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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꽃무리 변전소
봄 봄맞이 새봄 살갈퀴꽃 봄빛 동백 봄, 참기름 피었네 목련송 목련개화 봄비 홍도화 꽃무리 변전소 꽃맹 박태기 마을 봄이 한창 바람의 잔업수당 봄 길 제2부 초록 방앗간 초록 꽃과 풀 접시꽃 풀잎 숲바위 초록 방앗간 꽃과 이슬 하늘 마시기 도라지꽃 산 맥문동 소낙비 지렁이 초록 책 빗방울 초록 교실 여름 틈 제3부 낙엽 재테크 꽃무릇 산, 들, 바람 가을 백로 저녁 강 무르익다 도토리 고구마 만리향 벼 은행나무 낙엽 재테크 기대는 것들 홍시 마을 묵상 늪에 쓴 시 멍 우포 노을 우포 붉은 강 제4부 아침 노루 외딴 섬 담쟁이 억새풀 첫눈 산골 빈 들 아침 노루 대숲 바람 눈꽃 마을 수묵설경 눈사람 둘러앉은 밤 설향 따스한 눈발 폭설 2월 숲 딱따구리 꽃샘 저녁놀 색깔 놀이 해설: 전다형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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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와 햇빛에
합성된 전압 백억 볼트 초민감 전류를 품은 눈부신 꽃무리 스치기만 해도 감전되는 함박웃음을 즐비한 꽃나무 송전탑으로 전국에 급배송한다 --- 「꽃무리 변전소」 중에서 까칠하고 생경한 이름인데 눈을 붙여 가까이 보면 살갑고 여린 친구들이 숫기 적어 자꾸 수그린다 오르막 내리막 어느 골짜기 바람에 휘청이면서도 이파리 하나하나 삶의 뼛살로 압착돼 오는 열기 큰 꽃밭에 취했다 살갈퀴를 만난 날은 편애와 편견의 마음이 몹시 저린다 마침내 산그늘을 밝히는 건 불티처럼 날아오르는 그들인데 훑어 새로 고칠 완고한 땅의 어스름이여 객토 후에 심을 꽃은 꼭 살갈퀴로 한다 --- 「살갈퀴꽃」 중에서 고매한 분이 보내주신 참기름 두 병 이렇게 미끌리듯 먼저 온 봄을 아직 개봉하지 못했네 아껴아껴 맞이할 거네 얼핏 꽃샘 찬 비도 지나가고 해동되는 가슴속 짜릿한 간지럼 전류처럼 번질 때 개구리 개나리 깨어나면 마개 따고 향기에 완연히 취할 거네 한 병은 눈보라를 추억하고 한 병은 따순 소망과 햇볕을 버무리며 얼부푼 상처에 붓는 해맑은 사랑 나는 회복된 눈망울로 산천을 볼 거네 나무들도 잎들도 푸른 빛 윤나는 그날 --- 「봄, 참기름」 중에서 나무들의 눈물이 내려와 무채색 산골을 적신다 코를 찌르는 바람의 땀 냄새 화들짝 깬 엽록소들이 터뜨리는 폭죽 푸른 대기의 피댓줄이 발동한다 시린 뼈마디를 오래 견디던 갈증난 숲들은 흰구름 빗방울을 불러 초강력 햇살에 쪄서 방아를 찧고 싱싱한 새 이야기들을 빻아 낸다 후미진 곳이나 벼랑 끝 윗마을 아랫마을 가리지 않고 온땅에 흩뿌리는 생명의 분말이다 강과 들과 흙길이 꿈틀대며 입맛 살아난 벌레들의 숨소리까지 멀리 진득하게 푸르러지는 축제 아팠던 누구라도 함께 설레어 만끽하라고 눈부신 잎새들의 초대장이 반짝인다 꽃가루 자욱한 산천을 뒤덮으며 뜨거이 풀가동 중인 초록 방앗간 --- 「초록 방앗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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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 시인은 “풍경 예찬을 지나 성찰로 이끈다. 현장의 말과 노래, 그림과 영상의 자장으로 존재와 사회를 생각게 한다.” (「시인의 말」) 그는 “숨 쉬는 것들은 다 하늘”(「하늘 마시기」)로 받는다. 우리별에서 “가장 밝은 것만 골라 담은/별빛 한 소쿠리”(「바람의 잔업 수당」)인 별꽃과 살갈퀴꽃, 씀바귀, 미나리냉이, 자주괴불주머니, 고구마, 은행나무, 홍시의 “향기에 취해 휘청”(「꽃맹」)이고, 인간과 생태계가 함께 살아갈 권리를 존중한다. “후미진 곳이나 벼랑 끝/윗마을 아랫마을 가리지 않고”, “강과 들과 흙길이 꿈틀대며/입맛 살아난 벌레들의 숨소리까지/멀리 진득하게 푸르러지는 축제”(「초록 방앗간」)의 현장이 바로 이 『초록 방앗간』이다. “뜨거운 입김으로/차를 끓여 내주”(「우포 노을」)는 참 시의 방앗간이다. - 김정원 (시인, 영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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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의 시에서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전류처럼 감각을 통과하는 생명의 주체이다. 자연을 단순히 위로의 공간이 아니라 상처와 회복, 고통과 연대의 타자들로 이루어진 생명 공동체로 그린다. 박부민 시 세계의 본질은 생명에 대한 감응의 윤리이며, 그것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 땅과 잎, 낙엽과 지렁이, 작은 씨앗과 도토리에서 비롯된다. 박 시인은 자연의 재생 과정을 ‘방앗간’의 활동으로 은유하며, 무채색에서 ‘눈부신 초록’으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기쁨, 공생, 회복을 말한다. 이 시집은 그 공정에 놓인 따뜻한 철학적 초대장이다. 봄의 움틈부터 겨울의 무채색까지 생명의 전 생애 주기를 껴안으며 고통, 기쁨, 성장, 퇴적, 소멸, 환생을 노래한다. 우리는 자연의 전류에 감전될 만큼 살아 있는가? 시집 『초록 방앗간』은 한 겸허한 시인의 존재적 물음으로 그득하다. - 전다형 (시인, 국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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