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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방식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고인돌 고인돌 가을을 품다 가을을 빚다 물결 나의 별 장사도의 봄 하모니카를 부는 촌장 구절초 대봉감 데이지 꽃밭에서 능소화 가시연꽃 빈 집 제2부 함께 먹는 저녁밥 함께 먹는 저녁밥 아내의 바다 깨달음 아내의 새벽 기도 먼지를 닦다 농부의 새벽길 목욕탕에 간다 기저귀 사랑의 기척 밥 한 끼 그늘의 방식 똥을 누다가 도깨비 방울 칠십령을 넘으며 버려진 의자 배변의 미학 제3부 그리움 그리움 1 그리움 2 그리움 3 그리움 4 그리움 5 그리움 6 그리움 7 그리움 8 그리움9 노란 은행잎 독백 회상에 젖어 6월의 선물 가을도 한참을 울었다 빗소리를 듣고 싶다 바람의 언덕에서 제4부 장흥 찬가 남상천 벚꽃 길 풍경소리 종소리 일출 소등섬의 밤 수문포의 아침 해변에서 예양강 연가 1 예양강 연가 2 예양강의 백조 예양강의 숨결 아침 옹암 내저 매생이 장원봉을 바라보며 장재도 낙지 간이역에서 첫 기적 천관산 억새 1 천관산 억새 2 철쭉 밭에서 제암산 그 붉은 숨결 가슴앓이 섬 작품론 그늘의 방식과 함께 먹는 저녁밥 / 강경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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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돌 아래쪽 수천 년 쟁여 담은 짓눌린 숨결이 낮은 빛으로 번져 온다 침묵의 언어에서 시대를 달리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늘 돌 위에 내일을 얹고 별빛에 마음을 내걸었다는 것을 삶이란 언제나 희망과 허무가 나란히 걷는 길이라는 것을 읽는다 인생을 무엇으로 말하는가 천년 시간에서 길어 올린 문장으로 사라지면서도 의미 한 조각 쌓으려는 견고한 침묵이었다고 바람 한 점 돌 위를 지나 말의 결을 더 깊게 다져준 후 나는 칠십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흘러가는 시간 위에 자신의 고인돌을 세우며 천년 뒤 누군가와 이어질 대화를 준비하는 존재라는 것을 가을을 품다 선운사 계곡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잎 개울에 반영反影 되어 빛으로 흔들리는 그림자 물들어간다는 것은 생이 깊어진다는 것이어서 목숨 따위는 것 두려워하지 않는다 떨어지는 순간조차 자기 존재의 이치를 깨우치기에 가을 길목에서 또 하나의 가을을 가슴에 품는다 가을을 빚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월출산 둘레길 붉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 바람은 국화꽃 향내 가득하고 익숙한 얼굴들 오지게 웃어제끼니 돗자리 위로 오후의 빛이 쏟아진다 바리바리 싸 온 음식과 소주 한 잔 감칠맛 나는 풍요로움 우리의 낯빛은 가을빛처럼 붉어지고 해맑은 웃음은 저녁 무렵 형형색색 깊어진 우정을 빚어내고 있었다 물결 단 한 번도 직선으로 산 적이 없다 누구라도 마주칠 때마다 표정을 바꾸지만 흐느적거리고 굽이치면서 네 언어는 물소리를 내며 깊어만 갔다 잠깐 고요해진 순간에도 강물 속에서 발화하는 언어로 끊임없이 편지를 쓴다 더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되돌아오지도 못해 쌓이는 후회만 밀어냈다 흔들림이 멈추는 날 너는 비로소 알게 되리라 부서지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기 위해 흐르는 것을 나의 별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 내 가슴 한복판에 붙박혀 오직 나의 별이 된다 기쁨과 설렘으로 동화 속 주인공으로 빛나기도 하는 네가 있어 꽃이 피고 가슴에 돌탑 쌓듯 꿈을 꾼다 무거운 겨울비도 맑은 영혼을 가진 하얀 눈으로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훈풍이 되느니 네가 있어 세상이 아름답고 네가 있어 모든 날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나의 별, 영원히 간직하리니 장사도의 봄 기억의 저편에서 물결처럼 밀려오는 웃음들 갈매기는 먼 바다를 날고 분교의 종소리는 잠들었던 시간을 흔들어 깨운다 막 피어난 동백 붉은 침묵 하나 품고 벚꽃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웃음보다 가벼운 꽃잎을 흩뿌린다 개나리는 햇살을 먼저 입은 아이처럼 노란 숨결을 풀어놓고 섬은 빛과 바람을 한 아름 안으며 천천히 봄이 된다 누군가의 노래는 외로움의 등을 다독이며 목청을 따라 섬 구석구석을 걸어간다 문득 알겠다 섬의 봄은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먼저 피어나 기억과 사랑이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믿는다 언젠가 또 한 번 내 안에서 찬찬한 봄으로 살아 있으리라는 것을 하모니카를 부는 촌장 산기슭 아래 적막한 하모촌* 대숲 사이 소슬한 바람결에 들리는 하모니카 소리 어둠 속에서 제 삶을 연주하는 그는 하모니카 하나 들고 그늘진 곳 광장 시골 마을 모퉁이 그 어디든 찾아 간다 곡이 연주될 때마다 따뜻한 눈빛은 소리보다 먼저 마음을 울린다 빗소리가 흔적이듯 그림자가 기억이듯 잔잔한 물결이 된다 고즈넉한 탁자에 앉아 하모니카를 연주하던 그 음율 쭉정이 같은 날들을 밀어내고 누군가의 지친 하루를 위로한다 ✽하모촌 : 하모니카 부는 촌장이 사는 집. 구절초 산길 모퉁이 오종종 둘러앉은 새하얀 꽃잎 사이 상큼한 향기 어둠 속에 쏟아지는 달빛이 되었다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그 향기에 취해 잠이 든 오후, 은은히 흐르는 찻집에서 햇살과 바람으로 빚은 구절초 향기에 세례를 받는다 대봉감 영암 금정길 밭 이랑 감나무에 매달린 대봉 노랗게 익어가는 빛이 눈부시다 햇살과 바람의 감각을 가을빛으로 채색하였으리라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마지막 저녁 노을처럼 뜨겁고 달구고 있었다 빛깔이 짙어질수록 떫은 맛이 없어지고 마침내 홍시가 되고 까치밥이 되고 아이가 철 들어가듯 제 몸을 다 내어 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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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론
