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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여는 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삶 차향미 님을 소개합니다 김창수 님을 소개합니다 1부. 저시력인은 얼마나 보일까 저시력인은 어떤 사람? 차향미의 눈에 관한 이야기 김창수의 눈에 관한 이야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 안 반가운 것이 아닙니다 어느 교감의 출장길 감추어진 저시력인, 감추는 저시력인 나만 모르지만 주저할 필요는 없어 베토벤을 닮은 사람 안 보이면 안 되는 어린 시절 이야기 어느 날 지구에 떨어진 것처럼 어둠 속에서 찾은 한 줄기 빛 2부. 저시력인은 어떻게 볼까 저시력인과 함께 일하는 법 모호한 시지각이 만든 블랙홀 황금빛 물결을 이룬 열정의 30년 일상에서 감각을 활용하는 법 손을 뻗으면 그 자리에 있는 물건 암기의 달인 삶의 영역을 확장하기 나의 길잡이 애플리케이션 제3의 눈 이런 것 물어도 돼요? 3부. 저시력인과 함께 보기 저시력인의 특별한 자기소개 좁은 시야 넘어서기 먼저 목소리로 인사해 주실래요? 저시력과 대화하는 방법 나처럼이 아니라 ‘누구나’ 안과 진료는 너무 싫어 어려움을 공유하는 모임 함께 사는 세상의 규칙 4부. 선명하게 살아가기 가족의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저시력인 내가 이래 용기가 있었나? 실패가 탄생시킨 스타 점자를 배우면 유용한 저시력인 나를 우아하게 만드는 점자 점자, 또 하나의 보험 보행 교육이 필요한 저시력인 아찔한 순간들 팔자걸음 안마와 저시력과 직업 자립을 돕는 전문 직업, 안마사 자신감을 갖게 된 경주 가는 길 저시력인에 대한 인식 변화 다가오는 밤이 무섭지만 곧 해가 뜨니까 닫는 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리며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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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저시력’은 시력과 시야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로 흔히 말하는 눈이 나쁜 사람, 눈이 아주 나빠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입니다. 맹 시각장애인과 함께 있으면 사물과 주변 환경을 말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저시력 시각장애인과 함께 있을 때는 상황을 설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저시력인은 얼마나 보일까, 어떻게 보고 살아갈까 하는 고민으로 시작해서 어린 자녀가 저시력이라면 어떻게 키워야 할까, 성인이 저시력이라면 직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하고 고민이 가득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고민을 담아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했지만, 혼자만 외롭게 떠드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시력인 스스로 자신의 장애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우리 사회에서 도움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범위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져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사회적 인식에 변화가 없으면 저시력인 혼자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 「여는 글」 중에서 사람들은 저시력을 눈이 나빠서 불편한 정도로만 인식합니다. 그래서 ‘안경을 쓰면 보이지 않아?’, ‘수술하면 되지 않아?’ 하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저시력은 안경, 콘택트렌즈, 약물치료, 수술 등 그러니까 최선을 다한 의료 행위에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시력은 두 눈 중 좋은 눈의 교정시력(안경 착용)이 0.3 이하이거나 시야가 10도 이내로 줄어든 상태입니다. 두 눈 중 좋은 눈의 교정시력이 0.3 이하라는 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안경을 쓰더라도 시력표에서 가장 큰 그림이 있는 첫 3~4줄만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 가장 좋은 시력으로 큰 글자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야가 10도 이내라는 건, 이렇게 설명해 볼까요? 한쪽 눈은 가리거나 감고 손을 동그랗게 말아 망원경 모양으로 만든 뒤 다른 쪽의 눈에 가져다 대어보세요. 그 상태로 주변 풍경을 보면 시야가 어떤가요? 오랜 시간이 걸려야 공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저시력인은 어떤 사람?」 중에서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인 ‘맹 시각장애인’이 많을까요?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인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많을까요? 2024년 보건복지부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24만 8,360명 중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은 4만 5,806명,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은 20만 2,554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시각장애인의 81.4퍼센트가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 즉 저시력 시각장애인인 것입니다. 또한 2017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바탕으로 한 국내 저시력인의 유병률과 출현율에 대한 연구에서 전체 인구 중 1.46퍼센트를 저시력 인구로 추정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 5천만 명 중 약 73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저시력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죠. 