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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길의 독백/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유월의 산책길 풀 위에 누워 나의 어머니 장터 가는 제비 가족 채송화 위대한 자연의 질서 비와 자연 오일장 구경 백발의 정안수 고향의 문지방을 넘는 바람 어린 시절 단짝 달리는 버스 안의 풍경 나의 남편 김윤근 어젯밤 도깨비가 부린 요술 산고의 밤 마당 위의 콩콩콩 댄스 제2부 백련사 백일홍 하얀 접시꽃 농자천하지대본 막내 올케 이마에 박힌 그림자 남원으로 가는 보슬비 왈츠 불의 흉터, 아버지의 얼굴 축사에서 맞이한 기적 가엾은 상추 호피무늬 강아지 나의 위로자, 나의 주님 연탄의 시간 철쭉의 위로 나의 육체가 힘들 때 골반 고통 육십오 년 만의 학교 가는 길 제3부 처마 밑에 제비집 낡은 트럭의 노래 자식도 몰라보는 어미 오빠와 마지막 이별 가로수 길의 독백 엄마의 등불 그리운 오빠 바람의 위로 겸손은 나를 낮춘다 나의 칠순 폭염 빗방울 음악회 계절의 거울 남일 초·중·고등학교 담배밭의 기억과 푸른 소망 노란 옥수수의 시간 제4부 즐거운 대학생활 고향 친구들 아픔의 고통 이겨내고 잊지 못할 졸업여행 가마솥과 된장의 시간 밭머리의 기도 볏단과 노동의 가치 흘러간 세월의 거울 버스 안의 사탕 한 알 엄마의 과거와 딸의 현재 장마 단풍의 경고 번개 같은 봄 우리 셋째딸 해설 세월이 빚어낸 영혼의 고백록/ 조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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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산책길
비 갠 뒤의 세상은 이토록 상큼한가 유월의 자연은 온통 짙푸른 초록의 바다 실바람이 살랑살랑 내 여윈 볼을 스치며 지나갈 때 그윽한 풀비린내 향기에 취해 비틀거린다 나뭇잎 끝에 매달린 투명한 빗방울마다 어지러운 세상의 소음 대신 고요가 흐른다 청개구리의 청아한 울음소리에 풋풋한 시골 밤이 서서히 눈을 뜬다 해는 저물어가고, 제 집 못 찾는 비둘기는 꾸욱꾸욱 애달픈 울음을 거두지 못하는데 지금 그 누구를 시샘하랴 길을 걷는 나의 걸음걸이가 어느새 하늘 위 구름 속을 거닐고 있거늘 가슴속 깊이 묻어둔 해묵은 슬픔마저 저 멀리 번져가는 저녁노을 속으로 가만히 흩어진다 어둠이 깔린 초저녁의 정취는 내 지친 심신을 흠뻑 적시어 채우는구나 풀 위에 누워 아기 머리칼처럼 부드러운 풀잎 가만히 만져본다 바람은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심술을 부리는데 풀 위에 누우면 내 위로 흘러가는 구름 노을은 점점 짙어만 가고 먼 산은 아른아른, 어둠이 서서히 대지를 덮어온다 사라질까 두려운 이 고귀하고 신비로운 풍경 놓치기 아까워, 간직하고 싶어 애틋한 대자연을 마음의 장바구니에 꾹꾹 눌러 담는다 이제는 서둘러 꼴을 베어야 할 시간 이 풀을 먹고 소는 얼마나 행복해 할까 힘껏 베어 경운기에 싣고 외양간으로 향하는 길 탈탈탈 경운기 소리에 저녁노을이 붉은 울음처럼 번져가는데 외양간 소는 웬일인가 눈은 꿈뻑꿈뻑, 코는 벌름벌름, 꼬리는 흔들흔들 귀여운 송아지도 엄마 따라 제 몸을 흔든다 내가 베어 온 저녁 한 짐이 저들의 핏줄을 기르는 성찬이 되는 순간 맛있게 여물을 씹는 모습에 나의 하루도 비로소 맛있게 저물어간다 나의 어머니 풀 향기 싱그러운 오월이 오면 코끝을 시큰하게 파고드는 어머니의 아늑한 젖 내음 마음속 가장 깊은 방에 살고 계신 당신 이제는 목 놓아 불러도 대답이 없고 꿈결에서라도 듣고 싶으나 들을 수 없네 오늘따라 애달프게 차오르는 얼굴에 속수무책으로 가슴이 아려오는데 그 흔한 사진 한 장 남겨두지 못한 회한이여 남겨진 것 하나 없어 더 간절한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을 하염없이 파고드네 희미해진 기억의 안개 속에서도 그 품에 안겨 어리광 부리던 나의 유년만은 이토록 선명하네 그리움이 끝내 눈물이 되어 툭, 떨어질 때 어머니 사진이 없어 당신 얼굴 잊을까 두려웠는데 내 눈물이 흐르는 길목마다 당신의 얼굴이 고여 있네 꽃 한 송이 가슴에 달아드리고 싶어도 어머니의 야윈 세월은 기어이 붙잡지 못한 강물처럼 저만치 흘러가 버렸네 비록 손 내밀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계시나 당신은 영원히 내 삶의 가장 따스한 봄날이네 장터 가는 제비 가족 제비들 새끼 손잡고 장터 목욕탕 간다 묵은 때 벗기러 가는 길 신이 난 새끼들 지지배배 씽긋뻥긋 깜장 춘장 뒤엎은 짜장면 한 그릇 후룩후룩 하얀 이 드러내며 웃는 오늘은 최고의 날 볼때기 발그레해진 제비들 손을 꼭 잡고 주머니 사정만큼 사고 싶은 것 골라 담는 날 시장 돌아서는 발걸음이 이리도 가볍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덜커덩 버스 타고 돌아오는 길 차창 밖 붉은 노을도 날갯짓 따라 춤을 추고 절로 흥겨움이 차오르는데 가난한 날개가 이토록 따스한 것은 서로의 품을 안으며 살아온 까닭이리라 채송화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여 하염없이 걷던 길 아스팔트 척박한 길모퉁이 바람 타고 날아와 실금 간 틈새에 뿌리 