그늘의 방식과 함께 먹는 저녁밥 -김동옥 시집 『그늘의 방식』 강 경 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프롤로그 김동옥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늘의 방식』에는 그의 삶을 통해 길러진 시적 정서와 정신이 투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시를 통해 삶과 사유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가 된다. 이번 시집에는 삶을 관조하고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시편, 가족애와 고향을 노래한 시편, 그리고 시인 내면 깊이 드리운 그리움의 시편 등이 있다. 먼저, 사유의 깊이에 천착한 작품들에서는 인생을 관조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시인의 사유를 통해 시인의 정신성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사물의 표면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발견하여 실존의 의미를 묘파하고 있다. 가족애를 다룬 시편들에서는 특히 아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매우 감각화하여 아이들을 성장시켜 내보낸 뒤 아내와의 노년을 꿈꾼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미흡한 도반으로 성찰하며 사랑을 키워가고자 한다. ‘그리움의 정서’를 형상화한 시편들은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경우도 있고, 시적 대상을 ‘누군가’로 호명하기도 한다. 꽃과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그리움은 설레고 벅찬 감정을 노출하는 기제로서의 감각을 드러낸다. 한편, 장소와 공간성에 깃든 고향을 노래하며, 그곳에 투사된 서사를 펼쳐 보임으로써 고향애를 드러낸다. 이러한 시편들은 매우 감각화된 서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때로는 정제되고 때로는 뜨겁고 거친 시인의 숨결이 숨 막히게 다가온다. 2. 사유의 깊이 김동옥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사유의 깊이를 통해 깨달음과 실존 방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드러내는 시편들이다. 이러한 시적 경향은 이전 시집과 변별되는 지점으로, 퇴직 이후 얽매이지 않는 일상의 자유로움과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시선 속에서 그의 시어는 사유의 깊이와 시적 형상화의 내밀함을 지닌다. 이렇듯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품 「그늘의 방식」은 김동옥 시인의 인식 태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시편이다. 흔히 ‘그늘’은 ‘햇살’의 대척점에 있는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데 반해, 시적 화자는 그것을 부정적이고 모순된 것을 나타내는 의미로만 읽어내지 않고, 자연스러운 현상 또는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시인의 인식 태도는 자신의 삶은 물론 세계를 편향되지 않게 바라보는 균형 있는 자유로움에서 기인한다. 햇살이 지나간 자리 여태 그늘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을 뿐 빛이 닿지 않아도 시간이 먼저 도착해 말없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떠한 생生 하나는 박수 없는 무대 위에서 키를 재 보지도 않고 제 그늘만큼만 넓어지기를 소원했다 천지는 각각이 자리한다 빛과 그늘, 낮과 밤 누군가는 햇살이 되고 누군가는 그늘이 되지만 서로 죽이거나 내쫓지는 않는다 절로 찾아들고 절로 떠나가는 순리를 아는 까닭이다 그대 발걸음이 더딘가 서 있는 곳이 그대를 용인하고 있다면 이미 그늘에 서 있는 것 그러나 얼마 후에는 다시 빛 아래 서리니 - 「그늘의 방식」 전문 자연현상으로서 빛과 그늘은 낮과 밤처럼 서로를 드러나게 하는 상호 보완적 관계이다. 그럼에도 흔히 낮과 밤, 그리고 빛과 그늘을 상대적으로 바라본다. ‘긍정’과 ‘부정’의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빛과 그늘을 대척점에 놓지 않고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햇살이 지나간 자리”엔 그늘이 드리우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빛이 닿지 않아도” 그늘의 시간이 지속된다고 한다. 현상의 이면에 있는 본질을 바라보는 까닭이다. 