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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부 시간의 명령 밤배 오래된 나무그늘 갯마을 주막집 그 소녀 안개 숲 강물이 하는 말 흉년 시간의 명령 군불 마중물. 너 때문에 불쌍한 허무 하얀 외출복 햇살을 깔고 앉아 연기의 길 한여름 밤 편지 봄이 나를 불러 소문 헛바퀴만 돈다 그 소리 어느 배우의 독백 2부 달빛 시인 무지개를 보면 빨래집게 붉은 놀이터 신발에게 살맛나는 세상 달빛 시인 분노의 물꽃 두꺼비 사진관 월의 독백 마라도에서 계절의 대문 유자꽃 낙서 고목나무 아래서 물음표는 누구인가 이상한 여자 강아지 왈츠 걱정 절뚝거린 상여소리 가불하다 3부 풀꽃을 노래하다 이별 후회 비밀 도청 분수대 둥우리 저승 꽃밭 안개, 입이 있다 맨발의 악사 풀꽃을 노래하다 갯마을에 내리는 노을 슬픔을 가지고 놀다 산수유 꽃 영혼의 무게 가랑잎 걷는 소리 섬에서·1 섬에서·2 섬에서·3 그럴 것 같다 시간 그놈 4부 기억의 탑 노을 한줌 담고 뻘배 내안에 감옥 바람 주먹이 내 이마를 친다 오동나무 천년소리 재봉틀 소리 낮술 쟁이 쥐불놀이 중이다 가을 울음 노을 물든 바위에 누워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듣다 내 맘에 호수 계산된 철길 기차 역 기억의 탑 흑백영화 얼척없는 일 단풍잎 나는 악기다 유람선에서 5부 자유로운 영혼 아버지의 일기장 너의 울음에서 몇 방울의 뼈를 기억하다 바다의 깊이 초승달·1 초승달·2 황진이 황혼에 돛을 달고 휘파람 소리 0엄마 꽃 철부지 생각 5월의 향기 서쪽 바다 식혜가 짜다 볼우물 손님 그 집 엄니 자유로운 영혼 층계 아코디언 오솔길을 빨래하여 널었다 눈빛이 재산이다 | 작품론 | 갯바람 푸른 관절을 감싸 도는 시편들 | 김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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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는 선창가
갯바람 푸른 관절이 나를 감싼다 널려있는 그물만큼이나 내 몸을 휘감던 희로애락 옹졸한 흉터들은 하나 둘 부표처럼 떠오르고 살아 꿈틀대는 목숨을 밝히고 목마름 같은 얼굴들만 된통 그립다 좋아하는 밤바다는 와도 가도 그리움 뿐 갈까 말까 뒤척이던 밤배 한 척 돌아갈 항구를 잃은 걸까 뱃고동 소리는 흉내낼 수 없다지만 출렁출렁 말을 하는 벙어리 밤배 황진이 집 앞처럼 늘상 지독한 그리움에 서성인다 아직도 가고 있는 나의 밤배 나는 어디쯤에 정박할까 내 몸의 그리움을 붕대처럼 풀어서 이불처럼 덮으려다 멀리 던졌다. ---「밤배」 저녁이 오면 버려지는 그늘 개미가 제 몸집보다 더 큰 먹이를 끌고 나무 그늘을 찾다가 옴이 패인 돌멩이 위에서 쉬어 간다 구겨진 목에 수건을 두르고 그늘을 찾아 앉는 노부부 시린 삶의 등골을 나무 그늘에 풀어놓고 억만 시름 접어 한숨소리로 날린다 등을 오그리고 간신히 앉은 노부부의 가픈 숨소리 쉬는 만큼 가벼워져야지 녹슨 뼈마디도 시원해져야지 부르튼 구름 발바닥이 뒤뚱거리며 쉬려고 내려온다. ---「오래된 나무그늘」 밤안개 자욱한 초저녁 갯마을 주막집은 하루 일을 끝낸 어부들의 뒷풀이장이다 술잔을 비웠다 채웠다 회포를 푸는 어부들 리듬도 겉도는 노래 한 곡조 빠지지 않는다 두 눈 게슴츠레해지면 허리 굽은 주모도 여자로 보인 어부들 양은 탁자에 젓가락 장단은 주모 몫이다 하루하루 밥줄인 바다를 헤엄쳐 나온 외롭고 긴 영혼 밑천이 필요 없는 ‘바다’ 라는 희망의 땅 굵은 심줄이 툭툭 튀는 해풍에 그을린 어부들의 구릿빛 팔뚝 갯마을 주막집의 반딧불 같은 저녁. ---「갯마을 주막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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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론 / 갯바람 푸른 관절을 감싸 도는 시편들
김 종(시인, 화가) 이겨울 시인의 제3시집 평설에 진입하면서 조금쯤 짚고 가야할 이야기가 있다. 더러 언급하는 말이지만 시인은 그리움을 사고파는 장사꾼이라는 것이다. 끝도 갓도 없는 그리움, 도대체 그 그리움이란 게 무엇이며 그 끝은 어디 길래 시인들은 이 오랜 세월을 작정하듯 이 같은 그리움에 매달려 있을까.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았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회자되는 자리에서 시인의 가게를 들여다본다. 언어세상의 지형을 바꾸는 시인 단정코 말하여 그 가게에는 ‘그리움’만한 매력적인 물목이 없는 듯하다. 그러니까 시인에게 오직한 장사 밑천은 그리움이란 사실이며 그 그리움이 얼마나 풍성하냐 그렇지 못 하냐로 시적 성공을 가늠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시인이란 언어만 주어지면 ‘권력자’가 된다는 말은 필자가 되풀이 말해온 터다. 정치권력은 정치인에게 주어지지만 이 같은 권력으로 그들은 무소불위 능소능대의 힘을 행사한다. 시인 또한 마찬가지다. 언어가 주어졌기에 시인은 오만가지의 변화와 표현들을 자신의 생각과 구상대로 직조할 수 있다. 모르긴 해도 시인에게 언어를 부려서 뽑아낸 이보다 큰 능력이 있을까. 이겨울 시인이 자신의 주변에 어우러진 사물들을 끌어들여 그리움과 고향의 서정성으로 줄기차게 노래할 수 있었음은 순전히 ‘언어’라는 무기를 소유한 때문이다. 이겨울 시인은 지금까지 상재한 시집에서 자신이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자신만의 시적 고지를 계속적으로 좁혀왔음을 이번 시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우러진 주변 사물들과의 표정과 눈빛을 자신만의 언어에 실어내는 노력이 작품적 성과로 확인되는 것이다. 