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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영혼의 불빛 / 차례
7 책머리에 제1부 자유로운 영혼의 꿈 살다 보면 섬 아이의 일기장 멧비둘기 날개를 털고 섬진강의 봄 저승꽃 바람이 님긴 흔적 1 바람이 남긴 흔적 2 바람이 남긴 흔적 3 거미줄 목젖에 걸린 그리운 그 맛 외로운 영혼의 불빛 미각의 어록 단상斷想 청 빛은 희망이다 혼불 여수 물녘의 삽화 귀천歸天을 위하여 생은 부질없고 제2부 사랑의 연리지 한라산 상고대 칠십 노인의 하루 찬라의 변變 간출암干出巖 흐르다 까치의 설법說法 사랑의 연리지 금산 적벽강 목련에 어린 얼굴 청실홍실 타월집 가을 예찬 대둔산 가을 출항허가서 변절기의 삽화 1 변절기의 삽화 2 경배하는 신앙 1 경배하는 신앙 2 지문 제3부 샛강으로 갑시다 공룡의 포효를 생각한다 늙은 시맨sea man의 고백 개미의 집념 예술가지 꽃 피다 동인지同人誌 해양수산과학관 구름은 노루귀꽃 시詩와 동행 하며 청춘 향기 내시경검사 샛강으로 갑시다 1 샛강으로 갑시다 2 산중山中 희망가 두더쥐 삶 자유를 사유하기 위하여 부질없다 인생아 제4부 그곳에 꽃이 있다기에 모종을 내며 하늘 문 두드리는 은적사 향불 바다와 소년 사랑을 훔치는 도둑 그리움의 노래 바람벽의 추억 용산역에서 요양병원에서 길 쉬었다 가야지 화분 갈이 고독 그 시절 다시 살아서 몽상夢想 어떤 대화 떠나는 나의 신앙 향나무 노목 제5부 도동항 비린내 달력을 떼며 도동항 비린내 백암산 기행 1 백암산 기행 2 물안개 삶이란 자연이 스승이다 두 포구의 비밀 비망록 함성 보낼 수 없어 석별 그 후 현충원에 핀 꽃 삶의 흔적 유성별에 쓴 그리움의 노래 내 살다 가거든 부질없다 인생아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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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다투어 피는 시냇가 언덕
꽃봉오리 흔들어 향을 줍던 바람이 한가로운 하오下午를 느리게 걷어내고 있다 까마귀 소리 농익은 열매처럼 터지고 칡넝쿨 어우러진 언덕 풀숲 휘저으며 쑥부쟁이 보랏빛 시간이 능선을 넘는다 익고 있는 가을 발그레한 산자락에 동갑내기 주검이 편안히 누웠더라고 고향 소식 전해온 친구의 안부가 바람의 잔등 위로 촉촉이 젖어왔다. 아파트 벽에 부딪히며 달려 온 잘 익은 홍시처럼 물든 노을 한 자락 사내 등짝에 또 하루를 얹어 놓는 때 이른 낙화 같은 그런 날도 있습디다. --- 「살다 보면」 중에서 둔덕 위 억새는 바람에 깃털 빼앗기고 귓불 붉어진 초병으로 파고를 전송 중이다. 속내까지 다 아는 바다가 물러나면 아이는 말미잘의 속살을 간질이고 몽돌 밑 게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바위에 붙은 김과 파래 번들거린 윤기를 보고 행여 바닷물로 맛사지를 한다면 윤기 나는 예쁜 엄마 얼굴이 될 거라고 유리병에 바닷물 가득 담아 집으로 간다. 엄마 아빠는 늘 바다 곁을 지키며 무거운 몸을 싣고 바다로 가고 아이는 물병 곁에 잠이 들었다. 바다가 불러준 노래를 듣고 자라서 바다가 키워준 아이는 학교로 가고 살찌게 담아준 바다 맛 어머니 도시락은 타박타박 걸을 때마다 등에서 파도 소리가 났다 아이는 바다를 원색대로 스크랩을 하고 스냅사진을 가슴에 걸어둔 채 어른이 될 것이다 부모도 바다도 늙은 고향 바다에서 인생을 살찌우는 푸른 바다를 키우며 삐틀삐틀 써 내린 오늘의 일기장엔 바다를 빨던 그리운 젖내가 배어 나올 것이다. --- 「섬 아이의 일기장」 중에서 살 오른 봄의 골짜기에 수런수런 개나리가 핍니다. 어딘가 숨어있던 겨울의 비늘들 창백해진 하얀 동백과 그림자처럼 겨울을 끌고 온 흔적들이 봄의 입김에 사락사락 지워지고 있습니다. 여우비로 온 봄비는 새벽을 밟고 수줍은 봄을 틀어 주고 갔습니다. 운전 거리라야 노인당 옆 파밭이 전부인데 아이 몇 키우고 난 유모차는 넘치도록 봄을 싣다 보니 바퀴 바람 빠진 줄도 모르고 봄을 만장처럼 걸쳐 입은 노인은 굽은 허리 얹고 봄 따라나섭니다. --- 「멧비둘기 날개를 털고」 중에서 섬진강 매화 밭 휘도는 여린 향을 바람이 실어와 하동 읍내를 촉촉이 적시고 악양면 앞산이 연초록으로 젖어오면 버들가지는 조롱조롱 풀 눈을 터뜨린다. 광양 제철소가 내뿜는 뜨거운 입김으로 다압면 뒷산 홍매화는 더욱 붉어 섬진강의 봄은 비만으로 뒤뚱거린다. 짝 찾아 길을 물어 강심을 저어 오는 혼기 꽉 찬 오리 한 마리 카누처럼 조붓한 물살을 끌고 평온이 흘러간 강심 침묵의 시간을 건넌다. 