시적 화자는 빛과 그늘이 교차하는 가시적인 현상을 인간의 삶에 대입시켜 시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즉 “어떠한 생生 하나는/ 박수 없는 무대 위에서/ 제 그늘만큼만 넓어지기를 소원했다”에서 보듯, 박수 없는 삶, 즉 빛나는 삶은 아니지만 자신의 그늘만큼 자족하며 살고자 하는 태도를 밝히고 있다. ‘그늘’의 함의가 “박수 없는 무대”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미덕을 드러낸다. 이러한 시적 화자의 생生에 대한 인식은 “누군가는 햇살이 되고/ 누군가는 그늘이 되지만/ 서로 죽이거나 내쫓지는 않는다”는 진술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화자는 “절로 찾아들고 절로 떠나가는/ 순리를 아는 까닭”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서 있는 곳이 그대를 용인하고 있다면/ 이미 그늘에 서 있는 것”이라는 진술은 “얼마 후에는 다시 빛 아래” 서게 되리라는 전망과 이어지며, ‘그늘’과 ‘햇살’이 다름이 아니라 하나의 질서 안에 있다는 인식을 나타낸다. 다음의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묘장墓葬인 ‘고인돌’이라는 시적 대상을 통해 생生의 의미를 묘파하고 있다. 시인의 삶에 대한 사유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돌 아래쪽 수천 년 쟁여 담은 짓눌린 숨결이 낮은 빛으로 번져 나온다 그런저런 감정들이 지금과 같았나요 침묵의 언어에서 시대를 달리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늘 돌 위에 내일을 얹고 별빛에 마음을 내걸었다는 것을 삶이란 언제나 희망과 허무가 나란히 걷는 길이라는 것을 읽는다 인생을 무엇으로 보나요 천년 시간에서 길어 올린 한 문장으로 사라지면서도 의미 한 조각 쌓으려는 견고한 침묵이었다고 바람 한 점 돌 위를 지나 말의 결을 더 깊게 다져준 후 나는 칠십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흘러가는 시간 위에 자신의 고인돌을 세우며 천년 뒤 누군가와 이어질 대화를 준비하는 존재라는 것을 - 「고인돌」 전문 이 작품 또한 김동옥 시인만의 목소리와 생生에 대한 질문을 통해 시인이 무엇을 바라보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시적 대상인 고인돌은 돌이라는 물질이지만, 화자는 이를 인간의 삶에 대입했다.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투사된 고인돌을 “침묵의 언어”라고 규정하고 “시대를 달리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읽는다. 오랜 시간 야산에 방치되었을 고인돌의 침묵을 사전적 의미의 침묵, 곧 ‘아무 말 없이 잠잠히 있음’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언어로 인식하는 지점에서 이 시는 발화한다. “인생을 무엇으로 보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삶이란 언제나 희망과 허무가/ 나란히 걷는 길”이라고 대답함으로써 즐거움과 고난이 함께한다는 보편적 인식에 도달한다. 그런 까닭에 고인돌은 화자에게 “천 년 시간에서 길어 올린 한 문장”이자 “사라지면서도 의미 한 조각 쌓으려는/ 견고한 침묵”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사유 과정을 지나 시적 화자는 “바람 한 점 돌 위를 지나”가는 무심한 자연 현상에서 “말의 결을 더 깊게 다져” 주는 것이 침묵의 본질임을 “칠십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인돌을 세우며/ 천 년 뒤 누군가와 이어질 대화를/ 준비”하겠다는 다짐을 통해 ‘고인돌’을 천 년 후 자신의 삶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인식한다. 이 밖에도 삶에 대한 사유를 통해 사물 이면에 깃든 어떤 본질을 발견하는 작품으로는 「가을을 품다」, 「가을을 빚다」, 「물결」, 「대봉감」, 「데이지 꽃밭에서」, 「가시연꽃」, 「먼지를 닦다」, 「목욕탕에 간다」, 「칠십령을 넘으며」 등이 있다. 「가을을 품다」에서는 가을 단풍을 바라보며 “물들어간다는 것은/ 생이 깊어진다는 것/ 목숨 사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노래한다.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것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현상이지만,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초연한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을 빚다」에서는 친한 사람들과 가을 월출산 단풍나무 아래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며 “우리의 낯빛은 가을빛처럼 붉어”진다고 한다. 인생의 오후를 지나 저녁 무렵으로 향하지만 “해맑은 웃음”으로 “형형색색 깊어진 우정”을 다질 수 있는 것이다. 「물결」에서는 강물이 흐르면서 일으키는 물결을 두고, 강물이 “끊임없이 편지를 쓴다”고 한다. ‘강물에 이는 물결’을 자연현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언어가 발화하는 모습으로 비유하여 편지를 쓰는 행위로 의인화함으로써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인간의 품격,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되돌아오지도 못해/ 쌓이는 후회”를 강물이 밀어내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럼으로써 인생도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기 위해 흐르는 것”임을 묘파하고 있다. 「가시연꽃」에서 시인의 사유는, 가시연꽃의 가시가 누군가를 찌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그은/ 경계”라는 데 이른다. 