내린 붉은 채송화 한 모둠이 환하게 나를 맞는다 가뭄에 다른 꽃들 모두 시들어 가는데 너는 무슨 용기로 물기 하나 없는 틈바구니에서 이토록 당차고 꼿꼿하게 서 있는 거니 모진 세월을 온몸으로 뚝심 있게 버티시던 그 옛날, 아버지의 얼굴이 너의 얼굴 위로 겹쳐온다 시집간 딸자식이 문득문득 그리울 때면 마당가 가득 늘어선 채송화를 보며 아린 마음을 달래셨다던 나의 아버지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으시던 분이라 얼굴은 웃고 계셔도 마음은 울고 계셨음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지키지 못한 불효가 가슴에 붉은 멍으로 맺히는 저녁 흙 한 줌 없는 곳에서 저 혼자 붉은 것은 아버지가 눈물로 삼키신 사랑이 그곳에 피어난 까닭임을 이제야 알았다 친정집 앞마당에 소담하게 피어나던 저 예쁜 꽃들을 아버지 고단하게 잠드신 선산(先山)에 심어드리니 그곳에선 부디, 아픔 없이 흐뭇하게 웃으소서 위대한 자연의 질서 참깨밭 푸른 잎새 사이 수액을 탐하는 해충을 엄하게 꾸짖으며 이 꽃 저 꽃 바삐 오가며 수정을 돕는 익충, 꿀벌의 날갯짓 향기로운 꽃내음을 풍기며 상생을 가르치는 벌레와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독식을 일삼는 벌레의 서늘한 대비 참깨 한 톨도 태고의 식물 계보를 충실히 따르고 그 씨앗은 다시 종자(種子)의 길을 걷는다 피면 지고, 지면 다시 돋아나는 억센 명줄처럼 인간의 핏줄도 대를 이어 자손을 번창시키나니 꿀벌이 이어가는 치열한 가계도 역시 우주가 부여한 생명 번식의 숭고한 도정이리라 어느 해 봄 채소를 심고 며칠 만에 당도한 밭 푸르던 잎사귀들은 간데없고 벌레들이 온통 집어삼킨 풍경 독한 살충제에도 내성을 키우며 비웃듯 살아남아 인간의 거친 손길마저 무력하게 만들던 미물들 어느 날 아침, 그 많던 무리가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대지를 쓸고 간 듯 어디선가 날아온 새가 자연의 균형을 바로잡은 것이다 이토록 정교한 먹이사슬의 궤도 위에서는 해로운 미물도, 이로운 날짐승도 모두가 질서의 한 축이었음을 피차의 먹고 먹히는 엄숙한 순환을 바라보며 이 거대한 우주의 무대 위에서 자연의 섭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위대하게 흐르고 있음을 알았다 비와 자연 그토록 지루하던 가뭄 끝에 비가 온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기세가 만만치 않아 하늘과 땅 사이, 빈틈 하나 없이 촘촘한 빗줄기 천둥 번개 몰아치면 발걸음 더 재촉하는 빗방울에 타들어 가던 대지의 목청이 일제히 깨어나 일렁인다 봄비는 보슬보슬 내리는 보슬비 친정에 오래 머물라 유혹하는 이슬비 얼른 시집가라 등 떠미는 가랑비라 하더니 여름비는 거대한 바다의 숨결이 하늘로 올라 먹구름으로 뭉쳤다가 굵고 억세게 대지를 때린다 대기권에 산소를 채워 미물들을 살리시고 둥근 지구를 우주 한 자락에 띄워 두신 창조의 섭리 사계절의 눈요기와 맛요기로 세상을 채우시니 철 따라 찾아오는 절기마다 온 식물이 나비춤을 추는구나 그러나 가물 때 침묵하던 자연이 이토록 성나게 들이치면 도처에 재난의 눈물이 고이나니 도시의 낮은 지하방과 시골의 허술한 벽들이 언제나 그 매서운 범람의 표적이 되곤 한다 자연이 내리는 무차별한 평등 앞에서 인간이 쌓은 가난의 높낮이가 먼저 무너져 내릴 때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저 빗물이 누군가의 눈물이 되지 않기를 올여름은 부디 불행의 침수 없이 무사히 흘러가기를 거대한 위력 앞에 인간의 교만을 내려놓고 오직 고개 숙여 대지의 평안만을 간구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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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빚어낸 영혼의 고백록
조 선 의 (시인. 시꽃피다 리더) 1. 돌아보니 참으로 숨 가쁘고 치열한 계절들이었다. 오늘 아침 장대비 속에서 베란다 난간의 빗방울들이 나누는 고요한 박자를 보며, 시인은 가슴속 깊이 묻어둔 해묵은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이 시집은 그 고요한 두드림이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이룬 세월의 기록이자, 칠십 평생 흘린 땀방울과 눈물이 빚어낸 홍미숙 시인의 영혼의 고백록이다. 홍미숙 시인의 삶 전반부는 거친 대지 위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폭염처럼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계절은 순리대로 흘렀다. 가을장마 속에서 온 가족이 질척이는 논바닥에 뛰어들어 맨손으로 볏단을 묶으며 노동의 정직한 가치를 뼈에 새겼고, 흙 한 줌 없는 마당 틈새에서 피어나 애벌레에게 제 몸을 내어준 상추처럼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연소해 왔다. 세월은 흘러 번갯불처럼 빠르게 노년의 문턱으로 이끌었다. 거울 속 늙어가는 자아를 마주하고, 65년 만에 찾아간 고향길은 고속도로로 변해 기억의 이정표마저 지워져 있었다. 