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인이 50만 명은 더 존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시력이라는 장애 명을 부여받지 않고 그저 시력이 나쁠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발견되기 쉽지 않습니다. 발견되지 못한 대다수의 저시력인은 안 보이는 세상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시력에 대한 지식을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저시력인은 어떤 사람?」 중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안 보이는 고도근시이다 보니, 버스 번호나 가게 간판을 보거나 영화 관람과 같은 원거리의 시지각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해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여서 인사성이 없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말이 듣기 싫어 바닥을 바라보며 걸어 다녔더니 인상이 차갑다거나 무뚝뚝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요. 나는 성격이 밝고 사람과 만나는 일을 좋아하는데 말이지요. 자외선을 받으면 변색하는 안경을 끼고 있지만 햇빛이 쨍쨍할 때면 눈을 찌푸리게 됩니다. 심하면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재채기가 나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눈을 가늘게 떠서 가시광선의 유입을 최소화합니다. 그런 시야에서는 누가 지나가는지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알아차릴 수가 없는 데다가 찌푸린 인상은 나의 이미지마저 안 좋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차향미의 눈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14살 때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종합병원 검진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해 마침 우리나라에 방문한 로마 교황님의 행사가 있었는데, 교황님의 방문을 기념해서 무료 안과 검진과 개안수술 사업이 있었습니다. 교실의 맨 앞자리에 앉아도 칠판 글자를 볼 수 없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던 담임선생님이 추천서를 써 주셔서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처음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시신경이 만 2세까지 성장하다 멈춘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좋아질 것이라고 위로하던 어른들의 말씀이 틀렸다는 사실과 앞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막막함에 나도 울고 아버지도 울었습니다. 제일 불편한 것은 책을 매우 가까이에서 봐야 한다는 점, 사람의 표정이나 인상을 20센티미터 이내에서 보지 않으면 구분할 수 없다는 점, 밤에 신호등 불빛을 구분할 수 없어 교차로가 부담스러운 점, 대형 건물에 있는 유리로 된 자동문을 구별하지 못해 자주 부딪히는 보행의 어려움 등이 있습니다. 왼쪽 눈 위주로 시력을 활용하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서 가끔 물건에 얼굴을 부딪치곤 하는데, 그러다 오른쪽 얼굴에 상처를 남기곤 합니다. --- 「김창수의 눈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먼 거리에서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단서는 그 사람의 외형이나 자세, 걸음걸이입니다. 키가 크고 마른 사람, 무릎 아래가 벌어진 사람, 슬리퍼 소리를 내며 걷는 사람, 웅크리고 다니는 사람, 몸통을 좌우로 흔들며 걷는 사람, 총총걸음으로 빨리 걷는 사람 등 몸체의 크기와 동작 같은 것으로 미리 알 수 있지요. 하지만 보통 체격에 특정한 걸음걸이가 없고 헤어스타일마저 자주 바뀌는 여자 선생님들은 지나치고서야 알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지나치고 나서야 누구인지 알아채기도 합니다. 지나친 순간 친한 선생님이라는 걸 알았을 땐 ‘먼저 아는 척해주지. 인사하게’라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인사하려고 이미 지나친 사람을 불러 세우기도 뭣한 일이지요. 어쩌면 선생님들은 나와 인사를 주고받을 때 ‘어떤 날은 반갑게 인사하고 어떤 날은 뚱하게 인사받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들이 나중에 이 글을 읽게 된다면 해명이 될까요? --- 「안 반가운 것이 아닙니다」 중에서 고등학교까지는 학교 수업을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다지만 대학에서는 강의 내용이 시각화되어 있고 문서로 작업하여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작은 글씨가 촘촘한 전공서의 넓은 범위를 공부해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 시력에 보조공학기기의 도움도 없다면 대학 공부는 따라가기가 매우 힘듭니다. 이렇게 저시력 학생이 방치되고 발견되지 않아 또래와는 다른 학습 능력을 갖추게 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많습니다. 시도 교육청 연계 시각장애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도 자주 이야기하는 내용이 저시력 학생에게 어려움을 물어봤을 때 돌아오는 답변이 ‘괜찮다’라는 겁니다. 저시력인 교육 지원이 부족하다고 늘 이야기하는데, 막상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는 당사자들의 지원 거부를 볼 때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고요. 