그리고 가시연꽃 앞에서 “내 가슴에 돋아난 가시들을 들여다본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가려 했을 것이지만, 화자에게 돋아난 가시 때문에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성찰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가시연꽃이 피운 꽃은 상처에서 피어난 것으로, “고요 속에서 오래 머문 마음”만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3.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연민 김동옥 시인의 시적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가족애이다. 인간은 누구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지녔다. 가족애야말로 가장 작은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소중한 원동력이며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특히 아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나고 아내와 둘만이 남아 남은 삶을 함께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생업에 힘쓰다 보니 잘 살피지 못한 지아비로서의 미안함과 죄의식에 뜨거운 마음을 아내에게 전하고 있다. 가족애를 형상화한 작품의 한편에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가없는 마음으로 담아낸 시편도 있다. 아이들은 자라 각자의 삶터로 떠나갔다 집은 넓어졌고 저녁은 깊어갔다 아내와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말보다 먼저 숟가락이 말을 걸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안다 국은 여전히 뜨겁고 침묵은 더 깊어졌다 그 침묵 속에는 떠나보낸 날들이 겹겹이 퇴적돼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마지막까지 남아 함께 밥을 먹고 같이 늙어가는 일 오늘도 두 개의 그릇이 식탁에 놓인다 집은 고요하고 밥은 천천히 식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저녁이야말로 우리가 지킨 가장 견고한 사랑이라는 것을 - 「함께 먹는 밥」 전문 김동옥 시인은 반평생을 공직자로 일하다가 퇴직하여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시인은 아내와 둘이서 살게 되었고, “집은 넓어졌고 저녁은 깊어갔다”. 한때 아이들이 집안을 채웠지만 이제는 각자의 삶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아내와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말보다 먼저 숟가락이 말을 걸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안다”. 오래 함께 살며 서로의 마음을 읽기 때문에 침묵도 말이 되는 까닭이다. 이렇듯 부부가 밥을 먹는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그 정황만을 그리고 있지만, 시의 행간에는 생의 비의가 내면화되어 있다. “국은 여전히 뜨겁고 침묵은 더 깊어졌다”. 이제 부부만 남아 서로를 사랑과 연민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침묵은 더 깊어졌”어도 침묵 속에는 그동안 함께해 온 날들의 언어가 내재해 있다. “그 침묵 속에는 떠나보낸 날들이/ 겹겹이 퇴적돼/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밥을 함께 먹는 일은 결국 “같이 늙어가는 일”이어서, “오늘도 두 개의 그릇이 식탁에 놓”여 있다. 밥을 먹는 동안 “밥은 천천히 식어” 갈지라도 화자는 “그러나 우리는 안다”고 말한다. “이 저녁이야말로 우리가 지킨/ 가장 견고한 사랑이라는 것”을. 견고한 사랑을 나타내는 침묵의 밥상은 쓸쓸한 노년으로 다가가는 아내와 함께하는 따뜻한 저녁으로 형상화하였다. 「아내의 바다」에서 애틋하게 아내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에는 ‘희생’과 ‘무한정한 사랑’으로 살아온 지극함이 배어 있다. “갯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먼저 일어나 섬을 지켜” 낸 “품 넓은 바다”처럼 “헤아릴 수 없는 지난날의 희생”과 “무한정한 사랑의 바다”로 표상된 아내는 여전히 “그저 말없이 출렁인다”고 한다. 이렇듯 바다와 같은 아내에게 시적 화자는 “나는 이제 그대의 바다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그대가 숨 쉴 수 있는 물결이” 되고자 한다. 「아내의 새벽 기도」에서는 신실한 신앙을 지키고자 “차가운 공기 가르며 교회로 향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로지 하늘을 향하는 모습에/ 나는 고개가 숙여”진다고 고백하고, “풋풋한 봄날, 당신의 기도/ 온 마음 다하는 당신의 모습에/ 내 마음도 함께 새벽이” 된다고 한다. 화자의 안녕을 기도하기 위해 새벽 기도길에 나선 아내와 함께하겠다는 시적 화자의 마음에서 아내에 대한 뜨거운 마음과 인생 도반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가족애를 나타낸 시편 중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깃든 작품으로 「기저귀」가 있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의 기저귀가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마트에 갔다. 