요컨대 이번의 시집에 담긴 작품들은 이전의 성과와 견주어 괄목상대하게 향상되었음을 그의 작품들을 읽어가면서 수긍하게 된다. 하나의 가정이지만 시인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그 시간부터 시인은 그 어떤 존재적 가치도 사라지게 된다. 오로지 언어라는 수단이 존재하기에 이에 기대어 이 세상의 모든 그리움과 사랑과 고향을 전매하듯이 자신만의 표현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는 시인이 언어를 통한 권력자인 까닭이며 언어를 부려서 오만가지 사물을 만들고 자신의 능력만큼 언어세상의 지형을 바꾸고 나아가 이것이 바로 시인에게 주어진 최대의 분복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움은 그것을 어찌 풀어 가느냐에 따라 이를 소유한 시인의 눈빛과 표정과 웅숭깊은 기질에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 이후에 읽어갈 이겨울 시인의 작품들은 그런 의미에서 시인 자신의 시적 아우라가 어떻게 노래되는가를 살피는 자리가 될 것이며 그의 시적 개성의 여하如何함 또한 들여다보는 일임은 물론이다. 어둠이 내리는 선창가 갯바람 푸른 관절이 나를 감싼다 널려있는 그물만큼이나 내 몸을 휘감던 희로애락 옹졸한 흉터들은 하나 둘 부표처럼 떠오르고 살아 꿈틀대는 목숨을 밝히고 목마름 같은 얼굴들만 된통 그립다 좋아하는 밤바다는 와도 가도 그리움 뿐 갈까 말까 뒤척이던 밤배 한척 돌아 갈 항구를 잃은 걸까 뱃고동 소리는 흉내 낼 수 없다지만 출렁출렁 말을 하는 벙어리 밤배 황진이 집 앞처럼 늘상 지독한 그리움에 서성인다 아직도 가고 있는 나의 밤배 나는 어디쯤에 정박할까 내 몸의 그리움을 붕대처럼 풀어서 이불처럼 덮으려다 멀리 던졌다. - 「밤배」 「밤배」는 “어둠이 내리는 선창가/갯바람 푸른 관절이 나를 감싼다”는 시작 부분에서부터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표현의 참신함도 그렇거니와 갯바람 푸른 관절이 ‘나’를 감싼다고 한 부분에서 어둠이 내리는 시간을 마치 강보로나 감싸는 것 같은 시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문학적 온화함을 이어가고 느낌 또한 풋풋한 시적 서정성에 다다르게 한다. 어둠에 묻힌 선창은 일견 을씨년스런 분위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이면 귀가를 서두르는 어부들의 조급함도 눈에 띠일 것인데 여기에다 ‘감싼다’는 말을 내세워 언어적 안온함을 도모한 것은 이겨울 시인의 시적 탁월함을 보이는 대목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겠다. 그러면서 이어지기를 널려있는 그물만큼이나 ‘내 몸을 휘감던 희로애락’이라 노래했으니 이 또한 표현의 자연스러움에 비추어 눈길이 가는 대목임은 물론이다. 우리는 이 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남긴 ‘옹졸한 흉터들’ 또한 많았을 것인데 이들이 부표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는 부분에서 우리네 일상이 얼마나 각다분하고 어수선한가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는 중에도 우리가 살아서 움직이는 일은 “꿈틀대면서 목숨을 밝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된통 그리움’ 위에 “목마름 같은 얼굴들”이 앞장서서 떠오르는 일들이 강물 같은 이야기로 흘러간다는 대목도 넉넉히 상상함직 하다. 그리움은 원래가 지워버릴 수도 없애버릴 수도 없는 생래적인 것이기에 ‘와도 가도’ 한결 같은 흐름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그때 포착된, “돌아갈 항구를 잃은” 듯 “갈까 말까 뒤척이던 밤배 한척”은 정처를 정하지 못한 화자의 또 다른 방황일 수 있겠다. 이 작품이 주는 시적 실감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뱃고동 소리는 흉내 낼 수 없다지만/출렁출렁 말을 하는 벙어리 밤배” 또한 갖가지 사연들을 가슴에만 쌓아두고 사는 ‘서민’들의 한 모습을 그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리움은 여전하여 ‘황진이 집 앞처럼’ 늘상 붙잡지 못한 그 무엇이 되어 서성이던 우리네 일상의 한 모습이 그려진다. 하기야 사는 일이 제아무리 힘든 자라도 그리움까지는 지워버릴 수 없는 법, 그 그리움 앞에 방황하는 ‘밤배’는 막연하게 어디론가를 가고 있었을 것이며 그러기에 ‘정박’해야 하는 방황의 정서 또한 읽히는 것은 물론이다. 구름은 누구의 이불인가 이제 작품은 마무리에 들었고 “내 몸의 그리움을 붕대처럼 풀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을 이불처럼 덮으려다 멀리 던졌다는 표현에 이르면 이 작품이 보여주는 화자의 시적 오지랖이 “에라 모르겠다”를 체념처럼 깔고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움 때문에 그리움의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방황성이 어디 화자만의 일이겠는가. 그것을 의식한 듯 작품은 결말 부분에 가서야 작심한 듯 자신을 내던지는 모습으로 바뀌고 그러면서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요컨대 ‘밤배’는 여러 상황에 견주어 사물의 시적 의미를 새롭게 채워 넣은 개연성이 큰 작품이었음을 독서를 통해 인지할 수 있었다. 