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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_ 이찬수
전쟁의 이유, 종교의 자리, 명멸하는 평화 _ 이찬수 전쟁의 인과 관계 제1차 세계대전의 복잡성 전쟁을 정당화하는 종교 민족과 국가에 종속된 종교 수단과 목적의 전복 욕망 이론과 전쟁의 심리적 원인 거대한 부정성과 심층 종교 명멸하는 평화와 감폭력 십자군전쟁과 이슬람의 평화 _ 홍미정 십자군전쟁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 십자군전쟁 이전의 상황 십자군전쟁과 십자군 왕국 건설 이슬람과 평화 30년전쟁과 가톨릭 ․ 개신교 ― 종교, 국가, 평화 _ 이병성 들어가는 말 역사적 맥락과 분쟁의 기원 전쟁의 주요 단계와 중요한 사건 베스트팔렌 평화조약과 그 영향 30년전쟁에 대한 유럽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비평 30년전쟁과 현대 평화론 나가는 말: 30년전쟁과 한반도 평화 아수라로 전락한 불교 ― 태평양전쟁과 일본 불교 _ 원영상 파시즘 체제의 폭주 불교계의 전쟁 옹호 전시 교학의 논리 과연 불교는 홀로 설 수 있는가 한국전쟁과 그리스도교 _ 박문수 그리스도교와 전쟁 공산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충돌 전사(前史) 한국전쟁기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선택 성전 정당한 전쟁 평화주의 성찰 연기의 그늘에서 ― 로힝야 난민과 국제분쟁에 대한 불교적 성찰 _ 문유정 침묵과 망각의 경계에서: 고통을 자원화한다는 것 국제정치 속의 주변화된 생명들 연기의 관점에서 본 로힝야 사태 무명과 삼독심 그리고 침묵 베스트팔렌 체제에 대응하는 보살도의 요청 다시, 연기의 그늘에서 말하다 전쟁, 욕계(欲界)의 숙명인가 _ 정상교 들어가는 말 인류는 전쟁과 함께 전쟁을 바라보는 불교의 시점 탐·진·치에 따른 전쟁의 양상 참된 평화를 위한 불교의 방법론 나가는 말 글쓴이 알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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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본연의 가르침에 어긋나 보이는 이런 현상은 한때 벌어졌던 종교의 일시적인 실수나 모순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도 결국 ‘인간 현상’이고, 인간이 ‘진리’를 자신이 경험한 역사적 상황, 문화적 환경, 인간관계 등에 기반해 해석하고 자신의 처지에 어울리게 적용하려 하는 데서 비롯되는 일들이다. 사랑이나 자비와 같은 이상적 가치와 태도도 현실에서는 현장에 어울리게, 무엇보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되고 구체화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의 요지가 그렇듯이,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이타적 행위로 보이는 것도 사실은 이기성을 위한 수단에 가깝다. 종교도 인간이 집단을 이루며 존속하는 한 이런 현상은 필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이찬수|전쟁의 이유, 종교의 자리, 명멸하는 평화」 중에서 「메디나 헌장」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주도하는 메카 출신의 이주민 무슬림들과 메디나 주민들 사이에서 체결된 공존 협정으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이듬해인 623년에 만들어졌다. 이 헌장은 무슬림들과 다양한 메디나 주민들, 특히 유대인들이 하나의 공동체(국가)를 결성하도록 규정하였으며,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및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부족들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 이와 같이 카즈라즈 부족은 예언자 무함마드를 메디나로 초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메디나에서 정착하여 활동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후 이 부족은 무슬림으로 개종하였으며, 무함마드 사후에도 예루살렘 정복을 비롯한 무슬림들의 정복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메디나 헌장」 속에 나타나는 무슬림들은 각 부족 내 유대인들과 매우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고, 종교나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거나 분쟁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 「홍미정|십자군전쟁과 이슬람의 평화」 중에서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이어진 30년전쟁(Thirty Years’ War)은 근대 초기 유럽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변혁적인 분쟁 중 하나로 기록된다. 주로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의 분열된 영토 내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거의 모든 유럽 강대국을 종교와 정치가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로 끌어들였다. 