테이프형, 밀림방지, 통기성 커퍼, 순면에서 지베릴린 처리된 것까지. 생김새도 기능도 브랜드도 제각각이다. 어머니한테 처음 받은 부드럽고 빨아도 견딜 수 있고 배설물의 식별이 쉬운 그 똥 오줌 받아낸 옷 생각이 난다. 간난아이였을 때 내게 처음으로 입혀준 속옷 지금은 당신이 입고 계신다 7남매 낳아 배 굶기지 않고 기죽지 않게 키우시던 당신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응어리진 한도 창창한 오기도 잊어버린 듯 노을에 비치는 먹구름 같은 얼굴은 지난한 세월 견디느라 골은 깊어지고 카랑카랑했던 목소리는 작아져 이제는 가는 기침소리 마저 힘을 잃고 있으니 벚꽃 날리는 강둑길 지나 당신이 입으실 속옷 한 묶음 가지고 나는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 「기저귀」 전문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신다. 시적 화자는 어머니의 기저귀가 떨어졌다는 기별을 받고 기저귀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어머니가 기저귀를 채워 자신의 똥오줌을 받아낸 것을 생각한다. 간난아이였을 때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기저귀를 채워주셨지만, 이제는 어머니가 기저귀를 차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7남매 낳아 배 굶기지 않고/ 기죽지 않게 키우시던” 어머니께서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을 “당신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가요”라고 묻는다. 사랑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머니는 “응어리진 한도 창창한 오기도 잊어버린 듯”하고, 먹구름 같은 얼굴에는 지난한 세월을 견디느라 깊은 골이 패었으며, “카랑카랑했던 목소리는 작아져” 기침 소리마저 힘을 잃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벚꽃 날리는 강둑길 지나” 어머니에게로 향하는 화자의 마음이 애잔하다. 살펴보았듯이 김동옥 시인의 가족애를 담아낸 시편들은 그 바탕에 사랑을 전제하면서도 사뭇 연민의 정서가 애잔하다. 4. 그리움의 정서 ‘사람만이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삶이 깊어질수록 지나간 날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회한에 젖기도 하고 몸서리치는 그리움으로 마음이 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대상의 부재’에서 유발되는 감정의 표정이다. 그렇다면 서정시의 가장 중요한 질료 가운데 하나인 ‘감정’, 곧 ‘그리움’으로 빚어낸 김동옥 시인의 시편들은 서정시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번 시집의 「그리움」 연작들은 나이 들어가면서 문득문득 다가오는 그리움에 마음을 조이는 시인의 표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의 그리움 시편의 시적 대상은 ‘누군가’이거나 ‘기다림’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시적 대상은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시적 화자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그리움의 표정을 형상화한다. 한편, 사랑했지만 지금은 세상에 없는 어린 시절의 소녀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시편(「그리움 7」)에서만 구체적인 그리움의 대상이 나타날 뿐이다. 「그리움 3」에서는 블루베리 농원을 일구면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과정을 그리움이라고 하여, 대상의 부재에서 오는 감정이 아닌 그리움을 그려내고 있다. 밤새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데 어둠살 걷어낼 하얀 아침은 언제쯤 찾아올까 어제와 다를 바 없을 오늘이 마냥 설레고 기다려지는 것은 생각만으로 미소 짓게 하며 어김없이 밀려드는 그리움 때문이다 동백꽃 같이 붉게 불타는 그리움 굳이 티내지 않아도 좋으리 그저 그대가 그리워 마냥 설레이는 마음 뿐이어서 - 「그리움 2-기다림이다」 전문 이 작품은 ‘기다림이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그리움을 ‘기다림’의 행위로 해석하고 있다. “밤새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데/ 어둠살 걷어낼 하얀 아침은/ 언제쯤 찾아올까”라고 시적 화자는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날마다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눈 내린 날의 “하얀 아침”을 기다리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시적 화자의 진술처럼 “어제와 다를 바 없을 오늘이/ 마냥 설레고 기다려”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침을 맞는 것을 “생각만으로 미소 짓게” 한다. 