삶이 요구하는 주문서 같이 물음표가 하루살이처럼 달라붙는다 하늘이 맑은 것만 봐도 누가 구름을 빨아 널었을까 바람의 각시들이 빨래를 걷어 갔을까 세금 미납 딱지 같이 들러붙는 물음표 어쩔 때는 누가 내 꿈도 빨아서 널어 주고 운이 좋은 날은 내 빛나는 달무리가 되기도 하는데 나에게 의문을 던질 때도 많다 바다가 구름의 빨래터라는 것 구름도 바다에서 익사한다는 것 하지만, 구름이 누구의 이불인지는 아직 모른다 웃음 웃는 저 구름은 누구의 이불일까 인생은 결국 하나의 물음표라는데 - 「물음표는 누구인가」 “인생은 결국 하나의 물음표라는” 명제를 걸고 마무리 부분에서는 “웃음 웃는 저 구름은 누구의 이불일까”를 묻는 이 작품의 언어적 질문은 상당히 엉뚱하면서도 아름답다. ‘구름’이 웃음 웃는다는 부분도 그렇지만 ‘누구의 이불일까’를 묻는 화자는 분명 궁금증이 많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시인의 시작품이 사물을 살피고 사유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되었음은 상식에 가깝다. 이 작품의 시작 또한 살아가면서 부딪치거나 받아든 여러 형태의 ‘주문서’ 같은 것이 연이어 달라붙는다는 사실은 살아가자면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정직성이 이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청명한 하늘도 수없이 많은 일들로 흐리거나 더럽혀졌을 것은 충분히 상상되는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를 구름처럼 빨아 널었기에 가능했겠다는 상상 또한 웃음 웃는 구름을 누구의 이불이냐고 묻는 것과 동일선상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잘 빨아둔 구름을 ‘바람의 각시들이’ 걷어갔다는 상상은 이미 빨아서 널어둔 이불을 그 같이 풀어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시인의 언술이 부드러움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스미듯이 읽히기는 불가능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접한 인식적 물음표는 도처에서 상시로 만날 수 있는 교통 표지판이거나 신호등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금 미납 딱지 같이 들러붙는” 상황에서 미상불 궁금한 것 자체로 시가 된다는 설정은 꽤나 재미나는 일이다. 요컨대 호기심이 시를 만들고 궁금한 것들을 하나하나 의문의 형태로 바꾸어서 꺼내는 화자에게 이 같은 시적 표현들이 환치된 상태에서 창작자의 창작능력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일들이 독자를 자꾸 궁금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겨울 시인의 작품 「물음표는 누구인가」는 거듭 읽을수록 더 많은 흥미를 유발하고 있음 또한 알 수 있다. 시적 상황은 발전하여 ‘어쩔 때는’ 누군가가 내 꿈도 빨아서 널어주고 ‘운이 좋은 날’은 “내 빛나는 달무리가 되기도” 하였다는데 그러다가 “나에게 의문을 던질 때도 많았다”고 한 부분에서 시적 사유의 다기함 또한 읽을 수 있었다. 단순한 상황의 제시에 그쳤을 뿐인데도 이전에는 접하지 못한 새롭고 특이한 언어적 운용에 성공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상황은 이내 바뀌고 ‘바다가 구름의 빨래터’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던진 의문의 가짓수는 하나하나 늘어가고 이어지는 부분에서 “바다가 구름의 빨래터”라는 설정은 의외이면서 기발하고 재미 또한 있다. 그리고 ‘구름도 바다에서 익사한다는 것’ 등에선 시적 반전 또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구름이 누구의 이불인지는 아직 모른다”는 시적 상황의 제시 또한 한 굽이의 ‘의문’으로 맞물린 것도 곱씹을수록 재미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시를 읽다가 문득 익숙하다는 느낌이 드는 표현을 자주 경험하는데 이는 누군가가 이미 그것들을 사용해버렸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롭거나 신선하다는 언어적 삽상미가 도깨비 꼬리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는 표현들을 자주 읽는다. 시에서는 여간해서 새롭다거나 특이하다는 반응을 얻어내기가 어려운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며 그래서 쓸 만한 한편의 시를 창작하는 일이 그만큼 지난하다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겨울 시인의 작품 「물음표는 누구인가」는 사뭇 엉뚱한 발상에서 출발했지만 그만큼 재미있고 새롭고 특이하다는 점에서 성공한 시작품임을 밝히고 싶다. 작품은 시인이 의도한 ‘물음표’의 의인화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작품을 독서하는 동안에 이에서 생긴 의문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는데 이들을 굽이굽이 거쳐서 다다른 곳이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누구의 이불이냐는 것과 인생을 하나의 물음표에다 연결한 것 등은 자못 탁월한 시적 성과로 보인다. 그러면서 ‘물음표’는 누구인가라는 설의적 표현은 ‘사람’의 차원에서 저질러진 시적 상황의 형상화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거둔 시적 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생각이다. 