다압면 매화 향에 취하고 싶어 연년이 찾아드는 객들의 감탄 소리 모아 경전선 열차에 택배로 보내고 나면 쌍계사 앞 조잘대는 시냇물의 봄노래 화개장터 조영남의 기타 줄에 감기어 울고 섬진강 봄풀이 휘적이는 강 녘 재첩 잡는 어매 밭은 숨소리 애달파 빈 마음에 하동 솔바람 소리로 들어찬다. --- 「섬진강의 봄」 중에서 눈雪 실은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아침 얼굴 씻고 거울 앞에 서니 오늘따라 선명한 저승꽃이 밟힌다 봄날 벚꽃 지고 헐벗은 꽃자리 같은 꽃이 핀다는 건 결실을 유추하는 것 열매가 영글면 스스로 조락하는 것 얼굴에 핀 꽃을 보니 떨어질 날이 머지않았음을 생각한다 바람결에 흩날리던 통속한 시심詩心이 익어 가만히 못다 한 언어로 새살대다 이토록 부질없는 삶의 꽃으로 피였을까 어찌 태우며 갈 것인가 회한의 심지 같은 밉지도 곱지도 않은 이 꽃을. --- 「저승꽃」 중에서 산책길 편안히 잠든 청설모를 보았네 일생을 달려왔던 바람 소리가 들리네 사랑을 쟁취하며 정적을 물리치던 발톱과 지축을 흔들던 천둥에 소스라치던 공포 귓가를 포근히 적시던 새들의 울음소리도 검은 털 올올이 바람으로 털어내고 있었네. 굳은 저 발로 잣나무를 타던 잽싼 소리와 가지마다 구름 가듯 건너뛰던 삶의 소리 하며 족제비 올빼미에게 생명을 지키느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떨던 삶의 소리가 편안히 잠든 몸 위로 등 굽은 시간들이 스치네. 아, 분연히 삶을 쫓던 생의 뒤안길에서 그 길을 회억하며 멈춰버린 가여운 생 이렇게 주검이란 한 자락 바람일 뿐이네. --- 「바람이 님긴 흔적 1」 중에서 깡촌에서 생겨난 번지 없는 회오리 분연히 휘돌던 난 외론 바람이었습니다 봄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끄떡도 하지 않는 왕버들 허리를 흔들다 휘청이며 돌아가던 바람이였습니다 세월은 쉼 없이 내달리고 가시덤불 휘젓다 돌아오던 뒤안길에는 언제나 석양에 젖은 잿빛 하늘이었습니다 끝없는 길을 달리며 우우 울던 그날도 엄습해 오는 육중한 절망과 동행이었고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없던 그 길이 잰걸음으로 달려 온 남루한 세월이었습니다. --- 「바람이 남긴 흔적 2」 중에서 꿈 많던 젊은 날 움츠린 어깨 활짝 펴고 죽도록 사랑하며 든든하게 배부르며 걱정 근심 없이 살고 싶었다 살아보니 인생 그게 아니더라 계절을 발로 차고 흔적 없이 사라져 간 몹쓸 세월도 한 자락 허무한 바람이더라. --- 「바람이 남긴 흔적 3」 중에서 인적 끊긴 폐가廢家 뒤란 추녀 끝 살을 발라 올올이 실을 뽑고 구름인 듯 허공인 듯 욕망의 덫을 놓아 폐가에 내려앉은 뭇별을 가두고 영롱한 이슬까지 받아내는 알토란 농장을 경영하는 거미가 있다. 살랑대는 바람의 농간에도 오직 두터운 침묵의 탈을 쓰고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하며 끝내 정찬正餐을 낚아내는 지혜의 신령神靈 하나의 생명체가 지향하는 생존 묘략妙略 미물의 냉철한 기생을 보며 삶을 성찰하는 성숙한 의식을 깨운다. --- 「거미줄」 중에서 고향처럼 정든 그 어촌 섣달그믐께 북서풍이 백파를 날리는 여덟무날 오후 냉기는 창을 꽂듯 서슬 푸른데 늦은 저녁쯤 몽어*란 놈들이 항구 동방파제 앞에 진을 치는 것이다 후릿그물에 올라온 놈들은 아스라한 그때 그놈들이 틀림없었다. 기억마저 희미한 어느 겨울 바다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패딩 속 몽어 한 묶음을 풀어놓으셨다 텅 빈 뱃속 허기가 개구리울음으로 울 때 된장 바른 몽어는 식도 따라 신작로를 타던 그 비릿하고 달콤했던 고향의 맛을 지금 정도 잊고 그리움도 말라버린 선창에 앉아 우적우적 막걸리에 타 옛 고향을 씹는다. 몽어 : 숭어의 치어 --- 「목젖에 걸린 그리운 그 맛」 중에서 물새들이 안부를 묻는 섬 안에서 외로운 영혼이 그리움의 등대를 켠다 태초부터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할 심중에 꼭 하고 싶었던 말 한마디 목젖 아래 꼭꼭 쟁여 놓은 채 기어이 사색의 묵시록만 필사하고 있다 진한 고독으로 덧씌워진 그 인연 내가 끊었다고 끊어질 것인가 끊어졌다고 바람처럼 가벼워 지는 것인가 하루치 외로움을 앓고 난 섬 언덕 언약으로 맺은 형광빛 언어들을 발광신호만 각혈처럼 토해내고 있다 묵시록에 새겨둔 아픔들이 섧고 긴 세월 기대어 왔던 뼈마디가 시리다. --- 「외로운 영혼의 불빛」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