육신의 통증과 루푸스라는 진단 앞에 밤새 눈물로 베개를 적시던 큰딸의 효심, 그리고 주께서 허락하신 안전한 그늘 아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기도를 통해 시인은 메마른 육신 위로 소리 없이 고이는 치유의 은혜를 체험했다. 그 은혜는 말년에 생각지도 못한 ‘황금빛 풍년’을 선물해 주었다. 남편 김윤근 님의 지극한 이해와 헌신 덕분에 손톱 밑 흙먼지 속에 지혜의 씨앗을 심으며 전주로 차를 몰던 늦깎이 대학 생활은 평생 가장 환한 봄날이었다. 영예로운 졸업장과 정읍 고향을 지켜온 열두 명 소꿉동무들과의 푸르던 동행, 칠순 날 감사패를 읽다 목이 메어 울먹이던 자식들의 음성은 시인의 삶을 증명해 주는 찬란한 면류관이다. 남의 허기를 채우려 제 속을 먼저 태우고 순백의 평온으로 식어가는 하얀 연탄재처럼, 마음에 남은 상처들은 이제 인생의 가장 깊고 맛있는 향기로 무르익어가고 있다. 이 시집을 덮는 순간 당신의 삶 위에도 잔잔한 평온과 은혜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기도한다. 시인의 삶을 주관하시고 향기로운 아름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며, 홍미숙 시인의 앞날에 따스한 문운을 빈다. 2. 시인의 남다른 서정의 건축술이 빛난다. 시를 생각하는 마음과 시처럼 살고자 하는 마음은 메마른 삶에 숨결을 불어넣는 가장 아름다운 태도이다. 시를 생각한다는 것은 일상의 무뎌진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풍경 속에서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흘러가는 시간의 소중함을 붙잡으려는 마음이다. 거칠고 빠른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사물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시선이야말로 시를 생각하는 마음의 시작인 것이다. 나아가 시처럼 살고자 하는 마음은 그 깨달음을 삶으로 실천하려는 의지이다. 이는 화려하거나 거창한 삶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하나의 정성스러운 문장처럼 가꾸어 나가는 과정이다. 말 한마디에 다정함을 담고, 행동 하나에 사려 깊음을 더하며, 삶의 굴곡마저도 하나의 필연적인 운율로 받아들이는 유연함이다. 속도와 효율만을 좇는 세상에서 조금 느리더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향기와 리듬을 지키며 살아가는 태도다. 결국 두 마음은 하나로 이어진다. 시를 생각하며 마음의 밭을 일구고, 시처럼 살아가며 그 밭에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 마음들이 모일 때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하나의 깊은 시가 된다. 3. 작품 속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의 뼈저린 상실감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미학이 깊이 배어 있는 서정시 한 편을 마주한다. 풀 향기 싱그러운 오월이 오면 코끝을 시큰하게 파고드는 어머니의 아늑한 젖 내음 마음속 가장 깊은 방에 살고 계신 당신 이제는 목 놓아 불러도 대답이 없고 꿈결에서라도 듣고 싶으나 들을 수 없네 오늘따라 애달프게 차오르는 얼굴에 속수무책으로 가슴이 아려오는데 그 흔한 사진 한 장 남겨두지 못한 회한이여 남겨진 것 하나 없어 더 간절한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을 하염없이 파고드네 희미해진 기억의 안개 속에서도 그 품에 안겨 어리광 부리던 나의 유년만은 이토록 선명하네 그리움이 끝내 눈물이 되어 툭, 떨어질 때 어머니 사진이 없어 당신 얼굴 잊을까 두려웠는데 내 눈물이 흐르는 길목마다 당신의 얼굴이 고여 있네 꽃 한 송이 가슴에 달아드리고 싶어도 어머니의 야윈 세월은 기어이 붙잡지 못한 강물처럼 저만치 흘러가 버렸네 비록 손 내밀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계시나 당신은 영원히 내 삶의 가장 따스한 봄날이네 - 「나의 어머니」 전문 ‘오월’의 싱그러운 풀 향기와 어머니의 ‘젖 내음’이라는 후각적 심상을 통해, 계절의 생동감과 어머니를 향한 아늑한 기억을 대비시키며 그리움을 극대화한다. “그 흔한 사진 한 장 남겨두지 못한 회한”은 물리적 결핍의 아픔을 보여준다. 그러나 “눈물이 흐르는 길목마다 당신의 얼굴이 고여 있네”라는 구절은 슬픔의 산물인 눈물을 통해 오히려 어머니의 형상이 내면에서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역설적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이승에 계시지 않지만 어머니가 베풀어 준 사랑이 삶을 지탱하는 근원적 온기임을 깨닫고, “영원히 내 삶의 가장 따스한 봄날”이라 명명하며 깊은 울림 속에 시를 매듭짓는 명작이다. 남편의 시련을 자신의 운명적 과업으로 받아들이는 화자의 숭고한 태도를 통해, 부부의 진정한 연대와 삶을 관통하는 인간의 위대한 끈기를 보여주는 시를 들여다본다. 