안개에게도 입이 있다 안개와 절친한 석모도를 보라 왕성하게 안개가 먹지 않더냐 아무리 솔로몬 지혜라 해도 안개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길을 걷는 연인들도 삽시간에 안개의 먹이가 되고 어둠까지 하얗게 표백시킨 안개의 지독한 아이러니들 뜨거운 가로등도 비틀린 다리 난간도 안개의 먹이가 되던 걸 보라 먹어도 먹어도 칭얼대는 안개 그 안개의 입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머니 젖빛인 듯 순결하고 착한 안개 떠날 때는 하얀 빈손이더니 인생도 안개 닮은 한 마당이더니. - 「안개, 입이 있다」 “안개도 입이 있다” 재미있는 발상이고 설정이다. ‘안개’는 통상적으로 점령군의 이미지가 강한 사물이다. ‘안개’가 출몰하는 곳이면 덮어버린 주위사방은 요지부동의 상태여서 의외의 상황을 연출한다. 그만큼 안개가 보여주는 현실적 상황은 막막한 상황 그 자체이며 대책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막혔던 것들이 우리가 현실에서 갖는 안개에 대한 사물적 인식이다. ‘석모도’를 먹어치운 안개의 식성 그런데도 그 ‘안개’에 입이 있다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안개에서 입을 끌어냈는가 부터 살펴야 할 것인데 화자가 입이 있는 안개를 만난 곳은 뜻밖에도 “안개와 절친한 석모도”였던 모양이다. 석모도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에 딸린 근해어업이 활발한 도서이며 지형상 안개가 자심한 곳이다. 그런데 이 석모도에다 목하 식욕이 ‘왕성한 안개’가 먹어치웠다는 섬뜩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자못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했으니 다음을 어떻게 열어갈려고 이러는가가 궁금해지는 것은 인지상정. 안개의 출몰이 자심한 석모도에서 이를 먹어치운 안개의 상황은 그 무엇에도 우선한 시적 특이함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안개가 커지면 “어둠까지 하얗게 표백시킨/안개의 지독한 아이러니들”에서 안개의 입을 통해 먹어치운 ‘석모도’는 어찌 되었을까가 걱정처럼 다가온다. 안개의 지독한 입을 살핀 다음 “뜨거운 가로등도/비틀린 다리난간도/안개의 먹이가 되던 것 보라”고 했다. 눈앞의 상황으로만 보면 보기 좋게 먹어치운 게걸스런 안개의 식욕 앞에 더 이상의 할 말을 잃는 것이 통상적 반응이라 하겠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바라보면 안개에게 먹히지 않는 것도 있을까 싶고 그 다음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안개의 식욕을 만족시킬 ‘안개의 입’은 또 얼마나 크고 왕성할까를 상상하게 된다. 안개는 현상적으로만 보면 속성이 움직이는 생물적 사물이다. 역사에서 읽었던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는 고려 말의 ‘불가사리’라는 괴물이 ‘안개’의 이미지와 발맞출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개의 그 게걸스러운 식욕을 두고 먹어도 먹어도 칭얼댄다고 여긴 화자는 그럼에도 그 입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단언한다. 대저 우리가 살아오면서 안개의 입을 본 사람은 없었다지만 그럼에도 안개는 끊임없이 먹어치우기만 했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다가 화자는 안개의 빛깔을 두고도 “어머니 젖빛인 듯 순결하고 착한 안개”라고 하였다. ‘젖빛’에서 생명 이미지를 생각게 하고 ‘순결하고 착하’다는 상상 또한 펼쳐낸 결과이다. 지금까지의 안개는 솔로몬의 지혜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는 것이며 막무가내의 속성을 식욕에 견주어낸 안개의 습성을 이리 완벽하게 표현한 것도 화자의 능력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시적 개연성을 통한 광역화한 사물적 의미 또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같은 시적 표현의 반전 뒤에는 떠날 때는 안개 같은 하얀 빈손이더니 “인생도 안개 닮은 한 마당이더니”란 흐름을 만들었고 이에서 파생된 여러 의미 또한 이끌어내고 있다. 이겨울 시인이 거둔 시창작적 성과가 도처에서 괄목상대하다는 것은 이쯤의 표현으로도 시창작의 발분망식을 짚어볼 수 있고 위의 작품 「안개, 입이 있다」에서도 그의 작품적 늘품이 눈여겨지는 것은 물론이다. 아파트 난간을 목숨 같이 부여잡는다 물렁한 무릎을 끌어안고 죽고 싶다는 말도 거짓말 아코디언 연주하듯 계단을 오른다 거절할 수 없는 아픔이란 친구 칭얼대는 약 같은 눈먼 사투리 층계를 오르다 보면 내 좋아하는 노래조차 연결고리가 없다 시선은 더욱 희미해져 그림자로 눕고 산자의 무게에 아파하는 계단 주름 잡힌 페이지를 지신 밟듯 밟는다 적막을 베어 문 계단의 가쁜 숨소리 들숨 날숨 사이에 걸터앉는다 헐덕거린 숨소리에 계단도 맘 아파한다 몸에서 징소리 나면 마른기침으로 달래고 한쪽 모서리에서 자전거 페달이 꿈틀거리면 마지막 층계에서 나를 멈춘다 - 「층계 아코디언」 나이가 들고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지면서부터 가끔씩 계단들이 의자로 보인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마찬가지의 발상으로 아코디언의 음계를 짚어가면서 이것 또한 ‘층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발상도 여전하다. 