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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의 트라우마
해원과 화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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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책소개

목차

책을 내면서 5

01 역사화된 기억과 강요된 망각
02 부역, 학살, 그리고 트라우마
03 6·25전쟁기 여성들의 곤경
04 전쟁 포로의 트라우마
05 기억되지 않는 죽음, 기억해야 할 죽음
06 강원도 북부 주민들의 분단 트라우마
07 6·25전쟁 중 탈영병
08 남은 자의 고통
09 개신교와 학살
10 천주교와 학살
11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
12 가해 트라우마
13 전쟁 중에 싹튼 인간애
14 평화지킴이 ‘진실화해평화’
15 기억 전쟁의 현장을 다녀오다

저자 소개 1

연세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가톨릭 신학 전공(실천신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8월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논문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북한』으로 북한학(정치통일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정보사회의 그리스도교 : 가톨릭교회의 미래전망”, 『한국 가톨릭 어디로 갈 것인가』(서광사, 1997) 외 70편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디지털 영성』, 『정보사회와 그리스도교』외 공저 포함 40권, 번역서는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의 『희망의 문턱을 넘어』(1994) 외 공역 포함 9권이 있다.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 소장, 한국가톨릭문
연세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가톨릭 신학 전공(실천신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8월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논문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북한』으로 북한학(정치통일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정보사회의 그리스도교 : 가톨릭교회의 미래전망”, 『한국 가톨릭 어디로 갈 것인가』(서광사, 1997) 외 70편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디지털 영성』, 『정보사회와 그리스도교』외 공저 포함 40권, 번역서는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의 『희망의 문턱을 넘어』(1994) 외 공역 포함 9권이 있다.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 소장,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천주교 의정부교구 사목연구소 초빙연구원, 한국 가톨릭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현재는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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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5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140*210*20mm
ISBN13
9791197173264

책 속으로

이 트라우마 치유의 첫 단계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국가주의, 이념에 물든 공식 기억을 정화하고 한 인간의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사태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바라볼 때 윤리적으로 잘못된 행위를 한 주체는 그가 개인이든 국가이든 피해 당사자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치유의 출발이다. 힘을 가진 이들이 오염되고 착색된 기억으로 피해자를 억압하는 이제까지의 방식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가해자들이 기억과 해석 권한을 독점하고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피해자들은 여전히 진실 규명의 첫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입구부터 막힌 상황이다. 그래서 누군가 대신 진실을 밝히고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달리 뭐를 보태주지 않더라도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서술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다.
--- p.9~10

전쟁의 모든 경험이 기록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런 여성들의 경험은 기록은커녕 애초에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기억이다. 이런 일은 분명히 있었지만 없었던 일이다. 남성들의 역사 그것도 군인이 기록하는 전쟁사에는 도저히 기록할 수 없는 기억이다. 그래서 국가 기억, 그것도 군인들이 오랜 시간 지배한 사회에서 공인하는 국가 기억은 선택적 기억일 수밖에 없다. 국민도 그럴진대 적이나 부역자들로 간주된 이들의 기억이야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기억하지 않는 사회는 같은 일을 반복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비공식적인 기억들, 공식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하는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기억들을 공식 기록에 담아야 한다. 이것이 작지만 지금껏 남아 있는 전쟁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다.
--- p.46

학살 피해자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진실을 밝히며 그들의 역사를 공식 역사에 남기는 일은 유족과 그들과 연대하는 소수의 몫이다. 그들의 외침은 작고 외롭다.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이들의 목소리는 더 작아진다. 이들은 개명한 천지가 된 요즘에도 가해자들을 편들어 피해자들을 윽박지른다. 전쟁을 치른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는 기존의 기득권층이 전쟁 후에도 기득권을 유지했다. 이것이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 p.70~71

그리스도교는 처음 200년 동안 비폭력 평화주의를 실천했다. 그러나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폭력을 승인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 폭력은 방어적인 것이어야 했다. 정당방어의 경우에만 폭력을 용인했다. 그러나 이 원칙이 잘 지켜졌다는 증거는 없다. 어떻든 이러한 폭력을 조건부로 허용하는 입장을 ‘정당한 전쟁론’이라 부른다. 전쟁을 어느 때 정당화할 수 있는가를 판정하는 기준은 현대로 올수록 가짓수가 늘었다. 이 늘어난 기준을 제대로 적용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전쟁이 계속되는 것은 아무도 이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 p.119

진보 정권은 피해 규모가 훨씬 컸음에도 반공 정권이 방치해온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추모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들도 이들의 희생 사실을 밝히는 데 열심이었다. 사명감에 가까운 열의였다. 이에 비해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자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들에 대해서는 전쟁 중임에도 국가가 조사를 진행했고 이름도 남겼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우익 단체원들은 반공 투사로 추앙되기도 했다. 배상과 보상은 없었지만 이름조차 언급할 수 없고 국가가 조사도 하지 않는 부역자 가족에 비하면 나은 처지였다. 희생자의 주축이었던 경찰, 군인, 공무원은 국가의 보훈 대상이어서 보상을 받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책임을 물을 대상이 북한이거나 당사자를 이미 죽여 원수를 갚았기 때문에 굳이 억울함을 밝힐 필요가 없었던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희생자 가족은 진실 규명을 요청했다. 왜 그랬을까?
--- p.145~146