역사가 마이런 구트만(Myron Gutmann)은 이 전쟁을 “하나가 아닌 세 개의 전쟁, 여섯 개 이상의 주요 당사자”로 적절히 묘사하며 그 복잡하고 다면적인 성격을 강조했다.1 이 분석은 전쟁이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 뿌리 깊은 종교적 긴장에서 시작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성격이 점진적으로 정치적 지배와 유럽 권력 역학의 재편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으로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진화는 궁극적으로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Peace of Westphalia)으로 이어졌는데, 이 조약은 길고 긴 유혈 사태를 종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국가 체제, 국제 관계를 규율하는 원칙 그리고 종교적 관용의 범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 --- 「이병성|30년전쟁과 가톨릭 ․ 개신교 ― 종교, 국가, 평화」 중에서 1945년 2월 일본 유일의 종교신문인 「중외일보」(中外日報)에서는 “백년전쟁의 각오를 굳게 하자”라며 전쟁을 일상화하는 논리를 폈다. 정부에서나 민간에서는 패전을 전망하는 말이 나왔다. 3월에는 도쿄 대공습으로 패색이 짙어졌다. 조동종 승려이자 학자인 마스나가 레이호(増永霊鳳)는 5월, 같은 신문의 “특공정신의 근원”에서 이를 개아의 부정에 의해 역사를 짊어진 혼의 부활이라고 하며 죽음을 미화했다. 8월에는 전시종교보국회 불교국 ․ 대동아불교청년회 등에서는 국민 총무장을 외치며 죽창 훈련을 개시했다. 다른 종파도 마찬가지이지만 9월에 당시 조동종 관장 다카하시 로센(高階瓏仙)은 “성지(聖旨)를 봉체하여 부동의 신념으로 신일본 건설의 초석이 되자”라고 유시했다. 반성이나 참회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 「원영상|아수라로 전락한 불교 ― 태평양전쟁과 일본 불교」 중에서 북한이 남침하자 모든 교파는 침공을 비난하며 이 침공에 대응하는 ‘반공 성전(聖戰) ․ 반공 십자군전쟁’을 독려하였다. ‘반공 성전’에는 직접 참전(입대, 의용군 지원), 간접 지원(군종, 의료, 후방 군사 활동 지원), 선무(宣撫, 반공 선전) 등의 활동이 포함되었다. 이 ‘반공 성전론’은 북한의 선제공격에 대한 ‘정당방위’이자 공산주의라는 ‘악’의 분쇄라는 견해에서 옹호되었다. 이 주장은 전쟁 중에는 물론이고 198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전쟁 중에는 ‘반공 성전론’이 지배하였기에 ‘정당한 전쟁론’은 발붙일 자리가 없었다. ‘정당한 전쟁론’은 외국인 선교사 일부만 가지고 있었다. 성전의 정반대 위치에 있는 ‘평화주의’ 역시 극히 일부 그리스도인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전쟁 예방 노력, 폭력적 상황에서 무저항(순교 포함), 용기와 기지를 발휘하여 타인의 살상을 막은 경우 등이 포함된다. --- 「박문수|한국전쟁과 그리스도교」 중에서 나아가 불이(不二)의 연기관은 오늘날의 난민 문제, 기후 위기 및 무력 분쟁과 같은 글로벌 위기 속에서 대안적 세계관으로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보살도는 이러한 불이의 통찰을 실천윤리로 구체화한다. 다시 말해 불교적 세계시민주의 또는 보살의 실천윤리로 확장되어 정치적 국경과 이념적 경계를 넘어선 윤리적 책임의 감수와 연대적 행동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보살은 국경 넘어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언급될 기회마저 상실한 이들의 고통을 내 자신의 것으로 함께 짊어지며 공존 속에서 자기 구원을 실현해 나간다. 정서적 연민을 넘어 배제된 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통해 자기의 해탈이자 구원을 이루는 인간적 지향점이자 수행의 종착지가 ‘보살’이라 할 수 있겠다. --- 「문유정|연기의 그늘에서 ― 로힝야 난민과 국제분쟁에 대한 불교적 성찰」 중에서 … 따라서 인간의 마음 작용인 앎은 대상(欲, kāma)을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접촉하면서 생긴다. 즉,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은 눈, 코, 귀, 입, 피부로 들어오는 정보의 해석을 기반으로 구축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불교는 보통의 인간이 사는 곳을 욕계(欲界, kāma-avacara)라고 하는데, 계(界)의 원어인 아바까라(avacara)는 ‘그 주변을 맴돈다’,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바꿔 말하면 욕계에 사는 인간의 마음은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 것에 머물러 만들어지는 것이다. … 이러한 욕계의 마음은 더 가지려는 탐(貪, lobha), 좌절되고 분노하는 진(瞋, doṣa), 알려고 하지 않는 치(癡, moha)라는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다. 결국 삼독을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에 이성의 합리적 진보(라는 착각)도, 과학 기술의 발전도 전쟁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욕계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삼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므로 다툼과 분쟁과 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 「정상교|전쟁, 욕계(欲界)의 숙명인가」 중에서 |