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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딸인 고토미가 대학에 들어가며 도쿄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이다. 처음에는 무슨 일만 있으면 집에 쪼르르 달려오더니 직장에 들어간 후로는 일이 바쁜지 연말연시에만 며칠 지내다 갔고, 요 몇 년은 그마저 뜸해졌다.
도쿄에 간 지 얼마 안 됐을 땐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왔다. “엄마, 스웨터는 세탁기로 빨아도 돼요?” “감자고기조림 만들려고 하는데 맛술을 꼭 넣어야 해요? 설탕만 넣으면 안 돼요?” 지극히 사소한 용건들이었다. 요즘 세상에 인터넷에서 찾으면 금세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도 곧잘 전화를 걸어 물었다. “아이참, 귀찮게도 하네. 내가 아무것도 안 시키고 애를 너무 곱게 키웠나 봐.” 아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매일같이 걸려 오던 고토미의 전화가 일주일에 한 번, 보름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꼴로 서서히 줄어들더니 최근에는 전혀 오지 않게 되었다. (…) 외동딸인 고토미와 자매처럼 가깝게 지냈던 아내는 분명 쓸쓸할 텐데도 “도쿄 생활을 알차게 즐기느라 집에 오지 않는 거겠지”, “전화가 뜸한 건 도쿄에도 물어볼 사람이 생겼다는 뜻일 거야” 하고 웃으며 말했다. --- 「단어장」 중에서 “하루나는 왼손잡이니까 잘하는 게 당연하지.” 에이타의 목소리에는 지기 싫어서 못내 분해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근데 평범한 가위랑 왼손잡이용 가위는 어떻게 다른 거예요?” 내가 작업대에 내려놓은 왼손잡이용 가위를 보며 에이타가 물었다. “‘평범한 가위’라는 표현은 좀 그렇다. 마치 왼손잡이가 평범하지 않은 것 같잖아.” 나답지 않게 강한 말투가 나왔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자, 그럼 다시. 왼손잡이용 가위와 오른손잡이용 가위는 어떻게 다른가요?” --- 「가위」 중에서 “어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이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단정 짓고 나태하게 지나쳐버리는 일들이 참 많지요.” --- 「가위」 중에서 “이제 깨끗하지?” 회장님은 마스크를 벗고 코밑의 땀을 닦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이건 회장님께서 하실 일이 아니에요. 토한 사람이 치워야죠. 애초에 토할 정도로 마시지 말아야 하고요.” 그때는 나답지 않게 발끈했다. “그래. 자네 말이 맞고말고. 하지만 살다 보면 마실 수밖에 없는 때가 있어. 토할 줄 알면서도 마실 수밖에 없는 때가 인생에 있는 법이지. 자네도 곧 알게 될 거다.” “그럴까요?” 회장님은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이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기 토한 녀석은 지금 어쩌고 있으려나. 배 속의 것을 전부 게워내고 개운해져서 오늘은 말간 얼굴로 기운차게 일하고 있으면 좋겠구나.” 그 순간 나는 회장님의 옆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을 평생 따라가겠노라 다짐했다. --- 「명함」 중에서 빳빳한 명함의 직함란에는 자그맣게 ‘주임 대리’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그때까지 명함이 없었다. 당시 회사 규정상, 외근 시 명함 교환이 필요한 영업부를 제외하고는 주임 이상만 명함을 만들 수 있었다. 내 말에 회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3년 동안 아침 청소를 하지 않았나.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쉬는 법이 없었지. 태풍이 왔을 때 밤새 사무실에서 보초 역할을 자처하고, 눈 오는 날 이른 아침부터 큰길까지 나가 눈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 자네 말고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아무도 못 해. 게다가 자네는 총무부 업무도 소홀히 하지 않고 다른 부서 일까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도왔어. 사실, 다른 사람을 위해 몸 바쳐 일한 자네야말로 주임이라는 직함을 받아야 하는데…….” --- 「명함」 중에서 “아버지는 떠올리기가 괴로운지 엄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 난 엄마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지만……. 료코는 어때? 넌 나보다 훨씬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할아버지한테 들었는데.” “내가 태어나고 바로 엄마가 돌아가셨으니까 난 아무것도 기억 안 나.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건 전부 아빠한테 들은 이야기야. 대단한 열애 끝에 결혼해서 내가 태어났고 금방 엄마가 돌아가셨대. 똑같은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몰라. 너무 많이 들어서 전부 사실처럼 믿고 있긴 하지만, 아빠 성격상 내가 속상할까 봐 좀 꾸며서 말한 것 같기도 해.” “그렇구나. 전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우리 집, 여러 얘기를 들려주는 료코네 집, 둘 중 어느 쪽이 나을까?” --- 「책갈피」 중에서 “할아버지는 평범하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평범이라……. 