올여름 남편이 무리한다 싶더니 그만 큰 일이 나고 말았다 쉬지 않고 일하는 남편의 허리에 무리가 가서 디스크가 터지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더니 나는 무쇠강철이니 걱정 말라고 큰 소리쳤다 욕심이 과했던 것이다 큰일 났다 발등에 불이 켜졌다 그 힘 좋은 남편이 하는 일이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한가하게 여가를 즐기며 살던 내가 다 해야 할 상황이다 나는 앞이 캄캄했지만 침착하게 하나하나 해결하며 남편의 병간호를 했다 나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차도가 없었다 큰딸 권유로 인천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 남편은 입원한 병원에서 집안 걱정을 많이 했는지 그렇게 좋던 몸 근육이 다 빠져 버렸다 얼굴이 몰라보게 너무 야위었다 평생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커다란 나무가 벼랑 끝에 누워 있었다 나는 지금 두 달 고생하고 있지만 내년 1년은 가료를 해야 남편이 회복된다고 한다 나는 늘 운동하면서 건강을 챙기면서 일한다 어떤 때는 나의 체력이 떨어져 너무 힘들다 잘 참고 이 어려움을 넘겨야 하는데 벌여놓은 우리 집 일이 너무 많다 나는 남편 대신에 이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 내 작은 어깨에 남편의 몫까지 두 배의 계절이 얹혀 지고 걱정이 앞서지만 잘 헤쳐 나갈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 「나의 남편 김윤근」 전문 이 시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투병과 그로 인해 홀로 남겨진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아내의 진솔한 고백을 담은 생활 서정시이다. 위기 속에서 발현되는 강인한 책임감과 일상의 소중함을 담담하고도 묵직한 호흡으로 그려내어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 힘 좋은 남편이 하는 일이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강철 같던 남편의 부재로 인해 삶의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진 당혹감과 막막함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현실적인 진술이다. “평생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 커다란 나무가 벼랑 끝에 누워 있었다” 남편을 거대하고 든든한 ‘나무’에 빗대고,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벼랑 끝’으로 표현하여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거대한 충격과 안타까움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내 작은 어깨에 남편의 몫까지 두 배의 계절이 얹혀 지고” 육체적·정신적 고단함이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비유“두 배의 계절”로 형상화되어, 홀로 가정을 지탱해야 하는 아내의 묵직한 희생과 인내가 가슴 저리게 전달된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는 문장을 보면 고통 속에서 깨달은 삶의 진리가 들어있다. 평온했던 보통의 날들이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는지를 확인하며 묵묵히 시련을 이겨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마무리된다. 죽음의 참혹한 상실 속에서도 슬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보듬는 태도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깊은 인간애의 가치를 가슴 아프게 일깨워주는 시를 통해 생명의 경외를 느끼는 시를 마주한다. (…상략) 하필 그날은 왜 그랬는지 밤새 축사에 가보지 못했다 어미 소의 산통이 그때 시작되었던 모양이다 아침에 서둘러 가보니 밤새 홀로 모진 고통을 겪어낸 흔적이 역력했다 (…중략) 첫 숨 한 번 쉬지 못한 어린 생명이 차갑게 굳어 가는데 하필 다른 때도 아니고 내가 못 간 그날 밤 뱃속에서 죽다니! 애통스럽다 어미 소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밥도 먹지 못한다 매일 밥 안 먹고 울기만 하는 어미 소에게 소죽을 쑤어 주었다 그리고 쓰다듬어 주며 위로해 주니 내 마음을 알아주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퉁퉁 부어오른 어미 소의 눈망울에 내 눈물도 함께 고여 내 뼛속까지 아픔으로 다가왔다 - 「산고의 밤」 일부 이 시는 소의 출산 과정에서 겪은 안타까운 죽음과 그 슬픔을 어미 소와 함께 나누는 과정을 담은 시이다. 