전문가들이 보기에 지원이 필요한데도 당사자들은 필요 없다고 거부하기 때문이지요. 글자만 볼 수 있다면 괜찮은 줄 아는 것이죠. 보조공학기기 사용에 관한 교육을 받고 환경적 지원을 받으면 훨씬 편하게 공부하고 저시력으로 다친 마음도 위로받을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 「감추어진 저시력인, 감추는 저시력인」 중에서 ‘베토벤’이라는 별명을 얻고 나서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어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주제로 인사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머리 스타일이 참 멋지시네요.”, “베토벤 같아요.”, “원래부터 그 머리에요?”라고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기를 ‘베토벤 머리 스타일의 교감 선생님이 참 인상적이었다’라며 돌아오는 인사가 많아졌어요. 듣기 싫지 않았어요. 그전까지는 시각장애를 가진 교감 선생님, 눈을 옆으로 보는 교감 선생님 등 불편한 얘기가 대부분이었는데 비하면 훌륭한 음악가의 이름이 별칭으로 불리는 건 기쁨이었어요. 이후에는 베토벤 음악을 즐겨 들으며 베토벤 머리 스타일을 10년이 넘도록 고수하고 있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어요. 시각장애인은 핸디캡에 매몰되지 말고 스스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꿔야 한다는 것을요.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인상적으로 자신을 가꾸는 것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 말이에요. ‘시력이 불편한 사람’, ‘눈을 옆으로 보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베토벤 닮은 사람’ 이런 이미지로 기억되면 기분 좋지 않을까요? --- 「베토벤을 닮은 사람」 중에서 “엄마는 나보고 무조건 할 수 있다고만 말했어. 안 보여도 공부만 잘하면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어른이 되니까 그게 아니잖아. 안 보이면 할 수 없는 게 정말 많은데 왜 할 수 있다고만 말했을까?” 부모님들이 ‘눈이 잘 보이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라고 내세워야만 했던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시각적 어려움을 외면하고 시각장애를 숨겨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명문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까 봐 시력표를 외웠다는 연구 참여자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권유에 괜찮다고 생각했다고요. 또 다른 연구 참여자는 자신이 시각장애가 있는 줄 모르고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이 아시면 기함할 일이라 성인이 되어 장애 등록을 하고, 몇 년이 지난 뒤 말씀드렸더니 ‘네가 왜 장애인이냐?’라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 「안 보이면 안 되는 어린 시절 이야기」 중에서 어려서부터 시력이 나빴고 몸도 유난히 약했던 나는 9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당시 거의 모든 수업이 칠판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맨 앞자리에 앉아도 칠판 글씨를 잘 볼 수 없었지요. 나는 항상 반에서 특별한 아이이자 담임선생님에게 고민을 안겨 주는 아이였어요. 이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며 공부를 못하는 학생으로 낙인찍혔어요. 스스로 머리가 나쁘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라고 인정하며 우울하고 슬픈 시간을 보냈죠. 당시에는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학교 친구들이 거의 없었고, 선생님들은 나에게 여러 모양의 관심과 동정을 보내곤 했어요. --- 「어둠 속에서 찾은 한 줄기 빛」 중에서 저시력인의 ‘본다’라는 개념은 시각을 포함하여 청각, 후각 등 다른 감각과 함께 사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런 감각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가고자 하는 지하철역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피로가 있습니다. 제한된 감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같은 물체를 보고 있는지에 대한 거듭된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자신이 유추하는 물체의 위치와 실제 위치와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도 반복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알아가는 사이에 ‘감각 활용’ 기술이 발달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수고로움이 쌓여 ‘본다’라는 개념이 발전합니다. --- 「일상에서 감각을 활용하는 법」 중에서 2000년대 이후에는 ‘포용적 디자인’과 ‘접근성’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이는 다양한 사용자의 필요를 반영하여 설계하거나 특정 집단의 요구를 고려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웹사이트를 디자인할 때 시각장애인을 위한 글자 확대 기능을 추가하거나 다양한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을 개발하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내가 보는 만큼 저시력인도 함께 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아름답고 좋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요? 소복소복 내리는 하얀 눈으로 절경이 된 풍경을 같이 보고, 다이소처럼 재미난 생활용품이 많은 곳을 둘러보며 물건을 고르는 일 등 일상의 즐거움을 시각장애인과 누리고 싶습니다. 