 먹고 나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는 크게 한번 숨을 쉬고는 기지개를 켠 후 바이올린으로 감사의 찬미가를 한 소절을 연주했다. 연주를 막 끝내려는데 나직하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는데 바베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버터를 아낌없이 바른 큼지막한 빵을 그에게 내밀었다. --- p.24 카를 바우어는 겨울밤 어둠을 틈타서 벌이는 이런 장난에 한동안 무척이나 재미를 느꼈다. 유쾌한 자만심과 동시에 가슴 졸이는 체험 욕구가 그를 거칠고 뻔뻔스럽게 만들었으며, 이런 장난을 칠 때마다 그의 가슴은 더없는 기쁨으로 요동쳤다. 이러한 멋진 쾌감에 도취해 그는 이 쾌감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만끽했다. 그런 장난 뒤에는 집에 돌아와 늦게까지 바이올린을 켜고 흥미진진한 책들을 읽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노획물을 들고 집에 돌아와 피 묻은 큰 칼을 씻어서 벽에 걸어 놓은 다음 태연하게 장작에 불을 지피는 산적처럼 여겨졌다. --- p.62 카를 바우어는 딱히 생각 없이 객기로 그 띠를 꽉 잡았다. 젊은 처자가 그것도 모르고 계속 걸어가는 동안 풀린 띠는 점점 더 길어졌다. 사내아이들은 그 광경이 재미있다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때 그 처녀가 돌아보더니 웃고 있는 사내아이들 쪽으로 번개같이 달려왔다. 블론드 머리에 예쁘장하고 젊은 그녀는 바우어의 뺨을 한 대 갈기고는 늘어진 띠를 얼른 주워 담고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아이들의 조롱이 이번에는 모욕당한 자를 향했다. 그러나 카를은 아무 소리 없이 묵묵히 걷다가 모퉁이에 이르러 아이들에게 짧게 인사를 건네고 그들과 헤어졌다. --- p.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