작품 속의 화자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 ‘아파트 난간을 부여잡’고 ‘물렁한 무릎을 끌어안고’ 계단 오르기가 힘에 겨운 사람은 부지기수다. 사뭇 힘들어하다가 이리 살 바에는 죽는 것이 낫겠다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이마저도 따지고 보면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다는 노인네, 시집 안 가겠다는 처녀, 매번 밑지고 판다는 장사 등을 일러 3대 거짓말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던 것과 겹쳐서 떠오른다. 이 작품에서 읽은 ‘죽고 싶다는 말도 거짓말’이라는 구절 등에서 불현듯 그 같은 생각을 연결지울 수 있겠다. 나이 들면 거절하거나 피할 수 없는 친구가 ‘아픔’이라는 친구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사투리까지 써가면서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하며 오르는 ‘층계 아코디언’에서 문득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노래조차 연결고리가 없다”고 하였으니 이도저도 젊어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푸념 내지는 엄살만 늘어난다는 것이 작품 속의 화자의 생각인 듯하다. 모르긴 해도 저마다 직장을 제대하고 인생 후반기를 아코디언 동아리에서 만나 취미활동을 하는 화자가 하루하루 겪는 일상사를 물 흐르듯 이리 명징하게 풀어내고 있음도 그의 시창작을 돕는 활동의 일환임은 물론이다. 나이가 들면 병원이 직장이 되고 밥 먹는 일보다 약 먹는 일이 우선한다는 것조차 자연스럽게 찾아든 일상사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나이든 사람에게 젊은 시절의 일들을 꺼내놓고 그 모두가 부질없다고 말하면서 보이는 것마저도 제대로가 아니고 오나가나 눕고 싶다는 얘기뿐인데 이것이 어찌 작품 속의 화자뿐이겠는가. 터벅거리며 오르는 계단에서 나이든 사람의 무게가 실리면 그 무게로 하여 계단이 아파한다며 그래도 하루하루를 확인 도장이라도 찍듯 “주름 잡힌 페이지를 지신 밟듯 밟는다”는 표현 등은 살아있기에 스스럼없이 겪고 사는 일이 아니겠는가 싶다. 온전한 것들이 줄어들고 몸에서는 징소리 뿐 오가는 사람이 없다보니 아파트 계단에서 들리는 가뿐 숨소리는 고스란히 나이든 사람이 내뿜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들숨 날숨’ 그 사이에서 ‘헐떡거린 숨소리에’ 계단마저도 맘 아파한다는 인간들의 입은 그 모두가 애처롭다는 생각에 귀결된다. 나이든 사람에게는 하루가 다르게 온전한 것들이 줄어들고 몸에서 나는 징소리가 민망할 때면 이를 ‘마른기침으로 달’랜다는 말에서는 일면 연민의 감정 또한 흐르고 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 자전거 페달이나 돌릴까를 생각해보지만 그 마저도 생각처럼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층계에서 나를 멈춘다”는 표현에 이르면 이 모든 것을 달관의 눈으로 바라보는 화자에게서 가감 없이 읽히는 것도 이 작품의 분위기에 비추어 적절하다. 그 온전한 의미는 아니라도 작품의 문면에서 만난 고령화 사회가 실감나게 달겨드는 것 또한 강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머니 방에는 재봉틀이 앉아있다 청춘이 노리갯감이던 시절 비단장사 외조부 덕분에 가내공장 같은 천조각이 가득했다 양철지붕 위를 뛰어다닌 빗소리 같은 재봉틀 소리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내 옷은 엄마표였다 마당에 나서는 구름 재봉틀 빗줄기 바늘로 풀잎을 깁는다 꿈틀꿈틀 생명의 박음 소리 들린다 방에서는 어머니의 재봉틀이 자투리 시간까지 재단을 한다 촘촘히 마름질하는 사랑의 시간 비오는 날에 듣는 하모니였다 헌옷 기우려고 다시 뜯는 실밥에는 끊어진 관절 같은 구석자리가 너덜너덜 밀려나온 솜뭉치들이 상처에서 짜낸 고름 같았다 수제비를 떼어 넣듯 천 조각을 펼쳐놓고 가계부 앞에서 울먹이시던 어머니 저 세상에서도 구름 깁는 재봉사로 어머니의 일상은 바쁘시리라 비오는 날이면 어머니가 오시고 나는 어머니 곁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재봉틀을 돌린다. - 「재봉틀 소리」 위의 「재봉틀 소리」에서 우리는 화자 이겨울 시인의 가족사의 한 페이지를 읽을 수 있었다. “청춘이 노리갯감이던 시절” 어머니 방에는 다소곳이 재봉틀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비단장사 외조부 덕분’에 “가내공장 같은 천조각이 가득했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여기서 확인되는 것, 화자의 외조부가 비단 장사를 하셨다는 것과 그 때문에 화자의 생활 주변에는 가내공장 같은 천조각이 상시로 널브러져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들과 상대하듯 어머니 방에는 재봉틀이 위치했었다 등등이 우리가 이 작품에서 살필 수 있는 화자의 유년적 풍경들이다. 외조부의 비단장사는 넉넉한 생활정도를 말하는 것이 되고 그런 관계로 집에는 가내공장 같은 천조각이 가득했다는 건 그 시절이라면 긴 설명 없이도 생활 정도를 짚어내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시절이라면 어머니 방에 앉아있는 재봉틀조차도 여느 가정에서나 접할 수 있는 흔한 광경은 아니었다. 