진보적인 기술로 장애 교육을 전공하는 사람도 없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양한 기술이 이들의 삶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바꿔줄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 「삶의 영역을 확장하기」 중에서 얼마 전 미국 연수에 다녀왔던 선생님이 경험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어요. 미국에서는 자율주행 택시가 일반화되어 운전자 없는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편안히 다닐 수 있었다고 했어요. 예약 시스템에서부터 대금 지불까지 불편함이 없었고, 좁은 골목길을 안전하게 잘 통과하더라며 알려주었어요. 궁금해졌죠. 그리고 대학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인 특수교육 전공 교수님이셨던 임안수 교수님의 질문이 떠올랐어요. “창수야, 만약 눈을 보게 해준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운전하고 싶습니다. 운전해서 고속도로를 마음껏 달려보고 싶습니다.”라고 주저 없이 대답했어요. 교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그렇구나! 어쩌면 나와 생각이 똑같냐?”라고 하셨지요. 가족의 얼굴을 보고 싶다거나 자연을 보고 싶다거나 하는 바람이 아니라 좀 이상한가요? 시력을 잃은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옆에 태우고 마음껏 질주하고 싶은 그 심정이야 어찌 다를 수 있을까요? --- 「제3의 눈」 중에서 정안인과 같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음식을 담지만, 뷔페는 음식의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계속 묻기가 마음에 걸려요. 그래서 먹고 싶은 몇 가지만 어디 있는지를 물어봅니다. 혹은 “너도 군만두 먹을래?”, “어, 이 바비큐 맛있겠다.”와 같이 주변에서 들리는 대화에서 정보를 얻어요. 나의 시력으로만 음식을 담아오면 튀김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먹어보면 아닌 경우도 더러 있답니다. 볶음밥인 줄 알았는데 마요네즈로 버무려진 샐러드이거나 미트볼 같은 완자류인 줄 알았는데 작은 도넛이거나, 생각과 다른 음식을 먹기도 하지요. --- 「이런 것 물어도 돼요?」 중에서 시각장애를 전공하면서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저시력인이 눈이 보이긴 하는데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엇일까? 하루는 친한 저시력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얼마나 보여요? 이런 것 물어도 되나요?” “컴퓨터 해상도가 엄청 떨어진다고 보면 돼요. 평면 TV가 나오고 나서 브라운관 TV를 보면 정말 해상도가 떨어져 보이잖아요. 저는 지금 그런 해상도로 살아간다고 보면 돼요.” 그분은 이해하기 쉽게 매우 근사한 답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물어봤을지 눈치챘을 테니까요. 그리고 좋은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다음부터 어렵지 않게 저시력인에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친절하고 자세하게 답해줍니다. “시야 협착으로 시야가 좁은데 시력은 좋아서 둘러 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나는 중간에 실명한 케이스여서 잘 보이지 않지만 현재 여기가 어딘지 유추할 수 있고, 대부분은 잘 맞아서 감으로 다니고 있어요.” 이러한 질문과 답이 오가는 시간을 겪은 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장애의 정도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얼마나 보이냐?’라는 물음은 사실 저시력인에게 반가운 질문이라는 것을요. --- 「저시력인의 특별한 자기소개」 중에서 가끔 민망할 때도 있습니다. 집에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며 얼굴을 바라보다가 손님이 내미는 선물을 못 본 적이 있는데요. 그 뒤로는 인사를 나누면서 손님의 손을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내가 선물을 기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고 아차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이 작은 움직임은 내게는 필요한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걱정스럽지요. 이런 상황에서 나의 시선 이동과 이에 따르는 머릿속 생각은 시각적 정보를 수집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사회적 상황에서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나의 기술이자 노력이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좁은 시야 넘어서기」 중에서 사람을 구별하기 힘들다 보니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 주저주저하다가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선생님, 선배, 동네 어른한테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치다가 버릇없는 아이라고 혼나곤 했지요. 지금이야 사정을 차분히 이야기하고 대처할 수 있지만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용기가 나지 않고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대학에 들어가고 어느 정도 용기가 생긴 후에는 사람을 처음 볼 때마다 내 소개와 함께 먼저 인사해 주시면 누구인지 알고 반갑게 인사드리겠다고 미리 얘기해 두곤 해요. 일종의 ‘김창수 사용 설명서’를 전하듯이요. 