이러한 화자의 감정을 “동백꽃같이 붉게 불타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것은 ‘동백꽃’이나 ‘붉다’의 색채 이미지가 말해주듯 아침을 기다리는 화자의 심리가 그리움의 감정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작품을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대가 그리워/ 마냥 설레는 마음뿐”이라는 진술 때문이다. 1, 2연에서는 아침을 기다리는 것이 그리움의 실체였지만, 3연에서 ‘그대’는 시적 화자의 내면에 깃든 ‘누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시적 전개로 보아 ‘아침’을 맞는 화자의 마음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블루베리 과수원을 일구며 기다림을 배운다 봄 새싹을 기다리고 꽃과 열매를 기다리고 비오는 날을 기다리는 것은 구름 같은 그리움 때문이다 너를 향한 마음으로 몸살을 앓던 아침, 아침은 하루의 싹이 되고 하루는 설레임의 꽃이어서 꽃이 활짝 피면 푸르고 깊은 하늘도 열리리라 - 「그리움 3-기다림을 배운다」 전문 보편적으로 ‘그리움’의 정서는 ‘사람’, 곧 인격을 지닌 존재를 주체로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과수원에 있는 블루베리의 “봄 새싹”과 “꽃과 열매”를 그리워한다. 아직 겨울이므로 봄이 되어 새싹이 돋기를 기다리고, 새싹이 나면 “꽃과 열매”를 기다린다. 그리움은 ‘기다림’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아직 오지 않은 시간과 언젠가 다가올 시간의 간극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표상이다. 시적 화자가 “비 오는 날을 기다리는 것은/ 구름 같은 그리움 때문이다”라고 진술하는 것은, 주지하다시피 ‘비’는 ‘구름’의 과정을 통해 지상에 다가오는 기상현상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비가 되어야 비로소 지상에 닿는다. 이는 그리워하는 대상과 만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비 오는 날을 기다리는 것은/ 구름 같은 그리움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블루베리 농장에 비가 내려야 새싹이 돋고 꽃과 열매를 맺음으로써 시적 화자의 소망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다림’이라는 행위가 오랜 시간과 함께하는 것은 필연이다.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시적 화자가 ‘하루는 싹이 되고’ ‘하루는 설렘의 꽃이어서’ 마침내 꽃이 활짝 피면 “푸르고 깊은 하늘도 열리리라”고 하는 것은, 꽃이 피고 그 꽃이 열매를 맺어 풍성한 결실을 얻게 하는 것이 농부의 소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마침내 “푸르고 깊은 하늘도 열”릴 것이라고 염원하고 있다. 이 밖에 그리움의 정서를 표출하는 시편 「그리움 4」에서는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끊이지 않아/ 날마다 가슴 울렁거리는/ 아득한 그 늪에 빠진다”거나 “유독, 오늘 새벽엔/ 빈 우체통 같은 허전한 가슴 안으로/ 그리움이 넘쳐흐”른다고 한다. 특정하지 않은 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그 대상을 생각하면 미소가 끊이지 않고 가슴이 울렁거리며, 그리움에 젖어든다고 함으로써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이 충만해진다. 이렇듯 간절한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의 감정은 「그리움 8」에서도 “그대 생각에 숨이 멎는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그런 까닭에 “이 사람아, 잠시라도 좋아/ 온몸이 저리는 그리움에 가슴 떨리는 일/ 기꺼이 선물이 될 것 아니겠는가.”라고 그리움의 대상에게 말하며, “가슴 떨리는 일”이 “기꺼이 선물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움에 젖어 사는 일이 자신의 일상 속 즐거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리움 7」에서는 “사랑했던 소녀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시적 화자가 소년이었던 시절을 회상하고 그 소녀를 그리워한다. “내 발걸음 닿을 수 없는” “끝내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소녀에 대한 그리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토로하고 있다. 5. 장소의 시학과 고향 노래 오늘날 태어나고 자란 곳, 곧 고향이 사라지고 있다. 고향은 기억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 터이다. 그런데 마음속에 오롯하게 간직해 온 터가 개발되어 옛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현대인은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만 간직한 채, 부모 형제와 옛 동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았던 장소가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이 저미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을 고향이 없는 유목민이라고 부르는 것일 게다. 고향은 끊임없는 향수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이자 공간이다. 어쩌면 사람은 이 장소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김동옥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그의 고향 ‘장흥’과 관련된 여러 장소가 등장한다. 보림사, 남상천, 소등섬, 수문포, 예양강, 장원봉, 장재도, 천관산, 제암산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장흥의 자연과 명소를 가리키는 지명들이다. 