6·25전쟁 때 벌어진 학살의 정점에는 미군이 있었다. 미군은 전쟁을 빨리 끝내는 데 목적을 두었기에 군사작전에 방해가 되는 이들이면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고 살상했다. 그들이 이를 직접 행동에 옮긴 방법은 공중 폭격, 기총소사, 포격, 고의 살상이었다. 전쟁터가 아닌 일상에서도 한국인을 죽이는 일이 흔했다. 이승만은 미군의 이런 악행을 알면서도 그들이 전쟁을 도우러 왔으니 작은 피해는 눈감아야 한다며 굳이 문제 삼지 않으려 했다.
--- p.158

이런 분위기는 남북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치른 나라들은 하나 같이 종전 후 기득권 세력이 교체되었다. 그런데 남북은 전쟁 전 기득권 세력이 전후에도 계속 권력을 유지하였다. 오히려 더 강화되는 기이한 체험을 했다. 이런 나라에서 가해자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와 용서를 청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적대 세력에게 저지른 일이라면 반성의 여지는 크게 좁아진다. 남한의 경우 이들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고 그들 배후에 여전히 미국이 있다. 그러니 굳이 반성할 필요를 못 느낀다.

이렇게 가해자의 반성, 사과가 없으니 화해는 난망이다. 진보 정부가 들어설 때만 잠시 시늉을 할 뿐이다. 이런 때조차도 보수 세력의 물타기와 방해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피해 유족들이 진실 규명부터 난항을 겪는 이유다.
--- p.186

나는 발굴에 참여한 한 자원봉사자가 어느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발굴에 참여할 때마다 ‘발굴된 뼈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말에 감명을 받았다. 발굴된 뼈는 오랜 세월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기다려온 것처럼 반갑게 발굴자를 맞아주는 것 같다고 했다. 두개골을 들었을 때 턱뼈가 열리는 경우가 있는데 마치 그 모습이 자신에게 감사하며 웃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인상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유골은 그에게 말을 걸어온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 p.196

출판사 리뷰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는 전쟁의 트라우마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평신도 신학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뜻깊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의 저자 우리신학연구소 박문수 소장은 대전 산내 곤령골 유해 발굴 작업에 참여한 후, 심한 몸살을 앓았다. 이 체험 이후 6.25 전쟁 전후로 참혹하게 죽어간 이에 대해 연구하기로 마음먹고, 〈가톨릭평론〉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기획 연재가 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6.25전쟁은 지워지지 않는 육신의 상처뿐 아니라 깊은 마음의 상처도 남겼다. 전쟁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시간이자 공간이기에 그에 관여된 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긴다. 이 트라우마는 또한 대를 물려 전수되기도 한다.

저자는 나는 12.3 내란을 통해 이 트라우마가 현재 진행형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6.25전쟁기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들이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5.18을 경험한 이들은 12.3 계엄 다음 날 가슴이 떨려 서울에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실제로 내란 주범 가운데 한 명이었던 노상원의 수첩 속 수거 대상 명단은 그것이 기우가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연좌제 피해를 당했던 이들에게도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넘겨버릴 일이 아니었다. 이처럼 전쟁 트라우마는 오늘날에도 생생히 살아 있다.

전쟁 중에는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를 겪는다. 어느 날 북에서 포탄이 날아와 집과 가족을 산산조각나고, 인민군이 지나는 길에 있던 민간인은 이유없이 총탄을 맞았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피난을 떠났는데 미군이 그들을 향해 비행기에서 기총 소사를 했다. 분명 같은 편인데 자신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피난 길에는 시체가 널려 있었다. 피난 길에 편안한 잠자리는 상상할 수 없었다. 배고픔, 더위, 추위도 참기 어려웠다. 살기 위해 본능에 충실해야 했던 기억, 전쟁이 아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했던 수치스러운 기억,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했던 고생, 내가 살기 위해 남을 고발해야 했던 일, 국군과 미군에게 험한 꼴을 당한 기억 등이 트라우마를 안겼다. 어떤 이는 살아남기 위해 적에게 부역한 탓에 자신은 물론 가족, 친척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가운데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연좌제에 시달려야 했다. 강한 자는 강한 자대로 약한 자는 약한 자대로 힘에 대한 공포를 갖게 한 것이 6?25전쟁이었다.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해원과 상생

이 트라우마는 개인한테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반공·반북 정서,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변질되어 나타난 미국 숭배, 반북의 연장에 있는 반중 정서, 군사 독재 정당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정권을 반대하는 일에 나섰다 골로 간다’는 말도 크게 보면 이 트라우마의 연장이다. 여기에 독재 정권이 저지른 국가 폭력은 이런 트라우마를 더 강화했다.

우리의 엄혹한 역사 속에서 전쟁 트라우마는 깊게 은폐되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긴 독재의 터널을 지나 사회가 민주화하면서, 겨우 그 트라우마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트라우마 치유의 첫 단계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국가주의, 이념에 물든 공식 기억을 정화하고 한 인간의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사태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바라볼 때 윤리적으로 잘못된 행위를 한 주체는 그가 개인이든 국가이든 피해 당사자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치유의 출발이다. 힘을 가진 이들이 오염되고 착색된 기억으로 피해자를 억압하는 이제까지 방식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실은 가해자들이 기억과 해석 권한을 독점하고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방해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진실 규명의 첫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입구부터 막힌 상황이다. 그래서 누군가 대신 진실을 밝히고 말해줌으로써 역사적 실어증을 풀어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보태주지 않더라도 사실 그대로 기억하고 서술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저자는 그것이 이 책을 쓴 이유임을 밝힌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6.25전쟁의 실상과 이 전쟁이 오늘날에도 어떻게 우리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전쟁 중에 억울하게 희생되신 분들을 조금이라도 기억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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