그렇게 해서라도 사회적 관계가 원만해질 수 있다면 번거로움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현실적으로 세상의 규칙이 장애 없는 사람의 코드로 설계되어 있으니, 내가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나와 같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세상의 규칙을 설계한다면 모두가 불편 없이 즐겁게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함께 사는 세상의 규칙」 중에서 저시력인 대부분은 책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보거나 확대 독서기 같은 보조공학기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책 읽기가 힘듭니다. 학령기에 이런 불편함이 있으면 학습량이 부족하게 되고 학습 능력도 떨어지게 되지요. 점자를 배워서 편하게 학습량을 소화했더라면 상위의 대학에 진학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이 익히기에 특히 어려운 것이 점자입니다. 점자를 배우는 것 자체는 간단하지만 빨리 읽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소리로 책을 듣는 성인 시각장애인이 많은데, 방학 동안 대하소설을 점자로 다 읽었다며 자랑스러워하던 50대 초반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손끝의 감각만으로 점자를 읽는 건 생각보다 잘 되지 않고 속도가 잘 나진 않아 좌절하기 쉽습니다만 그 학생의 사례를 보며 도전해 보기를 바랍니다. --- 「나를 우아하게 만드는 점자」 중에서 저시력 학생들은 “새로운 곳을 갈 때, 사실 머뭇거려요. 단톡방에서 친구들이 어디에서 보자고 할 때, 나도 ‘거기로 갈게’라고 답하기 어려워요. 누군가가 센스 있게’ 나랑 같이 가자’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지요. 특히 복잡한 이면도로나 밤이면 더 그래요. 저는 혼자 다닐 수 있지만, 혼자 다닐 수 없어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보행’은 시각장애인의 생활 전반에 걸쳐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을 때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훈련이 당연히 필요한 것 아닐까요? 늘 지나는 길이어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전동 킥보드를 발견하지 못해 넘어지거나 공사 중인 곳에 갑자기 생긴 웅덩이를 발견하지 못해 넘어질 수 있습니다. 주변 환경을 유추하고 목적지의 경로와 길 위에 알 수 없는 장애물까지 확인할 수 있어야 독립적인 보행이 됩니다. --- 「보행 교육이 필요한 저시력인」 중에서 지금에 와서 잘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잘 설명하지 않으니 몰라서 도움을 주지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이젠 나도 조금씩 내 현실을 편안히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받으면서 즐겁게 살아가려고 해요. 도움받으면 다음에 나도 뭔가를 도와주면 되니까요. 어두운 밤에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 어둠이 지나면 곧 해가 뜬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비록 지금은 잘 볼 수 없어서 두렵고, 다가오는 밤이 무섭기는 하지만 어두움을 잘 적응하게 준비하고 나를 도와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담을 수만 있다면 해 질 녘에도 내 삶을 포기하거나 꿈을 저버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 「다가오는 밤이 무섭지만 곧 해가 뜨니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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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불편하지만 불편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장애, 저시력인 이야기 눈앞 5센티미터 가까이에 핸드폰을 보는 사람 혹은 옷 가게의 마네킹을 보면서 길을 물어보는 사람을 만난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까? 출근해서 커피를 같이 마셨는데 복도에서 만났을 땐 목례만 하고 지나가거나 건배하자고 잔을 들었는데 혼자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는 동료를 보면 또 어떤 생각이 들까? 눈이 나빠지는 것은 신경도 안 쓰는 사람, 웃기는 사람 혹은 차가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면 ‘저시력인’일 수도 있다. ‘저시력인’은 눈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다. 시력검사표의 첫 3~4줄의 큰 글자만 보인다거나 시야가 좁아서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시력과 시기능이 떨어져 세상을 명확하게 볼 수 없는, 정안인(시각장애가 없는 사람)은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시각장애를 지녔다. 때문에 “안경을 쓰면 보이지 않아?”, “수술하면 되잖아?”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저시력인은 최선을 다한 의료행위나 고도의 광학 기술이 만들어낸 안경으로도 시력이 교정되지 않는다. 저시력인은 이런 모호한 시각장애로 인하여 불편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핸드폰과 책의 글씨는 얼굴 가까이 5센티미터 앞까지 가져와야 그나마 보이며 식탁 위에 놓은 검은색의 반찬이 콩자반인지 간장인지 구분할 수 없다. 친한 동료의 머리 모양이 바뀌어도 알아차리기 힘들고 앞에서 인사를 하는 사람이 지인인지 외부인인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시력인은 의도치 않게 차가운 성격으로 보이거나 업무에서는 자신의 능력보다 평가절하된 상태로 살아가기도 한다. 시력이 아닌 시선에 관하여, 저시력인은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 이 책은 변방의 장애 영역인 저시력 시각장애에 대하여, 저시력인의 애매모호한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저시력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시각장애 교육을 전공한 신연서 저자는 저시력 연구자로 저시력인의 교육과 삶에 대해서, 저시력인 차향미, 김창수 두 명의 저자는 장애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재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일상과 학업, 업무에 관한 경험을 진솔하게 기록했다. 