장소에는 오랜 시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김동옥 시인의 장소를 노래한 시편들에도 장흥 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안개 깔린 아침 강둑 따라 달리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능수버들 바람결에 몸을 흔들며 잠든 물결 깨운다 물 위에 드리운 동교 그림자 시간을 건너온 옛 기억처럼 잔잔히 흔들린다 세찬 물살을 가르며 튀어 오르는 피라미와 은어 떼 반짝거리는 모습이 봄날의 약속처럼 반갑다 토요시장 장보따리 할머니 얼굴엔 삶의 지문이 묻어나고 구수한 사투리의 억양이 예양강을 닮아 시장 안팎으로 질펀하다 칠거리 돌아가는 버스는 여전히 느릿하게 지나가고 그 속에 실려 온 옛 동네의 이야기들과 골목마다 서려 있는 오래된 추억들이 물소리에 다시 살아난다 명경明鏡 같은 강물이 읍내 한복판을 가로 질러 칠거리의 옛 영화를 들려주며 흐르니 예양강 아침은 옛 이야기를 품고 투명한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 「아침」 전문 장흥을 대표하는 강, 예양강의 아침을 노래한 작품이다. 동교, 토요시장, 칠거리 등 장흥 읍내를 가로지르는 예양강가의 지명에는 장흥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 투영되어 있다. 시적 화자는 안개 낀 아침 “강둑 따라 달리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오늘도 여전히 삶의 숨소리가 들리는 예양강의 풍경에서, 시적 화자는 오랜 시간 장흥 사람들과 함께해 온 살아 있는 역사를 마주한다. “물 위에 드리운 동교 그림자”는 “시간을 건너온 옛 기억처럼 잔잔히 흔들”리고, 강물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이어진다. 예양강은 물이 맑아 “세찬 물살을 가르며 튀어 오르는/ 피라미와 은어 떼”의 “반짝거리는 모습이 봄날의 약속처럼 반갑다”. 생명성이 넘치는 현재의 모습에서 활력을 느낄 수 있다. 읍내를 가로지르는 예양강가에 있는 “토요시장”에서는 시장 사람들의 “구수한 사투리의 억양이/ 예양강을 닮아” 질펀하고, 인정과 활력이 넘친다. 또한 토요시장 부근, 장흥의 역사와 함께해 온 “칠거리”에는 버스가 “여전히 느릿하게 지나가고”, “그 속에 실려 온 옛 동네의 이야기들”과 “골목마다 서려 있는 오래된 추억들이/ 물소리에 다시 살아난다”. 이 작품은 예양강 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가듯이, 강가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서사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예양강’이라는 장소성을 통해 장흥을 상징화하고, 그곳에 배어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장흥의 역사성과 삶의 모습을 노래한다. 「수문포의 아침」에서는 “포구 끝 어망이 부딪히며 속삭이는 소리”, “어부들이 그물 털며 부르는 비나리 메나리”, “하늘을 가르는 갈매기 하모니”, “배들끼리 맞부딪치며 흔들거리는 소리”가 제시된다. 이러한 청각적 이미지만으로도 수문포에서 삶을 이어 온 장흥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품에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동옥 시인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여러 장소와 공간을 형상화한 것은 고향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특히 퇴직 후 귀거래사歸去來辭처럼 부르는 고향 노래에는 간절함과 애절함이 묻어 있다. 보림사의 풍정을 시화한 「풍경소리」에서는 “세속을 등진 법당의 풍경소리”가 “바람을 가르며 말을 쏟아낸다”거나 “솔바람”이 “마른 나뭇잎 어루만진다”고 한다. ‘소리’와 ‘마른 나뭇잎이 서걱이는’ 감각을 형상화하여 시적 화자의 마음을 후비며 “번뇌의 그림자를 지워내”는 보림사의 풍경을 그려 냈다. 이와 궤를 같이하는 「타종소리」 역시 “세속에 찌든 내 영혼을 헹군다”고 함으로써, 동양 3대 보림寶林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한 명찰에서의 사색을 형상화하고 있다. 「장원봉을 바라보며」에서는 오랫동안 출퇴근하며 지켜본 장원봉이 시인에게 “네 이웃을 진정으로 살폈는가”라고 묻는 질문을 통해, 장원봉처럼 오랫동안 젊은 시절의 첫마음을 지킬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첫 기적」은 장흥에서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2025년 9월 27일의 역사성을 떨리는 마음으로 희망차게 노래한 작품이다. “세상을 잇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하는 시인의 뜨거운 마음은 “새롭게 열린 새 길 하나로 미래가 열리고/ 저마다의 빛이 되어 달릴” 것을 기대한다. 다음의 「천관산 억새 1」은 가을 천관산 산등성이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을 통해 숱한 전설을 간직한 천관산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가을 햇살 머금고 바람 따라 몸통 째 흔들거리며 산등성이를 은빛 물결로 채운다 능선 위 바람결에 억새들이 어깨를 맞대고 속삭이고 구름이 산허리를 스치는 햇살이 비껴가는 고독을 머금은 봉우리 전설을 들려준다 천관산은 억새꽃은 쓸쓸한 가을 산의 떠도는 사연들을 천년 시공을 거슬러온 숱한 전설을 천천히 조금씩 풀어내는 천관산의 사관史官이다 - 「천관산 억새 1」 전문 작품은 햇살이 내리쬐고 가을바람이 부는 가운데 흔들리며 천관산 산등성이를 은빛으로 채우는 억새들의 모습을 생명성이 넘치는 존재로 그려 낸다. 