더구나 초가지붕도 아니고 양철지붕이었다는 대목이나 그 “지붕 위를 뛰어다닌/빗소리 같은 재봉틀 소리”라니 이것은 여러 대의 재봉틀에서 나는 소리를 그리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에다 화자의 배냇저고리부터가 ‘엄마표’였다는 건 어머니의 재봉틀로 모든 옷을 지어 입혔다는 얘기와 매한가지가 아니던가. 이제 시인은 상상 중에 “마당에 나서는 구름 재봉틀”을 꺼내고 ‘빗줄기 바늘’로 풀잎을 기웠더니 그곳에서 “꿈틀꿈틀 생명의 박음소리 소리”가 들렸다고 한 것이다. 잠시 잠깐도 쉴 새 없이 재봉틀 작업을 위해 마름질을 하는 어머니의 그 모두는 ‘사랑의 시간’을 재고 자르고 깁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그 일을 두고 화자는 “비오는 날에 듣는 하모니였다”는 표현에 이르는데 이는 절창에 가까운 표현이라 하겠다. 화자에겐 이처럼 그 시절의 소리나 광경이 두루 좋았던 모양이고 이를 탁월하게 재현한 일에 상당세월을 보냈었고 이를 통해 이겨울 시인의 음악성 또한 길러졌겠다는 생각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겨울 시인이 마름질하거나 수선하는 어머니 곁에서 내내 지켜본 것 하나, 헌옷을 기우려고 ‘다시 뜯는 실밥에는’ 밀려나온 너덜너덜한 솜뭉치들이 “상처에서 짜낸 고름 같았다”고 하였다. 그 시절에도 그 같은 광경만은 그리도 싫었던 모양이다. 그들 작업과정에서 “수제비를 떼어 넣듯 천 조각을 펼쳐놓고” 가계부 앞에서 어머니가 울먹였다는 대목은 모르긴 해도 쪼들리는 형편에 예산 맞추기가 어려운 것을 그리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어머니는 가셨지만 “저 세상에서도 구름 깁는 재봉사로/어머니의 일상은 바쁘시리라”는 화자의 상상은 재봉틀 소리 앞에서 펼쳐낸 이겨울 시인만의 생체험적 표현이리라. 비오는 날이면 화자에겐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가 자연스럽게 재현되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오신다는 상상에다 그 어머니 곁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재봉틀을 돌”렸다는 화자의 지난 시간들을 어머니와 동일 감정으로 공유하겠다는 생각은 그만큼 그 시절의 일이 간절함에 터잡고 있다는 증거이다. 봉황새는 오동나무만 앉는다더니 오라는 봉황새는 없고 까치 한 마리 반겨주었다 보랏빛 눈발처럼 날리는 오동꽃 보랏빛 종소리가 들렸다 귀를 열고 음 고르던 몸이 굵은 이파리들 보랏빛 실루엣 같은 흔들림을 따라 한 줄금 소낙비로 가락을 고르는 저 오동나무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음표들이 살고 있는지 천년의 소리가 거문고 되고 옭아 멘 매듭 풀어 장롱에 넣었더니 초가집 댓돌 위에 오롯한 나막신 한 켤레 저리 장대한 나무의 기골에도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고 천년소리를 저장하고 말리라 오동나무 마지막 소원은 가난한 시인과 한 짝이 되고 시를 받아 몸 섞다가 흙에 싹틔우고 우거지고 싶다네. - 「오동나무 천년소리」 「오동나무 천년소리」를 독서하면서 문득 옛날 어른들이 늘상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아들 지상주의의 시대이니 그럴 만도 했겠지만 딸을 출산하면 그 시간부터 부모들은 출가시킬 자식 걱정에 그 실제적인 준비로 오동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는 그나마 그 시대를 위안 삼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오동나무는 성장 속도가 빠른 관계로 일단 심어만 두면 딸아이를 출가시킬 쯤이면 그 나무를 베어서 장롱을 제작하여 시집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동꽃에서 보랏빛 종소리를 들었다 그러니 시집보낼 밑천으로 심었던 나무가 오동나무라는 것 아니겠는가. 세상이 달라져서 이제는 그 같은 걱정이 되레 아들 쪽으로 옮겨갔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출산한 딸을 두고 오동나무를 식재한 일은 딸의 백년대계를 위한 발 빠른 구상이면서도 뒷맛이 씁쓸한 것 또한 사실이다. 화자는 그 오동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오동나무 천년소리」에다 담으려 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은 우리가 항용 가깝게 인용하는 동천년로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오동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항상 노래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에 기초하고 있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귀하다는 오동나무에 비유하여 힘들고 어렵지만 자존심만은 잃지 말라는 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작품은 시작부터 오동나무만을 가려서 앉는다는 ‘봉황새’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작품이 말하기로 오라는 봉황새는 아니 오고 불청객 까치 한 마리가 깍깍거리며 반겨주었다고 했다. 바야흐로 오동꽃 꽃잎들이 ‘보랏빛 눈발처럼 날리는’ 중에 종처럼 생긴 오동꽃에서 보랏빛 종소리가 들렸다는 상상은 시적 순발력 또한 만점이라 하겠다. 이 부분만으로도 이 작품은 성공적인 절창이다. 