저시력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 함께 보면서 선명하게 살아가기에 대한 내용으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저시력인은 얼마나 보일까’에서는 저시력이라는 개념 자체의 이해를 돕는다. 저시력인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호한 장애 범주 안에서 감추거나 감춰지는 존재로 살아가야 했던 현실을 담담히 풀어낸다. 2부 ‘저시력인은 어떻게 볼까’에서는 저시력인이 감각을 활용하는 삶의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시각적 정보가 모호할 때 청각, 촉각 등의 감각 활용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도구가 되는지 그리고 기술과 보조공학이 삶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소개한다. 3부 ‘저시력인과 함께 보기’는 저시력인의 자기소개 방식, 인사와 대화의 어려움, 시각 정보가 제한된 상태에서의 관계 형성 등은 실제 사례를 통해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낸다. 4부 ‘선명하게 살아가기’는 저시력인의 자립과 성장의 이야기다. 점자, 보행 교육, 안마 등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기술과 지원을 소개하며 독립적으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시력인을 응원한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설계한다면 모두가 불편 없이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은 장애인의 장애 극복의 대서사가 아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악수하자고 내민 손을 보지 못해서 첫인상이 나빠질까 봐 걱정하고 대중 앞에서 발표할 때 원고가 담긴 종이에 얼굴을 다 가리게 될까 봐 원고 내용을 다 외워버리는 비장애인은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일상에 애씀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친구의 이야기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떳떳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인의 지지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고민은 공유하면서 어려움을 낮춰나가고 사람들과 재미있고 다채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친구의 이야기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저시력인의 인구는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의 실제 경험과 감정, 일상 속 어려움과 적응의 지혜를 읽으며 함께 사는 세상의 규칙을 설계한다면 모두에게 편안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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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시력인’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넓히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떨림과 울림을 주는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입니다. - 강경숙 (조국혁신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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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늘도 ‘애매모호’의 혼란을 겪고 있을 저시력인이 ‘당당함’의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게끔 안내할 것입니다. - 김영일 (조선대학교 교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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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에 몸담은 선생님과 저시력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소중한 안내서이며 이들에게 영감과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 조현관 (거제 애광학교 교장,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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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왔던 마음의 말들이 책 속에 담겨 있어서 38년간 시각장애를 지도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저 또한 더 나은 교육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 김호연 (강남대학교 교수, 한국시각장애교육재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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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담긴 두 분의 저시력인의 진솔한 일상과 굳건한 성장기는 독자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저시력을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 신효순 (사단법인 한국시기능훈련교육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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