평범한 게 대체 뭘까? 그건 누가 정했을까? 그저 잘 모르는 걸 애매한 채로 두고 싶어서 생각 없이 쓰는 말이 아닐까?” --- 「색연필」 중에서 “그 후에 ‘살색’이라는 명칭을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나 지금은 ‘연주황색’으로 표기합니다.” “그때 겐스이 씨가 제조사에 말씀해주신 덕분이 아닐까요?” 그러자 다카라다 씨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쉽게도 2000년대 초반에야 명칭이 바뀌었으니 그때의 이의신청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겠지만, 선대는 성실하고 정직한 분이셨으니 분명 어떤 형태로든 제조사에 의견을 전달하셨을 겁니다. 어쨌거나 너무 늦게 바뀌었어요. 진작에 이런 배려가 필요했는데 말입니다.” 이번엔 내가 고개를 저을 차례였다. “아니요. 그런 일에 너무 늦었을 때란 없어요. 알아챘을 때 하면 됩니다.” --- 「색연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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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마음으로 문구점을 나서는 손님의 얼굴,
그것만이 시호도의 보람입니다”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이 문구를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는 상냥한 매력의 문구점 1834년 개점, 190여 년의 전통을 가진 긴자 명물 시호도 문구점. 주인 다카라다 겐은 오늘도 시호도의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이번에 시호도를 찾은 손님들은 전작의 재미와 감동을 이어가면서도 후속작에 걸맞은 차별화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1장 〈단어장〉에서는 시호도를 방문해 결혼을 앞둔 외동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서운함을 훌훌 털어버리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이 필요한 관계에 기꺼이 다리가 되어주는 시호도의 한결같은 다정함을 그린다. 2장 〈가위〉의 주인공은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조숙한 고등학생. 동경하던 시호도 문구점에 직업 체험을 하러 왔는데, 하필 파트너가 한없이 가벼운 반 친구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른 두 사람은 겐이 내준 직업 체험 과제를 수행하면서 개성이란 우열을 나눌 수 없으며, 저마다 다르기에 타인의 장점을 찾을 수 있는 강력한 렌즈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3장 〈명함〉에서는 쓸쓸하게 정년퇴직을 맞이한 직장인이 시호도를 찾아와 신입사원 시절 자신을 돌봐준 회장님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시간이 흐르며 사라지고 마는 것들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는 시호도의 애틋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4장 〈책갈피〉는 겐과 온천 여행을 떠난 료코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응원하는 독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겐의 가족사와 시호도 선대의 사연까지 수록되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5장 〈색연필〉에서는 세계적인 무대 미술 감독이 업무차 일본에 방문해 웬일인지 시호도의 문을 연다. 그가 가방에서 꺼낸 물건은 손때 묻은 색연필로, 선대가 운영하던 시호도와 깊은 인연이 있는 듯한데. 혼혈인 그의 사연을 통해 문구의 오랜 관습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면 마땅히 바뀌어야 함을 강조한다. 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호도 문구점의 정성 어린 응대 ‘긴자 시호도 문구점’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자신의 일을 향한 끈기 있는 ‘진심’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긴자 시호도 문구점 2》에는 다양한 직업 혹은 과제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활약하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성장으로 이끈 은인, 시호도 문구점 주변 상인들 그리고 다카라다 겐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직업 의식은 책임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독자에게 남긴다. 책임이란 남들은 몰라줘도 나만은 아는 것, 사소해 보이는 과정 하나가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이해하는 이들은 착실하고 정성스러운 태도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삶을 선한 방향으로 이끈다. 그렇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성장시키는 ‘인연’은 ‘긴자 시호도 문구점’ 시리즈를 빛내는 또 하나의 주제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문구라는 사물은 그 테마를 전달하기 위한 꼭 맞는 소재다. 《긴자 시호도 문구점 2》에도 여지없이 형성된 그 성실한 세계관은 독자의 마음에 건강한 에너지를 불어넣고 마음을 잔잔하게 고양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