코끼리 귀처럼 나풀대던 ‘몸이 굵은’ 오동이파리들이 ‘귀를 열고’ 음을 고르던 “보랏빛 실루엣 같은 흔들림을 따라” 한 줄금 소낙비로 가락을 고르는 오동나무를 두고 화자는 그 나무속에 “얼마나 많은 음표들이 살고 있”을까 를 궁금해 한다. 이는 위의 오동나무를 통한 시적 영감의 자기 확대이며 궁금증이 약여한 대단한 시적 발견이라 하겠다. 우리는 새삼 이겨울 시인의 시적 역량을 확인시켜준 이 같은 표현들을 한자리에서 마주 하고 있음이다. “꿩 대신 닭이랄까.” 아니 이도 아니라면 외려 시인이 여기에서 발견한 것은 “천년의 소리가 거문고가 되”었다는 것이니 그 표현의 탁월함도 그렇거니와 여기서 제작한 거문고를 ‘옭아 멘 매듭 풀어 장롱에 넣었’다고 한 부분이나 그 거문고를 켜기 위해 장치한 ‘초가집 댓돌’이나 오롯이 놓인 나막신 한 켤레까지도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풍채가 장대한 나무는 노래 소리 또한 쉬지 않더니 삼천갑자 동방삭이도 떠날 때가 있었듯이 오동나무 또한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고” 천년소리를 저장한 자리에 서고 말리라는 발언이 이 같은 시적 효과에 나아가 있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것, 시인이란 살아생전에는 작품을 쓰지만 그 작품은 시인이 이 지상을 떠난 뒤에도 그 시인만을 지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것과 동일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일으킨 시인의 생각이 “오동나무 마지막 소원”으로 환치되었고 “가난한 시인과 한 짝”을 이루면서 ‘시를 받아 몸을 섞다가’ 그 시를 종자처럼 “흙에 싹틔우고 우거지”게 하고 말리라는 생각으로 이 작품은 마무리에 든다. 금 간 항아리 틈새로 기어 든 달빛 한줄 그리움에 지친 듯 스러지고 무심한 시간을 구제받는 순간 잠자리 술래잡기인 듯 얼굴을 맴돈다 너의 젖은 옷소매에서 찔레꽃 향기 천년을 살아온 코끝에 걸려있다 얼굴 가려 우는 야윈 어깨가 부끄럽던 밤 몽고 반점만한 사랑도 배불리면서 달빛을 현악기 삼아 부르던 우리들 노래 꿈같은 고통이 눈물의 언어가 될 줄이야 금방 사라진 하품 같은 그 노래 물방울 같은 사랑이 적힌 노랫말 우박이 온몸에 구멍 숭숭 뚫어도 너도 할 수 없는 말 나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없다. - 「비밀」 털어놓으라는 ‘비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면 그걸 일러 “우박이 온몸을 구멍 숭숭 뚫어도”라 표현했을까. 꽁꽁 숨겨두고 무덤까지도 가져가자던 “물방을 같은 사랑이 적힌 노랫말”을 그리도 엄격하게 지키려던 화자만의 비밀은 무엇에 근거하는 것일까. 더도 덜도 숨길 것 없이 작품 제목이 「비밀」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밀’의 사전적 의미는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는 내용” 따위의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비밀’이란 어휘의 주변에는 ‘불가사의’, ‘비공개’, ‘속비밀’, ‘신비’, ‘엄비’, ‘천기’, ‘기밀’ 등등의 말들이 저마다의 유기성으로 어우러져서 이 말이 지닌 언어적 깊이 또한 평범하지가 않다는 것을 생각게 된다. 동일 선상에서 진입한 「비밀」에의 독서는 “금 간 항아리 틈새로 기어 든 달빛”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였다. 천년을 살아도 옷소매는 젖는다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 같은 아련한 심정적 ‘그리움’이 자못 ‘지친 듯 스러’질 것만 같다는 것이며 우리가 감 잡은 화자의 생각이 이 같다 하겠다. 마찬가지로 지친 듯 스러질 ‘한줄 그리움’이야 독자의 입장에서는 장히 궁금하였겠다. 하지만 그래서 “잠자리 술래잡기인 듯 얼굴을 맴돈다”고 한 것 또한 더더욱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움’과 함께 벌이는 술래잡기에는 이 굽이 저 굽이를 거쳐나가는 화자의 심적 방황 내지는 간절함이 숨 쉬고 있다. 그런데 그 그리움이란 게 ‘천년을 살아온’ “너의 젖은 옷소매”에서 ‘찔레꽃 향기’가 걸려있었다고 한 것이다. 금방 들통 날 만큼 그리움은 크고 광활하고 간절한 것이어서 천년을 살아온 코끝임에도 젖어 내린 옷소매에선 찔레꽃 향기가 번진다고 했다. 앞의 ‘젖은 옷소매’는 눈물을 닦아서 그리 된 것임을 단박에 알 수가 있고 그로 하여 “얼굴 가려 우는 야윈 어깨가 부끄럽던 밤”이란 것도 생각 여하로 궁금한 부분이다. 새삼 한번쯤은 반전이 필요한 부분에서 반전을 읽은 것이다. 하찮은 사랑을 ‘몽고 반점만한 사랑’이라 한 것도 특이표현이 되기에 충분하고 ‘배불린’다는 말 또한 행동하면서 그리 표현하라는 말이 아니었나 싶다. 이야기는 더 이어져서 “달빛을 현악기 삼아 부르던 우리들의 노래”가 꿈같은 고통 속에서 ‘눈물의 언어기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 이겨울 시인의 「비밀」이 갖는 언어미학적 질량감일 것이다. 이제 달빛을 현악기 삼아 함께 불렀다는 우리들의 노래가 ‘금방 사라진 하품 같은 노래’가 된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상황에 대한 반어적 인식을 그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화자의 시적 의중은 여전히 견고하여 “물방울 같은 사랑이 적힌 노랫말”이 ‘우박이 온몸에 구멍 숭숭 뚫어도’ 여전히 양보할 수 없는 말이 되고 말았음이다. 