생명의 신비와 참혹한 상실, 그리고 고통을 교감하는 인간의 따스한 성품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밤새 홀로 모진 고통을 겪어낸 흔적이 역력했다”하필 돌보지 못한 날 밤에 찾아온 비극 앞에서 화자가 느끼는 자책감과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구절이 가슴 아프게 한다. “첫 숨 한 번 쉬지 못한 어린 생명이 차갑게 굳어 가는데”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채 죽어간 생명의 허무함이 촉각적 심상(“차갑게 굳어 가는데”)을 통해 극대화되며 독자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도 상처 입은 영혼끼리 위로를 주고받는 순간이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어선 깊은 교감이 응축되어 있는 시다. “퉁퉁 부어오른 어미 소의 눈망울에 내 눈물도 함께 고여” 어미 소의 슬픔이 곧 화자의 슬픔이 되는 동질화의 과정이다. 타인의 고통을 내 뼛속까지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진정한 공감의 능력을 보여주며 시가 깊은 여운 속에 마무리된다. 고즈넉한 산사를 배경으로 모성과 그리움이라는 원초적 감정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삶의 슬픔을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깊은 울림을 전하는 백련사 백일홍을 읽는다. (…상략) 저 고운 솜털 한 줌 아낌없이 거두어다가 아직 시집 안 간 우리 딸 시린 가슴 덮어줄 따스한 솜이불 한 채 지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극한 내리사랑이 저 하늘 구름처럼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 날 온 대지가 초록의 녹음으로 짙어 가는데 백련사 뜰 앞 배롱나무 꽃은 어찌 저리도 홀로 붉은가 (…중략) 어느새 붉은 노을이 내 발끝까지 밀려와 앉는 시간 하늘마저도 차마 못다 한 그리움을 한 움큼 토해내어 내 가슴속 멍울진 애달픔도 저 배롱나무 꽃처럼 붉게 타오른다 백 일 동안 피고 지며 제 살을 태우는 저 꽃은 어쩌면 부처도 끝내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리라 은은한 범종 소리가 산사의 저녁을 적실 때 붉게 번져가는 노을을 향해 내 안의 오래된 그리움 한 채를 조용히 꺾어 바친다 - 「백련사 백일홍」 일부 백련사의 붉은 배롱나무꽃을 통해 자식을 향한 지극한 모성애와 내면의 애달픈 그리움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려낸 아름다운 시다. 자연의 풍경이 화자의 깊은 번뇌와 만나며 영혼의 제의(祭儀)로 승화되는 정서적 깊이가 돋보인다. “아직 시집 안 간 우리 딸 시린 가슴 덮어줄 / 따스한 솜이불 한 채 지어줄 수 있다면” 구름이라는 대자연의 물성을 자식을 향한 모성애와 연결하여, 차가운 세상을 살아갈 딸을 보듬고 싶은 어머니의 따스한 내리사랑을 시각적이고 포근한 심상으로 빚어냈다. “백련사 뜰 앞 배롱나무 꽃은 / 어찌 저리도 홀로 붉은가” 초록의 녹음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배롱나무꽃의 붉음을 통해, 외롭고도 간절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화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 결정적 매개체다. “내 가슴속 멍울진 애달픔도 / 저 배롱나무 꽃처럼 붉게 타오른다” 저녁노을과 배롱나무꽃, 그리고 화자의 가슴속 멍울이 모두 ‘붉음’이라는 색채적 심상으로 일치되면서, 그리움이 정점에 달하는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어쩌면 부처도 끝내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리라” 백일 동안 피고 지는 배롱나무의 업(業)을 인간의 끊어낼 수 없는 사랑과 그리움으로 해석해 낸 탁월한 철학적 통찰이다. 생명의 거룩한 고통과 따스한 시선을 가식 없는 언어로 포착해, 생명의 근원에 대한 경외와 연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을 감상해보자. 산달이 가까운 소를 살펴보기 위해 축사에 갔다 새끼를 낳으려는 조짐이 보였다 묶을 끈을 준비했다 양수가 터지고 몇 시간이 지나면 죽을 수도 있다 남편이 있으면 걱정이 없는데 남편이 없을 때 하필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끈으로 송아지 발목을 묶었다 잡아당겨 보았지만 꼼짝도 안 했다 나는 마음에 불안함이 엄습했다 여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첫 새끼다 송아지가 송아지를 낳고 있었다 나는 끈을 축사 울타리에 묶고 소를 저만치 몰았다 다행히 소는 움직였고 송아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도 잠시 힘을 주어 낳다가 새끼가 어미 자궁에 걸리고 말았다 큰일이다 나는 소한테 한번 힘을 주라고 말했다 두 생명의 경계에서 붉은 숨소리가 거칠게 부딪힐 때 소는 다시 죽을힘을 다해 송아지를 낳았다 죽을힘! 