바람 부는 능선에서 “억새들이 어깨를 맞대고 속삭”인다. “구름이 산허리를 스치”고 “햇살이 비껴”간다. 이렇듯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태고 이래 지금까지 우뚝 서 있는 천관산 봉우리는 “전설을 들려준다”. 그 전설이 어떤 것인지는 작품에 드러나 있지 않지만, 햇살과 바람, 그리고 구름과 함께해 온 천관산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억새꽃으로 유명한 천관산은 가을에 그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천관산 억새를 “쓸쓸한 가을 산에 떠도는 사연들”과 “천 년 시공을 거슬러 온 숱한 전설”을 “천천히 조금씩 풀어내는 사관史官”이라고 호명한다. 이밖에 고향을 노래한 작품 「천관산 억새 2」에서는 천관산 억새를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삭혀내지 못한 가슴앓이로 맺힌 붉은 망울” 같다고 하고, “소리 죽인 달빛에 고열로 앓던 붉은 꽃”으로도 묘사한다. 또한 시인은 “어미 젖을 빨면서 보채던 어린 자식 울음소리”와 “숯가마 노인의 구성진 육자배기 한 가락”을 들으며, “지게 목발 내려놓고 숨 쉬던” 모습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천관산 억새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6. 에필로그 김동옥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늘의 방식』은 사유의 깊이를 통해 삶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준다. 이때 시적 대상인 자연은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보이는 것 이면에 깃든 기의基意가 사유의 방식으로 전환됨으로써 새로운 생명성을 획득한다. 가령, 시인은 ‘그늘’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순응하는 삶의 태도로 바라보면, ‘그늘’도 ‘햇살’처럼 ‘긍정’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인식한다. 또한 ‘고인돌’이라는 시적 대상을 ‘침묵의 언어’라고 함으로써, 오랜 세월 자연 속에 방치된 사물이 깨어나 “천 년 시간에서 길어 올린 한 문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시인의 사유를 통해 인간의 삶에 질문과 메시지를 전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형상화한 시편들에서는 가족이 있기에 자신이 살아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자식을 키워 각자의 삶터로 내보낸 뒤 아내와 둘이 남아 함께 먹는 밥의 의미를 인생의 ‘도반’이라는 관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저녁이야말로 우리가 지킨/ 가장 견고한 사랑”이라고 규정한다. ‘가족’의 의미를 ‘사랑’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각별한 사랑에는 혈연으로 이어진 애틋함과 연민이 깃들어 있다. 어린 시절 시적 화자에게 기저귀를 채워 주신 어머니가 이제는 요양병원에 계시고, 그 어머니께 기저귀를 가지고 달려가는 화자의 마음이 안타까운 정서 속에서 애잔하게 그려져 있다. 김동옥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마음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지는 ‘그리움을 노래한 시편’들은 연작으로 이어져 있다. 서정시의 정조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그리움’의 대상은 ‘누군가’이다. 물론 시적 대상이 특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적 대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원초적인 그리움의 대상에게 애틋함과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을 오늘이/ 마냥 설레고 기다려”진다(「그리움 2」)고 하기도 하고, 블루베리 과수원을 일구며 새싹과 꽃과 열매를 기다린다고 한다(「그리움 3」). 이는 농부가 자신이 기르는 작물이 자식처럼 자라 풍성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닿아 있다. 시적 화자는 블루베리의 꽃과 열매를 기다리는 일이 곧 그리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향을 노래한 시편’에서는 장흥 곳곳의 지명을 호명하며 그 지명들이 간직한 장소와 공간의 의미를 되짚는다. 이들 시편은 장흥과 관련된 여러 장소에 시인의 감정과 메시지를 투사하여 장흥의 역사성과 오늘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고향을 사랑하는 시인의 애틋함과 간절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고향애는 앞서 살펴본 사유의 시편, 가족애의 시편, 그리움의 시편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김동옥 시인에게 고향은 단순한 출생지나 생활의 배경이 아니라, 가족의 기억과 삶의 시간이 축적된 근원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늘의 방식』에서 시인은 삶의 그늘을 외면하지 않고, 그 그늘 속에서 사랑과 기억과 성찰의 가능성을 길어 올린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회고와 향수에 머무르지 않고, 삶을 받아들이는 한 방식으로서의 시적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