그리고 가슴에다 묻었을 뿐 네가 할 수 없는 말은 나 또한 말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다짐처럼 제시하면서 작품은 마무리에 다다랐다. 우리는 이겨울 시인의 작품들을 독서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밤배」에서 읽은 ‘선창’이미지는 이겨울 시인의 여러 시작품을 감싸고도는 서정성 내지는 트랜드로서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다. 실지 살아 꿈틀대면서 목숨을 밝힌다든지 돌아갈 항구를 잃고 방황하는 밤배라든지, 출렁출렁 말을 하는 벙어리 밤배 등의 표현을 통해 붕대처럼 풀어낸 멀고 먼 그리움의 속 깊은 현상들을 질 고운 표현으로 읽을 수 있었다. 「물음표는 누구인가」에서 우리는 새삼스럽게도 인생은 하나의 물음표라는 전제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구름’이라는 자연물을 끌어들여 빨래터와 이불 이미지를 기발하면서도 신선하게 직조하고 있다. 이 작품 「물음표는 살아있다」는 맞물린 몇 굽이의 의문과 함께 언어적 반전 등이 볼만하고 시적 이채로움 또한 가볍지가 않았다. 「안개, 입이 있다」에서 ‘안개’는 특징적으로 활유화된 사물이다. 그만큼 생명력이 왕성한 소재이며 안개가 자심하기로 유명한 ‘석모도’를 먹어치운 게걸스런 안개의 식욕이나 현상 등에서 점령군의 이미지 또한 읽을 수 있었다. 인생도 안개 닮은 빈 손이라거나 ‘한 마당’이라는 배경 뒤에는 젖빛 생명이미지 또한 눈여겨 읽을 수 있었다. 「층계 아코디언」에서 우리는 힘겹게 오르내리는 ‘층계의 이미지’를 ‘아코디언의 음계’로 환치하고 여기에서 내뿜는 가뿐 숨소리를 짐짓 민망해 하다가 ‘마른기침’으로 달랜다는 표현 등은 눈여겨 읽히는 부분이었다. 「재봉틀 소리」에선 이겨울 시인의 넉넉했던 가족사의 한 부분이 읽히기도 했으나 그 이면에는 천 조각을 펼쳐놓은 가계부 앞에서 울먹이는 어머니의 이야기 또한 삽화처럼 읽을 수 있었다. 「오동나무 천년소리」에서 우리는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지만 딸자식은 낳자마자 그 즉시 식재했다는 오동나무를 통해 한 시대의 풍속을 읽을 수 있었고 ‘보랏빛 눈발처럼 날리는’ 종처럼 생긴 오동꽃에서 보랏빛 종소리를 들었다는 표현 등은 이겨울 시인의 시적 탁월함 내지는 기발함을 보이는 대목이라 하겠다. 한줌 그리움에서 뽑아내어 노래한 「비밀」의 시적 키워드는 뭐니 뭐니 해도 ‘금방 사라진 하품 같은 그 노래’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박이 온몸에 구멍 숭숭 뚫어도’ 여전히 양보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은 ‘물방울 같은 사랑’이 담긴 구절들로 대신하고 이쯤에서 이겨울 시인의 시적 질량감이 만만치 않았음을 살필 수 있었다. 이겨울 시인의 작품들은 도처에서 고향산천에서 연유한 ‘선창’이라든가 ‘바다’이미지가 읽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의 고향 ‘완도’는 장보고의 해상왕국으로 조선조 최고의 시인 고산 윤선도 선생의 보길도가 이 지역의 시적 풍광으로 밑 받쳐져 있다. 그가 대한민국국회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공동 주최한 ‘국민의 시’ 공모에서 영예의 대상을 안은 작품도 제목이 「선창」이었음다. 여기에다 이번 시집의 평설의 머리를 장식한 「밤배」의 시적 서정성 또한 선창을 들고나는 선박들의 이야기인 것은 결코 우연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움을 얹어서 안착한 시적 고지 이겨울 시인의 이번 시집 『별을 주워담는 가난』을 채우고 있는 작품들은 상당수가 시인 자신이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자신만의 시적 고지에 안착했음을 보여주었다. 시인이 체험하고 만나는 사물에의 모든 표현들은 고스란히 그 시인만의 시적 자산이다. 그것들은 또한 그리움이라는 안료를 도포塗布하고 매장에 전시되는 예술품처럼 시라는 제품으로 세상에 나와 독자와 만난다. 이런 연유로 이겨울 시인의 시작품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견인할 것을 평자로서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가 이번 시집에서 거둔 시적인 이채로움과 탁월함과 새로움을 더하여 독자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는 행운 또한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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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울 시인의 시적 미덕은 모든 시선이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현상적으로 드러난 기표 이면의 진실을 바라본다. 그의 작품이 추구하는 가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대답을 구하고 있다. 때로는 그리움을, 때로는 슬픔의 정서를 통해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성찰과 통찰에 이르려는 것이 이겨울 시인의 시가 지향하는 가치이며 지점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그의 언어는 적절한 비유를 구사하면서도 독자친화적인 태도를 보여 높은 지경의 시적 형상화를 구현하고 있다. - 강경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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