내가 아기를 낳아봐서 그 심정을 안다 나는 소를 만지며 고생했다고 쓰다듬어 주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 어미와 새끼는 회복 단계에 있다 축사 가득 번지는 젖비린내가 눈물겹도록 싱그럽다 생명 하나 얻는다는 게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다 말 없는 소와 소통하며 더 가까워졌다 - 「축사에서 맞이한 기적」 전문 축사에서 홀로 소의 난산을 마주하고 극복해 낸 순간의 긴박함과, 생명을 낳는 고통을 통해 어미 소와 깊은 영혼의 연대를 이루는 과정을 담은 감동적인 시이다. “남편이 있으면 걱정이 없는데 남편이 없을 때 / 하필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위기 상황 속에서 홀로 감당해야 하는 막막함과 당혹감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시적 긴장감을 높인다. “두 생명의 경계에서 붉은 숨소리가 거칠게 부딪힐 때” 삶과 죽음, 혹은 탄생의 문턱에서 어미 소가 뿜어내는 거친 숨결을 시각·청각적으로 포착하여 생사의 경계가 주는 압도적인 무게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내가 아기를 낳아봐서 그 심정을 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고 출산의 고통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어미 소의 마음을 온전히 체휼(體恤)하는 진정한 공감의 명구다. “축사 가득 번지는 젖비린내가 눈물겹도록 싱그럽다” 죽음의 위기를 넘긴 뒤 찾아온 생명의 환희를 ‘눈물겹도록 싱그럽다’는 역설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으로 승화시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잠시 멈춰 서는 미학을 통해 잊고 지낸 일상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고, 나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삶의 태도가 지닌 소중함을 깊은 시를 만나본다. 무리한 일 끝에 찾아온 통증은 아픔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신호였다 나는 그동안 내 몸의 한계를 외면한 채 욕심을 앞세워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쉼표 없는 걸음은 스스로를 허무는 일이었음을 한의원을 오가며 이어진 시간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넉 달의 꾸준한 치료 끝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기쁨은 이전과는 다른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가장 평범한 하루가 가장 눈부신 선물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몸을 돌보는 일이 곧 나를 지키는 일임을, 내 속도에 맞춰 한 걸음씩 내딛는 오늘의 걸음이 그 어떤 질주보다 값지기만 하다 - 「골반 고통」 전문 무리한 노동 끝에 찾아온 골반 통증과 치료의 과정을 통해, 삶의 질주를 멈추고 자신을 돌보게 된 깊은 성찰을 담은 시다. 신체적 고통을 내면 성장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성숙한 시선이 돌올하다. “아픔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신호였다” 통증을 단순한 고난이 아닌, 무리한 삶의 방식을 바로잡으라는 긍정적 전환점으로 해석하는 화자의 지혜로운 시각이 돋보인다. “넉 달의 꾸준한 치료 끝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 그 기쁨은 이전과는 다른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오랜 인내의 시간을 거쳐 마주한 회복이 단순한 안도를 넘어 삶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시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가장 평범한 하루가 가장 눈부신 선물이었다”아픔을 겪고 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감탄의 형식으로 진솔하게 울려 퍼지게 한다. “내 속도에 맞춰 한 걸음씩 내딛는 오늘의 걸음이 / 그 어떤 질주보다 값지기만 하다” 경쟁과 성과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호흡과 속도를 찾아가는 삶의 태도를 결연하고도 따스하게 다짐하는 시다. 이번 감상할 작품은 낡은 트럭을 향한 헌사와 회한을 담아내며, 삶의 여정을 함께한 동반자를 향한 지극한 인간미와 따뜻한 윤리적 시선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나에겐 낡은 트럭이 있었지 뒤늦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 새벽 기도의 동반자가 되어주었지 둘도 없는 친구였어 트럭아 너와 함께한 시간, 강산이 두 번 흘렀지 너를 보내고 난 눈물이 흘러 강물이 되었단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짐을 짊어지며 너와 헤어지고 폐차장에서 슬피 울 너를 어두운 밤하늘 아래 쓸쓸히 그리워한다 차가운 고철 더미 속에서 홀로 저물어갔을 너에게 주인한텐 그 세월 손끝 하나 다치지 않게 충성한 널 영원히 기억한다 트럭아!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너의 꿈 이루어 다오 - 「낡은 트럭의 노래」 전문 오랜 세월 묵묵히 곁을 지켜준 낡은 트럭과의 이별을 통해, 무생물을 넘어선 깊은 우정과 삶의 동반자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그려낸 시다. “뒤늦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 / 새벽 기도의 동반자가 되어주었지” 트럭을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삶의 궤적을 함께한 ‘친구’이자 ‘동반자’로 규정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너를 보내고 난 눈물이 흘러 강물이 되었단다” 이별의 슬픔을 과장된 비유를 통해 극대화하며, 오랜 정을 나눈 존재를 떠나보낸 화자의 절절한 마음을 보여준다. “차가운 고철 더미 속에서 홀로 저물어갔을 너에게” 폐차된 트럭의 처지를 차가운 고철 더미에 빗대어, 헌신했던 존재의 쓸쓸한 최후를 가슴 아프게 회상하는 절정부이다.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너의 꿈 이루어 다오” 죽음과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의 부활을 기원하며, 트럭을 향한 고마움과 영원한 기억을 따스한 축복으로 승화시킨다. 이번에 읽어볼 시는 평범한 산책길에서 마주친 대자연의 섭리 앞에 서서,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생명의 한계를 맑고 투명한 눈으로 응시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소개한다. 가로수 길을 걸으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만개한 벚꽃잎이 허공에 수없는 눈꽃을 날리고 있다 꽃잎 사이로 가만히 얼굴을 내밀어 보니 살랑이는 봄바람이 내 뺨을 간지럽히며 지나간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꽃은 변함없이 피어나는데 우리의 인생은 멈춤 없이 날마다 시들어간다 순환하는 계절 뒤로 고독한 직선을 걷는 인간의 발걸음 변치 않는 나무야, 너희가 한없이 부럽구나 너희는 제자리에 서서 영원을 순환하는데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를 소멸의 길을 걷는다 피고 지는 찰나의 순간조차 잠시 빌려 쓰는 처지가 아니던가 우리가 너희를 가꾸고 다스린다고 자부하지만 너희는 이 땅 위에서 천년의 세월을 살아내지 우리의 시간은 너희의 푸르름보다 결코 길지 못하여 그저 꽃을 몇 번 피우고 나면 이내 저물어 가리니 되풀이되는 너희의 봄이, 너희의 영원함이 오늘따라 내 마음에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 「가로수 길의 독백」 전문 가로수길의 벚꽃 풍경 속에서 자연의 영원한 순환과 대비되는 인간의 유한한 삶을 성찰한 깊이 있는 서정시이다. 계절의 아름다움 속에서 문득 깨달은 존재의 허전함과 자연을 향한 경외를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다. “우리의 인생은 멈춤 없이 날마다 시들어간다” 매년 반복되는 자연의 생기와 달리, 방향성 없이 소멸을 향해 흘러가는 인간 생명의 유한함을 직시하며 삶의 비애를 환기한다. “너희는 제자리에 서서 영원을 순환하는데 /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를 소멸의 길을 걷는다” ‘순환’하는 나무와 ‘소멸’하는 인간의 운명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시간 앞에 무력한 존재의 깊은 고독을 가슴 저리게 드러내고 있다. “피고 지는 찰나의 순간조차 / 잠시 빌려 쓰는 처지가 아니던가” 삶과 생명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일시적 선물임을 깨닫는 철학적 통찰이 돋보이는 명구이다. “되풀이되는 너희의 봄이, 너희의 영원이 / 오늘따라 내 마음에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자연의 영속성에 대한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 덧없는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 연민을 자아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지나온 세월의 고난을 견뎌낸 부모와 그 사랑을 깨닫고 연대하는 자식들이 마주한 칠순의 현장은, 인생의 황혼기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벅찬 환희의 순간을 묘사한다. 오늘이 나의 칠순이다 꽤 이름있는 횟집에 예약을 했단다 애들이 언제 구상했는지 플랜카드, 꽃다발, 감사패까지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플랜카드에는 나의 사진까지 수놓아 있었다 큰딸 효영이가 감사패를 읽어가는 도중 울먹인다 그만 아들 세훈이한테 읽으라고 인계하고 말았다 눈물로 받아 적은 세월이 자식의 목소리에 맺혀 감동이다 가슴이 찡 저려옴을 느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나를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고 감동을 주니 이게 성공한 인생이요 이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제일 가까운 곳 나를 보고 자라는 자녀들이 어머니를 존경하고 감사하다는 글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딸을 보았다 그 떨리는 음성이 내 평생의 가장 찬란한 자랑이어라 고생이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 내렸다 이게 보람이고 행복이다 나의 여섯 자녀 큰딸 김효영, 큰 사위 오지철, 작은딸 김효선, 막내딸 김현정, 막내 사위 김낙현, 아들 김세훈 참 고맙다 엄마는 이 순간 행복을 느낀단다 너희들이 나의 자식으로 사위로 태어나 주어 고맙고, 또 고맙구나 - 「나의 칠순」 전문 자식들이 마련해 준 칠순 잔치의 감동적인 순간을 통해, 파란만장했던 삶의 노고를 위로받고 진정한 행복을 깨닫는 과정을 담은 자서전적인 시다. “눈물로 받아 적은 세월이 자식의 목소리에 맺혀 / 감동이다” 자식이 읽어 내려가는 감사패 속에 어머니가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청각적 심상을 통해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이게 성공한 인생이요 / 이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물질적 성취가 아닌 자식들의 존경과 사랑에서 삶의 궁극적 가치를 발견하는 화자의 벅찬 깨달음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그 떨리는 음성이 / 내 평생의 가장 찬란한 자랑이어라”자식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평생의 어떤 훈장보다 값진 ‘가장 찬란한 자랑’으로 승화시키는 명구이다. “고생이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 내렸다” 오랜 세월 동안 가슴에 쌓였던 고단함이 자식들의 진심 어린 사랑 앞에 한순간에 해원(解寃)되는 정서적 정화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 일흔 번째 생신이 더욱 뜻깊고 풍성했던 것은 두 사위의 지극한 사랑과 헌신 덕분이었다는 후문이다. 큰사위 오지철과 막내사위 김낙현은 평소에도 장모님을 친어머니 이상으로 살뜰하게 챙겨왔단다. 때로는 딸들보다 더 싹싹하고 든든하게 장모님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사위들이라는 소문이다. 이들의 깊고 따뜻한 효심은 장모님의 마음에 큰 감동을 전해주었으리라. 참으로 화목하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다 홍미숙 시인의 시 세계가 건네는 묵직한 울림 지금까지 홍미숙 시인의 주옥같은 서정시들을 살펴보았다. 시인의 시편들은 화려한 수사나 인위적인 기교를 넘어,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투박하지만 진솔한 삶의 단면들을 따스하고도 정직한 언어로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어머니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눈물 어린 회한 「나의 어머니」, 그리고 갑작스러운 남편의 투병과 시련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내는 굳건한 연대 「나의 남편 김윤근」는 독자의 가슴을 깊게 울린다. 또한 생명의 위기 앞에서 어미 소와 눈물을 나누는 교감 「산고의 밤」이나, 찰나의 통증을 통해 삶의 속도를 되돌아보는 성찰 「골반 고통」, 낡은 트럭과의 애틋한 이별 「낡은 트럭의 노래」에 이르러서는 평범한 일상이 곧 가장 눈부신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자연의 영원한 순환과 소멸하는 인간의 운명을 대비시킨 사유 「가로수 길의 독백」, 자식들의 사랑 속에서 인생의 황혼기를 환희로 물들이는 칠순의 감동 「나의 칠순」까지 시인의 시 세계는 삶의 슬픔과 기쁨을 온전히 품어 안는다. 이처럼 홍미숙 시인의 시는 삶의 무거운 무게를 정직하게 견뎌내며 피워낸 소중한 연대의 기록인 것이다. 거칠고 평범한 대지의 삶을 진실한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 시인의 시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위로와 생명의 온기를 가득 전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